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패권전쟁] "핵무기 파는 격" 비판에도 빗장 푼 美, 통관 불허 맞선 中
[AI 패권전쟁] "핵무기 파는 격" 비판에도 빗장 푼 美, 통관 불허 맞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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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핵무기 판매' 비유한 앤스로픽 CEO의 고강도 안보 경고 美 수출 허용에도 통관 불허 맞선 中 자립 승부수 막대한 자금 투입에 따른 中 기술 자립 가속화, 하드웨어 한계 극복 여부 관건

다리오 아모데이(Dario Amodei) 앤스로픽 최고경영자(CEO)가 최첨단 AI 칩 H200의 대중 수출을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치명적 전략 자산 유출로 규정하며 강도 높은 우려를 제기한 가운데, 정작 중국은 미국의 유화 제스처를 거부하는 역공에 나섰다. 미국은 관세 수익과 시장 통제권을 노리고 수출을 일부 허용했지만, 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데이터센터 내 자국 칩 사용을 강제하며 탈(脫)엔비디아와 기술 자립이라는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H200 수출은 핵무기 판매와 동급", 앤스로픽 CEO의 경고
20일(이하 현지시간) 아모데이 CEO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현장 인터뷰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엔비디아 AI 칩 H200 중국 판매 승인에 대해 "북한에 핵무기를 파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챗봇 클로드(Claude)를 개발하는 기업의 수장으로서 고성능 AI 반도체가 단순한 상업적 상품을 넘어 국가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략 자산임을 강조했다. 아모데이 CEO는 "미국이 기술적으로 수년 앞서 있다 하더라도 첨단 칩을 경쟁국에 넘기는 순간 그 격차는 빠르게 좁혀질 것이라며 이는 국가 안보에 엄청난 함의를 지닌 중대한 실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모데이 CEO는 AI의 미래를 '데이터센터 안에 있는 천재들의 국가(a country of geniuses in a data center)'에 비유하며 권위주의 국가의 기술 통제 리스크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보다 똑똑한 지적 존재 1억 명이 특정 국가의 통제 아래 놓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러한 강력한 연산 능력이 악용될 경우, 조지 오웰의 전체주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와 같은 감시 통제 사회 혹은 그보다 더 심각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고성능 AI 칩이 생화학 무기 제조나 사이버 공격 등 국가 전복 수준의 위협 수단으로 전용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업계가 정부의 이번 조치를 단순한 무역 완화가 아닌 기술 안보의 균열로 받아들이는 결정적인 이유는 승인된 칩의 대폭 상향된 성능 때문이다. 지난 13일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온라인 관보를 통해 H200의 중국 수출 허가 방식을 사례별 심사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원칙적으로 수출 금지였던 품목을 개별 심사만 거치면 수출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미국 정부는 수출 물량이 미국 판매량의 제한된 비율을 넘지 않으면서, 칩값의 25%를 미 정부에 수수료(fee) 형태로 납부하는 조건을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H200이 최첨단 모델인 블랙웰보다는 하위 기종이지만, 기존 중국 수출용인 H20 대비 6배 수준의 성능으로 평가된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가 까다로운 조건을 걸었다고는 하나, 합법적으로 중국에 진입할 수 있는 칩 중 가장 강력한 모델이 풀리게 된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25%의 수수료 수익을 챙기는 대가로 스스로 기술적 우위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미국은 열었지만 중국은 닫았다, 데이터센터엔 국산 칩 자립 승부수
하지만 정작 중국은 통관을 지연시키거나 불허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로이터통신은 여러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이 자국 내 H200 반입을 불허했다고 보도했으며,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 역시 중국 정부가 일부 IT 기업에 H200 구매를 제한한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당초 트럼프 행정부의 승인 방침에 따라 중국 기업들이 H200 칩 구매를 타진하며 주문 물량이 급증했으나, 이번 조치로 반입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이는 공식 수입이 허용되자마자 단행된 사실상의 역(逆) 수입 통제로, 중국 세관당국은 대학 연구·개발(R&D) 랩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업들의 구매를 막아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중국의 '버티기'는 반도체 자립을 위한 치밀한 정책 드라이브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11월 중국 당국은 국가 자금이 들어간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서 외산 AI 칩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는 지침을 내린 바 있다. 특히 공정률이 30% 미만인 프로젝트의 경우 이미 계약된 외산 칩이라도 전량 제거하고 계약을 취소하도록 지시하는 등 엔비디아 의존도를 강제로 낮추고 있다. 현재 중국 전역에서 국가 자금이 투입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전반이 이 규제의 영향권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미국산 칩 공급이 재개되더라도 중국 정부가 이를 전략적으로 차단하며 자국 시장 내 점유율 확대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를 중국의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해 7월과 9월, 중국 정부는 엔비디아의 H20과 RTX 시리즈 등에 대해 보안 우려를 이유로 구매 중단을 권고하며 수입 차단 예행연습을 마쳤다. 이와 관련해 한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미국 규제에 속수무책이던 중국이 공세로 전환한 배경에는 자립에 대한 의지와 기술적 자신감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규제뿐만 아니라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병행하고 있다. 자국산 칩을 사용하는 데이터센터에 전기료를 대폭 감면해 주는 혜택을 통해 화웨이나 캄브리콘 등 자국 기업에 확실한 내수 시장을 보장하고, 기술 격차를 좁힐 시간을 벌겠다는 전략이다.

엔비디아 빈자리 파고든 中, 수출 통제 역설과 기술 고립 갈림길
다만 미국의 수출 통제가 중국의 기술 자립을 촉진할지 아니면 기술적 고립을 초래할지는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과거부터 미국의 수출 금지가 지속될 경우 중국이 결국 자체적인 대체품을 개발하게 돼 경쟁자만 양성할 것이라는 '통제의 역설'을 주장해 왔다. 실제로 이번 미국의 수출 규제 완화 움직임은 중국 시장 재진입을 노리는 엔비디아의 입장이 일부 반영된 결과로 평가받기도 한다. 엔비디아 측은 미국 기업이 중국 시장을 점유함으로써 중국의 기술 표준이 미국 생태계에 종속되도록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안보와 이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미국이 빗장을 걸어 잠그는 동안 중국이 독자 생태계를 구축해 미국의 통제권 밖으로 벗어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황 CEO의 우려대로 2022년 미국의 수출 규제로 코너에 몰렸던 중국은 불과 3년 만에 괄목할 만한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엔비디아의 구형 모델조차 구할 수 없게 된 중국은 3,440억 위안(약 72조6,150억원) 규모의 투자 펀드를 조성해 화웨이, 캄브리콘 등 가능성 있는 중국 AI 반도체 기업들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으며 자국 칩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화웨이는 엔비디아 H100의 60% 성능을 내는 '어센드 910C'를 개발했고, 칩 384개를 묶어 엔비디아 시스템에 육박하는 성능을 내는 물량 공세 전략을 선보였다. 캄브리콘 역시 엔비디아 A100의 80% 성능을 내는 'MLU 590'을 개발해 중국 주요 빅테크 기업에 공급하며 '중국의 엔비디아'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러한 약진으로 인해 황 CEO가 "중국 내 첨단 칩 시장 점유율이 2022년 95%에서 최근 0%로 떨어졌다"고 토로할 만큼 시장 판도가 뒤집혔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중국 당국의 국산화 조치로 자급률 100% 달성 시점이 기존 예상(2027년 82%)보다 대폭 앞당겨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의 자립 시도가 하드웨어의 물리적 한계에 부딪혀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비관론도 여전하다. 미국 외교협회(CFR)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최고 사양 AI 칩은 화웨이 최신 제품보다 약 5배 강력하며, 이 격차는 패키징 기술과 수율 문제로 인해 2027년경 최대 17배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내부에서도 냉정한 현실 인식이 나온다. 중국 AI 스타트업 즈푸(智譜)의 창립자 탕제는 "특정 분야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격차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으며, 저스틴 린 알리바바 AI 총괄 역시 향후 3~5년 내 중국이 글로벌 기업을 추월할 가능성을 20% 이하로 낮게 점쳤다. 실제로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신형 모델 개발 과정에서 국산 칩 성능의 한계를 절감하고 일부 작업에 엔비디아 칩을 다시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수출 통제 국면이 중국을 자립으로 이끌지 좌절로 이끌지는, 중국이 제한된 칩 성능과 불안정한 공급망을 상쇄할 만한 소프트웨어 최적화 능력을 갖출 수 있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