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기업만 반긴다" 韓 증시 입성·상장 유지 난도 상승, 해외 상장 수요 확대 전망
"수출 기업만 반긴다" 韓 증시 입성·상장 유지 난도 상승, 해외 상장 수요 확대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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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장 문턱 상향에 심사 단계부터 난항 겪는 기업 급증 수출 중심 기업 우대 흐름 가시화, 내수 시장서 안주하면 밀려나 "입성은 쉽지만 유지는 어려워", 美 증시의 명암

국내 증시 입성 난도가 수년째 상승하고 있다. 매출 및 영업 안정성을 증명하지 못한 기업들이 줄줄이 한국거래소의 깐깐한 심사 문턱을 넘어서는 데 난항을 겪는 양상이다. 최근 들어 수출 중심 기업 우대·상장 유지 요건 강화 기조가 두드러지며 내수 중심 중소기업들의 설 자리가 한층 좁아진 가운데, 시장에서는 향후 미국을 비롯한 해외 증시의 문을 두드리는 기업이 증가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두터워진 韓 증시 진입 장벽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년 사이 한국거래소의 상장 심사 기준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지난 2024년에는 기업공개(IPO)에 도전한 기업 중 46곳이 거래소 상장 예비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상장을 자진 철회하거나 미승인 결과를 받았다. 이는 종전 최대치인 2021년 38곳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이에 따라 2021년 23.9%, 2022년 23.0%, 2023년 20.0% 등 20% 초반대에서 머물던 거래소의 상장 예심 미승인율은 31.0%까지 급등했다.
지난해 IPO를 진행하기 위해 상장 예비 심사를 신청한 66개 기업 중에서는 약 30%(21개)가 심사를 자진 철회하거나 미승인 결과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거래소는 매출 구조를 중심으로 영업 안정성을 꼼꼼히 뜯어보는 경향을 보였다"며 "정량 요건이 아닌 비정량 요건을 중심으로 심사가 이뤄지다 보니, 업력이 탄탄한 증권사들도 심사 통과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서는 당국의 코스닥 밸류업 정책 등이 본격화하며 신규 상장 흐름이 한층 둔화하는 양상이다. 연초 이후 코스닥에 신규 상장한 기업은 2곳에 그쳤다. 지난해 1~2월 총 15곳의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한 것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부진한 양상이다. 반면 상장폐지 기업 수는 늘어났다. 지난달 코스닥에서는 총 6개 기업(스팩 제외)이 상장폐지됐다. 최근에는 거래소가 삼천리자전거, 자이글 등 총 23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해외 매출 중요성 부각
다만 일각에서는 거래소가 소위 '달러벌이'가 가능한 기업에 한해 상장 문턱을 상대적으로 낮추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국내 벤처투자사(VC) 관계자는 "한국거래소가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회사에 우호적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기업들이 수출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특히 인공지능(AI) 기업의 경우 해외 매출을 확보하면 상장 심사 자체는 무리 없이 통과할 것이란 인식이 확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거래소가 기업들의 해외 매출에 주목하는 것은 국내 기업들이 내수 시장에 갇혀 '혁신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실제 지난해 벤처기업협회의 ‘벤처기업 정밀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벤처기업의 총매출은 2013년 193조원에서 2023년 242조원으로 25.4%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한국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5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같은 기간 벤처기업당 평균 매출액 역시 64억6,600만원에서 65억4,200만원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해외 매출이 있는 수출 벤처기업 비율은 2024년 기준 26.1%였다. 수출 벤처기업 비중을 70%로 끌어올리겠다던 벤처기업협회의 목표가 사실상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대기업으로 성장한 벤처기업 역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벤처확인제도를 시행한 1998년부터 올해까지 벤처 인증을 받은 13만6,000개 기업 중 대기업(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이 된 곳은 11개뿐이며, 이 가운데 수출 중심의 제조업체는 셀트리온과 에코프로 두 곳에 불과하다.
시장에서는 향후 내수 환경에서 안주하며 성장이 정체된 기업들이 속속 증시에서 밀려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내수 침체가 본격화하며 비우호적 시장 환경이 조성된 가운데, 상장폐지 기준까지 강화됐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는 시가총액 200억원, 매출액 50억원 이상을 유지해야 하며, 코스닥 상장사는 시가총액 150억원, 매출액 50억원 이상을 충족해야 상장폐지를 피할 수 있다. 코스닥 상장폐지 기준은 앞으로도 점진적으로 높아져 2029년에는 시가총액 300억원 미만, 매출액 100억원 미만까지 조정될 예정이다.

美 증시, 기회의 땅이자 시험대
시장에서는 이처럼 거래소 상장 문턱이 높아지고, 수출 기업을 우대하는 흐름이 본격화할 경우 국내 기업들의 상장 수요가 해외 증시로 이동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미국은 실적이 부진해도 일정 수준의 기업 구조와 요건만 갖추면 상장이 가능하며, 당장의 재무적 성과보다는 향후 성장 가능성에 방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재무적 상황이 위태롭고 미래의 가능성에 의존해야 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자금 조달 창구인 셈이다. 선진국 주식 시장에 상장하면 기업의 인지도와 신뢰도가 올라가고, 글로벌 사업 전개가 유리해진다는 사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이점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나스닥 입성이 '만능'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국 자본시장이 엄격한 규제 요건과 상장 유지 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24년까지 미국에 상장한 한국 기업 25개사 중 상장을 유지 중인 기업은 60%에 그친다. 건전성 등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일수록 오히려 시장에서 밀려나기 쉽다는 점도 문제다. 나스닥 시장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우량기업이 속한 최상위 시장인 ‘나스닥 글로벌 셀렉트 마켓’과 중견 기술 기업들이 속한 ‘나스닥 글로벌 마켓’, 신생 기업이나 중소형 기업이 상장하는 ‘나스닥 캐피탈 마켓’으로 구분된다.
이 중 캐피탈 마켓의 경우 자본금 500만 달러(약 72억원), 일정 주주 수 요건만 충족하면 진입이 가능해 가장 장벽이 낮지만, 관리 종목 지정 리스크가 크고 상장 유지 요건 미충족 시 상장폐지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실제 한류홀딩스, 피크바이오 등 나스닥 캐피탈 마켓에 상장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장폐지된 국내 기업도 다수다. 결국 미국 주식 시장이 품은 '기회'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입성 후 살아남을 여력을 갖춘 기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