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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 유가 충격에 美 100년 해운 규제 완화 검토, 동아시아 생산 긴장·유럽 에너지 부담 확대

[미국-이란 전쟁] 유가 충격에 美 100년 해운 규제 완화 검토, 동아시아 생산 긴장·유럽 에너지 부담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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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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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박에 원유·석유제품 운송 허용 추진
동아시아 제조업 국가들 에너지 공급 긴장
유럽 러시아 의존도 여전, 공급 불안 재부각

중동에서 벌어진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이 국제 에너지 시장을 빠르게 흔드는 모습이다. 열흘 넘게 이어지는 국제유가 급등 흐름 속에서 미국은 100년 넘게 유지해 온 해상 운송 규제 ‘존스법(Jones Act)’의 한시 면제까지 검토하며 공급 흐름 안정에 나섰다. 동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 중국 주요 제조업 국가들이 일제히 비축유 방출과 가격 통제 등 ‘에너지 방어선’을 가동했고, 유럽에서는 에너지 비용 급등과 러시아 제재 문제가 동시에 부각되며 위기의 파장 또한 한층 확대되는 양상이다. 

공급 부족·물류 차질 완화에 방점

12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국가 방위를 위해 주요 에너지 제품과 농업 필수품이 미국 항구로 원활하게 이동하도록 존스법을 제한된 기간 동안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라며 “아직 최종 결정된 사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의 조선 산업을 장려하고 상선 전력을 확대한다는 취지에서 1920년 제정된 존스법은 “미국 항구 사이를 오가는 선박들이 미국에서 건조되고 미국에 등록돼야 하며, 미국인 선원들에 의해 운항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번 검토는 미·이란 전쟁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며 에너지 운송 체계 자체가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등장한 대응 조치다. 현재 유력한 방안은 최대 30일간 존스법 적용을 유예하는 형태로, 대상 물자는 원유와 휘발유, 경유, 액화천연가스(LNG), 비료 등을 아우른다. 이 경우, 멕시코만 연안에서 생산된 원유를 미국 동부 정유시설로 이동시키거나 정유 제품을 다른 지역으로 운송하는 과정에도 외국 선박 참여가 가능해진다. 운송 비용이 더 낮은 외국 유조선의 참여가 늘면, 물류 선택지 또한 확대돼 미국 내 연료 공급 흐름이 빠르게 조정될 공산이 크다. 

국제 원유 시장은 이란 전쟁 이후 줄곧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운송이 차질을 빚으면서 글로벌 공급 흐름 자체가 압박을 받게 된 것이다. 이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전략 비축유 4억 배럴을 방출하기로 합의했고, 트럼프 행정부 역시 국가 전략비축유(SPR)에서 1억7,200만 배럴의 원유를 방출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 원유 공급 충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내부 운송 규제까지 유지될 경우, 물류 병목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정책 검토의 배경으로 제시된다.

존스법 적용 면제는 미국에서도 매우 드문 조치에 해당한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2022년 10월 허리케인 피오나 이후 푸에르토리코에 보급품을 전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법 적용을 중단했던 경우다. 당시 미 정부는 공급 부족과 물류 차질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번 조치 역시 연료 가격을 크게 낮추기보다는 공급 흐름을 조정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미국 싱크탱크 그라운드워크 컬래버레이티브의 알렉스 자케즈 정책국장은 “(존스법이) 소매 휘발유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갤런당 2센트(약 30원)도 안 된다”며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가격에는 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축유 활용 및 공급망 대응 논의

미국과 무역 관계로 얽힌 동아시아 주요국들 역시 유가 상승과 공급 차질의 영향권에 놓였다. 국제 원유 선물 가격이 전쟁 발발 이후 일주일 만에 36%까지 치솟으면서 1983년 시장 개설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한 탓이다. 이러한 가격 급등의 배경에는 중동 원유 수송의 핵심 관문인 호르무즈 해협의 기능 마비가 자리한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제조업 기반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원유와 가스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와 전력 생산과 산업 공정에 투입하는 만큼 이 항로가 마비된 상황에서는 산업과 경제의 연쇄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이에 각국은 비축유와 가격 통제 등 공급 관리 조치를 동원하며 ‘에너지 방어선’ 구축에 나섰다. 한국은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처음으로 연료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다.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원유 600만 배럴을 긴급 수입했다. 일본 정부 역시 254일 치에 달하는 비축유를 기반으로 국가 저장 시설에서의 방출 가능성을 검토하고 나섰다. 중국은 소매 휘발유와 디젤 가격을 2022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인상하는 동시에 국영 석유 기업들에 안정적인 공급 유지 명령을 내렸다. 중국의 전략적 석유 비축 규모는 약 9억 배럴로 수입량 기준 약 3개월분에 해당한다. 

이처럼 적극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공급망 전반의 긴장감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실정이다. 전력 생산에 필요한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차질이 기술 산업의 핵심 위험 요인으로 지목되면서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루이즈 루 분석가는 “한국과 일본, 대만 등 동북아 경제권은 발전용 에너지에서 수입 가스 비중이 높은 구조”라고 짚으며 “NG 공급 혼란이 발생할 경우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등 기술 산업 생산이 동시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기업 비용 증가와 소비 위축이 결합해 1970년대와 유사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급증할 것이란 관측이다. 

에너지 공급 충격은 이미 산업 현장 곳곳에서 가시화했다. 중국에서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주요 정유사들을 소집해 석유제품 수출 중단을 지시했다. 신규 수출 계약 체결을 중단하고, 기존 계약 물량에 대해서도 취소 협상을 진행하라는 조치다. 이에 페트로차이나, 시노펙, 중국해양석유, 시노켐 등 다수의 에너지 기업이 수출 물량 조정에 나섰다. 또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가 투자한 저장석유화공은 하루 20만 배럴 규모의 설비 가동을 중단했고, 푸젠정유화학 역시 하루 8만 배럴 규모 원유 설비 운영을 일정 기간 중단한다고 밝혔다. 

EU 대러 제재 정책 균열 가능성

유럽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1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의회 연설에서 “이번 중동 전쟁이 개시된 이래 가스는 50%, 원유는 27%까지 가격이 상승했다”면서 “전쟁 열흘 만에 유럽 납세자들이 화석 연료 수입에 30억 유로(약 5조1,000억원)를 추가로 부담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동에서 시작된 공급 충격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그 비용이 곧바로 유럽 재정과 산업 비용으로 전가되는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대목이다. 

유럽의 에너지 취약성은 공급 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은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원유 기준 대러시아 의존도는 2021년 45%에서 최근 13%로 낮아졌고, 천연가스 역시 같은 기간 27%에서 3% 수준까지 감소했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는 러시아산 LNG 구매를 전면 금지하는 규제안을 채택해 적용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이처럼 다른 공급원으로 수입 구조를 전환하려던 시점에 중동 전쟁이 발생하면서 유럽은 대체 공급 경로마저 동시에 흔들리는 상황에 놓였다.

유럽 내부에서도 대러시아 에너지 제재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긴장이 감지된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국제 유가 급등 상황을 언급하며 러시아 제재 유예를 요구했다. 그러나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러시아 석유 판매 대금은 우크라이나 전쟁 무기 구입에 사용된다”며 제재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러시아는 이 같은 내부 갈등을 역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해외투자·경제협력 특사 키릴 드미트리예프는 “EU가 러시아 에너지를 거부함으로써 스스로 발등을 찍었다”며 “유럽의 에너지가 완전히 붕괴하고 파산하는 시대가 왔다”고 도발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유럽의 정책 선택 폭은 점점 좁아지는 형국이다. 이에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은 EU 차원의 에너지 가격 안정 조치를 촉구하고 나섰고, EU 집행위원회는 가스 가격 상한제와 국가 보조금 지급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댄 요르겐센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전쟁으로) 유럽의 에너지 공급망에 즉각적인 위험은 없다”고 평가하면서도 회원국들에 유류세 인하 등 국내 세금 조정으로 에너지 비용 부담을 완화할 것을 요구했다. 중동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충격이 유럽의 재정 정책과 대러시아 제재 전략까지 동시에 압박하는 국면으로 확산했단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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