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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는 2023년 국민연금 급여액을 기존보다 5.1%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고물가 여파에 따른 24년 만의 최대 인상률로 연간 물가상승률 2.0% 안팎의 저물가를 전제로 삼았던 과거 추계와 비교했을 때 연금 고갈 시기가 또다시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연금 개혁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연금 개혁 필연적이지만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 실패한 ‘거시경제정책’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의 한 거시경제학자는 한국에서 가장 실패한 거시경제정책으로 국민연금을 꼽았다. 국민연금 구조 자체가 현재 세대부터는 돌려받지 못하는 돈을 연금공단에 지불해야 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경제전문가는 국가 주도로 운영하는 국민연금이 사실상 ‘다단계 금융사기(Ponzi scheme)’나 다름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부 극단적인 의견으로는 가장 확실한 연금 개혁은 곧 국민연금의 폐지라며, 더 늦기 전에 이 정책을 폐지해야 ‘더 내고 덜 받는’ 구조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이 100% 이상의 수익률을 보여주는 ‘기적’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피해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개혁특위)는 지난 8일 국민연금 보험료율·소득대체율 조정 등에 대한 논의를 미루고, 공적연금 전반의 ‘구조개혁’부터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연금 개혁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 위원들 간 이견으로 개혁안 초안 마련이 늦어지자 노후 소득 보장체계 개편을 위한 큰 틀부터 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9%의 보험료율에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16%까지 인상해야 하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은 보험료율 인상을 2030년으로 미룰 경우 2040년에 필요한 보험료율은 20.93%가 되어 200만원을 벌면 42만원을 보험료로 내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당장 보험료율을 인상할 경우 경기침체에 난방비 인상, 급격한 물가상승으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가 더욱 심화될 여지가 있어 정부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2010년부터 적자인 미국 사회보장국, 복지자금 지출하다 정부 부채 증가
미국 역시 사회보장제도로 인한 재정난에 휩싸였다. 미국의 한 민주당 인사는 자신의 SNS에 사회보장국의 적자나 그로 인한 국가 부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며, 공화당에서 사회보장 재정을 삭감할 경우 소송하겠다는 글을 게시했다. 해당 글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지만, 대다수는 민주당 인사의 인식이 틀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의 경제전문가들은 2010년 이후 사회보장국에서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재무부에서 발행한 채권을 사용해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채권 상환을 위해 대중들로부터 돈을 빌리고 연방국은 적자에 시달리는 악순환을 반복하며 국가 부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사 USA TODAY는 어반 브루킹스 조세정책센터(Urban-Brookings Tax Policy Center)의 선임 연구원인 하워드 글랙맨이 "미국 정부와 사회보장국은 대중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게 얽혀 있다"고 제보한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는 근로자의 급여세를 통해 징수돼 현재의 수혜자에게 지급되며 남은 자금은 사회보장 신탁기금에 예치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글랙맨은 사회보장국이 1984년부터 2009년까지 흑자를 기록했고, 잉여금은 정부 차입 후 지출되었으며 그 대가로 특별 국채를 지급받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는 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해 신탁기금에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상환하여 수혜자들에게 관련 혜택금으로 전액 지급하는 상황으로 변화되었다고 덧붙이며 이때 연방 정부에서 채권 상황 시 자금이 부족해 대중들로부터 차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아메리카 엔터프라이즈 인스티튜드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선임 연구원인 앤드류 비기스는 현 상황에 대해 “올해 사회보장국이 1달러의 세금 적자를 낼 경우, 사회보장국은 1달러의 신탁기금 채권 상환을 요청하고, 연방정부는 이 채권을 상환하기 위해 대중으로부터 1달러를 빌리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국 연방 정부 전체 예산과 달러 기준의 국가 부채를 포괄하는 재정 적자가 증가되고 있는 상황이며 저출산 영향으로 앞으로도 연금 납입금은 더욱 하락할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당장 10년 뒤 사회보장국에서 지금보다 큰 적자 폭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정치권에도 국민에도 부담인 연금개혁, 이제는 직면해야
USA TODAY가 지적하는 미국 상황을 국내에 적용했을 때, 국민연금 기금이 적자로 돌아서는 2040년대 이후에는 우리나라도 나라에 빚을 내 연금을 지급하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정년이 넘어 은퇴하는 분들에 대해 존경과 존엄성(Dignity)을 강조하며 사회보장제도를 이어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 가능 연령은 제한적인 반면 평균 수명은 빠르게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후손들이 막중한 부담을 지며 국가 부채까지 증가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과연 그 존엄성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의 상황은 곧 우리나라에 닥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군인연금은 1973년부터 기금 고갈, 공무원연금은 2003년부터 적자를 기록하고 있어 현재 보험료 인상(군인연금 14%, 공무원연금 18%)과 세금에 기인한 국고 보조금으로 버티고 있다.
한편 지난 8일 국회 연금개혁특위 방향성 선회 발표 이후에도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민간 자문위 관계자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연금 개혁의 밑그림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민간 자문위에서 합의된 안이 나오기만을 기대했다”며 “그간 민간 자문위원들이 모수 개혁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진행했음에도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다가 이제서야 구조개혁으로 선행하겠다고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개혁은 온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뜨거운 이슈인 만큼 정치권 역시 상당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개혁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로 개혁의 시기를 계속해서 놓친다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직면하게 될 국민의 비판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이다.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