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탈탄소화 핵심은 전력” 원자력 확대 공식화, 탈원전 후폭풍 속 방향 전환
프랑스 “탈탄소화 핵심은 전력” 원자력 확대 공식화, 탈원전 후폭풍 속 방향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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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만의 신규 원전 가동, 산업 재진입 흐름
탈원전 이후 전력 수급 불안 및 비용 문제↑
러시아산 가스 차단으로 에너지 압박 심화

프랑스 정부가 원전 6기 신설을 포함한 다개년 에너지 계획을 확정하면서 현재 30% 수준인 전력 소비 비중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오랜 시간 재생에너지에 집중됐던 탈탄소 전략이 전력 안정성과 비용 측면에서 모두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정책의 무게중심 또한 원자력으로 회귀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독일·이탈리아의 탈원전 실패 경험과 유럽 과학계의 “전략적 자산” 권고, 네덜란드와 동유럽의 가속 움직임 등이 맞물리며 원자력 에너지를 둘러싼 유럽 내부의 시각도 빠르게 변화하는 추세다.
마크롱 “유럽, 이제 세계 강국처럼 행동할 때”
10일(이하 현지시각) 다국어 매체 유로뉴스에 따르면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이날 해당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탈탄소화의 핵심은 전력 생산의 부활에 있다”며 “현재 30% 수준인 전력 소비 비중을 2030년까지 60%로 대폭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을 향후 시행령(Decree) 형식으로 공표하고, 자국 에너지 정책의 중대한 전환점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르코르뉘 총리는 “운송이나 건설, 제조업 등 화석연료가 주도하던 부문을 전력 기반으로 전환하는 ‘에너지 사용 전기화 대계획’을 병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전력 수요 확대를 뒷받침하는 핵심 축으로는 원자력이 전면에 배치됐다. 프랑스 정부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6기 건설을 포함한 다개년 에너지 계획(PPE)을 확정하고, 원전을 기저 전력으로 두고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조합을 제시했다. 이는 2024년 전후 본격화한 원전 회귀 흐름과 맞물린다. 당시 프랑스는 신규 원전 플라망빌 3호기를 국가 전력망에 연결함으로써 1999년 이후 25년 만의 신규 원전을 가동했다. 국영 전력회사 EDF가 건설한 해당 원전은 유럽형 3세대 가압경수로(EPR) 방식으로 설비용량 1.6기가와트(GW), 최대 발전 시 약 200만 가구 공급 능력을 갖췄다.
프랑스 산업계도 원전 재진입 흐름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프랑스의 이번 PPE에는 신규 원전 6기 확정과 함께 최대 8기 추가 검토 옵션이 포함됐다. 이는 앞서 선언된 원전 부활 기조를 실행 단계로 옮긴 조치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는 논쟁을 지양한다는 정부 설명도 뒤따랐다. 태양광과 해상 풍력, 지열 투자를 지속하면서 육상 풍력은 지역 수용성을 고려해 고효율 교체 중심의 리파워링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공급 안정성과 비용 예측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 같은 정책 전환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발언과 맞물려 동력을 얻는 모양새다. BBC에 의하면 같은 날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더 이상 규범과 절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지정학적 경쟁의 한복판에서 실질적 힘을 행사하는 행위자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안보·산업·기술 분야에서 과감한 재정·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며 에너지 자립을 핵심 축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공동부채를 통한 연 1조2,000억 유로(약 2,076조원) 조달, 안보·에너지·인공지능(AI)에 대한 집중 투자 등 방안을 제시하면서 자국 전력 기반 확대 흐름에 무게를 실었다.

환경 명분과 실제 정책 결과 간 괴리
프랑스가 원자력 회귀를 택한 배경에는 주변국들의 원전 폐기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경험이 자리한다. 먼저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점으로 단계적 탈원전을 추진했고, 2023년에는 엠스란트·네카베스트하임2·이자르2 등 마지막 3기의 원전을 중단하며 정책을 마무리했다. 문제는 그러는 동안 원전이 담당하던 기저 전력을 태양광·풍력이 온전히 대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는 기상 조건에 따라 출력 변동성이 크다는 한계를 드러냈고, 전력 수급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석탄과 가스 발전 의존도는 도리어 높아졌다.
이에 독일 내 전력 시장에서는 탈원전에서 비롯된 전기요금 상승과 에너지 수입 의존 확대가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환경을 명분으로 내세운 정책이 전력 안정성과 비용 측면에서 모두 실패하면서 탄소 배출 감축 목표와도 멀어졌다는 비판이다. 이처럼 탈원전 정책이 탄소 감축·전력 안정·비용 관리라는 세 축을 동시에 달성하지 못했다는 인식은 유럽 전반으로 확산했다. 프랑스가 전력 비중을 2030년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배경에는 인접 국가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의 사례는 비용 측면에서 한층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한다. 에너지 데이터 기업 글로벌페트롤프라이스닷컴 분석에서 2023~2025년 3년간 이탈리아의 평균 가정용 전기요금은 kWh당 0.417달러였다. 이는 미국 대비 2.3배, 중국 대비 5.5배 수준이다. 이탈리아는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이후 1987년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정했고, 1990년 마지막 원자로를 중단하며 완전한 탈원전을 마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가 에너지와 전기 수입에 지출하는 비용은 매년 520억 유로(약 90조원) 수준까지 뛰었고, 정부 재정 부담을 키웠다.
높은 전기요금은 사회 곳곳에서 이례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유명 관광지 식당 및 카페들은 전기요금 고지서를 외부에 게시하며 가격 인상 배경을 설명했고, 가정에서는 세탁기와 식기세척기 등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요금이 부과되는 심야 시간대에 가동하면서 소음으로 인한 다툼이 늘었다. 심지어 분노한 시민들 가운데는 거리에 나와 전기요금 고지서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이도 있었다. 이러한 이탈리아와 독일의 실패 경험은 탈원전 노선에 대한 유럽 내부의 회의적 시각을 뒷받침했다.
원전 폐쇄 둘러싼 ‘경제적 위험’ 경고
유럽 내 전문 연구기관들도 일제히 원전의 중요도를 강조하고 나섰다. 브뤼셀에 본부를 둔 유럽원자력학회 고위과학위원회(HSC)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기존 원자로를 유럽연합(EU)의 ‘전략적 자산’으로 규정했다. HSC는 “유럽이 안전하고 탄소 배출이 낮은 원전을 조기에 폐쇄할 경제적·전략적 여유가 없다”고 경고하며 “장기 운영(LTO, Long-Term Operation)을 국가 및 EU 차원의 에너지 정책에 즉각 통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기존 원전은 이미 검증된 안전성과 낮은 탄소 배출량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제언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이 흔들린 이후 에너지 가격 변동성과 공급 불안이 겹친 상황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EU 회원국 다수에서 원전 폐쇄가 진행되면서 공급 안정성 저하 우려가 커진 까닭이다. 일례로 벨기에 도엘(Doel) 원전의 경우, 전체 4기 가운데 3기가 2022년부터 가동을 중단하면서 벨기에의 에너지 자립도 달성이 멀어졌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특히 기존 설비의 활용 가능성이 남은 상태에서 조기 폐쇄를 선택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신규 설비 투자 부담이 소비자 요금에 직접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커졌다.
이에 일부 국가에선 정책 전환을 서두르고 나섰다. 네덜란드 새 연립정부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자립을 목표로 원전 4기 건설을 확정했다.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를 포함한 총 4기 계획이 최종 승인됐으며, 기존 보르셀레 부지를 포함해 국가 전략을 확장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동유럽에서도 신규 원전과 관련 설비 사업이 이어지는 추세다. 루마니아 삼중수소제거설비(TRF) 건설사업에는 설계·기자재 조달·시공(EPC)이 결합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체코 기업이 케이블 기자재 공급에 참여하는 계약이 체결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유력 협력 대상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은 루마니아 TRF 사업에서 전원·통신·제어·소방용 케이블 기자재를 확보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체코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유럽 내 공급망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아시아 등 여타 지역에서도 유럽 내부의 정책 전환 속도를 예의주시하는 양상이다. 네덜란드 원전 확대 및 동유럽 프로젝트의 가동은 원전을 전략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유럽 내부의 움직임이 선언을 넘어 실행 단계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