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정치적 갈등의 대가, 일상의 불안이 남긴 경제적 손실
[딥폴리시] 정치적 갈등의 대가, 일상의 불안이 남긴 경제적 손실
입력
수정
정치적 격변 성장 경로 하향 압박 재정 위축 교육·기술 투자 후퇴 권리 보장과 학습 보호 병행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치적 갈등이 국가 담론을 넘어 경제 전반에 막대한 비용을 남기고 있다. 네팔 정부는 지난해 9월 발생한 ‘Z세대 반정부 시위’로 5억8,600만달러(약 8,42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네팔 국내총생산(GDP)의 1.4%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번 집계에는 건물 복구비 등 직접 피해뿐 아니라 대규모 계약 파기, 사업 중단, 공공 신뢰 하락 등 간접 비용까지 포함됐다.
문제는 이러한 충격이 일시적 혼란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민간 투자는 위축되고 성장 동력도 약화되고 있다. 민주적 갈등 표출 과정이 역설적으로 재정 여건과 미래 성장 기반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구조다. 정치적 갈등을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리스크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적 혼란의 재정 충격
정치적 혼란이 남기는 상흔은 단순한 손실 규모를 넘어 경제 전반에 연쇄적으로 파급된다. 네팔 시위의 여파는 금융과 실물 부문으로 빠르게 확산됐고, 기업은 기존 투자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보류했다. 금융기관 역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며 여신 기준을 높였다.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장기 지출을 미뤘으며, 일부 청년층은 해외 이주를 대안으로 검토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은 통계에 즉각 포착되지 않는 구조적 둔화로 이어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대규모 사회 불안이 발생할 경우 6분기 이내 GDP가 약 1%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네팔에서는 시중 자금이 예금으로 집중되는 반면 민간 대출은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불확실성이 커지자, 경제 주체들이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면서 실물 부문으로의 자금 공급이 둔화된 결과다. 단기 충격이 성장 경로 전반을 하향 조정하는 구조로 이어진 셈이다.
특히 재정 압박이 커지면 미래 성장 기반인 교육과 직업훈련 예산이 우선적으로 축소된다. 정부가 긴급 복구와 치안 유지에 재원을 집중하면 학교 보수와 디지털 인프라 개선과 같은 사업은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서다. 이러한 조정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인재 양성과 역량 강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불안정한 정세는 기술 혁신의 확산에도 제동을 건다. 제도적 불확실성이 이어지면 자동화 기술과 같은 혁신이 산업 현장에 안착하기 어렵다. 규제 환경이 불투명할수록 기업은 숙련 인력 양성과 설비 투자를 미루게 되고, 이는 생산성 개선 지연으로 이어진다. 결국 정치적 불안이 지속될수록 기술 진보 역시 제약을 받는다.
국제 사례가 남긴 경고
정치적 불안이 국가 경제에 구조적 악재로 굳어지는 경로는 다른 국가의 경험에서도 확인된다. 예멘은 ‘아랍의 봄’ 당시 정세 불안이 식료품 가격 10% 상승으로 확산되며 저소득층의 생계를 위협했다. 생계 부담이 커진 가계는 교육과 보건 지출을 축소했고, 그 과정에서 아동의 노동 참여와 학업 중단 사례가 확대됐다. 영양 상태 악화는 아동 발달 지연으로 이어졌고, 이는 장기적으로 보건·교육 부담을 동시에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필리핀 역시 정책 변동성이 성장 경로를 제약한 사례로 언급된다. 정권 교체를 거치며 규제 환경이 빈번히 바뀌자 글로벌 기업들은 대규모 인프라와 제조 프로젝트를 보류하거나 철회했다. 재정 지출도 장기적 교육 투자가 아닌 단기 대응에 집중되면서 국가 경제의 펀더멘털이 약화됐다. 이는 제도적 기반이 취약할수록 정치적 사건이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더 크고 회복 기간도 길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치적 격변 대응 전략
정치적 격변은 단기 충격에 그치지 않고 성장 잠재력에 지속적인 부담을 남긴다. 따라서 이러한 비용을 완화하려면 정치적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위기 상황에서도 교육 운영의 연속성이 유지되도록 별도 재원을 확보하고, 상황 발생 시 자동으로 집행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학습 결손을 사후에 보완하는 것보다 기존 교육 체계를 유지하는 편이 재정적으로도 효율적이라는 점에서다.
노동시장 측면에서는 단기 직무 자격과 기술 중심 교육 과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민관 협력을 통해 현장 훈련과 고용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면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노동시장 기능을 일정 수준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기에 규제의 투명성과 신속한 행정 절차를 통해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치적 시위는 사회적 요구를 표출하고 변화를 촉발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여파로 국가 시스템의 연속성이 흔들리고 교육 등 필수 서비스가 중단되면 부담은 취약 계층과 미래 세대에 집중된다. 그런 만큼 사회적 혼란의 비용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일은 시위의 자유를 제약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다. 격변기에도 학습과 소득이라는 삶의 기반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 대응에 가깝다. 따라서 정치가 요동하더라도 국민의 삶과 성장의 토대는 유지돼야 한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국제 사례가 보여주듯 정세 불안은 성장 둔화와 인적자본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적 권리 보장과 학습 보호를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있는 접근이 요구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ounting the Price of Upheaval: The Economic Cost of Political Upheaval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