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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지도 못하고, 철수도 못하고" 러시아에 갇힌 삼성전자·LG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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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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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가전 기업,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내 사업 중단
러시아 가전시장 내 국내 브랜드 점유율 급감, 빈자리 '중국'이 채워
먼지 쌓여가는 현지 생산 공장, 재가동도 사업 철수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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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와 LG전자가 러시아 내 가전 생산·판매를 줄줄이 중단한 가운데, 러시아 시장 내 국내 기업의 빈자리를 중국산 제품이 채운 것으로 확인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강화한 서방국의 압박이 오히려 러시아·중국 산업계의 협력을 공고히 하는 '역효과'를 낸 것이다. 업계에서는 차후 중국·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사업을 영위하던 미국의 동맹국들이 줄줄이 전쟁의 유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국내 가전 기업, 중국에 자리 내줬다

러시아 가전 시장은 전통적으로 삼성전자, LG전자, 보쉬, 밀레 등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상품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졌고, 미국을 필두로 한 각국 기업은 줄줄이 러시아 내 제품 생산·판매를 중단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업들 역시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러시아 내 가전 생산·판매를 멈췄다. 동유럽 시장의 거점인 러시아 시장을 과감히 포기하며 리스크를 떠안은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빈자리는 중국을 비롯한 러시아 우호 국가 브랜드의 제품이 채웠다. 중국 하이얼(Haier), 튀르키예 베코(Beko), 러시아 비류사(Biryusa), 벨라루스 아틀란트(Atlant) 등이 러시아 시장 점유율을 키워가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 에프플러스 그룹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하이얼은 러시아 내 냉장고(15.1%)와 세탁기(16.1%) 판매량 부문에서 1위 자리에 올랐다(온오프라인 합산). 하이얼이 인수한 이탈리아 캔디(Candy)도 세탁기 부문 4위(9.6%)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산 제품이 강세를 보이던 러시아 TV 시장 역시 중국산 제품이 점령한 상태다. 에프플러스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러시아 TV 시장 1~3위는 각각 중국 하이얼(11.5%), 샤오미(8.3%), 하이센스(6.6%)가 차지했다. 전쟁 발발 직전 약 25%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지키던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5.1%까지 급감했다. 전쟁 직전 19.1%에 달하던 LG전자의 점유율 역시 지난해 1월 기준 4.2%까지 줄었다.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러시아 생산 설비

문제는 러시아 내에 남아 있는 국내 기업들의 생산 설비다. 2022년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TV·모니터 공장의 가동을 중단한 바 있다. 같은 해 LG전자 역시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의 가전·TV 생산공장 운영을 중단했다. 해당 공장들은 가동이 중단된 이후 수년째 제자리에 멈춰 서 있다. 업계에서는 러시아와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서방국의 압박이 거센 만큼, 한동안 공장 재가동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공장을 무작정 매각하기도 쉽지 않다. 대규모 투자금을 투입해 다져놓은 러시아 시장 기반을 포기할 경우, 기업 측에 막대한 손실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설령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고 공장을 매각한다고 해도 제값을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 어떤 선택을 하든 손해를 보는 난처한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이들 기업의 현지 법인은 급속도로 감소하는 자산을 그저 지켜보며 '연명'을 이어가고 있다.

LG전자·삼성전자와 유사한 시기에 러시아 생산 공장을 멈춰 세웠던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러시아 공장(HMMR)의 지분 매각 안건을 승인했다. 막대한 고정비용 손실을 끊어내기 위해 공장을 한화 14만원(1만 루블) 수준의 헐값에 판매, 러시아 시장 철수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 측은 아직 현지 공장에 대한 명확한 미래 계획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국내 가전 기업의 현지 손실에 대한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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