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필리핀 가사관리사 임금 문제와 해결책’ 세미나 개최
吳·羅, "헌법상 평등은 실질적 평등" 한목소리
하루 8시간 근무 시 230만원 이상, 일반 가구 소득 과반
오세훈 서울시장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최저임금 구분적용(차등적용) 추진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중산층의 육아·간병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가사관리 서비스의 비용을 낮춰 접근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 시장과 나의원은 최저임금 구분이 헌법과 ILO(국제노동기구) 협약상으로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 최저임금 동일 적용한 정부 질타
27일 오 시장은 국회에서 열린 필리핀 가사관리사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이번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최저임금 적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시행 전부터 높은 비용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비용이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중산층 이하 가정에는 그림의 떡”이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과 나 의원은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청문회 답변에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임금 차별 지급이 헌법(평등권)에 어긋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공통된 입장을 보였다. 오 시장은 “헌법상 평등권은 기계적인 게 아니라 실질적 평등권”이라며 “앞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우리가 드리는 인건비 수준은 몇 배가 되기에 기계적 평등권을 따지는 건 매우 형식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나 의원도 “헌법상 평등은 무조건적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헌법을 위반하지 않고 ‘윈윈’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정책학과 교수도 “필리핀 정부 문서에는 ‘해당 국가의 최저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적정 가격은 월 100만원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파견 근로자가 받는 임금이 낮아도 좀 더 많은 인원을 보내는 것이 송출국에 도움이 되는 만큼 현재보다 더 떨어져야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임금으로 촉발된 논의가 외국인 돌봄 인력 정책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강호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지금과 같은 인구 구조에서는 돌봄 인력 공급을 감당할 수 없다”며 “우수한 외국인 돌봄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일정 기간 종사 후에는 영주권, 국적을 부여하는 등 적극적 이민으로 연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내달 실시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공동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내달 3일부터 각 가정에 고용된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돌봄서비스를 시작으로 첫발을 내디딘다. 시범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도입하는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100여 명 규모로 예정됐으며 도입 기간은 6개월이다. 이용자는 서울시 전체 자치구에 거주하는 시민으로 △직장에 다니는 20~40대 맞벌이 부부 △한 부모 가정 △임산부 등을 중심으로 한다. 다만 시범사업인 만큼 소득·지역 등이 편중되지 않도록 배분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 인증을 받은 서비스 제공기관이 외국인 가사근로자들을 고용허가제를 통한 비전문 취업(E-9)비자로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E-9 비자는 전문 직종이 아닌 제조업체, 건설공사 업체, 농업, 축산업 등 비전문 직종에 취업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발급하는 비자로, 각 신청마다 3년의 체류기간을 부여하나 고용허가제를 적용하면 최대 4년 10개월까지 취업을 허용한다.
가사 서비스 방식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직접 가정과 이용 계약을 맺고 가사 및 육아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이다. 가사관리사는 상시 거주가 아닌 출퇴근을 하게 되며, 가사관리사 숙소는 서비스 제공기관이 마련한다. 대신 서울시가 1억5,000만원 상당의 예산을 투입해 숙소비, 교통비, 통역비 등 초기 정착 소요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주 5일 8시간 이용하면 238만원, 용두사미 정책 비판도
하지만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급여 체계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가정에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내국인과 동일한 최저임금인 9,860원을 받는다. 서비스 이용자는 4대 보험료 등을 감안해 시간당 1만3,700원을 지불해야 한다. 1일 4시간 기준 월 119만원이며, 8시간 전일제로 계약하면 월 238만원이다.
이를 두고 한국인 가사관리사에 비해선 저렴한 가격이지만 맞벌이 가정의 양육 부담을 줄이기엔 여전히 비싸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도입된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가 '용두사미'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오 시장과 나 의원이 최저임금 차등적용 카드를 들고나온 배경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월평균 가구소득은 502만3,719원으로, 238만원이란 비용은 일반적인 가구의 소득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더욱이 이번 사업 신청 대상은 만 12세 이하의 아동, 또는 출산 예정인 임신부가 있는 서울 시민으로,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20~30대 부모들이다. 또 한부모, 다자녀 가구 등이 우선적으로 선정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홍콩 등 다른 나라와의 월급 격차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서울시에 따르면 50여 년 전부터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도입한 홍콩의 경우 외국인 가사관리사 비용이 월 최소 83만원, 싱가포르는 48만~71만원 수준이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우리나라보다 각각 약 2.6배, 1.6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더 높지만, 가사도우미에 지급하는 임금은 우리나라가 3배 이상 높은 것이다. 이는 한국과 달리 홍콩은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최저 임금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최저 임금제가 없는 싱가포르에서는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최저 시급을 8개 파견국과 협의해 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