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쇼크’에 디플레이션 압력 커진 중국, 정부 부양책으론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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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생산·소비·투자 부진 인프라 등 고정자산 투자도 감소 연간 GDP 5% 성장 목표 흔들

지난달 중국의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시장 전망치를 밑돌며 ‘트리플 쇼크’를 기록했다. 상반기에 수출 호황이 멎으면서 하반기 중국 경제 둔화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목표로 제시한 올 5% 안팎 성장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생산·소비·투자 지속 둔화
16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8월 산업생산은 전년 동월 대비 5.2% 증가하는 데 그쳐 시장 전망치(5.7%)에 못 미쳤다. 지난해 8월(4.5%) 후 1년 만의 최저다. 산업생산 증가폭은 지난 3월(7.7%) 이후 계속 둔화하고 있다. 내수 경기의 가늠자로 꼽히는 8월 소매판매도 전년 동기 대비 3.4% 늘어 시장 전망치(3.8%)와 전월 증가폭(3.7%)보다 낮았다. 지난해 11월(3%) 후 가장 낮다.
올해 1~8월 고정자산 투자도 전년 동기보다 0.5% 증가해 시장 전망치(1.5%)와 1~7월 증가폭(1.6%)을 크게 밑돌았다. 고정자산 투자는 공장, 도로, 전력망 등에 대한 투자를 뜻한다. 고정자산 투자는 올해 3월 4.2%에서 5월 3.7%, 6월 2.8%, 7월 1.6%로 빠르게 위축되더니 8월에는 0%대로 주저앉았다. 중국 정부가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를 일정 부분 제한하면서 고정자산 투자가 위축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도 하락하는 추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올해 2~5월 마이너스를 기록하다가 6월 0.1%로 상승했지만 7월 0%에 이어 8월 -0.4%로 다시 하락세로 전환했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 하락이 지속되는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압력이 커진 것이다. 중국 경기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부동산 투자는 이미 침체 수준이다. 올해 1~8월 부동산 개발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2.9% 감소했다. 2조 위안(약 400조원)에 달하는 빚더미를 감당하지 못해 시장에서 퇴출되며 부동산 위기를 촉발한 2021년 ‘헝다(恒大·Evergrande) 사태’ 이후 최악의 성적표다. 8월 전국 도시 실업률도 5.3%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5.2%)와 전월(5.2%) 수준을 넘어섰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외부 환경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요소가 많아 경제 운영이 여전히 많은 위험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지만, 시장에서는 중국 정부가 보는 것보다 경기 상황을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 7월 경기지표가 올해 들어 최악을 나타냈는데 8월에 개선되기는커녕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달 8일 공개된 8월 수출액도 1년 전보다 4.4% 늘어나는 데 그쳐 시장 전망치(5.0%)와 7월 수출 증가율(7.2%)을 밑돌았다.

디플레이션 압력 심화
생산, 소비, 투자가 트리플 약세를 보이면서 시장에선 올해 하반기 중국 경제가 본격 둔화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유예 조치가 중국의 수출 물량을 미리 끌어당기면서 중국의 올해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하며 호조를 보였으나, 상반기 집중된 수요가 멎고 하반기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면 중국 정부의 목표인 ‘GDP 5% 성장’도 장담할 수 없다. 아울러 지난해 9월 중국의 대규모 부양책의 기저 효과로 중국의 디플레이션 압력이 하반기에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현재 중국은 내수 부진과 산업 공급 과잉이 가격에 지속적인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의 구매력 약화로 인한 수요 부족과 동시에 각 산업에서 과도한 생산 능력이 유지되면서 디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중국의 공급 과잉은 중국 내부 경제에도 문제를 야기해 온 동시에 글로벌 이슈로도 부각된 상태다. 중국의 저렴한 제품들이 해외로 수출되면서 각국의 산업 경쟁력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다.
이에 미국은 올해 초 중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공급 과잉 해소를 협상 요구 조건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또한 유럽 국가들 역시 중국에 공급 과잉 해소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역 불확실성이 공급업체들의 재고 정리 노력을 방해하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기업들은 불확실한 대외 환경 속에서 재고를 줄이기보다는 보유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공급 과잉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형세다.
과잉공급 줄이고 출혈경쟁 제어해야
상황이 이렇자 중국 정부는 과도한 가격 경쟁으로 인한 '인볼루션(내부 경쟁)' 현상을 억제하기 위한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올해 공정 경쟁 심사 조례, 중소기업 대기업 지급 규정, 불공정 경쟁법 개정안, 가격법 개정안 등 경쟁 억제를 위한 법안들도 마련했다. 공장 출고가격을 추적하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7월 3.6% 하락에서 8월 2.9% 하락으로 축소된 것은 이 같은 정부 노력의 일부 성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3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 목소리다. 특히 제조업 부문에서는 여전히 과잉 생산 능력이 해소되지 않고 있으며, 이는 물가의 지속적인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가 하락은 소비자들의 구매 지연 심리를 부추기고, 기업들의 투자 의욕을 꺾어 경제 성장률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중국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부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 경제가 당면한 과제는 단순한 경기 부양책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복합적 성격을 띠고 있는 만큼 과잉공급 구조를 정상화하는 동시에 민간의 혁신과 투자 확대를 이끌어내는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다만 이는 생산 감소에 따른 고용 축소를 동반하고 일자리 감소는 다시 소비 위축을 초래한다. 중국의 딜레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