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 택한 SK하이닉스와 도전 택한 삼성전자, 격화하는 HBM4 경쟁 속 엔비디아 '미소'
안정 택한 SK하이닉스와 도전 택한 삼성전자, 격화하는 HBM4 경쟁 속 엔비디아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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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높은 수율·양산 경험 앞세워 HBM 리더십 수성 자신 과감한 설계 택한 삼성전자, 성능 개선하며 HBM4 초기 주도권 확보 치열한 경쟁 속 공급망 재편 조짐, 최대 수혜자는 엔비디아?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를 둘러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SK하이닉스가 검증된 안정성에 중점을 두며 시장 주도권 수성에 힘쓰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수율 리스크를 감수하고 성능 승부수를 띄우며 초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모양새다. SK하이닉스 독점 구조였던 HBM 시장이 삼성전자의 참전으로 인해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핵심 고객사인 엔비디아가 반사이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SK하이닉스의 HBM4 자신감
5일 대만 IT 매체 디지타임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모두 16단 적층 HBM4 양산 기술을 확보했으나, 수율 격차가 상당해 시장 공급 능력에서 큰 차이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의 HBM 전용 10나노급 6세대(1c) D램 수율은 현재 50~60% 범위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적으로 HBM 양산의 손익분기점이 수율 60%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아직 부진한 수치다. 반면 SK하이닉스는 기존 5세대 HBM(HBM3E) 제품에서 이미 80~90% 수율을 확보했고, HBM4에서도 패키징 공정 개선을 통해 비슷한 수준의 수율을 유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지난 29일 진행된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현재 HBM 생산을 극대화 중이지만 고객들의 수요를 100% 충족시키기 어렵다"며 "일부 경쟁사의 시장 진입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성능과 양산성, 품질 기반으로 한 시장 리더십과 주도적 공급사 지위는 지속될 것으로 본다"고 단언했다.
해당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3세대 HBM(HBM2E) 시절부터 고객, 인프라 파트너사와 함께 '원팀'으로 HBM 시장을 개척해 온 선두 주자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간 쌓아온 양산 경험과 품질에 대한 고객 신뢰를 앞세워 견제구를 던진 것이다. 이어 SK하이닉스 측은 "HBM4 역시 고객사 및 인프라 파트너사들의 제품 선호도와 기대가 굉장히 높다"며 "SK하이닉스의 제품을 최우선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초기 경쟁서 우위 점해
다만 이 같은 SK하이닉스의 낙관적 전망이 현실이 되리라고 확언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공격적인 설계 전략으로 HBM4 제품 성능을 대폭 개선하며 추격을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성숙한 5세대(1b) D램을 대만 TSMC의 12나노 공정으로 만든 베이스 다이와 결합하는 방식을 택한 SK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전자는 1c D램 공정을 HBM4에 적용했으며 베이스 다이에는 자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의 4나노 공정을 투입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의 HBM4는 11.7Gbps(초당 기가비트)에 달하는 동작 속도를 구현하며 엔비디아가 요구한 기준(초당 11Gbps)을 충족했다.
삼성전자 HBM4의 수율이 부진한 것 역시 이처럼 성능을 중시하는 도전적 설계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채택한 HBM용 1c D램은 범용 D램보다 회로 밀도가 높고 발열 관리가 까다로워 제조 난도가 높은 편이다. 제조 리스크를 일부분 짊어지기는 했지만, 이 같은 승부수를 통해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마이크론을 제치고 주요 고객사 납품을 사실상 확정 지었다. 삼성전자는 최근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주요 고객사들의 퀄테스트(품질 검증)가 순조롭게 진행돼 현재 완료 단계에 진입했다"며 오는 2월부터는 업계 최고 속도인 11.7Gbps 제품을 포함한 물량을 본격적으로 출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유료 샘플 공급을 넘어 업계 최초로 엔비디아에 HBM4를 정식 납품한다는 사실을 공식화한 것이다.
반면 SK하이닉스의 HBM4는 아직 퀄테스트를 진행하며 보완 단계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말 엔비디아와 진행한 HBM4 대량 공급 직전 단계의 인증에서 일부 회로 내 불량을 발견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 HBM4는 수정을 거쳐 최근 양산이 가능할 정도의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안다”며 “엔비디아가 요구한 11Gbps의 속도는 점점 맞춰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퀄테스트에 통과하면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가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1분기 동안 시제품(샘플)을 계속 보내는 작업을 이어가게 된다. 샘플 통과 및 본격적인 출하 시점은 이르면 1분기 말, 혹은 2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쟁 과열에 엔비디아 '반사이익'
양 사의 치열한 경쟁 상황은 과감한 리스크 양산 전략에서도 두드러진다. 리스크 양산은 고객사의 퀄테스트가 끝나기 전에 공장을 가동하는 것으로, 최종 퀄테스트에서 탈락하거나 설계 변경이 발생할 경우 물량이 전량 손실 처리될 수 있어 상당한 고위험 전략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는 지난해 9월, 삼성전자는 10월 전후부터 HBM4 생산 라인을 가동하며 리스크 생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엔비디아 루빈 플랫폼 출시 일정에 발맞춰 수요를 선점하기 위한 승부수로 풀이된다. HBM4의 리드타임(제품 공급에 필요한 시간)은 4~5개월 이상으로, 인증을 완료한 뒤 제품 양산에 돌입하면 HBM을 엔비디아에 적기 공급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HBM3E 경쟁에서 밀려났던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의 대등한 경쟁자로 급부상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향후 SK하이닉스 중심으로 움직이던 인공지능(AI) 반도체 공급망에 지각변동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기존 HBM 시장은 SK하이닉스가 독주하고 마이크론이 추격하는 구도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국면에 놓여 있었다. 압도적인 생산 능력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시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일부분 해소되며 판도가 뒤집힐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HBM4 시장 점유율 전망치는 SK하이닉스 54%, 삼성전자 28% 수준이다. 기존 SK하이닉스가 HBM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경쟁이 '큰손' 고객사인 엔비디아에 막대한 호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최근 HBM 가격은 AI 패권 경쟁이 격화함에 따라 천정부지로 치솟는 추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이 격화할 시, 가격 협상의 우위가 일부분 엔비디아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HBM처럼 공급이 빠듯한 제품이라도 가격 인상 속도가 둔화되거나 인상 폭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중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효과가 한층 분명해진다. 두 기업이 수율 개선·패키징 대응 속도 제고를 위해 가격 외 조건(장기 공급 계약, 우선 공급, 커스터마이징 등) 경쟁을 펼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HBM 평균판매가격(ASP)의 상승 여력은 자연스럽게 제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