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저성장 장기화 속 회복력 상실한 韓 경제, 일본화(日本化) 공포 현실로

저성장 장기화 속 회복력 상실한 韓 경제, 일본화(日本化) 공포 현실로

Picture

Member for

1 year 7 months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일하기도, 살기도 힘들다” 거시통계 이면의 청년세대
1990년대 초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흡사
2025~2027년 1%대 성장, 일본보다 경제 펀더멘털 ↓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장기 침체 국면과 겹쳐지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청년층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주거비 부담이 생애 소득과 자산 형성을 훼손하는 구조가 수치로 확인되면서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여기에 잠재성장률 하회 국면의 장기화, 회복 탄력성 약화까지 맞물리며 일본식 침체 경로의 핵심 조건이 빠르게 축적되는 모습이다. 과감한 구조 개혁과 혁신이 없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우리가 밟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 취업 빙하기 경로 따라가는 韓 청년들

1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청년세대 노동시장 진입 지연과 주거비 부담의 생애영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졸업 후 첫 취업까지 걸린 시간은 2004~2013년 평균 18.7개월에서 2014~2023년 22.7개월로 4개월 늘었다. 같은 기간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비율은 17.9%에서 10.4%로 낮아졌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로 청년층이 구직을 미루는 가운데 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하고 수시 채용을 확대한 영향이다.

구직만 어려워진 것이 아니다.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도 낮아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9세 미취업 기간이 1년일 경우 5년 뒤 상용직으로 근무할 확률은 66.1%였지만 해당 기간이 3년으로 늘어나면 상용직 근무 확률은 56.2%, 5년이면 47.2%까지 떨어졌다. 초기 구직이 늦어지면 소득이 감소하게 된다. 분석 결과 미취업 기간이 1년 증가할 때 현재 기준 실질임금은 6.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199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대 사이 노동시장 진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와 비슷한 상황이다.

한국 청년은 1990년대 일본과 달리 높은 주거비 부담도 짊어지고 있다. 한은은 청년세대가 주로 거주하는 소형 비아파트 수급 불균형으로 월세가 급등하면서 주거비 부담이 크게 확대됐다고 봤다. 품목별 소비지출 비중을 보면 청년층 주거비 비중은 2000년 11.4%에서 2024년 17.8%로 높아졌다. 청년세대 주택 임차료 과부담 가구(가구주거비/소득>30%)는 31.6%로 전체 연령(15.8%)보다 두 배가량 높았다. 그 결과 고시원 등 취약 거처 이용 비중은 2010년 5.6%에서 2023년 11.5%로 급등했고, 최저주거기준(14㎡ 이하) 미달 비중도 2023년 6.1%에서 2024년 8.2%로 상승했다.

과도한 주거비 부담은 청년층 자산 감소로도 이어졌다. 주거비가 1% 오를 때 금융·실물자산 등 총자산은 0.04% 감소했으며, 전체 연령 대비 청년층 부채 비중도 2012년 23.5%에서 2024년 49.6%로 급증했다. 주거비 지출은 다른 소비까지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거비 지출 비중이 1%포인트 상승하면 교육비 비중이 0.18%포인트 하락해 인적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韓 ‘일본화 지수’ 태국·중국 이어 3위, 저성장 장기화 국면 진입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 저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과거 일본과 닮은꼴이다. 국회예산정책처(NABO)가 '일본화 지수'(Japanification Score)를 이용해 주요국의 장기 저성장 위험을 비교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의 일본화 지수는 6점(10점 만점)이었다. 전 세계 주요 30개국 중 태국과 중국이 각 7점으로 가장 높았고, 이어 한국과 홍콩은 각 6점으로 공동 3위였다. 이들 상위 4개국에서는 높은 부채비율, 생산연령인구 증가율 하락, 주식가격 하락 등의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일본화로 표현되는 장기 저성장 위험을 키우는 요인 중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다. 20∼64세의 생산연령인구가 줄면 노동투입량이 감소해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업과 가계 부문의 과도한 부채 부담은 소비와 투자의 여력을 제약하고, 주택과 주식 등 자산 가격 하락은 부의 효과를 약화시키며 경기 위축을 가속한다. 물가 상승률과 잠재성장률의 동반 하락 역시 일본화 지수가 높은 국가군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이다.

실제로 한국의 민간부채 비율은 201.9%(2024년 3분기 기준)로 대상 국가 중 2번째로 높았다. 잠재성장률은 2011∼2015년 3.46%에서 2021∼2025년 2.19%로 뚜렷한 하향 곡선을 그렸다.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건 외환위기였던 1998년(-4.9%)과 코로나19가 발생했던 2020년(-0.7%)이었다. 2000년 이후 성장률이 2.0%에 못 미쳤던 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2023년(1.4%)이었다. 2002년(7.7%)과 2010년(7.0%)엔 7%대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2004, 2006, 2007년에는 5%를 넘는 성장세가 유지됐다. 하지만 2011∼2019년엔 2∼3%대로 하락하더니 2020년대 들어선 1∼2%대로 내려앉았다. 성장률 분포 자체가 한 단계 아래로 이동한 것이다.

경제 성장에 대한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잃어버린 점도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지난해 11월 한은이 내놓은 2027년 성장률 전망치는 1.9%로, 지난해 1%, 올해 1.8%에 이어 3년 연속 2%를 밑도는 저성장이 예고됐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지난해까지 63년간 성장률이 2%를 밑돈 것은 다섯 차례뿐이었다. 2차 석유파동을 겪은 1980년(-1.5%),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4.9%),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진 2020년(-0.7%), 반도체 불황과 고금리로 수출과 내수가 동반 부진한 2023년(1.6%)이다. 하지만 저성장 충격은 1년 만에 끝났고, 다음 해에는 급반등에 성공했다. 대외 충격으로 경기가 일시적으로 침체를 겪었지만 경제의 기초 체력이 튼튼했기에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양상이 다르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작년과 올해 성장률이 1%면, 내년에는 3%쯤 성장해 잠재성장률 평균(약 2%)을 맞춰야 하는데, 내년과 후년 전망치 모두 1%대다. 이는 1990년대 초반 일본과 유사하다. 1991년 3.5%이던 일본 경제성장률은 이듬해인 1992년 0.9%로 곤두박질쳤으나, 일본 사회는 위기감을 갖지 않았다. 그전에도 0%대 저성장과 마이너스 성장(1974년 -1.2%)을 겪었지만, 다음 해인 1971년(4.7%)과 1975년(3.1%)에 급반등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심각해진 것은 1993년(-0.5%)과 1994년(1.1%)까지 3년 연속 2%를 밑도는 저성장이 이어지면서다. 잃어버린 30년의 서막이었다. 기업 채용이 급격히 얼어붙으면서 '취업 빙하기'가 도래했고,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을 가리키는 ‘로스제네(Lost Generation의 일본식 줄임말)’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되자 탈출구 없는 침체가 반복됐다. 2001~2003년에 3년 연속 저성장을 겪더니, 2005~2009년 5년 연속, 2014~2020년 7년 연속으로 성장률이 2%를 밑돌았다. 이에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던 일본은 중국, 독일에 추월당해 4위로 떨어졌고, 조만간 인도에도 따라잡힐 전망이다.

건설 중심 경기 부양, 경제 성장 회복 저해

최근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건설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도 일본 경제의 몰락 과정과 흡사하다. 정부는 지난 9일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2.0%로 설정하고, 지난해 극심한 위축을 겪었던 건설투자를 반등시켜 내수 회복의 기폭제로 삼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이를 위해 728조원에 달하는 재정 지출과 함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확대, 주택 공급 촉진 등 전방위적인 건설 경기 활성화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정부는 공공기관 투자를 역대 최대인 70조원으로 확대하고, 정책금융 633조8,000억원을 공급해 건설 현장의 자금줄을 넓힐 계획이다.

그러나 경기 부양을 위해 건설투자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결국 경기 회복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고, 건설투자의 장기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실제 일본은 1980년대 후반 버블경제 시기 건설투자가 급증한 뒤, 버블 붕괴 후에도 정부의 건설 경기 부양 정책에 따라 한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결과 정부와 가계 부채가 증가했고, 재정 악화와 소비 위축으로 경기 부진이 장기화됐다. 최근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중국 역시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건설투자를 확대했으며, 2016년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3%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2020년부터 부동산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며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추진했고, 이후에도 부동산 경기 침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건설 자산은 내용 연수가 길기 때문에 조정 기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들의 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을 살펴보면, 고점에서 저점까지 평균 27.2년이 소요됐다. 국가별 건설투자 비중의 고점 평균은 18.3%, 저점 평균은 8.3%였다. 우리나라는 1991년 고점(21.8%)에 도달한 뒤 2012년 13.9%까지 하락했으나 이후 반등했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조정 기간이 21년으로 짧고, 하락 폭도 7.9%포인트로 작다. 반면 한국과 유사한 경제 구조를 갖춘 일본은 1980년 건설투자 비중이 22.1%에 달했으나, 이후 30년에 걸친 조정 끝에 2010년에 저점인 10.2%를 기록했다. 이에 비춰볼 때 우리나라의 건설 부진은 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이 같은 저성장 장기화를 위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 경제가 아직 충격을 흡수할 만큼 맷집이 강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버블 붕괴 당시 일본은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2%였지만, 한국은 2024년 말 20%를 넘어서며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대외 자산 구조에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당시 일본은 대외 자산이 부채보다 많은 세계 1위 순채권국으로, 수출이 부진해도 해외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와 배당 수입을 통해 일정 수준의 경제 완충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순채권국에 진입한 지 10여 년에 불과하다. 당시 일본이 청년 부자였다면, 지금 한국은 노후 준비가 덜 된 노인인 셈이다.

Picture

Member for

1 year 7 months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