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AI 데이터센터 착공 5년 만에 감소, 메모리 호황 뒤 변곡점 오나
美 AI 데이터센터 착공 5년 만에 감소, 메모리 호황 뒤 변곡점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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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조달·인허가 지연이 부른 ‘AI 정체’
인프라 확장 제약, 전력망 투자 필요성↑
메모리 수요 불일치→사이클 전환 예고

미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 규모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감소하면서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전반에도 변화가 포착됐다. 인허가·입지·전력 등 복합 변수에 확장 속도가 영향을 받는 만큼 단순 경기 둔화 신호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다. 전력망 안정성 문제와 인프라 투자 부담이 동시에 부각되면서 향후 투자 방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된 가운데, 기존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이 촉발했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가격 급등세까지 맞물리며 AI 산업 전반의 수급 구조 변화가 가시화하는 흐름이다.
데이터센터 투자 사이클 변화 조짐
26일(이하 현지시각)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기업 CBRE에 따르면, 미국 내 건설 중인 데이터센터 용량은 2024년 말 6.35기가와트(GW)에서 2025년 말 5.99GW로 감소했다. 미국에서 데이터센터 건설이 줄어드는 것은 팬데믹 이후 초고속 확장 국면에 접어든 2020년 이후 처음이다. CBRE는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를 비롯해 토지 이용 규제, 송전망 접속 지연, 전력 수급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전반적으로 신규 착공이 늦어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지역별 지표는 인프라 포화 상태에 이른 전통적 요충지의 정체 현상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밀집 지역인 버지니아 북부의 건설 중 프로젝트는 1년 사이 29% 급감했으며, 오리건주 힐스버러(-15%)와 실리콘밸리(-14%) 역시 동반 하락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부지 확보가 용이하고 전력 여유가 있는 지역은 반사 수혜를 입었다. 지난해 시카고의 데이터센터 착공 물량은 전년 대비 169% 폭증했고, 댈러스-포트워스 또한 15%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특히 애틀랜타는 작년 하반기 기준 2GW 이상의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전국 착공 규모 1위를 기록했다.
데이터센터에 대한 지역 사회의 시각이 기피 시설로 변모한 점도 건설 정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과거 세수 창출의 수단으로 환영받던 흐름을 벗어나 최근에는 전력 소비 급증과 소음 및 환경 훼손 문제를 실질적으로 검증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일례로 일리노이주는 전력 비용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데이터센터에 부여하던 세제 혜택 중단을 검토 중이며, 뉴멕시코주에서는 오라클의 데이터센터 공사가 환경 오염을 우려한 주민들의 집단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공실률은 시장 지표의 역설을 드러낸다. 건설 중인 용량이 줄어든 가운데서도 지난해 임차인이 흡수한 데이터센터 용량은 전년 대비 38% 급증하며 미국 주요 시장의 평균 공실률을 1.4%라는 사상 최저치로 끌어내렸다. 착공 둔화 양상과 대조적으로 실제 시장은 극심한 공급 부족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는 데이터센터 건설 감소가 산업 성장의 특정 구간에서 발생한 ‘확장 속도 조정 현상’이라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AI 수요의 둔화가 아닌, 물리적 기반 시설의 한계가 산업 성장의 속도를 좌우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다.
미 정부 “에너지 안보 승부수”
업계는 미국의 전력망 강화 전략이 본격화하는 흐름에 주목했다. 미국에서는 이미 이달 초 전국을 강타한 북극발 한파로 100만 가구 이상이 정전을 겪으면서 전력 인프라 취약성이 다시 부각된 상태다. 테네시·미시시피·루이지애나 등 남부 지역에서는 송전선 손상과 시설 고장으로 최소 35명이 사망하는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 이번 사태는 2021년 텍사스 대정전 이후 강화된 대비 기준에도 불구하고 전력망 안정성이 충분히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당시 텍사스에서는 발전 용량 절반 이상이 마비되며 200여 명이 숨을 거둔 바 있다.
전력 인프라의 노후화 문제도 심각하다. 미국토목학회(ASCE)는 지난해 인프라 보고서에서 자국 전력망에 D+ 등급을 부여했는데, 이는 2024년 C-에서 한 단계 더 하락한 수치다. 배전 변압기 부족과 송전 용량 제한, 기후 변화에 따른 극한 기상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ASCE는 “미국 내 전력 수요는 2022년 17GW 수준에서 2030년 35GW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면서도 “상당수 송전선이 30년 이상 사용된 데다, 변압기의 약 70% 역시 25년 이상 된 노후 설비로 분류돼 수요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에너지 공급 구조 역시 취약성을 키웠다. 2016년 이후 미국 전력 생산에서 천연가스 비중은 빠르게 상승해 2024년 기준 43%에 도달했다. 그러나 혹한기에는 난방 수요와 발전 수요가 함께 증가하는 ‘동시 피크(coincident peak)’ 현상이 발생하면서 공급 불안이 반복됐다. 실제 이달 초 한파 당시에도 가스 공급 제한으로 발전소 가동이 중단되며 현물 전력 가격이 급등했고, 미 동부 13개 주와 워싱턴DC 전력망을 관리하는 PJM인터커넥션은 송전 문제로 잠재적 전력 차단 경고를 무려 5차례나 내보내기도 했다.
전력망 투자 확대 움직임은 이 같은 상황에서 본격화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 집계에서 지난해 전력망에 연결된 신규 설비는 53GW로 2002년 이후 최대 규모였으며, 올해도 86GW가 추가될 것으로 관측됐다. 세부적으로는 태양광 43.4GW, 에너지저장장치(ESS) 24GW, 풍력 11.8GW 증가가 예상된다. 문제는 전력 수요 증가 속도가 이 같은 인프라 확충 속도를 앞지른다는 점이다. 북미전력계통신뢰도협회(NERC)는 “향후 10년 동안 미국 국토 절반 이상 지역이 전력 공급 부족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면서 “특히 중서부 전력망은 2029년까지 연간 2.7GW 부족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분석했다.

데이터센터 증설 둔화로 메모리 수요 공백 가능성
다시 AI 데이터센터로 관찰 대상을 좁히면,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 둔화를 예상할 수 있다. 최근 메모리 가격 급등의 직접적 원인이 데이터센터 수요 집중에 있었던 만큼 인프라 확장 속도 변화는 곧바로 수요 변동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의하면 올해 1분기 D램 가격은 전 분기 대비 80% 이상 상승했는데, 특히 노트북용 8GB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가격은 불과 석 달 만에 91% 급등했다.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핵심 부품인 낸드 가격도 100%가량 상승했으며, DDR5 모듈 가격 역시 다수 제품군에서 두 배 이상 뛰었다.
수요 집중 현상은 생산 구조 변화로 이어졌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전체 메모리 하드웨어 생산량의 최대 70%를 데이터센터가 소비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렌드포스는 이를 “세계 실리콘 웨이퍼 생산능력의 영구적이고 전략적인 재배치”로 규정하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주요 업체들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DR5 서버용 제품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면서 소비자용 메모리 공급은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추세”라고 짚었다.
이처럼 제조사들이 데이터센터용 부품을 우선 배정하면서 소비자용 기기 공급은 축소됐다. 마이크론은 지난 1월 소비자용 브랜드 크루셜(Crucial) 메모리 소매 사업에서 철수하고 기업·데이터센터 고객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공급 부족은 다시 완제품 시장의 가격 인상 압박으로 이어진다. 레노버·델·HP·에이서·에이수스 등 주요 업체들은 이미 15~20% 가격 인상을 예고했으며, 일부 제조사는 기본 사양을 16GB에서 8GB로 낮추거나 메모리를 제외한 ‘BYORAM’ 모델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럼에도 업계는 지금과 같은 가격 급등 국면이 일정 시점 이후 수요 변동성을 동반할 가능성을 높게 보는 분위기다. 데이터센터 투자 속도가 인프라 제약에 영향을 받을 경우, 단기간 집중됐던 서버 발주 물량이 일정 구간 이후 조정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고성능 메모리는 선제 확보 성격의 발주 비중이 높기 때문에 특정 시점까지 수요가 빠르게 소진된 이후 일시적 공백이 발생하는 패턴을 반복하는 경향이 짙다. 인프라 구축 속도가 제한되는 환경에서는 신규 서버 랙 설치 일정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메모리 수요 사이클 역시 완만한 조정 흐름으로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