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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들의 소극적인 업무 행태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특히 업무 처리 지연, 책임 떠넘기기, 부서 간 협조 미비, 대민 행정 업무 역량 부족 등 행정편의주의적 관행으로 인해 국민의 불편을 유발하는 사례는 여전히 근절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한 업무 태도의 원인으로 전문 지식 역량만을 평가해 온 공무원 임용 방식이 지목된 가운데, 내년부터 공무원 면접시험 시 ‘대인관계 능력’과 ‘적극성’ 등을 중점적으로 볼 수 있도록 평정요소가 개정된다.
소통과 공감 능력 중점으로 평가
지난 1일 인사혁신처는 '공무원임용시험령(대통령령)개정안'을 입법예고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앞으로 공무원 면접시험은 소통·공감, 헌신·열정, 창의·혁신, 윤리·책임 등 공무원 인재상 요소에 맞춰 준비해야 한다. 아울러 부처별 여건에 맞게 인재를 채용할 수 있도록 자격증 소지자의 필요경력 기준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소통·공감’ 요소의 평가역량은 의사소통능력, 대인관계능력, 팀워크지향 등으로 살펴보며, ‘창의·혁신’ 요소의 평가역량은 창의력, 전략적사고력, 변화관리 등을 통해 ‘윤리·책임’ 요소는 책임감과 공정성 등으로 검증할 계획이다.
또한 시험실시기관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평정요소를 면접시험에 추가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부여하고, 면접시험에서 직무에 필요한 전문지식 등도 평가할 수 있다. 이어 현행 구조화 면접(structured interview) 방식이나 방법·절차는 유지하되, 법령이 개정된 이후 세부 평가역량과 평가 행동 지표 등은 평정요소 개편에 따라 조정한다. 또한 세부 평가역량 및 평가 행동 지표, 과제·질문 보완 등을 개정한 면접시험 평정요소를 내년부터 적용할 방침이다.
김승호 인사처장은 “제도 개편으로 공무원 인재상에 맞는 인재를 채용하고 경력경쟁채용시험 시 소속 장관의 자율성이 넓게 인정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인사처는 채용제도 개선으로 역량 있는 공직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직장 내 갑질과 민원 응대 역량 부족, 결국은 대인관계능력이 문제다
정부가 특히 공무원의 대인관계능력이나 의사소통능력을 중점적으로 검증하기로 나선 데는 그간 꾸준히 지적돼 온 대민 업무 능력은 물론,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내의 ‘갑질’ 관행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한 농식품부 산하기관에서는 상급직원이 술에 취해 인턴사원의 얼굴에 옷을 던지는 폭행 사례가 신고되는가 하면, 또 다른 기관에서는 상급직원이 부하직원에게 개인 이불세탁을 시키기도 했으며, 술자리 참석을 강요하고 대리운전을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해양수산부 산하의 한 기관에서는 부하직원에게 업무 떠넘기기, 세차 심부름 등을 시킨 사례가 적발돼 징계처분까지 받은 바 있다. 또 다른 해수부 산하 기관에서는 기관장이 자신의 모친상 장례식장에 비서실 직원들을 동원해 손님접대를 시켰으며, 심지어 이를 위해 비서실 직원들에게 허위로 출장신청서를 작성토록 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2019년 2월 ‘공공분야 갑질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 바 있다. 특히 유형별 갑질 관련 조항에는 △사적 감정 등을 이유로 특정인에게 근무시간 외 불요불급한 업무지시를 하거나 부당하게 업무를 배제하는 행위 △외모와 신체를 비하하는 발언, 욕설⋅폭언⋅폭행하는 행위 △비인격적인 언행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금품 또는 향응제공 등을 강요⋅유도하는 행위 △의사에 반한 모임 참여를 강요하거나 부당한 차별행위를 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 내 갑질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도청공무원노동조합이 지난 2월 진행한 ‘직장 내 갑질 신고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도청 내 갑질을 경험한 공무원이 105명에 달했다. 갑질을 경험한 대상의 74%는 갑질이 심각하다고 응답했으며, 갑질로 업무 집중도 하락(56%), 우울증·자살 충동(23%) 등 후유증도 경험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혼자서 참거나 동료, 상사 등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뿐이었다.
반면 간부급 공무원들은 갑질 철폐에는 동의하면서도 갑질 기준이 모호한 탓에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맞받았다. MZ세대 공무원들이 업무 실수를 지적만 해도 갑질로 받아들이는 '을질' 행태도 만연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2022년 11월 경남도청공무원노조 홈페이지에 “직장 괴롭힘은 왜 상급자만 되나요?”라는 글이 게재됐다. 해당 글의 댓글에는 ‘을질은 감사도 안 한다’, ‘을질 신고 센터도 필요하다’, ‘업무를 회피하고 소홀히 하는 하급자의 괴롭힘으로부터 상급자도 보호받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공감 의견이 줄을 이었다. 전국공무원노조 사천시지부 홈페이지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일을 좀 합시다”라는 게시글에 지금 팀장들, 과거에는 윗사람 모신다고 애먹고, 현재는 아랫사람 눈치 본다고 애먹는다’, ‘일 챙기면 갑질입니까’ 등의 댓글이 달리며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가이드는 갑질뿐만 아니라 부당한 민원응대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정당한 사유 없이 민원접수를 거부하거나 취하를 종용하고, 고의로 처리를 지연시키는 행위 △처리하기 까다롭다는 이유로 관련성이 희박한 다른 직원⋅부서⋅기관 등에 민원서류를 떠넘기는 행위 △민원을 처리하면서 정당한 사유없이 불필요하게 과다한 서류 등을 요구하여 민원인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국가의 심부름꾼'이라는 의식은 사라진 지 오래
공무원을 ‘공복(公僕)’으로 칭하는 것은 국민을 섬기는 심부름꾼이자 나아가 애국자가 되라는 명령이다. 즉 국민의 민원을 처리하는 '해결사'라는 뜻이다. 그러나 일련의 행태를 보고 있자면 공복이라는 사명감이나 사회통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듯 전체 공무원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일부 직원들의 안일한 의식과 직무태만으로 인해 그들에 대한 신뢰가 깨진 지 오래다.
격동의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대한민국에는 공무원시험 열풍이 몰아닥쳤다. 대기업들마저 잇달아 도산하자 안정된 직장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면서 정년 보장이 확실한 이른바 '철밥통' 직장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지나치게 딱딱하고 엄격한 분위기의 공직 사회에 청년 공무원이 대거 투입되면서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과거에만 얽매인 채 낡은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민원처리 방식은 그대로였다. 특히 민원 해결을 위한 일말의 노력도 부재한 탓에 민원인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이로 인한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공무원을 상대로 한 폭언, 폭행 등 갑질도 문제다. 공무원 A씨는 “민원인에게 폭언과 성희롱 발언을 들어 전화를 끊고 싶었지만, 민원인이 ‘끊으면 법적 대응하겠다’는 식으로 협박했다"며 "매뉴얼도 없고 따로 교육을 받은 적도 없어 어떻게 대응을 할지 몰라 힘들었다”고 호소했다. B씨는 “상사나 조직이 전혀 보호를 해주지 않는다"며 "오히려 악성 민원인이 오면 모니터 뒤로 숨는 상사를 보며 각자도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뿐만 아니라 공무원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르거나 수차례 얼굴을 가격하는 등 폭행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일례로 대전 유성구 노은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시장 관계자들이 공무원에게 ‘목을 자르겠다’라는 협박과 함께 욕설을 하며 목을 조르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업무수행 중 공무원이 민원인으로부터 폭언·폭행을 당한 사례가 지난해 4만6,079건으로 전년보다 20%가량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지방자치단체는 녹음 기능이 있는 신분증 케이스를 지급하거나 민원실에 강화 유리와 비상벨을 설치하는 등 공무원 보호에 나섰다. 모의 훈련을 실시하거나 피해를 본 공무원에게 의료비와 소송 비용을 지원하는 곳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을 대하는 자세에 있다. 암기 능력에 편중된 기존 검증 방식에서 벗어나 국민과의 소통 및 공감 능력 평가 방식으로 전환되는 만큼, 보다 사람 중심적이고 융통성 있는 공무원 사회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