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세 고시’ 폐지 실효성 논란, 각종 편법에 더 정교해진 영유 입학전쟁
‘4·7세 고시’ 폐지 실효성 논란, 각종 편법에 더 정교해진 영유 입학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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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 사교육 규제 이후 학원가 입시 전형 진화 계열사 사전 준비반, 사전평가로 선발 구조 유지 아동 발달과 교육권 사이 해묵은 갈등도 여전

지난해 정부가 영유아 사교육 과열을 해소하기 위해 이른바 ‘4·7세 고시’ 근절에 나서자, 학원가에서 평가 방식과 전형 구조를 바꾼 새로운 입시 경쟁이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 지침에 따라 지필 시험은 폐지됐지만, 자사 계열사가 운영하는 사전 준비반이나 자체 시험, 고가의 온라인 강의가 이를 대체하면서 영유아 사교육 부담은 오히려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기 경쟁이 아동 발달을 저해한다는 비판과 교육권 침해를 우려하는 반발이 맞서는 가운데, 영유아 사교육을 둘러싼 규제의 실효성과 한계를 놓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구술 면접·체험 수업으로 평가하는 편법 증가
20일 교육업계에 따르면 최근 학원가에서는 정부가 4·7세 고시 근절에 나서면서 규제를 피하기 위한 각종 편법이 나타나고 있다. 4세 고시는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한 영어 레벨 테스트를, 7세 고시는 초등학교 입학 전 유명 영어·수학학원 입학시험을 '대학 입시'에 비유한 용어로, 서울 대치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시작해 점차 전국화됐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해 학원들의 영유아 대상 입학시험이 아동 발달 단계에 맞지 않아 아동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전국 영어유치원에 지필 시험을 치르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어 지난해 5~7월에는 교육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이 함께 전국 영어유치원 728곳을 대상으로 사상 처음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총 260곳이 433건의 처분을 받았다. 교습정지 14건, 과태료 70건, 벌점·시정명령 248건, 행정지도 101건이 포함됐다. 사전 레벨테스트를 시행한 영어유치원은 서울 11곳, 경기 9곳, 강원 3곳 등 총 23곳이었다. 교육당국은 합격·불합격 여부를 가르는 시험뿐 아니라, 반 배정을 위한 사전 시험도 모두 레벨테스트로 간주했으며, 교습 과정 중간에 실시되는 시험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이후 학원들은 새로운 방식의 평가를 도입하며 규제를 우회하고 있다. 구술 면접이나 체험 수업을 통해 실력을 평가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선착순이나 추첨으로 아이를 모집해 ‘기초반’을 운영하면서 수업 중 시험을 통해 상위반으로 배정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일부 학원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7세 고시’ 대신 ‘8세 고시’를 도입했다. 8세 초등학생부터는 유아가 아니므로 테스트 시기를 늦춰 규제를 회피하겠다는 의도다. 일례로 대치동 A어학원은 초등학교 2학년 이상만 입학을 허용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고난도 레벨 테스트를 도입했다.
‘토플 100점 이상’을 입학 조건으로 내걸기도
'영어유치원계의 서울대'로 불릴 만큼 시장지배적 기업인 B어학원도 올해부터 입학 규정을 변경했다. B어학원은 그동안 영재교육원의 영재 테스트 상위 5% 이내 검사 결과지를 제출해야 입학시험 응시자격을 줬다. 이 때문에 강남 일대에 이곳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프렙학원(상급 학원 입학을 준비하는 선행 사교육)'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입학시험 없이 같은 계열 영어유치원 준비반인 C어학원 출신만 입학할 수 있도록 입학 정책을 바꿨다. C어학원 재원생 중 일부 원아에게 반을 배정하는 형태로, 이 과정에서 레벨테스트가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높은 난도와 토론 중심 수업으로 대치동 학원가에서 '빅3'로 불려온 D학원도 올해부터 초1반 입학 레벨 테스트를 폐지하고, 2단계의 새로운 입학전형을 도입했다. 먼저 1단계에서는 △토플 100점 이상 △P영어능력평가 최고 등급 △학원 자체 온라인 강의 6개월 이상 수강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1단계를 통과한 학생에 한해 2단계 S영어능력평가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데, 여기서 특정 등급 이상을 받아야 최종 입학이 가능하다. P·S영어능력평가 모두 해당 학원 계열 출판사가 제작한다.
그러나 D학원이 내건 조건 중 토플 100점 이상은 미국 상위권 대학 지원이 가능한 수준으로, 현실적으로 7세 아동이 달성하기는 어렵다. 특히 D학원은 최근 3개월 이내 토플 성적만 인정하는데, 토플 응시료가 220달러(약 32만원)가 넘어 반복 응시가 쉽지 않다. 결국 학부모들의 선택지는 영어능력평가나 온라인 강의로 좁혀진다. P·S영어능력평가의 응시료는 회당 3만원이다. 성적 유효 기간도 3개월로 짧아 S영어능력평가에서 탈락할 경우 다시 시험을 치러야 한다.
학원 자체 온라인 강의는 주 2회 비대면 방식으로 회당 수강료는 5만5,000원이다. 6개월간 수강하면 총비용은 286만원에 이른다. 더욱이 이 온라인 강의를 듣기 위해서는 수강 전 별도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영유아 사교육 시장을 주도하는 학원들의 바뀐 전형을 두고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을 평가하고 줄 세우는 구조는 그대로”라며 불만이 터져 나온다. 영유아 준비반까지 정규 코스가 되면서 3세 준비반이 생기고, 입학 조건을 맞추기 위한 비용 부담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책 없이 규제만 강화하면 부작용 발생할 수도
영유아 사교육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조기 선발과 과도한 경쟁이 영유아의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여전하다. 유아기는 놀이와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성과 정서를 형성하는 시기임에도 4·7세 고시와 같은 선발 과정과 하루 5시간 이상 이뤄지는 영어 몰입 수업으로 과도한 학습 부담과 스트레스가 유발되고, 정서·인지 발달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관련 연구에 따르면 영어 사교육에 참여한 유아의 26.7%가 학습 스트레스를 호소했으며, 한글 습득 지연이나 정서 불안정이 관찰됐다.
과도한 경쟁이 낳은 사회적·계층적 부작용도 쟁점이다. 4·7세 고시는 상위권 아이들만을 선발하는 구조로, 탈락한 다수의 유아에게 열등감과 상처를 남긴다. 부모의 불안과 조급함은 이를 더욱 부추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조기 선발과 경쟁을 사실상 ‘아동학대’로 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여기에 월 100만원을 웃도는 고비용 구조는 저소득층 가정의 진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교육의 출발선 격차를 고착화시킨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2024년 기준 전체 사교육비 중 유아 사교육비의 비중은 11%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규제가 지나치다는 목소리도 있다.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발의한 학원법 개정안에는 36개월 미만 영유아의 사교육을 전면 금지하고, 36개월 이상 유아의 교육시간을 하루 40분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교육부도 개정안 논의에 적극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영어유치원 학부모들은 부모의 교육권과 아동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 청원을 올리는 등 반발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특정 연령대의 사교육을 금지하는 법안은 무리가 있다”며 “교육 수요에 대한 근본 대책 없이 규제만 강화할 경우, 불법 과외 등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