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반도체 굴기의 역습” 반도체 자립 효과 현실화, 외형 성장 이면엔 품질 경쟁력 한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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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육성책에 중국 장비업체 급성장 일본·미국·유럽 기업 점유율 하락 압박 기술 독립 완성까지는 여전히 갈 길 멀어

중국에서 반도체 제조 장비의 국산화가 본격화하고 있다. 일본계 주요 반도체 장비 기업 5개사의 중국 매출은 올해 3월 기준 처음으로 전년 대비 감소했고, 미국과 유럽 업체들도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모양새다. 공급망 자립을 추진해 온 중국 정부의 육성 정책이 효과를 내면서 현지 업체들이 해외 기업들의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지만, 외형 성장 속도와 달리 수익성, 공정 안정성, 수율 경쟁력 확보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일본 5대 전방 장비사 中 매출 10% 감소, ASML·어플라이드도 점유율 후퇴
22일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도쿄일렉트론(TEL), 애드반테스트, 스크린홀딩스, 디스코, 국사이전기 등 일본을 대표하는 상위 5대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의 지난 회계연도(2026년 3월 31일 종료 기준) 중국 내 총 매출액은 1조4,700억 엔(약 13조 9,68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직전 연도 대비 약 10%에서 최대 12%가량 급감한 수치로, 일본의 핵심 장비 진영이 중국 시장에서 연간 합산 매출 감소를 기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장 큰 하락세를 보인 곳은 업계 리더인 도쿄일렉트론이다. 올해 1~3월 분기 도쿄일렉트론의 전체 매출 중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은 27%로, 전년 동기 대비 7%포인트 감소했다. 이는 지난 2024년 4~6월 분기 당시 중국 매출 비중이 50%에 육박하며 절반을 책임졌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2년 만에 반토막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특히 실리콘 웨이퍼 위에 미세 회로를 새겨 넣는 프론트엔드(전공정) 장비 제조사들의 타격이 컸다. 도쿄일렉트론과 스크린홀딩스, 국사이전기의 중국 내 전공정 합산 매출은 전년 대비 20% 가까이 폭락했다.
이 같은 위기는 일본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 노광장비 기업인 네덜란드 ASML을 비롯해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KLA 등 서방의 탑티어 장비사들도 중국에서 전례 없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ASML의 경우 올해 1분기 중국 시장 매출 비율이 19%로 떨어지며 전년 대비 8%포인트나 주저앉았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의 37%를 차지하는 중국의 전체 장비 시장 규모는 지난해 493억 달러(약 75조8,800억원)로 전년(496억 달러)과 비교해 거의 변동이 없었다. 시장의 파이는 유지되고 있음에도 외국계 기업들의 매출만 일제히 꺾였다는 것은 중국 현지 제조사들이 그 공백을 통째로 흡수하며 급성장했다는 방증이다.
미국 제재가 키운 中 반도체 굴기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예상 밖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누적된 위험 요인이 결국 현실화됐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미국의 통상 압박을 뚫고 첨단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는 중국의 기세에는 거침이 없다. 앞서 미국은 2022년 시행에 들어간 '2022년 반도체 및 과학 법안(CHIPS법)'을 통해 ASML이 독점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의 중국 수출을 막은 바 있다. EUV 노광장비는 7나노(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만큼, 첨단 반도체 영역에서 중국의 추격 속도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중국의 국산화 의지를 더욱 자극하는 기폭제가 됐다. 중국 정부의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 노력은 2014년부터 이미 추진돼 왔는데 미국의 제재가 촉매제 역할로 작용하며 실제 결실을 거두는 데 기여한 것이다. 현재 중국의 반도체 기술 독립은 대규모 정부 재정 지원 속에서 전후방 산업까지 아우르며 진행 중이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장비 국산화를 국가 차원의 과제로 추진하고 있으며, 자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중국산 장비 우선 구매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 제조업 전문 조사기관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제조 장비의 국산화율은 지난해 기준 전공정 장비에서 21%를 기록했다. 이는 2021년 10%에서 크게 상승한 것이다. 조립과 검사 등을 담당하는 후공정 장비 국산화율도 같은 기간 19%에서 36%로 높아졌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올해 상반기까지 중국 공공부문에서 1,500억 달러(약 230조원)에 이르는 자금이 반도체 산업 분야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대규모 정책 자금은 장비·소재·설계 분야 전반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올해 2월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제조 장비 회사 20위 내에 중국 기업 3곳(북방화창·중미반도체설비·상하이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장비)이 진입했다.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엠피리언 등 3개사가 급성장했다. 웨이퍼 제조 분야에는 상하이실리콘투자회사 등이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중이다. 전방 산업에서는 정책 자금을 토대로 급성장한 인공지능(AI), 전기차, 전자·통신 기업들이 자국산 반도체 내수를 받쳐 주고 있다.
식각 장비 분야에서도 국산화 진전이 두드러진다. 식각은 실리콘 웨이퍼에서 불필요한 물질을 제거해 미세한 트랜지스터 패턴을 만드는 핵심 공정이다. 중국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 나우라는 최근 중국 최대 파운드리업체 중신궈지(SMIC)의 7나노 첨단 공정 라인에서 자체 식각 장비를 시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앞서 14나노 공정에서 성공적으로 장비를 적용한 데 이은 성과다. 나우라는 또 300단 이상 적층 메모리 반도체용 식각 장비를 중국 메모리 업체에 공급하고 있으며, 2023년 제재 이후 해외 업체가 더 이상 지원할 수 없게 된 램리서치 장비의 마모 부품을 대체하기 위해 웨이퍼를 공정 중 고정하는 장치인 정전척(electrostatic chuck)도 자체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저수익 구조 고착화, 품질 리스크도 과제
다만 중국 장비 업체들의 외형 성장은 수익성을 동반하지는 못하고 있다. 나우라는 작년 1~3분기 매출이 273억 위안(약 6조원)으로, 2020년 매출(60억6,000만 위안)과 비교하면 약 3.5배 증가했고, AMEC도 같은 기간 매출이 90억7,000만 위안(약 2조원)으로 2020년 대비 약 3배 늘었다. ACM리서치 역시 매출이 67억9,000만 위안(약 1조5,000억원)으로 2020년 대비 5.8배 증가했다. 파이오테크는 41억 위안(약 1조원)으로 2020년 대비 무려 8.4배 증가했다.
하지만 마진을 나타내는 매출총이익률은 일제히 하락했다. 나우라는 매출총이익률이 2022년 43.8%에서 2025년 41.4%로 줄었고, AMEC는 2023년 45.83%에서 2025년 39.17%로 하락했다. ACM리서치는 2023년 51.9%에서 2025년 48.3%로 낮아졌으며, 파이오테크는 2022년 49.3%에서 2025년 33.3%로 크게 감소했다.
전반적으로 고성장·저수익 구조로 전환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이는 중국 내 업체 간 가격 경쟁 심화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규 팹과 증설 라인에서 중국산 장비 채택 비율을 끌어올리는 정부 방침은 단기 매출을 밀어 올렸지만, 업체 간 중복 투자와 저가 수주 경쟁도 함께 키웠다. 중국산 장비 사용 비중 확대가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제품 검증 부담을 제조사와 고객사 모두에 전가하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일부 기업은 장비 납품 시 할인은 물론, 심지어 무료 제공까지 감행하며 고객 확보에 나서는 등 경쟁 강도를 더욱 높이는 추세다.
품질과 공정 안정성은 더 큰 병목으로 남아 있다. 반도체 장비는 단일 장비 성능보다 공정 전체의 수율, 반복 재현성, 유지보수 역량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중국 업체들이 식각·증착 등 일부 공정에서 성과를 내고 있지만, 첨단 노광·계측·검사·공정제어 영역에서는 서방 장비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중국의 장비 국산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와중에도 첨단 공정 생산능력 확대가 제한되는 배경이다.
수입 경로 변화도 중국의 기술 독립이 완결 단계에 진입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 지난해 중국의 미국산 반도체 장비 직접 수입은 34% 줄어 20억 달러(약 3조원)로 떨어졌지만,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통한 장비 유입은 각각 57억 달러(약 8조7,800억원), 34억 달러(약 5조2,300억원)로 늘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램리서치·KLA 등 미국 장비사들도 중국 관련 매출을 여전히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국산화 속도와 별개로 핵심 부품·공정 장비·서비스망 의존이 완전히 끊기지 않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