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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국에 “원전 협력” 손 내민 튀르키예, 계약 이전 읽어야 할 계산

한국·미국에 “원전 협력” 손 내민 튀르키예, 계약 이전 읽어야 할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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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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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원전·SMR 병행 시나리오
전력 공급 불안, 경제성 확보 과제
에너지 공급 다변화 전략 구체화

튀르키예가 한국과 미국에 원자력 발전 협력을 제안하면서 중장기 에너지 전략의 방향을 드러냈다. 러시아 의존도가 높았던 에너지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을 병행하고, 기술 이전과 장기 산업 육성까지 염두에 둔다는 구상이다. 이를 두고 원전업계에서는 튀르키예가 한국의 가격 경쟁력과 사업 경험, 미국의 금융·외교적 신뢰를 함께 활용하려는 움직임에 나섰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전력 수급 불안과 막대한 투자 부담이라는 현실적 제약, 액화천연가스(LNG) 협상과 맞물린 외교적 셈법까지 더해지면서 이번 원전 논의의 성격 또한 한층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에너지 안보-외교 전략 결합 

22일(현지시각) 에너지 전문매체 에너지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최근 튀르키예 정부는 대형 원전 건설과 5기가와트(GW) 규모의 SMR 구축을 위해 한국과 미국 기업에 협력을 요청했다. 단순 시공이나 기술 도입에 그치지 않고, 한·미 양국의 선진 원전 기술을 흡수해 자체 SMR 설계를 완성한 뒤 이를 제삼국으로 수출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다. 이는 한국이 과거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을 계기로 원전 기술 자립과 글로벌 사업 확장을 동시에 이뤄냈던 성장 모델을 벤치마킹한 행보로 읽힌다. 

이 같은 튀르키예 정부의 움직임은 한국과 보훈, 원자력, 도로 인프라 등 3개 분야에서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지 불과 한 달만에 나왔다. 11월 체결된 양국의 원자력 협력 MOU에는 기술 협력과 부지 선정, 규제·인허가, 금융 및 사업모델 등 원전 프로젝트 이행 전반이 포괄적으로 담겼다. 특히 △공동 워킹그룹 구성 △정보·경험·노하우 공유 △전문 인력 상호 방문 등을 통해 초기 단계부터 협력을 심화한다는 점이 명시됐다. 이 때문에 이번 한·미 동시 제안은 기존 협력 틀 위에서 구체화된 후속 단계로 평가된다. 

알파르슬란 바이락타르(Alparslan Bayraktar) 튀르키예 에너지천연자원부 장관은 지난 10월 김동철 한국전력공사 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자국 원전 도입과 관련해 “3자 모델이 존재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단일 국가 의존을 피하면서도 가격 경쟁력과 사업 신뢰도를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계산에서 비롯된 발언으로 해석된다. 또 다른 튀르키예 정부 관계자 또한 “국산화 목표(localisation goals)를 충족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제안이 제시될 경우, 연내 신규 원전 건설과 관련한 국제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튀르키예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새로운 원전 파트너를 모색하는 배경에는 러시아와의 에너지 관계 변화가 자리한다. 튀르키예는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 로사톰과 협력해 지중해 연안 메르신주 아쿠유 지역에 첫 번째 원전을 건설 중이지만,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이후 공정 전반에 차질을 겪어 왔다. 핵심 부품 공급이 중단되는 등 외부 변수에 사업이 흔들리면서 특정 국가에 에너지 인프라를 과도하게 의존하는 위험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여기에 러시아로부터 들여오는 천연가스 역시 가격과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 예전만큼 저렴하고 확실한 선택지로 보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 때문에 튀르키예는 시놉과 이그네아다 지역에 추진 중인 두 번째·세 번째 원전 사업에서는 공급망 다변화를 핵심 원칙으로 삼았다. 러시아와의 관계가 이전만큼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서방 파트너를 통한 균형 맞추기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에서다. 여기에 전력 수요 증가로 원전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과 원전 기술 수출국으로 도약하려는 야망 등이 겹치면서 이번 ‘원전 삼각 협력’ 제안은 에너지 안보와 외교 전략의 결합 성격을 띠게 됐다. 한국이 가격 경쟁력과 사업 수행 경험을 갖춘 파트너로 지목되고, 미국의 참여로는 금융·외교적 신뢰를 보완하는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높은 비용에 정책 추진 쉽지 않아

튀르키예의 원전 확대 논의가 본격화한 배경에는 전력 공급 차질이 누적된 현실이 자리한다. 튀르키예는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비롯한 주요 산업·상업 지역에서 정전 등이 반복되면서 전력 수요 증가가 일시적 문제를 넘어 중장기 과제로 떠오른 상태다. 튀르키예 정부는 향후 30년 동안 자국 전력 수요가 현재의 3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이를 전제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포함한 발전 용량 확대 로드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전력망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 경쟁력과 국민 생활 전반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원전 확대 논의의 출발점이 됐다.

문제는 원전 확대가 곧바로 해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튀르키예는 알프스-히말라야 지진대에 위치한 국가로, 원전 건설 시 일반적인 내진 기준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안전 설계가 요구된다. 내진 설계를 강화할수록 부지 면적과 구조물 규모, 관련 설비가 함께 늘어나 건설비 상승으로 직결되는 구조다. 실제 전 세계적으로 지진대에 원전을 건설한 사례는 1984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쾨버그 원전 등 극소수에 그친다. 쾨버그 원전 가동 이후 국제 규제 기준이 한층 강화된 만큼 튀르키예 원전 사업은 공사 기간 지연과 비용 증가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자금 조달 문제도 원전 확대의 가장 큰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대형 원전은 물론 SMR마저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한 데다, 회수 기간 역시 긴 탓이다. 특히 원전 전력에 대해 장기간 수익성을 보장하는 전력구매계약(PPA)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도매 전력 시장에서 가스 발전과 직접 경쟁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튀르키예가 러시아와 연결된 가스관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천연가스를 공급받아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원전 발전 단가는 러시아산 천연가스 기반 발전보다 경쟁력이 있어야만 정책적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과거 시놉 원전 프로젝트가 좌초됐던 전례는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튀르키예는 지난 2010년 한국형 원전(APR1400) 4기 건설을 목표로 정부 간 협약(IGA) 체결을 추진했지만, 이후 전력 판매 단가와 지급보증 여부를 놓고 양국이 뜻을 모으지 못했다. 튀르키예 측은 전기를 최대한 저렴하게 공급받기를 원하고, 한국 측은 투자금 회수에 대한 안전장치를 요구하면서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이와 같은 경험은 현재 진행 중인 원전 확대 논의에서도 경제성 확보가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임을 상기시키는 사례로 언급된다.

다층적 에너지 구상 현실화

이 때문에 시장에선 이번 원전 협력 논의를 곧바로 수주 국면으로 보기는 이르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재 단계는 계약 추진보다 튀르키예의 에너지·외교 전략이 구체화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튀르키예 국영 에너지기업 보타시는 연말 만료 예정인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 가즈프롬과의 공급 계약 연장을 위한 대화에 돌입했으며, 연간 약 220억㎥ 수준의 공급량 유지를 전제로 가격 조건을 논의 중이다. 원전 협력 논의가 본격화된 시점과 가스 계약 재협상이 겹친 점은 원전이 단순 발전 사업을 넘어 협상 테이블에서 일종의 지렛대로 활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을 협력 축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튀르키예는 최근 미국과 LNG 공급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를 두고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대체하거나 중단하려는 신호라는 시장의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튀르키예 통신총국은 “미국산 LNG 계약은 공급 다변화와 경쟁 촉진을 위한 기술적 선택일 뿐”이라며 “러시아로부터의 가스 공급은 현재도 계획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원전과 LNG를 동시에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는 튀르키예 정부의 다층적 에너지 구상이 드러난 대목이다. 

여기에 동유럽 국가들과의 연계 움직임까지 더해지면, 튀르키예 원전 논의의 외연은 한층 넓어진다. 최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헝가리에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을 계속 보장하겠다”고 밝히며 러시아를 상대로 한 협상에서 자국이 중개자이자 허브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지난해 기준 러시아산 가스의 튀르키예 수출량은 약 216억㎥에 달했다. 이런 위치 덕분에 튀르키예는 러시아와의 대화에서 일정한 발언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서방과의 협력 가능성도 전략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입지에 선 국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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