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수세 몰린 다카이치, 中 압박·美외면에 꼬리 내렸다 “대만 발언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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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답변 중 이례적 ‘반성’ 언급 중일 갈등에 외교·군사·경제 긴장 고조 동아시아 패권 경쟁 속 중국 영향력 재확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有事, 전쟁 등 긴급사태) 시 개입’ 발언과 관련해 반성의 뜻을 거듭 밝혔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온 역대 내각과 달리 민감한 대만 문제를 공개 석상에서 언급한 데 대한 정치적·외교적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미온적 태도와 중국의 전방위 압박, 지지율 하락까지 겹치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대중(對中) 강경 노선이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서 잇단 추궁에 또 '반성'하며 견해 추가
17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시가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가 될 수 있다”고 국회에서 답변한 것과 관련해 “기존 정부 입장을 넘어선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면 반성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그간 역대 총리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데 그친 데 반해, 구체적으로 타이완 유사에 대해 언급해 버린 데 대한 소회로 해석된다.
이날 예산위에서는 총리의 발언을 둘러싼 정부 내부 절차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내각관방이 사전에 작성한 국회 답변 자료에는 대만 유사시와 관련한 해당 문구가 포함돼 있지 않았고, 오히려 “정부로서 답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명시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입헌민주당 소속 히로타 하지메 의원은 “왜 답변을 자제하지 않았느냐”며 총리를 추궁했다.
이에 대해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7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입헌민주당 오카다 가쓰야 의원과 다양한 가정을 놓고 논의한 맥락에서 나온 답변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전에 답변 조율은 하지 않았다”며 “기존 정부 입장을 넘어선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반성점으로 삼아 향후 국회 논의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히로타 의원은 “답변을 듣는 쪽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며 비판했다.
일본 기대 달리 미지근한 미국
다카이치 총리가 지난달 10일에 이어 다시 한번 꼬리를 내린 데는 미국의 중립적인 태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2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과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은 전화를 통해 일본 자위대 전투기를 향한 중국군의 레이더 조준 사건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으나, 일본의 기대와 달리 미국은 반응은 미지근했다. 이후 짧은 보도자료를 통해 미일 동맹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밝히지 않고, '중국의 군사 활동들'이라는 포괄적 표현으로 대신했다.
이는 중일 갈등 국면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일본과의 매우 강력한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좋은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힌 바 있다. 미일 동맹 관계도 해치고 싶진 않지만, 중국과 무역 전쟁 휴전 중인 미국의 이익을 위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진 않겠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읽힌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언급은 물론, 일본-대만 문제에 대한 논의조차 계획에 없다. 앞서 다카이치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일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는커녕, 중국과의 분쟁을 악화시킬 수 있는 추가적인 행동을 자제하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부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해 달라는 요청이자, 사실상 이번 분쟁의 책임이 다카이치 총리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일 관세 협상으로 5,500억 달러(약 806조7,400억원) 투자를 약속한 일본으로서는 미국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연일 쏟아지는 중국의 맹공도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만 문제는 중국이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만큼 반발이 충분히 예상됐지만, 중국의 반응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게 외교가 중론이다. 실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 이후 곧바로 쉐젠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는 외교관 발언으로 보기엔 귀를 의심할,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표현을 쓰며 일본을 강하게 비방했다. 이어 일본에 대한 자국민 유학과 여행 자제령, 일본 수산물 수입 제한, 중국 내 일본 문화 예술 공연의 중단 등 대일 제재의 수위를 높여 가고 있다. 중국 공연 중 무대에서 강제로 퇴장당한 일본 여가수(오오츠키 마키)의 모습 역시 전례에 없던 일이다. 또한 중국은 보하이만 등에서 강도 높은 군사훈련까지 실시하고 있다. 지난 6일 중국군 항공모함 함재기가 오키나와 인근 공해상에서 일본 자위대 전투기에 ‘레이더 조준’을 했고, 9일에는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가 도쿄 방향으로 비행하는 연합훈련까지 감행했다.

전략 부재 대가, 대중 강경노선 흔들
하지만 일본으로서는 이렇다 할 대응책이 없다. 고이즈미 방위상, 기하라 미노루 관방상이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섬과 요나구니섬 등 대만 유사를 대비한 현지 시찰 및 미사일 계획을 내놓은 정도다. 지난 2019년에 있었던 한일 무역분쟁 때처럼 첨단 반도체 소재 품목의 대중 수출에 제동을 걸긴 했지만 이 역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다카이치 내각의 대중 전략 부재 역시 출구전략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과거 중·일 갈등이 고조될 때마다 일본에는 비공식적 화해 채널이 작동해 왔다. 아베 신조 총리 시절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갈등이 불거졌을 때는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나 니카이 도시히로 전 자민당 간사장이 중국을 찾아 관계 복원에 나섰고, 이시바 시게루 정권에서도 모리야마 히로시 전 간사장이 두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다카이치 정권 들어서는 이런 파이프라인이 사실상 부재하다.
오랜 연립 정권 파트너였던 공명당의 이탈도 악재로 꼽힌다. 공명당 창설자인 고(故)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 명예회장은 중·일 국교 정상화에 기여한 인물이다. 1990년대 이후 공명당은 정기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며 끈끈한 교류를 이어왔다. 이들의 이탈은 일본 대중 외교에서 하나의 완충 장치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율까지 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강한 일본’, ‘할 말은 한다’는 이미지로 인기몰이를 해 왔지만, 최근 그 추세가 꺾이는 분위기다. NHK가 이달 5∼7일 18세 이상 남녀 1,19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다카이치 내각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64%로, 대만 유사 발언 직후 75%에 달하던 것과 크게 대조된다. 이는 중일 갈등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데 따른 것으로, 응답자들은 경제 관련 질문에 대해 '크게 우려'(14%), '어느 정도 우려'(40%)로 전체의 54%가 불안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초기에는 민폐 끼치는 중국 관광객은 안 와도 된다고 하던 강경파들마저 강하게 이어지는 중국의 대응 조치들에 입을 다물었다. 더욱이 관광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데다, 중국인 감소로 20조원 규모의 경제손실이 있을 것이란 분석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