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시장 게임체인저 ‘유리기판’, 국내외 양산 경쟁 가열 속 관건은 '유리 취성 문제' 해결
AI 반도체 시장 게임체인저 ‘유리기판’, 국내외 양산 경쟁 가열 속 관건은 '유리 취성 문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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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유리기판’ 급부상, 차세대 패키징 대안으로 주목 SKC·삼성전기·LG이노텍, 생산라인 구축·시제품 개발 가속 美·日·中도 뛰어든 유리기판 각축전, 양산 구조 구축 경쟁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 유리(Glass Core)기판 상용화를 두고 국내외 기업 간 각축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유리기판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성능을 좌우하는 패키징 단계에서 발생하는 병목을 해소할 대안으로 부상하는 기술이다. 이에 SK, 삼성, LG 등 국내 기업은 물론 미국, 대만, 일본 등 주요 반도체 강국들도 관련 투자와 연구를 확대하며 시장 선점을 노리고 있다. 최근 중국 기업들까지 기술 개발에 뛰어든 가운데, 향후 유리기판 시장은 기술 완성도뿐 아니라 양산 역량과 공급망 구축 여부에 따라 주도권이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SK·삼성·LG, 개발 경쟁 가속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C는 전날 이사회를 열고 유리기판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유증으로 확보한 자금의 60%가량인 5,900억원은 유리기판 자회사 앱솔릭스의 제품 개발에 투입될 예정이다. SKC는 미래 먹거리로 유리기판을 점찍고 앱솔릭스를 인수한 뒤 4차례나 지급보증을 서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앱솔릭스는 앞으로 AI 데이터센터용 하이엔드 제품인 '임베딩(Embedding : 내장형)' 방식과 상용화 속도가 빠른 '논-임베딩(Non-Embedding : 비내장형)' 방식을 동시에 개발하는 투트랙 전략을 추진해 적시 시장 진입을 달성할 계획이다. SKC는 “최근 앱솔릭스가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 대상 제품 개발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보이고 있다”며 “인텔·SK하이닉스 출신의 강지호 신임 대표를 중심으로 전문 엔지니어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기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2024년 초 시장 진출을 공식화한 삼성전기는 지난해 6월 세종 사업장에 유리기판 라인(파일롯)을 구축해 생산을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첫 샘플을 납품하기도 했다. 12월에는 일본 스미토모화학그룹과 유리기판 소재 제조와 관련한 합작법인(JV) 설립 검토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LG이노텍 역시 구미 공장에서 유리기판 시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작년 말 시제품을 제조했으며, 2027년~2028년 양산에 나서는 것이 목표다. LG이노텍은 최근 주력하고 있는 고부가 반도체 기판 FC-BGA(Flip-chip Ball Grid Array)에 유리기판 기술을 적용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고객사 및 국내외 유리기판 관련 기술 보유 업체들과의 협업에도 적극 나서며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인텔·TSMC에 중국 추격도
국내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업체들의 행보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인텔은 지난달 21일부터 23일까지 일본 도쿄 빅사이트(Tokyo Big Sight)에서 열린 'NEPCON JAPAN 2026'에서 EMIB(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를 통합한 후막(Thick Core) 유리기판을 공개했다. 인텔이 선보인 유리기판은 78×77mm 크기의 패키지를 전제로 하며 레티클 한계를 넘어서는 대면적 구성을 위해 약 1,716mm²(2×858mm²) 수준의 실리콘 면적 지원을 염두에 둔 설계로 소개됐다. 상·하부에 각각 10개 RDL(재분배층)을 두는 이른바 10-2-10 후막 유리 코어 구조를 통해 상부에서 미세 피치 라우팅을 구현하고, 하부에서는 메인보드/PCB 연결을 용이하게 하는 콘셉트를 제시했다는 설명이다.
중국 3대 디스플레이 제조사인 비저낙스(Visionox)도 올해 유리기판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비저낙스는 지난해 하반기 소재와 부품, 장비 공급망 구축에 착수했고, 현재는 한국 공급 업체들과 기술 개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비저낙스가 반도체 유리기판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시장 진입에 필요한 기술 확보에 나섰다고 전했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인 BOE테크놀로지도 유리기판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BOE는 지난해 기술 검증과 양산 타당성 검토를 마치고 사업을 가동했다. 이외에 중국 인쇄회로기판(PCB)제조사인 AKM 메드빌(AKM Meadville)은 시험 생산 라인을 구축했으며, 반도체 위탁 패키징·테스트 업체인 윈티안반도체(Yuntian Semiconductor)는 이미 화웨이 공급망에 편입되면서 유리기판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또한 대만 TSMC, 일본 라피더스 등도 유리기판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부분 기업이 2027~2030년 사이 양산 목표를 세워 누가 먼저 양산에 성공하느냐가 관심사다.

갈수록 뜨겁고 커지는 칩, 플라스틱으론 못버틴다
유리기판이 중요해진 이유는 탄소를 기반으로 한 기존 플라스틱(유기) 기판의 근본적 한계를 극복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판은 반도체 칩과 메인 기판을 연결하는 구조물로, 전기 신호 전달과 외부 충격 보호 역할을 한다. 현재는 유기기판이 주로 사용되고 있지만, 최근 반도체 회로 미세화와 멀티칩패키지(MLP) 등 고성능 반도체 사용이 늘면서 유기 기판의 치명적인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우선 데이터 전송 시 신호가 약해지고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 또 GPU를 구동할 때 발생하는 열 때문에 기판이 물리적으로 변형되고 반도체 간 연결이 쉽게 끊긴다. 더 나아가 최신 반도체는 굵기가 2㎛(마이크로미터) 이하인 초미세 배선으로 연결되는데, 유기기판에는 이렇게 가느다란 배선을 새기기가 어렵다. 반도체에 전력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전력 손실이 커 AI 구동 과정에 수백W(와트) 전력이 소모된다는 점도 문제다. 이에 실리콘 기판이 유기기판 대안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실리콘 기판은 크기를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는 데다 제조 비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유리기판은 얇고 표면이 매끄러워 미세 회로 구현에 유리하고, 열과 휘어짐에 대한 내구성도 높다. 중간 기판을 줄일 수 있어 기판 두께를 최대 25%가량 얇게 만들 수 있고, 소비전력도 30%가량 절감할 수 있다. AI 반도체의 집적도를 극대화해 AI 서버·GPU 성능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또한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실리콘 인터포저 없이 반도체 칩과 메인보드를 직접 연결할 수 있어 비용 절감과 패키지 소형화까지 실현 가능하다.
업계 전망도 긍정적이다. AMD는 2028년 고성능컴퓨팅(HPC)용 반도체에 유리기판 적용을 검토하고 있으며, 브로드컴과 엔비디아, 테슬라도 도입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성장성도 뚜렷하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TBRC는 유리기판 시장이 연평균 6.6% 성장해 지난해 79억 달러(약 11조3,500억원)에서 2029년 108억5,000만 달러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아직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AI와 HPC 확산과 함께 구조적 성장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상용화 초기 제품의 완성도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유리기판이 당장 나오더라도 1세대 제품이기 때문에 베타 테스트에 가까운 형태로 완성도가 다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가용 진행 결과 취성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유리기판이 얇아질수록 문제가 생기는데, 미세한 결함만으로도 기판이 깨지거나 들뜨는 세와레(SeWaRe) 현상이 나타나는 등 신뢰성 문제가 여전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