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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 방향성은 '노후소득보장', 시민 대표단 "보험료율 인상해야"
사실상 폭탄 떠넘긴 기성세대, 전문가들 "연금기금 재정 악화 심화할 것"
청년세대선 불만 목소리, 일각선 '의무 가입 폐지' 주장도
향후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현재 기성세대의 노후소득보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시민 대표단이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안을 지지하면서다. 이에 따르면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인 2015년생은 46살이 됐을 때 월급의 35.6%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납부해야 하며, 생애 평균 보험료율은 22.2%에 달한다. 내년에 태어나는 신생아들은 국민연금 납부가 끝날 때까지 평균 29.6%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386세대로 대표되는 1960년대생들은 평생 평균 7.6%만 냈던 보험료율이다. 이에 사실상 기성세대가 미래세대에 '폭탄'을 떠넘겼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득보장' 강조한 시민 대표단, "더 내고 더 받자"
22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의 김상균 공론화위원장과 공론화위원들은 시민 대표단의 설문조사 결과를 본격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시민 대표단이 선택한 다수안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높여 노후 소득보장을 보다 두텁게 하는 1안이었다. 492명의 시민대표단 중 56%가 1안을 지지한 반면 소득대체율은 유지하되 보험료율만 12%로 인상해 재정안정을 꾀하는 2안은 42.6%의 선택을 받는 데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만 59세인 의무 가입 상한 연령을 64세로 높이는 방안에 대해선 80.4%가 선호했다. 현행 연금제도는 의무 가입 상한 연령과 수급 개시 연령 간에 5년이란 차이가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컸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아우르는 구조 개혁에 대해선 현행 기초연금 구조를 유지하자는 응답이 52.3%로 더 높게 나타났고, 세대 간 형평성 제고 방안으로는 국민연금 지급 의무 보장(동의 92.1%), 기금수익률 제고(동의 91.6%)에서 높은 선호도가 나타났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 방안으로는 출산 크레딧 확대(82.6%), 군복무 크레딧 확대(57.8%) 순으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외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 개혁은 '보험료율 인상' 동의율이 69.5%였고, '직역연금 급여 일정 기간 동결' 동의율은 63.3%였다. 현재 퇴직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퇴직연금에 대해선 준공적연금으로 전환(46.4%)이나 중도 인출 요건 강화(27.1%) 등 연금으로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김상균 공론화위원장은 "공론화의 핵심은 연금개혁 필요성에 대해 시민대표단이 공감해 줬다는 것"이라며 "공론화 과정을 통해 도출된 설문 결과는 국회에서 방향성을 고려해 소득보장과 재정안정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연금개혁 방안을 마련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각계선 비판 여론, "미래세대에 부담 떠넘기겠단 것"
연금특위는 이 같은 공론화 결과를 토대로 최종 개혁안을 도출해 21대 국회 임기 안에 통과시킬 방침이다. 시민 대표단의 선택이 그대로 법안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대표성을 가진 이들이 의견을 수렴했다는 점에서 국회도 이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문제는 시민 대표단의 최종 결정에 반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 1안이다. 각계 전문가들은 1안이 도입될 경우 소득대체율은 10%p 높이면서 보험료율은 4%p 인상에 그쳐 연금기금 재정이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 현행 제도를 유지할 때 연금기금 고갈 시한은 2055년이며 그해 재정작자가 47조원이지만, 1안이 도입되면 보험료율 인상 효과로 기금 소진 시점은 2061년으로 미뤄지나, 적자 폭은 382조원에 달해 8배나 크다. 결국 2061년 고갈 이후 보험료를 내야 하는 현재 20세 이하 미래세대의 부담이 급증하는 셈이다.
기금이 고갈되면 보험료 납부액으로 수급액을 충당해야 하는데, 이때 2061년 연금 보험료율은 35.6%에 이른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1안이 그대로 도입되면 내년 신생아의 생애 평균 보험료율이 29.6%로 현행 제도를 유지했을 때(26.6%)보다 높아진다"며 "2015년생은 22.2%로 현행 대비 2%p 오른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각계에선 연금 개혁안의 지속가능성에 거듭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더 받는' 사람이 '더 내는' 사람보다 줄어드는 시기가 도래하면 재정 부담이 더 극심해질 것이란 시각에서다. 이에 대해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대체율을 인상하더라도 재정 구조가 안정화되는 방향으로 추가 조정하지 않으면 개악이 될 수밖에 없다"며 "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한국으로서는 선택해선 안 될 카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외면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 안타깝다"며 "시민대표단이 재정안정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불만 토로하는 청년세대, "의무 가입 폐지하자"
이런 가운데 보험료 부담을 떠안게 되는 미래세대인 청년계에선 오히려 "안 내고 안 받고 싶다"는 의견이 점차 팽배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청년재단에 따르면 이들이 지난해 11월 '국민연금, 청년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제목으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참석 청년의 대부분이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한 것으로 파악됐다. 1990년생이 국민연금 수령 나이인 65세가 되는 2055년도에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만큼 90년대생 이후로는 국민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토론회에 참석한 청년들 중 다수가 '국민연금 의무 가입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노년세대에 있어 최후의 보루가 될 순 있겠지만,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는 이상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참석자는 "과거와 비교해 생애주기가 길어지고 인구구조가 (역피라미드형으로) 변한 만큼 개개인이 국민연금을 선택가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국민연금을 내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이 많아지는 ‘마이너스’ 상황을 다 같이 목도할 바에야 가입하기 싫은 사람은 안 할 수 있게끔 선택권을 줄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민간 싱크탱크의 설문조사에서도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국민연금 무용론이 관측됐다. 국가경영전략연구원 건전재정포럼이 2022년 9~10월 20대 청년 115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 조사에 응한 청년들은 국민연금을 '밑 빠진 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청년들은 '밑 빠진 독'이라는 표현을 꼽은 이유에 대해 "현재의 청년이 국민연금을 수령할 시점에 유의미한 금액을 받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며 "기성세대 부양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고 답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가 2022년 7월 진행한 '국민연금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에서도 2030 청년층은 과반이 ‘향후 수급 연령이 됐을 때 국민연금을 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 특히 30대는 국민연금이 의무 가입제가 아니라면 가입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55%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지속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청년들 사이 확산하고 있는 불신의 뿌리부터 뽑아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을 이어가기 위해선 미래세대의 수용이 필수적인데, 돈을 더 내봤자 후일 안정을 도모할 기회가 없다는 인식을 바꿔내지 못하면 국민연금 지속의 당위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득대체율이 낮은 점도 국민연금 무용론에 힘을 싣는다.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가입 기간을 40년으로 가정했을 때 40%인데, 가입 기간이 짧아지면 그만큼 소득대체율도 낮아진다. 결국 국민연금이 미래세대의 부담을 키우면서도 충분한 노후소득을 제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더 내고 더 받겠다는 시민 대표단의 주장이 청년세대의 불만을 가중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