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는 요지부동, 금융당국 직접 점검 나서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는 요지부동, 금융당국 직접 점검 나서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세화
Position
연구원
Bio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

수정

금감원, 은행권에 대출금리 산출 근거 등 자료 제출 요구
기준금리 인하에도 가산금리 올리고 우대금리 혜택 줄여
은행별로 다른 깜깜이 가산금리가 혼란 키운다는 지적도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시중은행 대출금리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대출금리 산출 근거를 직접 점검하기로 했다. 그동안 금융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하에도 가산금리를 올리고 우대금리를 덜 깎아주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여전히 높게 유지하면서 '이자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에 금융당국은 이번 조사에서 영업점 전결로 결정되는 우대금리 적용 실태를 중점적으로 점검할 방침이다.

기준금리 떨어졌지만 대출금리는 오히려 상승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21일 은행 20곳에 공문을 보내 차주별·상품별로 준거·가산금리 변동 내역과 근거, 우대금리 적용 현황 등의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은행별 대출금리 변동 내역 등에 관한 세부 데이터를 취합해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대출에 미치는 효과의 합리성 등을 점검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이번 점검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에 따른 조치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가계와 기업이 2차례 금리인하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대출금리 전달 경로와 가산금리 추이를 면밀히 점검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한은은 지난해 10월과 11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하했다. 기준금리가 연 3.5%에서 3.0%로 0.5%포인트 낮아졌지만,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는 오히려 상승했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은행채 금리와 코픽스(COFIX) 등 시장·조달금리를 반영한 '지표금리(기준금리)'에 은행들이 임의로 덧붙이는 '가산금리'를 더한 뒤, 은행 본점이나 영업점장 전결로 조정하는 '우대금리(가감조정금리)'를 빼서 구한다. 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 가계부채 관리에 대한 금융당국의 압박에 가계대출 수요를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대출 가산금리를 올렸다. 이에 더해 평소에 우대금리를 적용해 깎아주던 금리를 훨씬 덜 깎아주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올렸다.

우대금리는 해당 은행에 월급 계좌가 있거나, 은행 신용카드를 매월 일정액 이상 쓰면 깎아주는 금리로, 금감원은 최근 시중은행의 대출금리 인상이 가산금리 인상보다 우대금리 적용을 줄인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해 12월 평균 가계 대출금리는 기준금리 인하 전인 9월 대비 일제히 상승했다. 우리은행은 가산금리를 0.11%포인트 내리고 우대금리를 1.41%포인트 축소했고, 신한은행은 가산금리를 0.19%포인트 높인 데 더해 우대금리를 0.65%포인트 덜 적용해 대출금리를 올렸다. 금융권은 우대금리 축소 효과가 가산금리 인상 효과의 2.8~6.1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금융당국, 2년 전 은행권 금리 담합 의혹 조사

우대금리가 대출금리를 조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는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 카르텔조사국은 5대 은행의 금리 담합 의혹과 관련해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금감원은 금리 인상기에 은행들이 예금·대출금리와 고객 수수료를 담합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에 대해 당시 금융권은 "은행별 가산·우대금리 차이가 명확한데도 공정위를 앞세워 은행들을 담합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금리 문제를 공정위의 담합 조사로 해결하려는 것은 금융업 현장을 너무 모르는 것"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은행 측도 "가산금리는 차주의 신용도나 대출 기간 등에 따라 조건이 달라 담합하기 어려운 구조이고 우대금리도 거래 실적이나 계열 카드사 발급 등 비가격적 요소가 많아 담합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은행권이 가산금리를 투명하게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 제정한 '대출금리 체계의 합리성 제고를 위한 모범 규준'에도 적정한 가산금리 수준을 따로 정하지 않고 있다. 또한 당시 가산금리와 우대금리 간 차이가 2%포인트를 웃돌았다. 일례로 하나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평균 우대금리는 연 2.51%였지만, 기업은행은 연 0.31%에 그쳤다. 

기준금리의 산정 기준도 은행마다 달랐다. 주담대 중 취급 비중이 70%를 웃도는 변동금리 주담대의 경우, 국민·우리·농협·기업 등 4개 은행은 매월 15일 은행연합회가 발표하는 COFIX를 기준금리로 사용했고, 신한·하나은행은 매일 금융채 금리를 반영해 기준금리를 산정했다. 이마저도 신한은행은 직전 3영업일 평균을, 하나은행은 직전 하루의 금융채 5년 만기 금리를 반영하는 등 차이가 있었다. 시장 지배적 은행이 대출금리를 올리면 다른 은행들도 금리를 따라 올리는 '암묵적 담합'에 대한 의혹은 은행 간 치열한 경쟁 관계를 간과한 시각이라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당시 공정위는 최초 현장 조사 이후 4개월이 지난 2023년 6월 농협·기업은행을 제외한 4개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에 대해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재심사가 결정되면서 결과 발표가 지연됐다. 최근 공정위는 추가 조사를 받은 4개 은행에 대해 주담대 거래 조건을 담합했다며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에는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 의견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초 제기됐던 대출금리 담합 의혹은 이 심사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가 대출금리 개입하면서 시장 왜곡 장기화

일각에서는 우대금리의 조정보다 오락가락하는 가산금리가 소비자 혼란을 키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은행권이 금융당국의 대출 관리 기조를 따르는 수단으로 가산금리를 활용함으로써 시장을 왜곡시켰다는 지적이다. 실제 은행들이 고정형 상품의 가산금리를 인상해 대출 문턱을 끌어올리면서 지난해 11월 시중은행 대출금리(신규 취급액 기준)는 고정금리형 주담대(4.31%)로 변동형(4.25%)보다 높게 책정됐다. 고정형 상품의 금리가 변동형보다 높은 것은 2022년 10월 이후 2년 1개월 만이다. 그러다 다시 12월에는 고정형 상품의 지표금리인 은행채 5년물 금리가 0.21%포인트 하락하며 변동형 금리(4.32%)가 고정형(4.23%)을 한 달 만에 앞질렀다.

문제는 정부의 대출 관리 기조와 깜깜이 가산금리 탓에 대출 시장의 왜곡이 장기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론적으로 대출 소비자가 금리 인상에 따른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고정형 상품 금리가 변동형 상품보다 높은 게 정상이지만 한국은 2022년 10월 이후 지난해 11월 한 달을 빼고는 고정형 금리가 변동형보다 항상 낮았다. 이는 금융당국이 은행에 고정형 상품 확대를 주문한 데 따른 것으로, 은행들은 인위적으로 고정형 상품의 금리를 변동형 상품보다 낮게 유지해 왔다. 통상 금융 소비자들은 시장금리가 추가 인하될 것을 예상하기 때문에 이자가 다소 오르더라도 변동형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은행들은 고정형 판매를 확대하라는 당국의 주문 탓에 딜레마에 처했다는 입장이다.

소비자들이 자신이 받은 대출의 가산금리가 어떻게 정해진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은행권은 영업 비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정확한 가산금리 산정 방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가산금리 산정 체계 개편을 검토하겠다고 나섰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제도 개선이 이뤄진 건 없다. 금감원이 은행 간 가산금리 편차가 크지 않은지, 적정 수준보다 과도하지 않은지 등을 살폈고 문제가 있는 은행에 대해서는 지도 조치를 했으나, 은행권은 가산금리를 정부가 개입해 조정하고 이 내역을 공개하라는 것은 시장경제 논리에 맞지 않다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세화
Position
연구원
Bio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

“패스트트랙 타려면 1.4조원”, 윤곽 드러난 ‘미국 우선주의 투자 정책’

“패스트트랙 타려면 1.4조원”, 윤곽 드러난 ‘미국 우선주의 투자 정책’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수정

한국 경제 사절단-美상무장관 면담
현 행정부 임기 내 투자 성과 강조
보조금 집행 여부는 불확실성 여전

자국 산업 활성화에 주력 중인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들에 구체적인 투자 기준으로 1조4,000억원 규모를 언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계는 이 같은 투자 기준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도 오는 4월께 발표될 미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의무는 아니지만, 신속한 절차 위해”

23일(이하 현지시각) 외신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신임 상무부 장관은 21일 미국을 방문 중인 한국 경제 사절단과 회동했다. 워싱턴DC 모처에서 이뤄진 이날 회동에는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을 비롯해 삼성, 현대차, LG, 한화 등 그룹 총수들이 참석했다.

약 40분에 걸친 이번 면담에서 러트닉 장관은 우리 기업인들에게 적극적인 대미 투자를 권유하며 최소 10억 달러(약 1조4,000억원)라는 액수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아가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 내 투자 성과가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전언이다. 공장 착공 등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미 정부 관계자는 “10억 달러를 투자 의무 기준으로 제시한 건 아니다”라면서도 “그 이상이면 신속하게 절차를 밟아 주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같은 날 ‘미국 우선주의 투자 정책’ 각서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각서에서 “첨단 기술 분야에서 동맹의 큰 규모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간소화 절차, 즉 ‘패스트트랙’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10억 달러 이상 모든 투자의 환경 평가를 빠르게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시점에선 IRA 폐지 가능성 낮아

산업계에서는 ‘10억 달러’라는 금액 기준에 대해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다. 대기업의 경우 대미 투자 규모가 대부분 해당 기준을 웃도는 만큼, 진정한 패스트트랙은 별도의 협상 테이블에서 정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태원 회장 역시 “필요한 투자는 계속 검토할 것이지만, 미국 측의 인센티브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 회장은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 생산 시설을 원하지만, 투자를 위해서는 합당한 인센티브가 매우 중요하다”며 “세금 인하 등 실효성 있는 혜택이 제공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분야에 대해서는 미국 투자가 유리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한국과 미국이 함께 활동하여 시너지를 창출하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짚으며 “AI와 에너지 분야에서 한미일 3국 간 협력 전략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전임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칩스법)에 따라 지급하기로 한 보조금이 폐지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최 회장은 “방미 기간 만난 미국 정계 인사가 약속된 보조금은 계속 집행될 것이라고 밝혔다”며 “미국이 실리를 고려해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오는 4월쯤 보조금 정책을 다시 검토해 발표할 예정이므로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韓 산업부 ‘긴밀한 경제 관계’ 강조

정부도 상호관세 등 관세 조치에서 한국이 제외될 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IRA와 칩스법 보조금 등 대미 투자 기업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미국에 피력 중이다. 이달 17∼20일에는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가 직접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 상무부, 무역대표부(USTR) 등 정부 관계자와 의회 및 싱크탱크 전문가를 면담해 이 같은 한국의 입장을 공식 전달하기도 했다.

산업부에 의하면 박 차관보는 백악관, 상무부, USTRA 등에 한미 양국 간 긴밀한 경제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한국 기업이 대규모 대미 투자로 고용 창출 등 미국 경제에 대해 기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 의회 주요 인사들을 면담한 자리에서도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를 기반으로 한미 공급망 연계가 가속화 한 만큼 IRA 및 반도체법 보조금 등 한국 기업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 환경을 지속적으로 조성해 달라고 당부했다는 설명이다.

박 차관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양국 간 거의 모든 품목에 대한 관세가 이미 철폐된 만큼 한국이 상호관세와 철강·알루미늄 등 제반 관세 조치에 포함되지 않도록 요청했다”면서 “아울러 조만간 양국 간 고위급 협의를 통해 주요 현안과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의했다”고 밝혔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기업하기 힘든 한국, 너도나도 탈출 가세 “성장 위해선 해외 진출이 답”

기업하기 힘든 한국, 너도나도 탈출 가세 “성장 위해선 해외 진출이 답”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안현정
Position
연구원
Bio
정보 범람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꼭 필요한 정보, 거짓 없는 정보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수정

CJ·삼양·오뚜기 신공장 모두 해외로
“한국 시장, 성장 잠재력 사라져”
유턴 기업 국내 재정착 비율 낮아

국내를 벗어나 해외에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소비재 기업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끝없는 내수 침체와 저출산 등으로 국내 시장이 위축되자, 해외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여기에 최근에는 여타 스타트업 사이에서도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기업 지원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지만, 국내 복귀 기업에 대한 혜택 등 기존 지원책의 실효성마저 담보되지 않아 떠나는 발걸음을 붙잡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인건비·물류비 절감, 현지화 측면에서도 유리”

2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식품 제조업체 CJ제일제당은 헝가리에 1,000억원을 투자해 ‘비비고’ 만두 공장을 짓기 위해 최근 공장 설계에 들어갔다. 해당 신공장은 축구장 16개 크기의 부지(11만5,000㎡)에 최첨단 자동화 생산라인을 갖추고 2026년 하반기부터 가동에 나설 예정이다. CJ제일제당은 헝가리 신공장을 거점으로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등 인근 국가로 진출해 유럽 사업을 대형화하는 전략을 펼친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여타 식품 제조업체들도 앞다퉈 해외 생산 시설 구축에 나섰다. 전 세계에 ‘불닭 열풍’을 몰고 온 삼양식품은 2027년까지 중국 저장성에 첫 번째 해외 생산기지를 완공할 계획이며, 오뚜기와 SPC는 각각 미국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 공장을 건설한다. 롯데웰푸드도 인도 제과공장 증설을 위해 최근 국내 제빵공장을 매각했다. 한국에 들어서는 공장은 오리온이 충북 진천군에 건설 중인 생산·포장·물류 통합센터가 유일하다.

미래 성장을 위해 해외 진출을 서두르는 것은 비단 식품 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국내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 코스맥스, 한국콜마 등도 미국과 중국 등에 증설을 추진 중이다. 이들은 해외에 공장을 짓는 이유로 인건비와 물류비, 현지화 측면 등에서 유리하다는 점을 꼽는다. 아울러 시장 상황에 맞게 물량 등을 적시에 조절할 수 있다는 점 또한 특징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전국 소매판매액은 전년 대비 2.2% 줄어들며 ‘신용카드 대란’이 불거진 2003년(-3.2%) 후 21년 만의 최대 감소 폭을 그렸다.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재래시장 등의 판매 금액을 조사해 지수화한 소매판매액은 대표적인 소비 지표로 불린다.

지난해 해외에서 돌아온 국내 복귀(유턴) 기업이 20곳에 불과했다는 점도 국내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사라졌다는 해석에 힘을 싣는다. ‘리쇼어링’으로 불리는 기업 복귀 정책이 효과를 발휘해 매년 평균 300곳 이상의 자국 기업을 불러들인 미국, 해마다 600여 기업이 돌아오고 있는 일본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재계는 한국과 경쟁국의 기업 투자 여건이 천양지차라고 입을 모은다. 한번 고용하면 사실상 해고가 불가능한 노동법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 산업재해 발생 시 경영자가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중대재해처벌법 등 이중 삼중의 규제가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의 조사에서 해외 진출 기업의 95%는 “국내 유턴 의향이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성장 위해선 경직된 규제 탈피해야

스타트업 사이에서도 본사를 해외로 이전하고 기존 한국 법인은 지사로 전환하는 경영 방식인 플립(Flip)이 대세로 떠올랐다. 일례로 서울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운영하던 핀테크 스타트업 A사는 본사를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전했다. 국가 간 결제에 사용되는 온라인 전자결제대행(PG) 서비스 스트라이프(Stripe)를 이용하기 위해서다. A사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전자금융거래법 규제로 스트라이프를 이용할 수 없다”며 “기존 사업을 지속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지만, 사세 확장을 위해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핀테크 스타트업 B사는 싱가포르로 본사 이전을 추진 중이다. B사의 주력 사업 모델은 디지털 자산 및 토큰 발행으로, 가상자산공개(ICO) 등 관련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겨 성장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해당 업체 외에도 열매컴퍼니, 서울옥션블루, 펀블, 바이셀스탠다드, 차지인, 원컵프로 등 다수의 국내 조각투자 및 토큰증권발행(STO) 기업이 연내 해외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대기업 가운데선 현대자동차그룹이 한국 탈출 행렬에 이름을 올렸다. 2023년 기준 현대차는 전체 생산량 399만 대 가운데 204만 대를 해외 공장에서 만들었다. 같은 기간 기아도 289만 대 중 128만 대를 해외에서 생산했다. 현대차와 기아의 해외 생산 비중은 각각 51.2%, 55.6%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미국에만 약 30조원을 추가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노동계에서 “몇십만 개의 일자리가 보장된 도시 하나가 미국으로 빠져나갔다”는 우려가 짙어지는 배경이다.

정부·국회는 ‘한국판 IRA’ 법안 추진

정부와 국회가 ‘한국판 인플레이션 방지법(IRA·보조금 직접환급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핵심 소비재와 유망 스타트업에 이어 수출의 축인 자동차까지 줄줄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국내 산업 생태계가 회복 불능의 수준으로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판 IRA가 시행되면 배터리 업계의 탈한국 행렬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그간 국내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는 정부 보조금 규모가 미국이나 중국 등 경쟁국보다 훨씬 작은 데다, 그나마도 흑자를 낸 이듬해 법인세에서 깎아주는 방식인 탓에 적자기업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반면 미국은 배터리 공장 투자액의 3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고, 킬로와트시(㎾h)당 45달러의 생산보조금을 준다. 중국도 30% 투자보조금에 더해 토지·금융 혜택을 제공한다.

이에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 의원 15명이 소속된 ‘국회 이차전지 포럼’은 배터리 공동화를 막기 위해 공장 투자금에 대해 직접적인 환급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조만간 관련 법안을 발의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또한 관련 제도 도입을 위해 연구용역을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내로 발길을 돌린 기업들이 실적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KOTRA에 따르면 2018년 8월부터 2023년 7월까지 국내로 돌아온 유턴기업 107개 중 공장을 재가동한 기업은 27.1%(29개)에 그쳤다. 국내 복귀기업에 대한 금융, 세제지원 등 정부의 유턴 지원책에 기대 발걸음을 돌렸지만, 지원 조건이 까다롭고 최저임금 급상승, 강성노조 리스크 등 각종 부정적 요인까지 겹치면서 경영환경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게 이들 유턴 기업의 일관된 견해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안현정
Position
연구원
Bio
정보 범람의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꼭 필요한 정보, 거짓 없는 정보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을 사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기업 우군이던 PEF, 가격 이견에 'M&A 균열' 조짐

기업 우군이던 PEF, 가격 이견에 'M&A 균열' 조짐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임선주
Position
기자
Bio
미디어의 영향력을 무겁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예리한 시각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CJ제일제당 '그린바이오' 매각
MBK와 입장 차 못 좁히며 불발
PEF와 돈독한 SK도 거래 삐걱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위해 비주력 사업 매각에 나섰지만 사모펀드(PEF·Private Equity Fund)와 몸값에 대한 이견으로 거래가 결렬되고 있다. 유동성이 풍부한 시절 투자했던 현금을 거둬들여 남은 사업에 투입해야 하는 기업들로서는 좀처럼 눈을 낮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PEF와 줄곧 손을 잡았던 SK나 CJ그룹도 지금은 동상이몽에 빠진 처지다.

CJ·SK, 사업부 매각 난항

2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의 그린바이오사업부 매각은 유력한 인수후보였던 MBK파트너스와 가격에 대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CJ제일제당이 먼저 매각 의사를 접었다. 초반 비공식 협상 과정에서 양측의 이견은 최소 3조원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IB업계 관계자는 “CJ제일제당이 원했던 가격은 최소 5조원 이상이었지만 MBK측은 이보다 절반 이하로 낮은 가격을 제시했다”며 “애당초 MBK는 사업 확장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격을 더 올릴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CJ그룹은 과거 MBK로부터 CJ CGV의 아시아 법인 투자를 유치한 인연이 있는데, CJ그룹은 초반부터 협상해 온 MBK 측과 막판까지 조율이 어려워지자 실망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이번 매각에 정통한 관계자는 “MBK 측은 본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공식적으로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 중 가장 활발하게 PEF와 거래하는 SK그룹 역시 SK에코플랜트 매각 과정에서 냉담한 반응을 체감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과거 PEF로부터 폐기물 기업을 적극적으로 사들이면서 몸값을 높였다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는데, 이제는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폐기물 자회사를 매각하기 위해 미국 PEF 콜버그츠래비스로버츠(KKR)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KKR는 약 2조원을 제시한 반면, SK에코플랜트는 2조5,000억원 이상을 요구하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SK에코플랜트는 칼라일그룹, 케펠 등과 협상을 이어가고 있지만, 칼라일그룹은 인수 의향이 낮고 케펠은 보유한 펀드 자금이 최대 1조4,000억원 안팎에 불과해 더 높은 가격을 제안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계약 체결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사례도 있다. 효성화학은 지난해 11월 특수가스사업부를 팔겠다고 내놨다가 IMM프라이빗에쿼티-스틱 컨소시엄과 협상을 스스로 철회했다.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 부채만 1조원이었던 효성화학은 결국 계열사 효성티앤씨에 매각해 9,200억원의 자금만 확보했다.

출렁이는 시장, 기업가치도 양극화

전문가들은 PEF들이 몸을 사리는 배경에 밸류에이션 양극화가 있다고 분석한다. 호재를 타고 기업가치를 사수하면서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1~2년 새 기업가치가 몰라보게 빠지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기업들도 있어서다. 이처럼 밸류에이션 양극화가 짙어진 상황에서 거품이 낀 기업가치 책정은 당분간 없을 것이란 게 시장 중론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유동성이 지금보다 나아지더라도 이전과 같은 투자 쏠림 현상은 지양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며 "결국 회사를 바라보는 본질적인 경쟁력이 어느 수준인지 증명하고 평가받는 게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포트폴리오 매각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PEF들이 몸을 사리는 배경으로 꼽힌다. 다수 기업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에서 재무적투자자(FI)가 아니라면 대규모 자금 투자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전략적투자자(SI)가 아니라면 PEF 운용사는 다른 FI나 해외 자본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경영권 분쟁에 뛰어드는 PEF들

PEF 운용사들이 경영권 분쟁에 잇따라 뛰어드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자금 회수가 녹록지 않다 보니, 주주 장악력이 취약한 기업의 경영권을 노려 단기간에 이익을 내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MBK 같은 PEF는 국내 자본시장에서 대표적인 모험 자본이다. 자금력이 부족하지만 역량 있는 기업에 과감히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리는 게 2004년 PEF 설립을 허용한 이유였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해외 PEF가 국내 기업을 마구잡이로 인수하는 것에 대응하는 차원도 있었다.

다수의 PEF는 최근까지 기업과의 건전한 긴장 관계 속에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금을 투입하고 오너 일가 대신 구조 조정을 하며 경쟁력을 높였다. 주요 주주로서 기업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최근 한국타이어, 고려아연 주식 공개 매수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PEF의 역할이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두 회사 모두 최근 배당을 늘리는 등 주주 친화 정책을 쓰고, 실적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경영진 지분율이 낮다는 이유로 경영권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국내 다수 기업에선 창업주의 3~4세로 경영 승계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상속·증여 부담 등으로 오너 일가 지분율이 줄어들고 있어 제2, 제3의 고려아연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박남규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기업 경영권 분쟁이 생길 때마다 정해진 기간 내 수익을 챙겨야 하는 PEF 등이 개입하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불확실해진다”고 지적했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임선주
Position
기자
Bio
미디어의 영향력을 무겁게 인지하고 있습니다. 예리한 시각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만을 전달하겠습니다.

반도체 장비 업체 中 매출 급감, 수요 줄어들 일만 남았다?

반도체 장비 업체 中 매출 급감, 수요 줄어들 일만 남았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수정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 대중국 수출 실적 줄줄이 악화
반도체 장비 확보에 열 올리던 中, 향후 수입 축소 전망
中 현지 반도체 장비 제조사, 정부 지원 발판 삼아 '급성장'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대중국 매출 비중이 급감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가 본격화하며 거래가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지난 수년간 반도체 장비 물량 확보에 힘 쏟던 중국이 수입 규모를 줄이고, 본격적으로 자립에 속도를 내면 향후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실적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대중 반도체 장비 수출 '위축'

2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은 미국의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중국 매출 급감을 보고하면서 수출 규제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춘에 따르면 미국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의 최근 분기 대중국 매출은 22억 달러(약 3조1,360억원)로, 같은 기간 전체 매출(72억 달러)의 31%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1년 전 45%에서 눈에 띄게 감소한 수치다. 브라이스 힐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분기에는 중국 매출 비중이 1분기보다 약 5%포인트 더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램리서치의 2024년 9~12월 중국 매출 역시 전년 대비 10% 감소한 14억 달러(약 1조9,960억원)를 기록했다. 중국의 매출 기여도도 1년 전 40%에서 31%까지 떨어졌다. 램리서치는 실적 보고서를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지역인 중국 고객들에 대한 판매가 영향을 받았다"며 "미·중 무역 관계에서 수출 허가 요건과 기타 규제 변경 또는 정부의 다른 조치들로 인해 (대중국 수출이) 앞으로 중대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물량 확보' 움직임 끝났나

시장에서는 향후 이들 기업을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실적 하락세가 한층 뚜렷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외국산 반도체 장비 물량 확보에 힘을 싣던 중국이 향후 수입 규모를 축소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최근 수년간 중국 기업들은 반도체 장비를 대규모로 매입했다"며 "미국의 규제가 본격화하기 전부터 이를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물량 확보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수년간 주요 반도체 장비 기업들의 대중국 매출 비중은 빠르게 확대돼 왔다. 무역안보관리원 학술지에 게재된 ‘미국, 네덜란드, 일본의 반도체 수출 통제 개편이 중국의 반도체 제조 장비 수급에 미친 영향’ 논문에 따르면, 일본 기업 도쿄일렉트론(TEL)의 대중국 매출 비중은 2022년 20~25% 수준에서 2023년 30~40%로 상승한 뒤 지난해에는 45%까지 늘었다. TEL은 건식 식각 분야에서 램리서치와 함께 독보적인 입지를 확보한 기업이다.

노광기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네덜란드 ASML의 대중국 매출 비중 역시 2022년 4분기 10% 안팎에서 2023년 40%대로 급상승했고, 지난해에는 40% 중반대까지 확대됐다. 미국의 검사 장비 기업 KLA도 2022년 20~30% 초반 수준이었던 대중국 매출 비중이 40%대로 올랐다.

문제는 이 같은 중국의 물량 확보 움직임이 최근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전문가는 "중국은 지난 수년간 대규모 반도체 장비 물량을 확보하며 생산 능력을 강화했고, 그동안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도 꾸준히 강화됐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더 이상 무리한 '사재기'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고 짚었다. 시장조사기관 테크인사이츠는 중국의 올해 반도체 장비 구매액이 지난해(410억 달러) 대비 약 6% 줄어들고, 중국의 반도체 장비 구매 점유율이 지난해(40%)의 절반 수준인 20%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중국의 반도체 장비 자립

중국의 반도체 자립 시도 역시 향후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매출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부는 해외 반도체 기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국 반도체 장비 업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다. 중국 정부가 조성한 자본금은 1기 펀드 1,387억 위안(약 27조2,800억원), 2기 펀드 2,042억 위안(약 40조1,630억원), 3기 펀드 3,440억 위안(약 67조6,600억원) 등 총 6,869억 위안(약 136조5,620억원)에 달한다. 이 중 3기 펀드에 조성된 자본금은 반도체 장비와 소재 등을 육성하는 데 집중 투입될 예정이다.

정부 지원에 힘입어 중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실적도 빠르게 개선되는 추세다. 중국 최대 반도체 장비 기업인 나우라 테크놀로지의 지난해 잠정 순이익은 51억7,000만 위안(약 1조280억원)~59억5,000만 위안(약 1조1,830억원)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년 대비 최대 53% 증가한 수준이다. 중국 ACM리서치도 지난해 잠정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최대 51% 증가한 56억 위안(약 1조1,130억원)~58억8,000만 위안(약 1조1,69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첨단 공정 개발에 집중하며 대만 TSMC에 장비를 공급하는 데 성공한 중국 AMEC의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한 90억6,500만 위안(약 1조8,020억원)에 달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국의 반도체 장비 내재화율은 20%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레거시(구형) 반도체 장비 자급률은 이미 90%에 육박했으며, 연구개발(R&D) 투자에 따른 첨단 공정 기술 개발도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한층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부터 내재화율이 급등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한편에서는 올해 중국의 반도체 장비 내재화율이 최대 50%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전했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딥시크 쇼크에 네이버도 분주하지만 “AI 전쟁 치를 인재 없어”

딥시크 쇼크에 네이버도 분주하지만 “AI 전쟁 치를 인재 없어”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이동진
Position
기자
Bio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IT 기업들의 현재와 그 속에 담길 한국의 미래를 전하겠습니다.

수정

한경협, 네이버 신규 회원사로 가입 승인
국회 과방위, 네이버 본사 방문해 정책 지원 약속
AI 전문가 없는 네이버, 전략적 리스크 확대

그간 마이웨이를 고수해 온 네이버가 정·재계와 교류를 확대하고, 창업주가 일선에 복귀하는 등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변화의 배경엔 오픈AI, 딥시크 같은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들에 ‘뒤처졌다’는 위기감이 자리하는데, 당초 이런 위기감이 국내 시장 지위에 안주해 AI 기술 선점 골든타임을 놓친 데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네이버, ‘규제 완화’ 지원 세력 확보

24일 IT업계에 따르면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지난 20일 정기총회를 열고 네이버의 신규 회원사 가입 안건을 승인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한경협으로부터 협회 가입 요청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한경협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앞서 지난 19일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1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네이버 본사를 방문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들은 ‘AI G3(글로벌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네이버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여야 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국회 과방위 의원들에게 “(지난 11일 파리 AI 정상회의에서) 밴스 미국 부통령이 유럽연합(EU) 디지털 서비스법 같은 규제를 언급하며 미국 기업에 부담이 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며 “기업인 입장에서 매우 절박하고 중차대한 시기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도록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규제보다는 AI 산업 진흥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 IT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재계와 담을 쌓고, 정치권과도 교류가 없었던 네이버가 갑자기 달라진 것 같다”며 “다음 달 창업주인 이해진 전 의장의 복귀를 앞두고 네이버가 규제 해소를 위한 정·재계 지원 세력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GPU 부족하자 파라미터 줄인 고육지책

네이버는 지난 2021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거대언어모델(LLM) AI 모델 ‘하이퍼클로바’를 공개했고, 이후 2023년 8월 업그레이드 버전인 ‘하이퍼클로바X’를 내놨다. 하지만 오픈AI의 챗GPT, 딥시크의 R1, 구글의 제미나이 같은 글로벌 생성형 AI 모델의 성능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엔비디아의 H100 같은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부족으로, 막대한 파라미터(매개 변수) 데이터 처리가 불가능해 AI 성능 고도화에 뒤처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챗GPT와 비슷한 성능을 내기 위해선 10만 개 이상의 H100이 필요한데, 국내에 확보된 H100은 2,000개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1만 개 이상의 H100을 국내에 확보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오픈AI나 딥시크와 경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여기에 인재 확보도 부족한 상황이다. 올해 국내 AI 분야 인재가 1만5,000여 명 부족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네이버 내부에서도 연구자들의 국내 복귀를 돕기 위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한계를 뒤집기 위해 네이버는 H100 의존도를 줄이는 쪽으로 하이퍼클로바X의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최근 업데이트된 AI 모델의 특징은 파라미터 수를 기존 대비 40% 수준으로 줄였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데이터 처리량이 급감해 H100 같은 첨단 GPU 없이도 원활한 운영이 가능해졌다. 운영 비용도 기존 대비 50% 줄었고, 속도와 성능도 개선됐다.

이에 힘입어 네이버는 서비스 전반에 걸쳐 AI를 활용하는 ‘온서비스 AI(On-service AI)’를 본격 구현한다는 목표다. 최 대표는 지난 7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중국발 딥시크가 후발 주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투자로도 선도업체를 추격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줘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환경 변화와 사업 전개 속도가 빨라지는 흐름 속에서 네이버 역시 비용 효율 등에서 이점을 누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전체 변화의 속도가 앞당겨졌다고 생각하며 선도업체와 기술 격차가 벌어지지 않으면서 네이버만의 서비스에 최적화된 AI를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와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사진=카카오

中 '딥시크'가 공개한 기술적 노하우 활용해 추격한다?

다만 네이버의 기술 격차 포부 속에는 자체 기술 개발에 대한 구상은 없고 딥시크 등 경쟁 기업의 기술 활용만 담겨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은 지난 18일 열린 ‘바람직한 인공지능 정책 대응 토론회’에서 자체 추론형 AI 모델을 준비해야만 독일·프랑스·일본 등 국가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며 투자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딥시크가 오픈소스로 공개한 기술적 노하우를 활용하면 수조원에서 십수조원 규모만 투자하더라도 ‘씽킹(추론 기반) AI’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파라미터 수를 줄이면 AI 성능 고도화 경쟁에서 글로벌 업체들과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과기정통부 장관을 지낸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네이버의 최근 AI 모델 업데이트는 GPU 부족 속에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다만 파라미터 수를 줄이면 AI 성능 고도화 측면에선 오픈AI나 딥시크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IT 전문가인 이 전 의장이 다음 달 경영 일선에 복귀할 예정이지만, AI 전문가가 없는 네이버 이사회도 리스크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총 7명의 등기이사 중에는 AI뿐 아니라 기술 전문가도 부재한 상황이다. 그나마 이 전 의장이 복귀하면 기술 분야에서 의사결정이 용이해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AI 전문가가 없다는 점은 여전히 약점으로 꼽힌다.

AI 인재가 없기는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이에 카카오는 아예 오픈AI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협업에 나섰다. 오픈AI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은 국내에서 카카오가 처음이다. 카카오와 오픈AI는 보다 많은 이용자들이 AI 서비스를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 AI 서비스 고도화를 위한 기술 협력과 공동 상품 개발을 추진할 예정이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이동진
Position
기자
Bio
흑백의 세상에서 회색지대를 찾고 있습니다. 산업 현장을 취재한 경험을 통해 IT 기업들의 현재와 그 속에 담길 한국의 미래를 전하겠습니다.

檢 '묻지마 기소'에 '기계적 상고' 늘어, 韓 기업 사법 리스크 장기화 우려

檢 '묻지마 기소'에 '기계적 상고' 늘어, 韓 기업 사법 리스크 장기화 우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세화
Position
연구원
Bio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

수정

이재용 회장 상고에 검찰 기소 관행 도마 위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무죄율 2배가량 늘어
불필요한 구속수사 많고 형사보상금도 증가

검찰이 기소한 사건 중 1·2심 모두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속수사를 받았던 피의자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선고돼 지급받는 형사보상금의 규모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검찰의 부실한 수사와 무리한 기소가 낳은 부작용이다. 실제 무죄율의 증가에도 검찰의 기계적 항소·상고 관행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검찰이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부당 합병·회계 부정'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를 결정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1·2심 무죄 건수, 최근 5년간 최대치 기록

24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심 전부 무죄가 선고된 건수가 3,823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1년 2,182건 △2022년 2,123건 △2023년 2,699건으로 특히 지난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무죄 건수는 △1심 5,732건 △2심 1,044건으로 최근 5년간 최대치를 기록했다. 무죄율은 1심과 2심이 각각 0.91%, 1.36%로 집계됐다.

무죄율이 높아졌음에도 2022년부터 2024년까지 1·2심 전부 무죄가 나온 사건을 검찰이 상고한 사례는 평균 257건으로 3년 연속 200건을 넘어섰다. 상고율은 △2022년 13.04% △2023년 10.26% △2024년 5.70%으로 하락했는데 이는 1·2심 전부 무죄가 선고된 건수가 늘어나 분모가 커진 데 따른 착시 효과다. 무죄율은 검찰의 수사 실력과 직결되는 지표로 평가된다. 1% 안팎의 무죄율은 얼핏 낮아 보이지만, 10년 전 1심 무죄율이 0.58%였음을 고려하면 2배가량 증가한 셈이다. 2000년 이전에는 무죄율이 0.5%보다도 낮았다. 이웃 일본의 경우 형사사건 무죄율이 0.1%에 불과하다.

검찰의 기소·항소·상고에도 최종 무죄가 확정된 피의자에게 지급하는 형사보상금은 전년 대비 26억원 증가하며 90억원에 육박했다. 이에 대해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형사보상금이 늘었다는 것은 무죄율이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검사의 공소 제기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굳이 구속할 필요가 없는데도 검찰이 무리하게 구속수사를 한 사례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檢, 심의위 열어 '1·2심 무죄' 이재용 상고

최근에는 검찰이 이재용 회장에 대한 '부당 합병·회계 부정'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하면서 검찰의 무리한 기소와 기계적 상고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2020년 9월 검찰은 이 회장을 부정거래 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19개 혐의로 기소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2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데 이어 지난 3일 2심에서도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은 형사상고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14명의 피고인에 대한 상고를 결정했다.

형사상고심의위원회는 1심과 2심 모두 무죄가 선고된 형사사건에 대해 검찰이 상고를 진행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외부 전문가와 함께 검토·심의하는 제도다. 이날 심의위에는 변호사, 교수 등 전문가 등 외부위원 6명이 참석했으며,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 4명이 출석했다. 검찰 측은 "1·2심 간에도 주요 쟁점에 관해 판단을 달리했다"며 "지배권 승계 작업과 분식 회계를 인정한 이전의 판결과도 배치되며 관련 소송이 다수 진행 중인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상고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 회장에 대한 상고 기한 만료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검찰이 상고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 회장에 대한 수사와 구속, 재판이 장기간 이어지는 상황에서 재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산적한 경영 현안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검찰이 재판부 결정을 존중해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검찰이 상고를 결정하면서 삼성 역시 당혹스러운 모습이다. 다만 대법원 재판은 서류로 진행되는 법률심으로, 이 회장이 직접 재판장에 갈 필요는 없어 업무 공백은 최소화될 것으로 보인다.

공소권 남용으로 기업의 경영 활동 위축시켜

이 회장의 '부당 합병·회계 부정' 사건은 기소 단계에서부터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이 있었다. 실제로 기소 3개월 전인 2020년 6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수사를 담당했던 이복현 당시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현 금융감독원장)는 기소를 강행했다. 이 원장은 2심에서도 이 회장에 대한 무죄가 선고되자 지난 6일 "기소 논리가 법원을 설득할 만큼 충분하고 단단히 준비돼 있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적극적 공소와 무리한 공소는 구분해야 한다"며 "검찰의 공소권 남용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뿐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정상적인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지적한다. 삼성의 경우, 검찰이 10년 가까이 이 회장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면서 기업의 정상적인 의사 결정이 지연됐고, 결국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원인이 됐다. 더욱이 피의자가 무죄를 선고받아도 검사는 사실상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무리한 기소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검사 평가제도 등의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예비 청문 절차를 통해 기소의 타당성을 사전에 검토하며, 영국에서는 '풀 코드 테스트'라는 기준을 적용해 증거와 공익성을 모두 충족해야 기소할 수 있도록 한다. 일본의 경우 검찰심사회라는 기구를 통해 검찰의 기소 결정을 견제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한국도 이를 참고해 검찰의 기소 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의견이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세화
Position
연구원
Bio
공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이야기를 전하겠습니다. 국내외 이슈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을 토대로 독자 여러분께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겠습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대통령직과 바꿀 수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대통령직과 바꿀 수 있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수정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요구하며 '강수'
"우크라 나토 가입은 직접적 위협" 러는 반대 의견 고수
트럼프, 취임 전부터 러시아 손 들어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가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배제하고 종전 협상을 시작한 가운데, 나토 가입을 '레드 라인'으로 내건 셈이다. 이에 러시아 측은 결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젤렌스키, 재차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요구

23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 AFP 등 외신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온다면, 내가 정말 이 자리에서 떠나기를 바란다면 나는 준비돼 있다"며 "조건이 즉시 제공된다면 나토와 그것(대통령직)을 바꿀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사실상 배제한 채 러시아와 종전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단순한 중재자가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위한 강력한 파트너가 돼주길 바란다”며 “중재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언급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내 입장을 이해하기를 바란다“며 ”러시아로부터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안보를 보장해 달라”고 했다.

그는 본인의 '대통령 자격'과 관련한 비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젤렌스키 대통령을 ‘선거를 거부하는 독재자(dictator without elections)’라고 비난했다. 우크라이나가 전시 계엄령으로 인해 대통령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식 임기는 지난해 5월 이미 종료된 상태다. 이에 대해 젤렌스키는 “(내가) 진짜 독재자였다면 기분이 상했겠지만, 나는 독재자가 아닌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며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절대적으로 '가입 반대'

우크라이나 측이 자국의 나토 가입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가운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앞서 러시아는 2022년 2월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을 당시에도 나토의 동진(東進)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저지를 ‘특별 군사작전’의 명분으로 삼은 바 있으며, 미국과의 종전 협상이 본격화한 최근까지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지난 18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등 미 대표단과 회동한 뒤 기자회견에서 "나토의 확장과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 연방의 이익과 주권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나토 회원국의 군이 배치되는 것은 그들이 어떤 국기를 달고 있더라도 러시아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나토의 유럽 회원국 사이에서는 종전 뒤 우크라이나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해 안보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종전 협상의 핵심 쟁점이 된 나토는 1949년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 12개국이 결성한 군사 동맹으로, 전후 옛 소련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출범했다. 1955년 옛 소련은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군사 동맹체인 바르샤바 조약기구를 창설해 나토에 대응했으나, 1991년 소련 붕괴 후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 중 상당수는 나토 회원국이 됐다. 이와 관련해 한 외교 전문가는 "옛 소련 연방이 해체되기 직전까지만 해도 폴란드 등은 옛 소련과 동맹국이었다"며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할 경우, 러시아는 사실상 뒷마당 취급하던 우크라이나를 재차 나토에 '뺏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러시아 입장에 공감한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의 편에 섰다. 그는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달 7일 자신의 저택이 있는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러라고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이전부터 오랫동안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왔다는 것”이라며 “(이 같은 주장은) 마치 돌에 새겨진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그 뒤로 어딘가에서 조 바이든이 ‘아냐,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해’라고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는 바로 문 앞에 누군가를 들이는 셈이 된다”며 “나는 그들이 느낄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러시아가 나토의 세력 확장을 자국에 대한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여기는 현 상황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이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지난 13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이 취임하기 훨씬 전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며 "사실 나는 그것(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관련한 이견)이 전쟁 시작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종전 협상을) 그러한 관점에서 시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더 나은 조건을 협상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다면 나도 좋다"며 "하지만 나는 정말로 (조건에) 상관하지 않고 그 유혈 전쟁이 멈추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협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하기는 아직 너무 이르며, 러시아가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고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러시아는 결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수용할 수 없다고 들었다"고 짚었다.

Picture

Member for

10 months 4 weeks
Real name
전수빈
Position
연구원
Bio
독자 여러분과 '정보의 홍수'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는 뗏목이 되고 싶습니다. 여행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정확하고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

반도체 경기 재채기에 부동산 '감기몸살', 반세권 집값 뚝뚝

반도체 경기 재채기에 부동산 '감기몸살', 반세권 집값 뚝뚝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민주
Position
기자
Bio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지금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표류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만 골라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반세권' 뜨던 평택, 반도체 특수 어디로
입주 한참 됐는데 집집마다 텅텅
반도체 벨트마저 '빈집 벨트'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야경/사진=평택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으로 관련 산업 수혜 효과를 누리던 경기 평택시 등 남부지역 아파트값이 지속해서 내리고 있다. 반도체 업황 불황에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이 겹치면서 낙폭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평택 아파트값, 한 주 새 0.25% 하락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평택시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직전주 대비 0.25% 하락하며 경기도에서 가장 큰 하락폭을 나타냈다. 이전 주까지는 광명시보다 하락 폭이 덜했지만 한 주 새 낙폭이 더 벌어진 것이다. 지난해 평택 아파트값은 2.93% 하락했다. 2023년에도 4.89% 떨어진 것을 고려하면 가격 하락 폭이 이어지는 셈이다.

평택시 고덕동의 '고덕국제신도시파라곤에듀포레'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5억4,900만원(17층)에 손바뀜이 일어났다. 지난해 1월에는 같은 주택형이 5억9,000만원(4층)에 거래가 이뤄진 것을 고려하면 다소 조정된 가격이다. 2023년 8월 6억6,800만원(15층)에 최고가와 비교하면 1억원 넘게 내렸다.

같은 고덕동의 '호반써밋고덕신도시' 전용면적 84㎡는 지난달 6억3,000만원(18층)에 매매 계약이 체결됐다. 같은 주택형이 지난해 4월 7억4,000만원(17층)에 거래된 것을 고려하면 역시 1억원 이상 내렸다. 지난 2023년 9월 8억2,500만원(15층)에 거래돼 최고가에 손바뀜된 사례와 비교할 때 약 2억원이나 낮은 가격이다.

반도체 불황에 직격탄

평택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공장이 위치해 실수요가 모일 것으로 기대됐던 곳이었다. 광역급행철도(GTX)가 지나면서 수혜가 예상된 지역이기도 하다. 더욱이 평택은 고덕국제신도시의 조성으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고덕국제신도시는 평택시 고덕동 일대에 1,341만여㎡(약 406만 평) 규모로 첨단 산업, 주거, 상업, 교육이 융합된 도시로 조성하고 있다. 이에 아파트 공급이 줄을 이었지만,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실적 저조로 평택 반도체 공장이 일부 가동을 중단하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로 돌아서면서 현재 공급 과잉으로 직격탄을 받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평택시의 아파트 분양 물량은 1만4,275가구다. 지난 2020년부터 매년 1만 가구 이상 공급하면서 지난해까지 5년간 누적 공급 물량은 6만1,418가구에 달한다. 분양이 늘면서 입주 물량도 꾸준해 지난해는 6,689가구가 입주를 완료했고 올해는 1만663가구가 입주 예정에 있다. 오는 2026년과 2027년에는 각각 7,581가구, 1만1,211가구가 입주할 것으로 추산된다.

경기도 평택 고덕산업단지 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사진=평택시

미분양 적체 비명

이런 공급 과잉에 미분양도 치솟고 있다. 특히 평택의 미분양 규모는 경기도 내에서도 많은 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평택시의 미분양주택은 지난 12월 말 기준 4,071가구로 전년 동월(430가구)보다 9.5배 가량 증가했다. 이에 지난해 말 기준 경기도 전체(1만2,954가구) 미분양 주택의 31.4%를 차지한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평택은 반도체 산업의 영향을 받는 지역으로 평택은 공급됐던 아파트의 분양가가 높아지면서 경기도 내에서 미분양이 많은 지역 중 하나가 됐다"며 "신축 아파트가 주인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주택 수요가 원활하게 유입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평택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마이너스 프리미엄(마피)이 붙은 분양권도 속속 나온다. 평택 현덕면에 있는 A공인중개소 대표는 “분양가보다 2,000만~4,000만원 낮춘 마피 물량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아직 최고가 대비 70%를 회복하지 못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직전 실거래가보다 매도 호가를 낮춘 물량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향후 부동산 경기 회복 시점이 오면 경기도 남부에서도 호재가 많은 빅5 지역과 평택·이천·오산 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며 “평택 내에서도 고덕·지제 지역은 상승하고 화양지구가 있는 서평택은 침체하는 등 반도체벨트 내에서도 지역별 세분화, 파편화 현상을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민주
Position
기자
Bio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지금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표류하지 않도록, 정확한 정보만 골라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동아시아포럼] 중국, 전면전 피해 ‘핵심 광물’ 통한 전략적 대응

[동아시아포럼] 중국, 전면전 피해 ‘핵심 광물’ 통한 전략적 대응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영욱
Position
연구원
Bio
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수정

중국, 핵심 광물 수출 규제로 미중 갈등 심화
압도적 보유량으로 미국 및 동맹국 공급망 위협
무역 규제가 ‘혁신과 적응’으로 이어지기도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 등 핵심 광물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한 것은 천연자원을 지정학적 갈등에 활용하는 오랜 전략의 일환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국방 기술 등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 규제는 미중 무역 전쟁의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나서자 중국 역시 반도체 핵심 소재인 주요 광물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존재감을 확인시키는 전략적 대응으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동아시아포럼

중국, 미국 무역 규제에 핵심 광물 수출 금지로 ‘맞불’

각국 정부들이 자국 산업과 천연자원, 환경 보호를 내세워 수출 규제를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은 전략적 목적하에 이뤄진다. 핵심 원자재에 대한 수출 규제는 이제 강력한 지정학적 도구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백신과 의료 장비에 대한 규제나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대응해 에너지 수출을 제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2021~2023년 기간 각국 정부들이 실시한 수출 규제는 연간 110건이 넘었다.

중국이 작년 12월 실시한 미국에 대한 핵심 광물 수출 규제는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현대 기술 산업에서의 필수불가결성으로 볼 때 해당 광물들은 미중 경제 대결의 핵심 협상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9~2020년 기간 핵심 원자재에 대한 글로벌 수출 규제는 5배나 증가해 13,102건에 이르렀다. 어찌 됐든 이번 중국의 조치는 이미 수년간의 갈등으로 경색된 미중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중국 압도적 광물 보유량, “언제든 공급망 와해 가능”

중국이 핵심 광물의 본거지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전 세계 게르마늄의 60%, 갈륨의 80%, 안티몬(antimony)의 78%를 생산하는데, 모두 군사 장비부터 친환경 에너지 산업에까지 필수 원료로 사용된다. 중국이 수출 규제로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면 미국과 우방국들은 서둘러 대체재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이 핵심 광물을 활용해 무역 갈등에 전략적으로 대응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1기 행정부가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했을 때 중국은 군사 장비, 정보기술, 청정에너지 생산 원료에 대한 수출 규제로 맞선 적이 있다. 2018년 미국이 중국 업체 화웨이와 ZTE의 통신 장비 수입을 금지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호 제재는 두 나라에 경제적 부담과 함께 국가 안보상의 우려도 발생시킨다. 이에 바이든(Biden) 행정부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생산 기지 우방국 이전 및 생산)으로 맞섰다.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공급망 의존을 줄이기 위해 우방국들과 힘을 합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핵심 자원을 독점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2006년과 2010년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중국은 국방 기술과 청정에너지, 전자 제품 등에 필수적인 희토류 광물(rare earth mineral) 수출 규제를 시행했는데 중국이 자원을 독점하던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 EU는 공급망 차질에 대한 취약성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2012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대응했고 2년 후 WTO 결정으로 중국은 수출 규제를 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서구 국가들에 비상 신호로 작용해 이후 희토류 공급망 다변화를 통해 중국 의존을 줄이게 된다.

하지만 2023년에도 중국은 24만 톤의 희토류를 생산해 압도적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당시 2위인 미국 생산량 43,000톤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매장량 또한 2023년 말 기준 4,400만 톤으로 추정돼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구와 우방국들이 채굴 및 정련 시설을 늘려 왔으나 중국의 공급망 장악은 굳건하다.

중국 얕잡아 보면 “큰코다칠 수도”

물론 무역 갈등과 규제는 혁신과 적응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국 공급망이 끊긴 미국 기업들은 대체 광물과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는데 2020년 이후 가격이 212%나 오른 갈륨 등의 광물 생산을 위해 신규업체들이 광업 분야에 뛰어들어 중국 독점에 도전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수출을 규제하자 중국의 화웨이 역시 자체 부품을 개발해 ‘메이트 60 프로’(Mate 60 Pro) 스마트폰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2023년 애플의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같은 운영 체제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자체 운영 체제를 개발하기도 했다.

향후 미중 무역 관계는 보다 큰 위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전면적 관세를 예고한 후 이미 시행에 들어갔으며,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중국의 경제적, 기술적 자주성을 내세우며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중국이 경제 성장 둔화와 인구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중국은 지속적인 기술 발전으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중국 기업 딥시크(DeepSeek)가 서구 기업들로서는 말도 안 되는 비용으로 개발한 인공지능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을 얕잡아 보는 순간 오판이 시작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원문의 저자는 키스 M 록웰(Keith M Rockwell) 힌리치 재단(Hinrich Foundation) 선임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How China is weaponising its dominance in critical minerals trade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11 months
Real name
김영욱
Position
연구원
Bio
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