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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금융위원회가 퇴직연금 운용 절차 및 제도에 대해 전반적인 개선 착수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방치됐던 퇴직연금을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오는 7월 시행되는 ‘디폴트옵션’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도를 지적하며, 이번 조치에 대한 국민 인식 제고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운용규제 합리화
먼저 이번 ‘퇴직연금감독규정 개정안’을 통해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 이하 DC형) 및 개인형(Individual Retirement Pesion, 이하 IRP형) 퇴직연금의 운용이 보다 유연하게 이뤄질 예정이다. 사용자(회사)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efined Benefit, 이하 DB형) 퇴직연금의 경우 사용자와 근로자 간 이해상충 발생 가능성이 농후해 사용자(회사) 및 그 계열회사 등이 발행한 증권 등의 편입을 제한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DC형·IRP형의 경우 이해 상충 발생 가능성이 낮아 주요 선진국에서는 관련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은 이번 개정안을 통해 현재 적립금 대비 10%인 계열회사 증권에 대한 편입 한도를 DC형은 20%, IRP형은 30%로 상향하여 규제를 완화하도록 했다.
다음으로 DB형에서 동일인 발행 특수채·지방채를 투자할 때 그 한도를 적립금 대비 현행 30%에서 50%로 상향될 방침이다. DB형은 그 특성상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급여 수준(부채)가 사전에 확정돼 있기 때문에 미래 지급 예정인 퇴직급여(부채)와 퇴직연금 적립금(자산)의 현금을 일치시키는 자산-부채 매칭(Asset-Liability Matching, 이하 ALM)이 중요하다. 이에 채권이 DB형 퇴직연금 운용에 유용하게 사용되기 때문에 관련 상품 투자 한도를 늘린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아울러 퇴직연금 적립금의 100%까지 편입 가능한 상품의 범위가 확대된다. 그간 퇴직연금 투자 포트폴리오 항목에는 ‘원리금보장 상품’과 ‘투자위험을 낮춘 상품’에 국한됐으나, 이번 개정안을 통해 국채·통안채 등을 담보로 한 ‘익일물 환매조건부매수계약’과 ‘단기금융집합투자기구(MMF)’에 투자가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금융위는 IRP형에서 은퇴 근로자들이 적립금을 연금 형태로 인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보증형 실적배당보험’의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최근 퇴직연금 적립금이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퇴직연금을 연금 형태로 수령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약 7.1% 수준에 머물러 있어 연금 형태 수령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 유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도입 예정인 보증형 실적배당보험은 납입보험료를 실적배당상품으로 운용하고 운용 실적에 따라 연금을 지급하되, 운용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일정 금액이 보증되는 상품이다. 이에 해당 상품을 계약한 사람은 실적배당상품에 투자하면서도 안정적인 연금 수령을 기대할 수 있다.
불건전 영업 관행 혁파
한편 퇴직연금용 원리금보장상품 시장에서 빈번히 발생했던 불건전 영업 관행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개선이 이뤄진다. 금융위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퇴직연금 사업자에만 적용되던 공시 의무를 비퇴직연금 사업자의 원리금 보장상품까지 확장해 이른바 ‘커닝공시’ 및 불건전 과당경쟁을 방지할 예정이다. 기존 퇴직연금 사업자는 매달 각 사 홈페이지에 퇴직연금 공리를 공시해야 하는데, 공시 의무가 없었던 비사업자들이 공시된 이율을 확인한 뒤 이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를 정하는 ‘커닝 공시’가 만연했던 것이 배경이다.
수수료를 활용한 변칙 고금리 원리보장장품 제공도 일절 금지된다. 지난 몇 년간 일부 퇴직연금 사업자가 수수료를 보조금처럼 활용해 고금리 예금 등을 만들어 이를 일부 대기업 DB형 퇴직연금에만 독점적으로 제공함에 따라 가입자 간 형평성이 무너지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금융 당국은 이번 조치를 통해 해당 영업 관행의 개선을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퇴직연금 시장에서 사모 파생결합사채 판매도 금지되며, 원금보장형 파생결합 사채 역시 원리금보장상품 규제를 동일하게 적용받게 된다. 일부 증권사들이 명목은 원리금보장상품이지만, 실질 상으로는 퇴직연금에 과도한 리스크를 부여하는 변칙 파생결합사채를 제공해 왔던 관계로, 이번 개정안을 통해 관련 규율을 강화해 퇴직자들의 연금을 안전하게 지킬 방침이다.
지나친 규제에 낮은 수익률, 아무도 관심 없는 퇴직연금과 ‘디폴트 옵션’
전문가들은 이번 금융당국의 조치가 퇴직연금 운용에 대해 그간 높아져 왔던 불만의 목소리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했다. 앞서 살펴봤듯 퇴직연금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수 있는 상품 및 적립급 비중에 대한 규제 사항이 현행상 까다롭게 적용된 탓에 투자할 수 있는 상품에 대한 선택 폭이 줄어들면서 운용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도 상당폭 제한됐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 업계 관계자 A씨는 “퇴직연금에 대한 인기는 시들어 가는 게 사실”이라며 “대부분의 근로자는 퇴직연금에 관심도 없기 때문에 현금이 점차 쌓이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처럼 퇴직연금에 대한 무관심이 커지는 데다 적립금마저 운용되지 않아 대기성 자금으로 전환되는 비중이 점차 증가하면서 당국에서는 수익률 저하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디폴트옵션을 도입했으며, 이는 오는 7월 본격 시행된다. 해당 제도가 시행되면 DC형 퇴직연금과 IRP 가입자들의 적립금과 만기환급금이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운용됨에 따라 자금에 대한 운용 지시가 장기간 이뤄지지 않아 수익률이 떨어지는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퇴직연금 가입자들 사이에서 곧 시행되는 디폴트옵션에 대한 이해도가 턱없이 떨어져 당초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조사 결과 디폴트옵션에 대해 ‘전혀 모른다’ 혹은 ‘거의 모른다’고 응답한 20대, 30대 비율이 각각 69.7%, 51%로 집계됐다. 이에 A씨는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도입이 되더라도 실효성 측면에서 퇴직연금 운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디폴트옵션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 제도의 순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퇴직연금을 둘러싸고 정부가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번 금융당국의 ‘퇴직연금감독규정 개정안’을 통해 실제 퇴직연금에 대한 개선이 이뤄지더라도 디폴트옵션의 사례처럼 ‘무관심’이 관련 노력을 모두 무위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이제는 '달라진 퇴직연금’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알려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