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 재정 승부수 ‘다카이치노믹스’의 역설, 총선 이후 일본 재정 건정성 시험대
확장 재정 승부수 ‘다카이치노믹스’의 역설, 총선 이후 일본 재정 건정성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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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이치 조기 총선 지지율 고공비행 재원 대책 없이 확장 재정 밀어붙여 시장 ‘재정 규율 붕괴’ 불신 증폭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중의원(하원)을 해산하면서 치러지는 조기 총선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집권 자민당이 과반 의석수 확보를 훨씬 웃도는 성적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강한 리더’ 이미지를 앞세운 유세 활동으로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보수층을 강하게 결집시키는 모습이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는 정치적 행보와 달리, 선거용으로 쏟아낸 파격적인 확장 재정 공약은 벌써부터 일본의 재정 규율을 심각하게 뒤흔들고 있다. 일각에선 총선 이후 ‘다카이치 쇼크’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심상찮은 다카이치 열풍, 보수층 표심 공략 성공
5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가 등장하는 유세 현장에는 최대 3,000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리며 ‘다카이치 열풍’을 입증하고 있다. 이날 오전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 구키역 광장의 자민당 유세장 연단에 다카이치 총리가 등장하자 군중들 사이에서 “간바레(힘내라)”가 터져 나왔다. 같은 날 오후 기타우라와공원 유세 현장에서도 열기는 이어졌다.
다카이치 총리의 인기에 힘입어 자민당이 단독 과반(233석)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연립 여당인 일본유신회와 합쳐 3분의 2(310석)를 차지하는 압승이 가능하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자민당 연립 정권이 중의원에서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게 되면, 2014년 고(故) 아베 신조 내각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강력한 여당이 탄생하게 된다. 연립 여당이 중의원에서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면 여소야대인 참의원에서 법안이 부결돼도 중의원에서 재의결해 가결할 수 있다.
지난달 다카이치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했을 당시만 해도 정치권과 여론은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중의원 해산 직후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내각 지지율이 10%포인트 급락했고, 해산에 관해서도 부정적 평가가 우세했다. 하지만 다카이치 총리가 각지를 다니며 유세 활동을 벌이자 상황이 서서히 바뀌었다. 유세 현장마다 다카이치 총리를 보기 위해 구름 인파가 모여들었고, 선거 판세도 자민당에 유리한 쪽으로 변해 갔다. 다카이치 총리가 유세에서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보수적 정책보다는 경제 정책을 집중적으로 언급한 것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 여건은 유권자들의 가장 중요한 판단 요소다.

재원 마련 등 정책 설계 부족
현재 일본은 일본은행 목표치를 웃도는 인플레이션이 45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으며 실질임금은 2025년 동안 11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했다. 연간 기준으로는 2022년 이후부터 매년 실질임금이 하락했다. 최근 물가상승률은 2.1%, 연간 물가는 3.2%에 달한다. 여기에 2025년 중반 쌀값 급등도 가계 부담을 키우며 자민당의 선거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 엔화는 2026년 초 달러당 160엔 수준에 근접하며 약세를 보였고 이는 수입 물가 상승 압력을 크게 키웠다.
이에 다카이치 총리는 오는 4월 시작되는 회계연도를 위해 7,830억 달러(약 1,150조원) 규모의 사상 최대 예산안과 지난해 도입한 1,350억 달러(약 198조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제시했다. 여기에 생활비 상승 부담을 완화하는 데 방점을 둔 경기 부양 패키지도 추가로 마련한 상태다. 소비세 인하 공약도 내걸었다. 현행 8% 세율인 식료품에 한해 2년간 한시적으로 소비세를 0%로 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한국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일본 소비세는 표준세율이 10%다. 다만 식품에만 8% 경감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소득 역진성을 완화하기 위해 식품만 세율을 낮춘 것이다.
문제는 포퓰리즘 정책에 따른 재정 악화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240%에 달하는 국가 부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재정 지출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2026회계연도 예산안은 122조3,000억 엔(약 1,145조원)으로, 전년 대비 6% 증가했다. 이 중 25% 이상이 국채 상환과 이자 지급에 사용된다. 특히 소비세 감세 공약은 연간 5조 엔(약 46조7,000억원) 규모의 세수 감소를 의미한다. 지난해 일본 정부의 일반회계 세수 총액이 80조7,000억 엔(약 755조원)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6% 이상의 세수가 증발되는 셈이다. 함께 제시된 정책들도 재정 부담을 키우는 요소로 부각된다. 휘발유세 인하와 고교 무상화 등 기존 정책에만도 2조2,000억 엔(약 20조5,700억원)의 재원이 추가로 필요하지만 현재 확보된 예산은 1조4,000억 엔(약 13조원) 수준에 그친다.
자민당은 적자 국채 발행 없이 세외 수입과 조세특별조치 정비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재원은 공약에 명시하지 않았다. 다카이치 총리도 그동안 적자 국채 발행에 의존하지 않고, 각종 보조금과 기업에 대한 특례감세 등의 축소 및 세외 수입 확대 등으로 해결하겠다고만 할 뿐, 재정 공백을 메울 확실한 방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감세 방식에 따른 사업자 부담 대책도 불분명하다. 식품 소비세를 제로로 할 경우 면세 또는 비과세 방식이 거론되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면세에 가까운 느낌”이라는 모호한 표현에 그쳤다. 면세 방식이 채택될 경우 소규모 음식점이나 농가는 환급 절차에 따른 행정 부담과 자금 운용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적극 재정’ 우려에 역대급 채권 금리 ‘발작’
전문가들은 결국 일본 정부가 부족한 재원을 추가 국채 발행으로 충당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그런데 일본 국채 발행의 상당 부분은 기존 채무를 상환하기 위한 차환 목적이다. 올해 국채 발행 예정액 180조7,000억 엔(약 1,689조5,000억원) 중 75%가량이 차환채다. 향후 매달 11조 엔(약 102조8,000억원) 규모의 국채가 부채 '돌려막기'를 위해 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시장은 이미 경고음을 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내건 경기 부양책이 일본 재정 건전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공약 선언 다음날인 지난달 20일 일본 40년물 국채 수익률은 6bp(1bp=0.01%포인트) 가까이 상승해 4%를 돌파했다. 20년 만기 국채 금리도 9.5bp 올라 3.35%를 기록했다. 국채 금리 상승은 정부의 이자 부담 확대를 의미한다.
2000년대 이후 일본 국채는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가장 안정적인 금리 하단 역할을 해 왔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의 장기간 제로금리 정책 아래 장기 국채 금리는 오랜 기간 1~2%대에 머물렀다. 2016년 수익률곡선통제(YCC) 정책과 마이너스 금리 도입 당시 40년물 금리가 0.3%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4%대 진입은 일본 금융 시스템 변화의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평가다. 시장에서는 앞으로 일본 국채 금리가 재정 상황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더 오를 위험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금리 변동이 초장기 국채에만 국한돼 있었지만, 만약 이런 현상이 10년 만기 등 상대적으로 짧은 만기 국채로 확산될 경우, 일본 경제에 훨씬 더 심각한 부담을 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