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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지방 건설사 위기, 법정관리 신청 이어져 "4월에 대거 회생절차 들어갈 것", 4월 위기설에 업계 우려 증폭 올해만 벌써 5개사 부도 및 565개사 폐업, 2019년 이후 최대 수치
공사비 상승, 분양시장 침체 등의 여파로 연초부터 지방 건설업체의 법정관리(회생절차) 신청이 이어지면서 건설업계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채무 이행을 위해 대기업 계열사들은 자산 매각 등 제살깎기 수단을 동원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여력이 안 되는 지방 중소 업체들은 부도를 맞거나 아예 폐업하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여기에 오는 4·10 총선 이후 중소·중견 건설업체가 대거 무너질 수 있다는 ‘4월 위기설’은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지방 중소 건설업체들, 회생절차 신청 증가
4일 건설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선원건설이 신청한 회생절차와 관련해 지난 26일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포괄적 금지 명령은 채무자가 회생절차를 신청했을 때 채권단이 부채 상환 방안을 결정하기 전까지 경매 등 재산권 행사를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공능력평가 122위인 선원건설의 지난해 토건 시공능력평가액은 2,267억9,500만원(약 1억7,000만 달러)으로, 경기지역 상위권 건설업체로 꼽힌다. 현재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서 23가구 규모 공동주택과 용답동 오피스텔(196실), 가평군 설악면 아파트(420가구), 부산 해운대 오피스텔(98실) 등 주거시설을 시공 중이다.
그러나 원자잿값 폭등과 함께 일부 사업 준공 시기가 맞물리면서 회생절차를 밟게 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선원건설의 공사미수금은 724억원(약 5,500만 달러)에 달한다. 또 단기대여금 86억원(약 646만 달러), 기타미수금 32억원 중 66억원가량을 회수 불가능한 대손충당금으로 처리한 것으로 파악됐다.
선원건설뿐만 아니라 지방의 많은 건설업체들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자금난을 피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17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인천 부평구 소재 영동건설은 지난달 설립 30년 만에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고,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울산 내 토목건축업 1위를 차지했던 부강종합건설(시평 179위)도 같은 달 법원의 포괄적 금지 명령을 받았다.
'4월 위기설' 우려 높아지는데, 금융당국 "근거가 뭔가" 일축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4월 위기설'까지 나돌며 업계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를 겪고 있는 건설사들이 총선이 끝나고 외부 감사 보고서가 나오는 4월이면 대거 법정관리에 들어갈 것이라는 게 위기설의 골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달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개혁신당 양정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재무상태를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지표인 부채비율 200% 이상인 종합건설사가 14곳에 이르고, 기업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는 지표인 부채비율 400% 이상인 종합건설사도 2곳으로 확인되는 등 재무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종합건설사 시공능력 순위 10위권 내 종합건설사 중 유동부채비율 70% 이상인 건설사가 7곳, 70% 이상 80% 미만 3곳, 80% 이상 90% 미만 2곳, 90% 이상 2곳이나 됐으며 50위까지 확대하면 유동부채비율 70% 이상인 건설사가 28곳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최상위 건설사의 절반 이상이 재무 상태가 매우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현재 기업 워크아웃을 준비 중인 태영건설의 부채비율이 257.9%, 유동부채 비율이 68.7%였다는 점에 비춰볼 때 건설사들의 부도 위기가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셈이다.
다만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현장 분위기와 달리, 금융당국은 위기설에 대해 진원지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2일 오전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밝혔다. 이 총재는 "부동산 PF는 상당수 정리되는 중이고, 정리하고 있어서 총선 전후로 크게 바뀔 것이라는 근거가 뭔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아가 PF를 보고 금리 결정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PF가 모두 살아날 수 없지만,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가계부채 문제건 부동산 PF 문제건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게 지금 정부의 일"이라며 일축했다.
건설업체 상당수 '도산 위기', "건설사 법정관리행 계속 이어질 것"
하지만 업계에서는 4월 위기설이 근거 없이 나오는 얘기는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지난달 20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무려 5곳의 건설업체가 부도를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곳에서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2019년(10곳)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이들 부도업체는 모두 광주·울산·경북·경남·제주 지역을 거점으로 둔 전문 건설사다.
폐업하는 건설사도 늘었다. 지난 1월 1일부터 2월 18일까지 폐업 신고한 종합건설사는 64곳, 전문건설사는 501곳으로 총 565곳에 달했다. 부동산 활황기던 2021년 폐업한 업체가 361곳이던 점을 감안하면 올해 폐업 기업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건설업체 상당수는 자금 사정도 악화한 상황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국내 매출 500대 건설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76.4%가 현재 영업이익으로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자금 사정이 양호하다는 답변은 18.6%에 불과했다.
자금 사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는 고금리와 급격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지목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의하면 지난해 건설공사비지수는 153.26으로 3년 새 25.8% 올랐다. 간접비 등을 고려하면 실질 공사비는 50% 이상 늘어난 셈이다. 여기에 최근 금융당국이 밝힌 ‘부동산 PF 정리 로드맵도 4월 위기설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로드맵에는 정부가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된 PF 사업장을 경·공매로 넘길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과정에서 PF 대출보증을 선 건설사는 손실이 현실화해 유동성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금융당국의 로드맵은 총선이 끝나는 4월 직후 본격화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건설사의 법정관리행은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지역 건설사의 자금난을 키운 악성 미분양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부동산 시장을 뒤덮은 악재가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의 거품이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라고 분석한다. 당장 수면 위로 부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산처럼 쌓인 부채는 언제 어떻게 우리 경제를 위협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는 과거에도 당국의 ‘안심하라’는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1998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국가적 위기를 겪은 바 있다. IMF 사태 당시 김영삼 정권은 "구제금융 신청은 절대 없다"며 위기론을 단박에 일축했고, 경제학자들도 잇따라 장밋빛 전망만을 연일 쏟아냈다. 금융위기 때도 세간에 도는 위기설은 한낱 낭설로 치부했다. 4월 위기설이 실제 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교한 플랜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