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패권] 빙하 녹자 달라진 계산서, 미국이 그린란드에 집착하는 이유
[북극 패권] 빙하 녹자 달라진 계산서, 미국이 그린란드에 집착하는 이유
입력
수정
항로·자원 접근성 급변, 요충지 부상
美 인프라 투자로 주도권 확보 전략
동북아시아 해상 질서도 영향권 놓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발언을 계기로 북극의 전략적 가치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후 변화로 해빙이 가속하면서 그린란드는 항로·자원·군사가 결합된 핵심 요충지로 떠올랐고, 미국은 이를 북극 주도권 확보라는 장기 전략의 일부로 바라보는 양상이다. 러시아의 군사적 우위와 북극항로 통제, 중국의 북극 진출 시도가 맞물리는 상황에서 미국은 대규모 투자와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며 이 같은 전략을 구체화했다. 변화는 당사국들에 국한하지 않고 동북아시아의 해상 운송 구조와 에너지 안보에도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변방에서 핵심 전략 무대로
21일(이하 현지시각) 외교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자국 영토로 편입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북극의 전략적 가치 또한 각국 정·재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이튿날인 이달 4일 미국 시사주간지 애틀랜틱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다른 국가도 베네수엘라처럼 미국의 개입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우리는 (미국의) 방어를 위해 그린란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그린란드 영토 통제권도 무력으로 빼앗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다양한 논의를 불러왔다.
216만㎢에 달하는 세계 최대 면적을 자랑하는 섬인 그린란드는 북극해와 북대서양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기후 변화로 북극 해빙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 지역은 군사와 항로, 자원이 동시에 얽힌 다층 전략 공간으로 성격이 변했다. 과거에는 혹독한 자연환경이 접근 자체를 제한했지만, 최근에는 항해 가능 기간이 확대되며 실질적 통제력의 가치가 급격히 높아졌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받은 데는 북극이 더 이상 변방이 아닌 핵심 전략 무대로 이동했다는 현실이 자리한 셈이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그린란드의 중요성은 1940년대 후반 냉전 시기부터 강조됐다. 미국은 그린란드 북서부에 위치한 피투피크 공군기지(구 툴레 공군기지)를 통해 미사일 조기경보, 우주 감시, 북극권 작전의 거점 기능을 수행해 왔다. 해당 기지는 러시아에서 발사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가장 먼저 탐지할 수 있는 핵심 전초기지로 꼽힌다. 북극권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 궤적 특성상 이 지역을 장악하는 국가가 미국 본토 방어 체계에서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는 구조다.
이와 함께 그린란드에는 원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해 우라늄, 아연, 철광석, 희토류 등 전략 광물이 상당량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토류의 경우 중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미국과 서방으로서는 대체 공급원 확보 차원에서 그린란드의 잠재력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채굴 비용과 환경 문제라는 일부 제약이 존재하지만, 전략 자원의 지정학적 가치는 단순한 경제성 계산을 넘어서는 영역으로 평가된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그린란드 빙하 아래에 매장된 희토류의 양을 최대 150만 톤으로 관측했다.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는 북극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는 요인이다. 러시아는 북극권 전체 육지와 배타적경제수역(EEZ)의 약 50%를 통제하고 있으며, 북극 거주 인구의 3분의 2가량은 러시아인이다. 아울러 북극권 내 주요 군사 기지·시설 66곳 가운데 30곳이 러시아 영토에 위치한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 붕괴 이후 방치됐던 기지들을 현대화하며 레이더와 미사일 체계를 증강했고,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도 핵잠수함 전력과 조기경보 체계 투자를 지속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북극항로 역시 군사와 경제를 동시에 관통하는 주제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항로는 기존 수에즈 운하 경로보다 항해 거리와 운항 기간을 각각 30~40%, 10~15일 단축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9월 22일 중국 닝보항을 출발한 컨테이너선이 북극항로를 이용해 10월 12일 영국 펠릭스토항에 도착한 사례는 북극항로의 상업적 활용 가능성이 이론이 아닌 현실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그린란드는 바로 이 북극항로의 서쪽 관문에 위치해 해상 통제와 물류 질서 측면에서 결정적 위치를 차지한다.

중-러 견제 흐름 속 전력 강화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 이면에서 천문학적 투자를 이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극이 이미 군사·물류·자원 경쟁의 실질 무대로 전환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가 북극권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구축한 상황에서 기존의 외교적 견제나 선언적 전략만으로는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이 미국 정계 전반에 공유돼 있다. 북극에서의 주도권 상실은 단순한 지역 영향력 축소를 넘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글로벌 안보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다뤄지면서 미국의 대응 또한 투자 중심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쇄빙선 전력 확충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쇄빙 기술을 보유한 핀란드와 협력해 차세대 쇄빙선 11척을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이 가운데 4척은 핀란드에서 직접 구매하고, 나머지 7척은 핀란드 설계와 기술 지원을 받아 미국 내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방식이다. 이는 미국 연안무역법(Jones Act)에 따라 군용·공공 선박을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한다는 원칙을 사실상 깨는 조치로 주목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결정을 두고 “러시아와 중국의 공세적 군사 배치와 경제 침투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안보 차원의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결단의 배경에는 극단적으로 벌어진 전력 격차가 있다. 현재 러시아는 핵 추진 쇄빙선 8척을 포함해 약 40척 규모의 쇄빙선단을 운영하며 북극해를 장악 중이다. 반면 미국이 운용 가능한 대형 쇄빙선은 단 3척에 불과하고, 그마저 노후화로 인해 작전 효율은 매우 제한적인 실정이다. 쇄빙선은 여타 선박을 지원하는 역할은 물론, 북극권 내 항로 통제와 자원 탐사, 군사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다. 이를 두고 캐나다 사이먼스재단은 “쇄빙선 없이는 북극에서 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기 어렵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중국의 움직임 역시 미국의 북극 투자를 자극하는 변수다. 중국은 2018년 스스로를 ‘근 북극 국가’로 규정하고 ‘빙상 실크로드’ 구상을 내세웠고, 이듬해에는 북극이사회에 가입하고 인프라를 비롯한 연구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의 결속도 한층 견고해졌다. 미국이 적극적인 투자와 동시에 군사적 충돌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협상력을 강화하는 배경에는 북극에서 주도권을 상실할 경우 감수해야 할 장기적 비용이 훨씬 크다는 판단이 깔려 있단 분석이 가능하다.
새로운 규칙·비용 수반 불가피
북극항로 개방은 동북아시아 전역의 해상 질서에도 중층적인 변화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역내 주요 국가들은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해상 운송에 의존하는데 그 경로는 말라카 해협–수에즈 운하–대만 해협으로 이어지는 제한된 축에 집중된다. 이 같은 경로는 평시에는 효율적이지만, 지정학적 긴장이나 군사 충돌이 발생할 경우 단기간에 취약성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최근 수년간 반복된 수에즈 운하의 통항 위험 증가, 파나마 운하의 가뭄에 따른 선박 제한 사례는 이러한 리스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동북아 국가들에 있어 가장 민감한 변수는 대만 해협이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앞세워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면서 이 해역은 단순한 지역 분쟁 공간을 넘어 글로벌 물류 병목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일본과 한국, 대만은 에너지와 핵심 부품 수입, 완제품 수출에서 모두 이 항로를 이탈할 수 없고, 중국 역시 에너지 수입의 70% 이상을 대만해협을 거쳐 들어온다. 이는 대만 해협이 해당 국가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경제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북극항로는 대체 경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러시아 북부 해안을 따라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북극항로는 거리와 시간 단축에 따른 연료비와 운항 비용 절감이라는 경제적 요인을 비롯해 특정 해협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적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나아가 북극항로와 연계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러시아 북극 LNG 프로젝트는 동북아 국가들에 새로운 공급 옵션을 제시한다. 기존 중동에서 말라카 해협을 거치는 장거리 루트와 달리 항로 단축과 함께 정치적 리스크 분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까닭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북극항로의 통제 주체 역시 동북아 해상 질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러시아가 항로 관리와 쇄빙 지원을 사실상 독점할 경우, 동북아 국가들은 말라카 해협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더라도 또 다른 전략적 종속에 직면할 수 있다. 반대로 미국과 동맹국들이 항로 안전과 운항 규범 설정에 깊이 개입할 경우, 북극항로는 기존 해상 질서를 보완하는 다극적 네트워크의 일부로 기능할 가능성이 커진다. 어느 쪽이든 북극항로는 ‘자유로운 대안 루트’라기보다 새로운 규칙과 비용을 동반한 전략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