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가전 수익성 동반 하락, 중국 공세와 프리미엄 전략의 충돌
삼성·LG 가전 수익성 동반 하락, 중국 공세와 프리미엄 전략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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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등 비용 구조 변화에 수익 급감
세계 가전 시장 중국 주도 재편 흐름
기능 결합 중심 프리미엄 전략 한계 노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 사업이 실적과 수익성 양 측면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는 모양새다. TV를 비롯한 생활가전 전반에서 적자가 누적되는 가운데, 원가 상승과 시장 경쟁 심화가 맞물리며 기존 사업 구조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글로벌 가전 시장이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한국 업체들은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나섰다. 시장에서는 중국 주도 구도 속에서 우리 기업들의 프리미엄 전략이 어떤 한계를 가질 수 있는지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출하 확대·실적 개선 요원
4일 IT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와 디지털가전(DA)사업부의 지난해 실적 흐름은 분기 기준과 연간 기준 모두에서 뚜렷한 약화를 드러냈다. 지난해 4분기 VD·DA사업부의 영업손실은 6,000억원으로 집계됐으며, 직전 분기였던 3분기에도 약 1,000억원 수준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023년 4분기 500억원의 영업손실 이후 처음으로 적자 전환이 이뤄진 데 이어 2개 분기 연속 손실이라는 점에서 일시적 부진을 넘어선 흐름으로 읽힌다.
연간으로 관찰 범위를 넓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VD·DA사업부는 지난해 상반기 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하반기 실적 부진이 이를 모두 상쇄하며 연간 기준 2,000억원의 영업손실로 마무리됐다. 매출 측면에서도 뚜렷한 성장세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해 VD·DA사업부의 연간 매출액은 57조3,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 증가하는 데 그쳤다. 매출 증가폭이 제한적인 가운데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가 동시에 늘어나며 수익성이 훼손된 구조가 실적 전반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수익성 악화의 배경으로는 제품 교체 주기의 장기화와 비용 구조 변화가 함께 거론된다. 대표적으로 인공지능(AI) 수요 확대 영향으로 가격이 급등한 메모리를 꼽을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범용 D램(DDR4 8Gb 1Gx8)의 지난달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전월 대비 23.7% 오른 11.5달러로 집계됐다. 메모리 반도체는 TV를 비롯해 스마트폰, PC, 노트북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 탓에 가격 상승은 즉각 제조사의 원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제조사로서는 가격 인상이나 마진 축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압박에 처하는 셈이다.
수요 환경도 녹록지 않다. 글로벌 경기 둔화가 이어지면서 가전과 TV 수요 전반이 움츠러들고, 출하 확대를 통한 실적 개선 여지를 더욱 제한되는 식이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글로벌 TV 출하량을 1억9,481만 대로 전망하며 전년 대비 0.6%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트렌드포스는 “메모리, 디스플레이 패널, 귀금속 가격 상승으로 신형 TV 모델의 소비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도 함께 제시했다. 가격 인상은 수요 위축을 부추길 공산이 큰 만큼 제조사 입장에서는 실적 악화를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흐름은 비단 삼성전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LG전자 역시 TV 사업에서 유사한 실적 압박에 처했다. LG전자 미디어엔터테인먼트솔루션(MS) 사업부의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은 2,615억원으로 전년 동기(504억원) 대비 5배 이상 적자 폭이 커졌다. 같은 기간 매출 역시 3.3% 감소해 5조4,301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연간 누적 매출액은 19조4,263억원으로 1년 전보다 7% 줄었다. 이처럼 LG전자와 삼성전자가 나란히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업계에서는 TV와 가전 전반에서 단기간 내 수익성 회복이 요원하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가격·물량에서 열세
시장 경쟁 심화 역시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를 억누른다. 중국 업체들의 존재감이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인 까닭이다. 가전 시장 내 중국 브랜드의 위상 변화는 유통 현장과 가격대 분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과거 한국 시장에서 중국 가전은 ‘저가 보급형’ 이미지가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중고가 제품도 크게 늘었다. 대형 가전 유통 매장에서는 중국 브랜드 전용 매대가 별도 구성됐으며, 일부 품목에서는 중국산 제품의 소비자가가 국산 제품보다 높게 형성된 경우도 포착된다. 이는 브랜드와 성능을 바탕으로 가격 방어 단계에 진입한 신호에 가깝다.
중국 업체들의 공세는 소비자들의 일상과 밀접한 생활 가전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 선풍기나 로봇청소기 같은 틈새 제품을 기점으로 시장에 안착하고, 이후 TV와 세탁기, 건조기 등 고가 백색가전으로 영역을 넓히는 식이다. 가격 비교 사이트 다나와가 집계한 외국산 청소기 점유율은 지난해 11월 기준 50%로 2022년(38.9%) 대비 10% 넘게 늘었는데, 해당 증가분의 대부분이 로보락, 에코백스 등 중국 브랜드로 분류됐다. 이들 브랜드는 다양한 제품 라인업으로 국내 소비자들을 적극 공략 중이다.
유통 전략과 사후 관리 역량 강화도 중국 브랜드의 시장 확대를 뒷받침한다. 중국 업체들은 백화점과 대형 가전 매장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접점을 확대한 데 이어 애프터서비스(AS) 체계 역시 빠르게 정비했다. 로보락은 AS 접수 지점을 전국 단위로 늘리며 접근성을 높였고, 에코백스는 편의점 택배 접수를 포함한 원스톱 AS 방안을 도입했다. 샤오미 역시 직영 4곳 포함해 국내에만 16곳의 AS센터를 운영 중이다. 이는 기존 약점으로 지적된 서비스 불안 요소를 해소해 고가 제품 판매에 대한 소비자 저항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졌다.
글로벌 기준에서도 중국 가전업체의 존재감은 수치로 확인된다. 유로모니터인터내셔널 조사에서 중국 하이얼은 냉장고와 세탁기 판매량 기준 17년 연속 세계 1위를 유지했다. TV 시장에서도 격차는 빠르게 좁혀져 중국 TCL이 16% 점유율로 1위 삼성전자(17%)를 바짝 뒤쫓았다. 이에 업계에서는 과거 가격과 물량 위주로 전개되던 시장 내 경쟁이 브랜드와 서비스 등 전반으로 확장되면서 한국 가전 업체의 수익성 방어 난도가 한층 높아졌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차별화 전략엔 물음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프리미엄 가전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아 돌파구를 찾겠다는 구상이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실정이다. 지난 1월 미국 라이베이스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박람회 ‘CES 2026’에서 양사가 강조한 AI 가전은 사용 편의성과 생태계 확장 측면에서 유의미한 시도로 평가되지만, 최근의 수요 위축 국면에서는 가격 저항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여기에 TCL·하이센스 등 중국 업체들 역시 AI 기능을 탑재한 TV와 가전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어 기술 요소만으로 프리미엄 전략을 강행하기에는 차별성이 제한적이다.
역사적으로도 가전 시장에서 프리미엄 전략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진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성공한 브랜드 가운데는 덴마크의 뱅앤올룹슨을 꼽을 수 있다. 1920년대 문을 연 뱅앤올룹슨은 라디오를 비롯한 음향 가전 전반에서 기능 혁신과 디자인, 소재, 장인정신을 일관되게 결합하며 브랜드 자체를 고급 자산으로 일궈냈다. 이 같은 축적 과정이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지면서 베오그램 4000, 베오비전 TV, 베오플레이 A9 등 뱅앤올룹슨의 주요 제품들은 가구 또는 예술품의 영역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고급화 시도는 일부 기능 결합이나 협업 중심에 머무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LG전자가 뱅앤올룹슨과 협력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와 오디오 패키지를 출시한 사례가 상징적이다. LG전자는 이를 통해 소비자의 만족도를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브랜드 주도권은 여전히 협업 파트너에 남는다는 점에서 한계 또한 명확했다. 나아가 프리미엄을 ‘기능의 합’ 관점으로 접근할 경우, 경쟁사가 유사한 구성을 빠르게 모방할 수 있다는 치명적 약점 또한 가진다. 이는 곧 시장 경쟁이 치열한 작금의 상황에서 단기 실적 방어 수단으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