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자국 우월주의·타국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비극” ‘이란 늪’에 빠진 트럼프, 출구가 안 보인다

“자국 우월주의·타국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비극” ‘이란 늪’에 빠진 트럼프, 출구가 안 보인다

Picture

Member for

1 year 7 months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린 트럼프 행정부
명확한 ‘종전 전략’ 없이 가변적 승리 매몰
이란 저항 의지만 키우고 소모적 갈등 고착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군사 전략이 당초 구상했던 단기 결전의 틀을 상실하며 장기 소모전의 늪으로 침잠하고 있다. 최고위층 제거를 통한 정권 붕괴 시나리오는 이란의 분산된 권력 구조 앞에서 작동하지 않았고, 전쟁 목표는 사후적으로 덧붙여지는 혼선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협상 압박과 군사 공세를 병행하는 접근 역시 이란의 강경 대응을 촉발하며 전략적 효율성을 약화하는 모양새다.

이란 정치권은 이념적으로 강경파, 참수 작전 안 통해

2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보수 성향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Hudson Institute)의 브라이언 클락(Brian Clark) 국방전략센터장은 알자지라의 외교 편집장 제임스 베이즈(James Bays)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이란 정책에 대해 "장기전을 초래하는 레시피(Recipe for protraction)"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클락 센터장은 "미군 당국이 초기에는 이란 지도부에 대한 '참수 작전(Decapitation attack)'이 즉각적인 정권 교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으나,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으면서 군사 계획가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이어 "초기 목표 달성에 실패하자 군 당국은 새로운 목표들을 급조해 내기 시작했다"며 "최근 이란 전쟁 목표가 늘어난 이유는 그중 무엇 하나라도 달성해 '성공했다'는 명분을 만들어 체면을 차리며 철수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공습 작전을 베네수엘라 사례와 비교해 왔다. 그는 지난달 4일 백악관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공격을 하고도 정부 구조를 유지한 베네수엘라는 놀라웠다"며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이후 양국 관계가 개선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달 1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도 "베네수엘라에서 우리가 한 일은 완벽한, 정말 완벽한 시나리오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같은 발언은 이란 역시 베네수엘라처럼 미국에 적대적인 최고지도자만 선별적으로 제거하고, 기존 정부 시스템과 관료 조직은 유지한 채 친미(親美) 정권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구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처음에는 미국에 항전 의지를 밝혔지만, 이후 미국에 협조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이에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 길을 열어준 상태다.

그러나 이란의 신정주의적이고 이념에 기반한 정권은 마두로를 중심으로 구축된 베네수엘라 정부와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지원을 받던 팔레비 왕조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이후 신정일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란 헌법상 최고지도자는 대통령 인준 및 해임권은 물론, 모든 임면권과 대내외 정책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는 등 막대한 권한을 갖는다. 또한 베네수엘라와 달리 이란 정권은 신정 체제에서 출발해 사실상 독재 체제로 변모했다. 이란의 많은 관리와 보안군, 외교관은 이념적으로 매우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이란에서 자행된 반대 의견 탄압은 종교적 이견, 근대적 개혁, 여성 인권까지 억압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더욱이 아야톨라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최고 권력자이기는 하지만, 이란 정권의 권한은 군사 기관, 종교 지도자, 그리고 다양한 정치 기관들 사이에 고도로 분산돼 있다. 이는 다른 나라들처럼 지도자를 제거하는 방식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이스라엘은 첫 번째 공습에서 이란 고위 군사 지휘관 40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란의 시스템과 보복 계획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상태다. 심지어 이란이 주변국으로까지 무차별적인 보복 공격을 퍼부으면서, 12개국 이상이 이란 사태의 영향권에 들었다. 또 베네수엘라의 경우 미국의 공습 이후 로드리게스처럼 전향적인 지도자가 곧바로 등장했으나, 이란에는 트럼프 행정부와 협력할 의향을 보이는 정치인이 사실상 없다. 더구나 이란 신정일치 정권을 뒷받침해 온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 베네수엘라와 같은 방향 전환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란은 냉대·국민은 반대, 깜깜한 전쟁 출구

미국 특유의 힘에 기반한 위협도 이란 앞에선 무력하기만 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개전 초기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수뇌부 다수를 제거하고, 24시간 동안 핵심 표적 1,000여 개를 무력화하는 등 유례를 찾기 힘든 파상 공격을 감행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거의 매일 이란 전투기와 군함, 미사일, 드론이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영화 ‘탑건’에 등장했던 F-14 전투기는 이란에서 소멸했고, 탄도미사일 전력도 큰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란은 무너지지 않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했다. 이에 미국은 대이란 해상 봉쇄로 대응하며 이란 정권의 주요 자금원인 원유 수출을 차단하고 저장 여력이 한계에 이르면 생산 자체를 축소하거나 중단하도록 압박하고 있으나, 이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협에서 컨테이너선 한 척을 향해 발포해 선체를 파손하는 등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이란 전쟁에서 첨단 기술의 위력과 한계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렇다 보니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의 출구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이란을 초토화하겠다던 그간 발언을 뒤집으면서까지 21일 ‘나 홀로 휴전’을 선언한 건, 종전에 대한 미련이 남았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확전 우려가 있는 이란 공습 대신 경제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해상 봉쇄를 통해 이란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겠다는 구상을 드러낸 것으로도 해석된다. 그러나 이란은 22일에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 3척을 나포해 강경 기조를 이어갔다. 미국의 요구 사항인 우라늄 농축 중단과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 반출에 대해서도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이란의 불신은 뿌리가 깊다.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 맺은 이란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집권 1기 때인 2018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후 지난해 6월 이란의 핵시설을 정밀 타격한 ‘미드나이트 해머(Midnight Hammer)’ 작전과 지난 2월 28일 시작한 ‘장대한 분노(Epic Fury)’ 작전도 이란과의 핵 협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기습적으로 감행해 이란의 불신을 키웠다. 이런 상황에서 강경파의 입김이 세진 이란이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며 버티기에 돌입할 경우,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는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내 여론도 악화일로다.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조사센터가 지난 16∼20일 미국 성인 2,59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33%로 나타났다. 지난달 조사보다 5% 포인트 하락한 수치로, 집권 2기 출범 후 최저다. 가뜩이나 불안정했던 동맹과의 관계도 나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 파견 등 전쟁 지원을 요청한 뒤 거절당하자 ‘종이호랑이’라고 조롱하며 탈퇴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뿐 아니라 친트럼프였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도 멀어졌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의 전통 지지층인 ‘마가(MAGA)’ 핵심 인사들도 등을 돌렸다.

트럼프의 허세 뒤 두려움

트럼프 대통령의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늘 겁을 먹고 물러선다)도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공격 위협도 더 이상 먹히지 않고, 시한부 휴전 카드도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지 못하자, 이란에 주도권을 빼앗긴 채 전쟁에서 발을 빼고 싶어도 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일부 외신들과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선 “관세든 이란이든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위기는 결국 타코로 귀결된다”며 조롱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주도권이 기울었다는 신호는 전쟁 국면에서도 확인된다. 휴전 조건이던 호르무즈 해협 전면 재개방은 이뤄지지 않았고, 미 해군의 이란 역봉쇄 역시 이란과 연계된 유조선 최소 34척이 우회해 뚫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조바심과 불안감도 미국 우위를 약화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측근과 참모진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전쟁 초반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란이 예상보다 빠르게 해협을 봉쇄하고 주변 아랍 국가까지 공격하면서 글로벌 에너지 가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과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등에게 경제적 우려를 고려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전쟁은 계속하겠다고 말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전쟁 출구를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3월 말부터였다. 이란과의 회담 내용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이때부터 대이란 협상팀에 회담을 시작할 방법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불안감은 지난 3일 미군 전투기가 격추돼 조종사 2명이 실종됐을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미군 실종 소식을 듣고 몇 시간 동안 참모진에게 고함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자 참모들은 결국 그의 조급함이 상황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회의장 밖으로 그를 데리고 나갔다고 한다. 대신 참모진은 조종사 구조를 지휘하는 상황실을 연결해 거의 분 단위로 보고를 받았고 JD 밴스 미 부통령,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도 각자 있는 곳에서 이 회의에 참여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회의에 참여하지 않고 전화로 주요 내용만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점점 더 예민해지고 있고, 수면 시간도 줄었다.

군사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의 충돌에서 도달해야 할 구체적 종착 지점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핵심 리스크로 지목한다. 단기적 성과 연출을 목적으로 작전 목표를 반복적으로 수정하는 행태는 동맹국들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우왕좌왕'하는 전략이 이란의 저항 의지만 키우고 미국을 끝나지 않는 전쟁의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분석이 팽배하다. 명확한 종전 전략(Exit Strategy) 없이 가변적인 승리 기준에 매몰될 경우, 미국은 스스로 만든 덫에 걸려 중동 내 군사적 부담을 덜어내지 못한 채 소모적인 갈등만 지속하게 된다는 의미다.

Picture

Member for

1 year 7 months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