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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미래 산업 성장 동력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양자(量子) 기술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정부는 20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연도별 신성장 4.0 전략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날 추 부총리는 “미래형 모빌리티·스마트 물류 등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본격 추진하기 위한 2023년 추진계획을 마련해 금년 중 30여 개(상반기 중 20여 개)의 세부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미래 핵심기술인 양자 기술은 윤석열 대통령이 관련 분야 석학들을 직접 만날 정도로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로, 정부는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20큐비트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 개발·시연을 올해 하반기로 앞당기고, 50큐비트 양자컴퓨터 구축을 2026년 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2030년에는 500큐비트까지 성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한국은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출발이 늦은 만큼 정부 차원의 과감한 지원을 통해 선두 그룹을 따라잡는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기업 참여 확대를 위한 후속사업과 참여기업 매칭 비율 완화, R&D 세액공제 확대, 정책금융 지원 등 양자 분야에 다양한 지원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자 컴퓨터 뜨는 이유, 지난해 노벨물리학상에 양자 컴퓨터 개발 근거 제공자 3인
지난해 10월 스웨덴의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가 2022년 노벨 물리학상 공동수상자로 양자컴퓨터 등 양자 정보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알랭 아스페 파리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 존 F 클라우저 JF클라우저협회 연구교수, 안톤 차일링거 오스트리아 빈 대학 교수를 선정했다.
왕립과학원은 “광자 얽힘 실험을 최초로 성공하고 벨 부등식을 깨뜨리면서 양자 정보과학을 개척한 공로로 이들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수여한다”고 설명했다. 벨의 부등식은 거시세계에서 일반적인 경우의 수와 관련된 부등식으로, 어떠한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에서도 성립해야 하지만 놀랍게도 양자역학의 논리를 적용하면 부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번 노벨 수상자들은 이러한 이론을 반박하면서 양자컴퓨터 개발을 가능케 했다. 전력 분배, 신소재 개발 등 ‘조합 최적화 문제’를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수억 배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양자컴퓨터는 현재 미국, 중국, 영국, 일본 등 각국이 개발에 착수해 세계 주도권 선점에 나섰다.
양자컴퓨터가 가져올 편익, 바이오 의료 혁신, 식량난 해결 등
촘촘한 방공망을 뚫고 은밀하게 침투하는 스텔스기를 찾아내는 레이더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최근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양자 기술이 컴퓨터, 통신, 네트워크 등 정보통신기술뿐 아니라 신약, 배터리, 금융 등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2차 양자 혁명’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양자컴퓨터의 초고속 연산 능력은 지금까지 해독이 불가능한 국가 보안망, 군사 시스템, 각종 통신 네트워크 등의 암호체계를 단숨에 뚫을 정도의 위력을 가진 만큼, 그 활용도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다.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분야는 바이오 의료 분야다. 양자컴퓨터가 신약 개발 과정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변수를 해결할 수 있어 난치병이나 전염병 치료제 개발 등 바이오 분야에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유전자 기술과 접목할 경우 개인 맞춤형 치료 분야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또 기존 슈퍼컴퓨터에 비해 ‘시뮬레이션’에 유리한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식물이 태양에너지를 받아 화학에너지를 만드는 원리를 밝힌다면 태양 전지의 에너지 생산 효율을 높일 수 있고 이로써 인류의 전력 생산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다. 아울러 식물의 질소 고정 과정의 원리를 밝혀내 질소 제조의 효율을 크게 높임으로써 지구촌 식량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
대도시의 교통 정체 등과 같은 난제도 해결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 기술로 차량 목적지의 최적 경로를 순식간에 계산해 도로 정체를 해소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폭스바겐과 구글 디웨이브가 협력해 베이징의 교통 흐름 최적화를 위한 시범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다.
이 밖에도 미래에 등장할 플라잉택시와 같은 에어 모빌리티 사회에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적의 경로를 실시간으로 찾아내거나, 기후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해 지구 온난화, 지진, 태풍, 쓰나미 등 지국적 난제를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 안보 무너뜨리는 치명적 무기로 작용할 수도
한편 양자컴퓨터의 가장 큰 활용 분야는 아이러니하게도 양자컴퓨터 기술 오남용을 막는 보안 분야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양자컴퓨터는 기존 보안 체계를 순식간에 뚫을 수 있는 무기로, 현재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공개키 암호화방식(RSA)에 가장 치명적이라는 분석이다. RSA는 천문학적인 수를 소인수분해하는 것인 만큼 이를 해독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른바 ‘컴퓨터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양자컴퓨터는 뛰어난 연산 능력으로 짧은 시간에 RSA 암호를 해독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기존 암호화폐 보안 체계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양자컴퓨터가 국가안보에 민감한 문제라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양자컴퓨팅 기술로) 해킹의 위협 없는 암호 통신 기술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또 같은 기술로 상대방 암호 정보를 빠르게 해독하는 기술이 가능해 사이버 안보 체계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양자컴퓨터는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국가안보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과 같다. 이는 미국 정부가 중국의 양자컴퓨터 개발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배경이기도 하다.
현실 서비스로 운용하기에는 어려운 절대 0도 유지해야 이용 가능한 상태
구글이 2019년 10월 개발한 50큐비트급 양자컴퓨터 ‘시커모어(Sycamore)‘는 슈퍼컴퓨터로 1만 년이 걸린다는 복잡한 연산 문제를 단 200초 만에 풀어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양자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가 반도체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원자를 기억소자(memory element)로 활용하며, 트랜지스터가 아닌 양자를 연산의 재료로 사용한다. 양자는 에너지를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 단위로, 퀀텀 비트(Quantum Bit), 줄여서 큐비트(Q bit) 혹은 qubits로 부른다. 미시세계의 영역인 양자는 고전물리학이 아닌 양자물리학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즉 얽힘과 중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양자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양대 기둥으로 불리며 양자물리는 분자와 원자, 전자 등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시세계에서 적용되는 물리 법칙이다.
양자 기술은 원자와 같은 미시세계에 적용되는 양자역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기술로, ‘0’이나 ‘1’로 구성되는 기존의 ‘비트(bit)’ 대신 ‘0’과 ‘1’ 사이의 무수히 많은 값을 표현할 수 있는 중첩 상태를 이용해 연산 속도를 압도적으로 끌어 올린다. 또 각각 분리된 비트의 신호와 달리 양자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신호만 통하면 서로 연결이 가능하다. 따라서 1개의 큐비트를 측정하면 얽혀있는 다른 큐비트의 데이터는 볼 필요가 없다. 모든 데이터를 취합해서 보여주는 비트와 달리 큐비트 하나로 전체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양자역학의 얽힘이라고 부른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첨단과학기술의 대부분이 이런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레이저와 반도체, GPS 위성에서 쓰는 원자시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한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앞서 시커모어를 개발한 구글은 양자 컴퓨터가 상용화되기까지 향후 10년간 연구가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기술로는 시카모어를 비롯한 양자 칩은 모두 15밀리캐빈의 온도에서만 구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영하 273.135도의 온도로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낮은 온도, 이른바 ‘절대 온도’다. 이처럼 극저온에서만 작동하는 초전도 회로가 들어가는 만큼, 자기장을 차단하고 진공 상태를 유지시키는 대형 냉각 장치가 필수적이다.
양자컴퓨터 개발은 여전히 난제, 한국 현실은?
주요 선진국들은 몇 년 전부터 양자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왔다. 특히 미국의 경우 국가 차원의 연구 지원을 위해 2018년 12월에 양자법(국가양자연구집중지원법)을 통과시키고 인공지능(AI) 및 양자컴퓨팅 연구센터 설립과 지원에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를 투입한 바 있다. 반면 대한민국은 반도체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국이지만, 양자 기술 분야에서는 선두권과의 격차가 상당하다. 현재 한국의 양자 기술은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의 60~80% 수준에 그치는 데다, 시장 규모나 전문 인력 면에서도 열세를 보인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2016년부터 5년간 발행한 관련 논문을 분석한 결과, 피 인용된 한국의 양자컴퓨터 전문 인력은 총 264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3,526명 △EU 3,720명 △중국 3,282명 등 경쟁국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국내 양자컴퓨터 시장 규모 역시 지난해 기준 34억9,000만원으로 세계 시장(4억7,160만 달러)의 0.56%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양자 기술은 나라 간에 공유하지 않는 전략기술이라 기존의 패스트 팔로어 전략(선구자의 전략이나 기술을 빠르게 쫓아가는 것)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양자 센서 분야를 연구하는 이동헌 고려대 교수는 "양자 기술은 미래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성과가 이뤄진 뒤 따라잡기에는 그 간극이 다른 산업과 비교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국내에는 아직 양자컴퓨터를 연구하는 대표 기업이 없지만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나 KAIST 같은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기술력 면에서는 외국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병수 ETRI 박사는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하려면 많은 분야 전문가들과 협력이 필요한 만큼 전문가들이 자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연다면 국내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며 고무적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