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투자 1,000조 시대, 지출 덫에 빠진 빅테크들
AI 투자 1,000조 시대, 지출 덫에 빠진 빅테크들
입력
수정
빅테크, 자금 조달 위해 채권 시장 노크 알파벳, 100년물까지 꺼내 들어 수익성 우려에도 멈추지 않는 AI 선점 레이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이 이례적으로 100년 만기 채권 발행에 나섰다. 인공지능(AI) 투자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빅테크 기업들의 부채 조달은 올해 들어 한 단계 더 공격적으로 전개되는 모양새다. 과거 막대한 현금을 쌓아두고 자사주 매입에 열을 올리던 모습 대신, 이제는 빚을 내서 AI 전쟁을 치르는 형국이다.
알파벳, 닷컴버블 이후 최초 100년물 채권 발행 추진
9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알파벳은 영국 파운드화로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주관사 은행단을 꾸렸다. 알파벳이 '센추리 본드(Century Bond)'라 불리는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극단적인 장기 채권은 매우 이례적이지만 전례가 없지는 않다. 미국 기술 기업 중에서는 IBM이 1996년 10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했고, 알파벳처럼 영국 파운드화로 표시된 100년물 채권은 옥스퍼드대, EDF(프랑스 전력공사), 웰컴 트러스트 등이 발행한 바 있다.
100년 채권을 발행한다는 것은 채권자가 100년간 알파벳에 돈을 묶어놔도 될 만큼 회사 신용도가 높다는 뜻이다. 알파벳 입장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기도 하고, 100년 뒤 상환한다는 점에서 영구 자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채권의 금리(수익률)를 계산할 때 만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중에 갚아야 할 원금의 현재 가치는 0에 수렴한다. 이로 인해 100년 만기 채권의 경우 금리가 오히려 떨어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초장기 채권이라 이자율 자체가 높게 잡힐 수 있지만, 100년으로 나눠 역산하면 기업의 실질적인 자금 조달 비용(유효 이자율)은 오히려 낮게 계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알파벳의 100년 만기 채권은 각기 만기가 다른 7종류 달러화 채권 발행과 함께 진행된다. FT에 따르면 알파벳이 발행하는 40년 만기 회사채는 미국 국채 대비 0.95%포인트의 가산금리(스프레드)로 가격이 책정됐다. 알파벳은 지난해 11월에도 미국 채권시장에서 175억 달러(약 25조5,000억원), 유럽에서 65억 유로(약 11조2,800억원)를 조달했는데 당시 발행한 50년물은 지난해 미국에서 기술기업이 발행한 채권 중 가장 만기가 길었다.
‘AI 투자 효과’ 본격화, 클라우드 부문 48% 성장
알파벳이 공격적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이유는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서다. 알파벳은 올해 설비투자(CAPEX) 규모가 1,850억 달러(약 269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총액의 2배에 이르는 수치이자, 시장 분석가들의 예상치인 1,152억6,000만 달러(약 167조9,000억원)를 50% 이상 상회하는 과감한 규모다.
투자 확대 이면엔 클라우드 사업의 가파른 성장세가 자리한다. 알파벳의 지난해 4분기 클라우드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8% 급증한 710억 달러(약 103조4,000억원)를 기록했다. 2021년 200억 달러(약 29조1,300억원)에도 못 미쳤던 사업이 3년 만에 3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AI 투자가 실제 수익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AI 기능을 도입하면서 광고 수익도 증가했다. 검색 광고 매출은 전년 대비 15% 증가한 566억 달러(약 82조4,000억원)로 시장 예상치인 550억 달러(약 82조1,000억원)를 상회했다. AI가 광고 문구 생성, 타겟팅, 입찰 자동화 등을 해주고, 실시간 데이터 분석으로 광고 효율을 높여주다 보니 매출도 증가한 것이다. 클라우드 사업 수익성도 크게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3분기 23.7%에서 4분기 30%로 상승했는데, 여전히 경쟁사들보다는 낮지만 클라우드 인프라 시장 1위인 아마존웹서비스(AWS)와의 격차를 크게 좁혀가고 있다.
클라우드 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는 곧 AI 서비스 공급망의 장악을 의미하며,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의 전 세계적 거점 확보가 필수적이다. 알파벳은 클라우드 부문의 견고한 성장을 확인한 만큼, 대규모 자본 투입을 통해 인프라의 규모를 확장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역대급 AI 투자 전망, ‘하이퍼스케일러’ 자금 확보 경쟁 격화
아직 뚜렷한 강자가 없는 AI 시장에서 빅테크들이 벌이는 치열한 선점 경쟁에 시장은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는 반응이지만, ‘승자독식’ 구도를 염두에 둔 빅테크들은 투자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오라클이 180억 달러(약 26조2,0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한 데 이어, 10월에는 메타가 300억 달러(약 43조6,0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이는 인수합병(M&A)을 제외한 단일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11월에는 알파벳(175억 달러·약 25조4,800억원)과 아마존(150억 달러·21조8,300억원)이 뒤를 이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1월 보고서에 따르면 아마존, 알파벳, 메타, MS, 오라클 등 5대 AI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s·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는 지난해 미국 회사채 시장에서 총 1,210억 달러(약 176조1,600억원)를 발행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더 큰 폭의 발행이 예상된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AI 시대 전례 없는 규모로 데이터센터 용량을 추가하고 있다”며 “올해 AI 용량을 80% 늘리고, 향후 2년 동안 데이터센터 규모를 2배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수잔 리 메타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올해 지출 규모가 올해보다 눈에 띄게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초지능 연구소 관련 지출 규모가 가장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무디스는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올해 총 지출 규모를 5,000억 달러(약 727조8,500억원)로 추산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채권 발행으로 충당되며,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연간 회사채 발행 규모가 4,000억 달러(약 582조4,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본다. JP모건도 이들 기업이 올해 최소 3,370억 달러(약 490조7,300억원)의 우량 채권을 발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막대한 차입은 기업 재무 구조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알파벳은 지난해 11월 250억 달러(약 36조4,000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으며, 장기 부채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465억 달러(약 67조7,000억원)로 1년 만에 4배나 늘었다. 메타 또한 설비투자가 최대 1,350억 달러(약 196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현금흐름 압박이 심화하고 있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스는 메타의 올해 잉여현금흐름이 90% 급감할 것으로 추정하면서, 오는 2027년과 2028년에는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상대적으로 완만한 투자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MS도 올해 잉여현금흐름이 28%가량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