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노동시장] 구인 급감에도 생산성 상승, AI 확산이 바꾼 미국 채용시장 공식
[AI 노동시장] 구인 급감에도 생산성 상승, AI 확산이 바꾼 미국 채용시장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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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활용 여부 따라 노동 생산성 격차
전 산업 직무 재편·축소 동시 전개
보완 인식→전략적 활용 단계 전환

미국 경제가 인공지능(AI) 확산을 동력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고용 지표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이례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기술 도입으로 기업의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동일한 인력으로 더 많은 산출이 가능해지면서 고용 확대는 제한되는 양상이다. 이 과정에서 충격은 특정 직무와 계층에 집중되고, 기업의 고용 전략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양상이다. 성장과 고용의 괴리가 갈수록 벌어지면서 미국 노동시장이 새로운 조정 국면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나온다.
필요 일자리 月 20만 개→3만5천 개
18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해 11월 구인·이직 보고서(JOLTS)에서 계절 조정 기준 구인 건수는 714만6,00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블룸버그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760만 건)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자, 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이 같은 신규 채용 둔화는 미국 고용 시장이 점진적으로 냉각됨을 보여주는 지표로 읽힌다. 기업들이 즉각적인 대규모 감원에 나서기보다는 신규 채용을 줄이며 관망하는 저고용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의 경제 성장 양상과도 대비된다. 지난 12일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전미소매협회(NRF) 2026’ 행사에서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마이클 피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미국 경제는 약 2.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다만 경제와 소비가 뚜렷하게 양분되면서 많은 이가 느끼는 체감 경기는 오히려 악화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이 약 2% 수준에 그친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작금의 상황을 “노동 투입 없는 성장 국면”이라고 정의했다.
피어스 이코노미스트는 고용 없는 성장이 가능해진 원인으로 AI의 확산을 꼽았다. 그는 “지금까지 AI가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은 다소 제한적”이라면서도 “초기 경력직 채용이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고용 시장의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2010년대까지만 해도 수요 확대를 따라가기 위해 월 20만 개 정도의 일자리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약 3만5,000개면 충분하다”고 부연했다. 성장과 고용의 연결 고리가 약해졌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되는 대목이다.
학계의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오크리지국립연구소 공동 연구진은 AI가 미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빙산 지수(Iceberg Index)’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미국 내 노동자 1억5,100만 명이 수행하는 업무를 세분화해 3만2,000여 개의 기술 요소로 분류하고, 이를 AI 시스템이 제공할 수 있는 1만3,000여 개 기능과 일대일로 매칭했다. 연구 결과 AI 기술이 잠재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 가치는 미국 노동 인구 총임금의 11.7%인 1조2,000억 달러(약 1,76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같은 AI의 영향은 특정 첨단 산업에 국한하지 않고 행정·금융·사무 등 폭넓은 직무에 걸쳐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테크·IT 업종에서의 AI 활용 가치가 전체 임금의 2.2%(2,110억 달러·약 310조원) 수준인 반면, 여타 대부분 직무에 적용 가능한 범용 AI의 잠재 가치는 그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연구진은 “현재 체감되는 채용 축소나 직무 재편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서 “직무 전반으로 시야를 넓히면 AI가 수행할 수 있는 잠재 업무량은 그보다 5배 이상 크다”고 설명했다.
직무·계층별 위험도에 차이
다만 현시점에서 AI 확산에 따른 고용 충격은 특정 직무와 인력 계층을 중심으로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 자동화와 인지 기술이 직접 맞닿는 업무 영역부터 선택적으로 재편이 진행되는 식이다. 이는 실제 미국 주요 기업들의 감원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마존은 본사 직원 약 1만4,000명을 정리해고할 계획을 밝히며 조직 단순화와 의사결정 단계 축소를 이유로 들었다. 글로벌 물류 기업 UPS 역시 지난해 1~9월 3만4,000개의 운영직 일자리를 줄였고, 네슬레는 향후 2년간 전 세계적으로 1만6,000명 감축 계획을 알렸다.
이들 사례는 모두 경기 침체나 수요 위축 등 외부 요인보다는 AI 도입과 업무 효율화 과정에서 발생한 직무 구조 조정 성격에 가깝다. AI 도입이 본격화하면서 동일 업무를 더 적은 인력으로 처리하는 방향으로 조직을 재설계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업체 세일즈포스의 경우, 마크 베니오프 최고경영자(CEO)가 “약 4,000명의 고객지원 인력을 AI 상담 시스템으로 대체했다”고 언급하면서 고객 응대와 분석, 문서화처럼 반복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무 기능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영역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 인적자원관리협회(SHRM) 역시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난해 진행된 SHRM의 연구에서는 미국 내 전체 일자리의 약 12.6%, 즉 1,920만 개가 AI 자동화로 인해 대체될 위험이 높은 직종으로 분류됐다. 세부적으로는 블루칼라(육체노동) 직종의 14%, 화이트칼라(사무직) 직종의 12.3%, 그리고 서비스업 직종의 12.1%가 자동화로 인한 대체 위험이 매우 높은 수준으로 평가됐다. 반면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직무로는 의료·임상 분야, 예술 분야, 숙련 기술직 등 120개 직업군에 불과했다.
계층별 충격의 양상도 다르게 나타난다. 중장년층 사무·관리직은 기존에 축적한 업무 경험이 AI로 빠르게 대체될 위험에 노출되고, 청년층은 신규 채용 축소와 직무 진입 장벽 상승이라는 형태로 영향을 받는다. 이는 특정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 내부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에 따라 충격의 강도가 갈린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국 현 단계의 AI 충격은 ‘일자리 소멸’이라는 단일한 방향보다는 직무별 위험도 차이에 따른 ‘선별적 조정’에 가깝다는 평가다.

인간 개입 최소화된 업무 설계 확대
이 과정에서 기업의 고용 전략 역시 기존 ‘업무 보완’ 인식에서 인간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양새다. 초기 생성형 AI 도입 국면에서는 반복 업무를 줄이거나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활용 범위가 한정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업무 단위 자체를 AI 중심으로 재설계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 특히 목표 설정 이후 계획 수립과 정보 탐색, 실행, 결과 보고까지 일련의 과정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AI 에이전트가 확산하면서 과거에는 사람의 판단과 조율이 전제됐던 직무 영역마저 시스템 내부로 흡수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 같은 변화는 조직 운영 방식 전반을 바꾸는 요인이 된다. 기업들은 신규 프로젝트나 내부 혁신 과제를 추진할 때 별도의 인력 충원을 전제로 하지 않고, 기존 인력과 고성능 AI 시스템을 결합하는 방식을 기본값으로 채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AI 에이전트가 다수의 업무 흐름을 병렬적으로 처리하면서 팀 단위 조직 구성이나 단계적 의사결정 구조의 필요성 또한 줄어든 것이다. 미국에서 본격화한 ‘고용 없는 성장’은 경기의 부산물이 아니라 기술 채택과 조직 설계의 결과인 셈이다.
고용 전략의 변화는 비단 미국 내부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글로벌 HR 플랫폼 딜(Deel)이 시장조사기관 IDC에 의뢰해 16개 주요 시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의 66%는 향후 3년 내 신입 채용을 축소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또 조사에 참여한 기업 가운데 대학 학위를 최우선 요건으로 평가한 비율은 5%에 불과했고, AI 도구 및 코딩 자격증을 핵심 요건으로 꼽은 비율은 66%, 문제 해결력과 비판적 사고 능력을 중시한 비율은 59%로 집계됐다. 고용의 기준이 즉시 전력화 가능한 기능 중심으로 옮겨간 셈이다.
AI 기반 채용과 조직 운영이 실제로 가져온 효과도 수치로 확인된다. 같은 조사에서 멕시코(72%), 칠레(71%), 스페인(71%), 영국(70%)은 AI 도입의 가장 큰 성과로 ‘채용 품질 향상’을 꼽았다. 네덜란드와 독일, 호주는 채용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을 주요 효과로 평가했고, 일본(64%), 홍콩(60%), 인도(57%), 한국(56%)은 인재 선별 과정에서 AI 활용이 빠르게 증가한 시장으로 분류됐다. 이는 AI가 인간의 업무를 보조하는 ‘선택적 도구’를 넘어 어떤 업무에 어떤 인력을 배치할 것인지를 재검토하는 기준으로 작동함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