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상무기 수출’ 봉인 해제한 日, 필리핀·호주에 ‘무기 세일즈’ 박차
‘살상무기 수출’ 봉인 해제한 日, 필리핀·호주에 ‘무기 세일즈’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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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승인 없이 NSC 심사만으로 수출 여부 판단 공동개발 무기도 제3국 수출 가능, 분쟁국 예외도 검토 호주·필리핀·대만 중심 방산 네트워크 구축 가속화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이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의 운용지침을 개정해 사실상 살상용 무기 수출을 제한해 온 족쇄를 풀었다. 이른바 ‘전쟁 가능 국가’가 되겠다는 의미다. 이번 결정은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견제하고 미일 동맹의 작전 수행 능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일본은 이를 발판 삼아 필리핀과 호주 등 인도·태평양 주요국에 대한 적극적인 ‘무기 세일즈’에 나서는 한편, 대만과의 군사적 밀착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다카이치 내각의 군국화 움직임
21일 다카이치 총리는 소셜미디어(SNS) 엑스(X)에 “방위장비 이전 3원칙과 그 운용지침을 개정했다”며 “이제까지 일본산 군사용 완제품의 해외 이전은 구조·수송·경계·감시·소해(기뢰제거) 등 이른바 ‘5유형'에 해당하는 것들로 제한됐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원칙적으로 모든 방위 장비의 이전이 가능해진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오전 일본 정부는 각료회의(국무회의)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방위장비 이전 3원칙 개정을 결정하고 5유형을 폐지했다.
개정된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에 따르면, 앞으로 일본 정부는 수출 가능한 무기를 전투기·호위함·잠수함·미사일 등 살상 능력이 있는 ‘무기’와 경계관제 레이더 등 살상 능력이 없는 ‘비무기’로 분류한다. 무기의 경우, 일본과 방위장비 이전협정을 체결한 17개국에 수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5유형을 폐지하면서 이들 국가에 살상용 무기 수출의 족쇄가 사실상 풀렸다. 방위장비이전협정 협상 중인 국가 등을 더하면 향후 무기 수출이 가능한 국가는 20곳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비무기는 모든 국가에 수출이 가능하도록 제한 규정 자체가 사라졌다. 방위 장비 관련 대외 직접 투자 제한도 완화돼 해외 방위 산업에 대한 출자나 기업 합병·인수(M&A)도 가능해진다. 일본 정부는 조만간 방위성·경제산업성 등 관계 부처 국장급으로 구성된 조정 기구를 만들어 무기 수출 추진을 위한 지휘 본부 기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안보 환경이 더욱 엄중해지는 가운데 어떤 국가도 단독으로 자국 평화와 안전을 지킬 수 없으며 방위 장비에서도 상호 의존하는 파트너 국가가 필요하다”며 “주변 국가들로부터 일본이 그동안 ‘전수 방위’ 원칙 아래 유지해 온 방위 장비에 대한 기대가 전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카이치 정부는 나아가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헌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달 12일 열린 자민당 당대회에서 “헌법에 왜 자위대를 적으면 안 되느냐”며 “당연히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다카이치 정부는 일본판 미 중앙정보국(CIA)인 ‘국가정보국’ 신설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여론은 개헌에 우호적인 분위기다. 우익 성향인 산케이신문의 여론조사(1,006명 대상)에서 응답자의 59.3%가 헌법에 자위대를 명시하는 데 찬성해 반대(31.3%)보다 많았다.
명분은 중국 견제와 미일 동맹 강화
일본의 무기 수출금지는 전후 여러 해에 걸친 정치적 결단으로 축적된 결과였다. 앞서 일본 정부는 국내 평화주의 여론과 국제적 신뢰 회복 등을 위해 1967년 4월 당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국제분쟁 당사국이나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무기 수출이 금지된 국가들에 일본산 무기 수출을 금지한다는 무기 수출 3원칙을 발표했다. 이어 1976년 미키 다케오 총리가 “헌법과 외환관리법 정신에 따라 무기 수출에 신중을 기한다”고 발표해 무기 수출 3원칙을 사실상 수십 년간 무기 수출 전면 금지로 전환했다.
빗장이 풀린 것은 21세기 들어서다. 2014년 4월 아베 신조 총리는 “일본이 처한 새 안보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무기 수출 3원칙을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으로 고쳤고, 평화적 목적이나 일본과 안보상 협력국이 국제 공동 개발·생산한 경우 무기 수출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었다. 이때 평화 공헌과 국제 협력 등을 위한 경우, 구조·수송·경계·감시·소해 목적의 5유형에 해당하는 방위 장비를 조건부 수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어 2023년 기시다 후미오 정권이 라이선스·기술 수출 범위를 확대하는 추가 개정을 단행했지만, 완성 살상무기 수출만큼은 풀지 않았다. 다카이치 내각의 이번 결정은 마지막 봉인을 해제한 셈이다.
일본의 살상무기 수출 해금은 일본 방위력 증강과 우호국 확보라는 큰 그림 안에 놓여 있다. 2010년대 이후 중국이 남중국해·동중국해 전역에서 존재감을 강화하면서 일본이 실효 지배 중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긴장도 높아졌다. 특히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양국 관계가 극도로 악화하면서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이카즈치의 대만해협 통과(17일)와 중국 루양 3급 미사일 구축함과 장카이 2급 프리깃함의 일본 규슈 남서부 해역 통과(21일)가 연이어 발생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정책도 적잖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들에 ‘집단방위의 공정한 몫’를 강조하는 가운데 일본에 대해선 ‘창(미국)과 방패(일본)’라는 전통적인 역할 분담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일본이 단순히 돈만 더 내는 게 아니라 미국의 생산 부족을 메우는 방산 파트너이자 실제 작전에 참여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며 “안보에서도 ‘스스로 지키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일본의 무장 강화는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필리핀·호주·뉴질랜드에 ‘무기 세일즈’
이번 조처로 일본의 첫 무기 수출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는 호주다.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과 리처드 말스 호주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은 지난 18일 회담을 갖고 양국 간 방위 협력에 뜻을 같이했다. 계약은 호주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비롯한 일본 기업 사이에 체결됐으며 이로써 이 사업을 통한 해상자위대의 최신예 '모가미'형 호위함은 2029년부터 호주에 납품될 예정이다. 계약 물량은 총 11척으로, 초기 3척은 일본에서 건조되고 나머지는 호주에서 제작된다. 앞서 호주는 지난해 8월 신형 함선 도입 사업의 우선 협상 대상으로 일본을 선정한 바 있다.
필리핀도 일본 무기 수입을 검토 중이다. 필리핀은 일본 해상자위대의 중고 '아쿠부마'형 호위함과 육상자위대의 03식 중거리 지대공 유도탄(중SAM)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무기 수출을 허용하자 필리핀은 즉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길베르토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부 장관은 21일 성명을 내고 이번 조치로 필리핀이 "최고 수준의 품질과 유지보수성을 갖춘 방위 물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며 "일본과의 방위 협력 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강조했다. 일본 입장에서는 필리핀으로의 무기 수출을 통해 중-필리핀 영유권 분쟁지 남중국해에서 '중국 견제 전선'을 다질 수 있다. 내달 초 필리핀과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예정인 고이즈미 방위상도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각국을 상대로 한 최고위급 세일즈를 한층 더 강화해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대만과의 군사적 밀착 관계도 더 끈끈해질 전망이다. 중국시보 등 대만 언론은 22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대만군이 2029년 호주 해군에 납품되는 일본 해상자위대의 최신예 '모가미'형 호위함을 염두에 두고 공동 개발 형태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대만 국방부 싱크탱크인 국방안전연구원 관계자는 이 입찰에 미국, 영국, 일본 등 파트너 기업과 대만 기업이 연합한 3개 컨소시엄이 나섰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다카이치 총리는 22일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와 전화 회담을 갖고 무기 수출 등을 논의했다. 뉴질랜드는 일본이 호주에 납품하기로 한 최신예 모가미형 호위함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외무성 관계자에 따르면 같은 날 전화 회담에서도 이와 관련한 내용이 언급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도 일본의 무기 수출 허용을 환영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일본과의 공동생산 체계를 통해 동북아시아 지역의 실전 배치 능력을 현지화하고 있다. 이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 흐름과 더불어 미국이 대리전쟁 국가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현재 동맹국이나 우방국으로부터 무기 수출 요청을 받고 있지만, 생산 능력이 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