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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 유럽이 먼저 맞는다, EU “유가 100달러 지속되면 물가 3% 넘을 수도”

[미국-이란 전쟁] 유럽이 먼저 맞는다, EU “유가 100달러 지속되면 물가 3% 넘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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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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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가격 상승-경기 둔화 동시 발생
‘전시 물가 통제’ 정책 검토·가동 움직임
제조업 중심 한국·일본 경제 취약점 노출

중동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유럽 물가가 다시 상승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전쟁이 금융시장과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성장률까지 함께 끌어내릴 것이란 관측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에너지 가격이 물가와 산업 비용에 빠르게 전이되는 구조가 확인되며 각국의 정책 대응 논의가 확대되는 추세다. 중국과 러시아 등 일부 국가가 에너지 가격 상승의 반사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관측 또한 제기되는 가운데 아시아 주요국들은 비축유 방출 및 가격 통제 등을 토대로 에너지 충격 확산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재확산 우려

12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 유럽연합(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열린 EU 재무부 장관 회의에 참석해 “중동 전쟁으로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약 14만5,000원) 수준을 유지하고 가스 가격도 장기간 높은 상태가 이어지면, 올해 EU 물가 상승률은 3%를 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당 시나리오에서 올해 EU 경제 성장률은 지난해 말 예상치였던 1.4%보다 최대 0.4%p 낮아질 전망”이라며 “중동 전쟁이 금융시장과 무역, 공급망 전반에 미칠 영향에 따라 경제에 추가적인 하방 압력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짚었다.

돔브로우스키스 집행위원은 유럽 가스 가격이 올해 남은 기간 메가와트시(MWh)당 75유로(약 12만8,250원) 수준에서 유지된다는 가정을 전제로 이 같은 관측을 내놨다. 에너지 가격이 일정 수준 이상에서 장기간 유지될 경우 전력·운송·화학 등 에너지 집약 산업 전반의 비용 상승이 소비자 가격으로 전이될 공산이 크다는 판단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물가 압력이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질지 여부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다만 ECB의 다음 통화정책 회의가 당장 오는 19일 예정된 만큼 즉각적인 금리 인상 가능성은 높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세계 석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유조선 운항이 거의 멈춘 상태라는 점은 공급 불안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유럽 에너지 시장에서 브렌트유 가격은 이란 전쟁 이후 급등해 배럴당 90달러(약 13만원)를 웃도는 수준을 유지 중이다. 이에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 시장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회원국들이 전략 비축유 4억 배럴을 방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번 전쟁이 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나타났던 ‘에너지발 물가 충격’이 재연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이러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유럽 각국은 사실상 전시 상황에 가까운 물가 방어 정책을 잇따라 꺼내 들었다. 독일 정부는 주유소 연료 가격 변경을 하루 한 번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추진했고, 그리스는 향후 3개월 동안 연료와 식료품 이익률 상한제를 도입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연료 가격 상승으로 늘어난 부가가치세(VAT) 수입을 활용해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위기 상황을 이용한 가격 인상에 대해서는 제재를 강화할 계획이다. EU 차원에서도 대응 논의가 이어지는 상황으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가스 가격 상승이 전력 요금으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천연가스 가격 상한제 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중국·러시아 반사이익 기대

다수의 국제 연구기관도 이번 전쟁이 당사국인 미국보다 유럽 경제에 더 큰 파장을 미칠 것이라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유로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이 미국보다 3배 이상 크다고 분석했다. EU가 전체 에너지의 약 58%를 화석연료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이 취약성을 키운다는 지적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력 비용과 산업 생산비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구조인 만큼 동일한 원자재 가격 충격이 유럽에서는 물가와 성장률에 더 크게 반영될 수 있다는 평가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유럽 경제의 회복 흐름도 저해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안토니오 바로소 연구원은 “전쟁이 장기화해 유가·가스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각국 정부는 물가 상승으로부터 유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면서 “이는 지도자들에 대한 정치적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초 4~5주로 예상했던 전쟁이 더 길어질 수 있다고 시사하며 에너지 비용 상승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상태다. 

그러는 사이 중국과 러시아 등 일부 국가는 에너지 가격 상승의 반사 효과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지만, 2020년대 들어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산업 투자 확대, 석탄 활용 등으로 에너지 충격에 대한 완충 장치를 구축해 왔다. 여기에 10억 배럴 이상의 전략 비축유를 보유해 유가 상승의 영향권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 역시 유가 상승이 재정 여력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미국이 글로벌 경제 충격을 우려해 일부 제재를 완화하면, 러시아산 원유 수출은 한층 늘어날 전망이다. 

2022 우크라이나 전쟁의 악몽

반면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여타 아시아 국가들은 고스란히 유가 상승의 위험에 노출됐다. 이에 일본은 전략 비축유를 기반으로 물가 방어 조치에 나섰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이르면 오는 16일부터 석유 비축분을 방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에 따라 민간 부문 비축유에서 일본 소비 기준 15일분, 국가 비축유에서 1개월분이 각각 시장에 공급될 예정이다. 이는 중동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물가 상승 압력을 완화하기 위한 대응으로, 일본의 전략 비축유 규모는 총소비 기준 약 254일분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휘발유 가격을 리터당 170엔(약 1,590원) 이하 수준에서 관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현재 전국 평균 가격은 161.8엔(약 1,510원)이다. 유가 급등이 일본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을 키우고, 추가 재정 지출 압박을 높이는 작금의 상황이 일본은행의 점진적 금리 정상화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당국자들의 판단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NHK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중심으로 한 중동 정세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만큼 향후 지원 방안을 유연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역시 중동발 에너지 충격을 막기 위한 대응에 들어갔다. 정부는 이번 주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처음으로 연료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다. 비정상적인 유가 상승을 억제하고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다. 동시에 공급망 안정 확보에도 나섰다.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는 아랍에미리트(UAE) 항만을 통해 원유 400만 배럴을 수입하고, UAE가 한국에 보관 중인 공동 비축 물량 가운데 200만 배럴을 필요할 때 공급받기로 했다. 한국의 석유 비축량은 약 208일분이다.

다만 이러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전망이다.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한국은 연간 5.1%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경험이 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러·우 전쟁 때는 한국보다는 유럽이나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높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며 “당시엔 러시아산 석유 공급이 막힌 데 따른 간접 영향이었는데, 이번엔 한국 수입 원유의 약 70%를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를 들여오는 데 차질이 생긴 까닭에 2∼3개월 뒤 물가 상승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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