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패권전쟁] 2차 AI 대전, 승부처는 하드웨어와 전력망
[AI 패권전쟁] 2차 AI 대전, 승부처는 하드웨어와 전력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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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론·피지컬 AI 확산, 모델 경쟁서 인프라 경쟁으로 칩 경쟁 넘어 전력망 경쟁, 美 전력망 제약 vs 中 공급 확대 韓 계통 포화·입지 갈등 이중고, 국가 차원의 AI 전략 필요

글로벌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의 전장이 알고리즘을 넘어 하드웨어와 전력 인프라를 확보하는 물리적 기반 싸움으로 확장되고 있다. 산업의 축이 '학습(Training)'에서 '추론(Inference)'으로 이동함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과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 능력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모습이다. 미·중 인프라 경쟁 속에서 49기가와트(GW)에 달하는 수요 폭증에도 전력망 포화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한 한국의 전략적 대응이 시급하다.
학습에서 추론으로 전장 이동
19일 IT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AI 패권 경쟁의 무게추가 거대 모델을 만드는 학습 단계에서, 이를 효율적으로 구동하는 추론 단계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이는 2028년경 고품질 데이터가 고갈될 것이라는 미국 비영리 AI 리서치기업 에포크AI(Epoch AI)의 ‘데이터 월(Data Wall)’ 전망과 궤를 같이한다. 모델 거대화가 물리적 한계에 봉착하자 빅테크 기업들이 실질적 서비스 구현과 수익성 확보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생성 AI 서비스 선두주자인 오픈AI가 챗GPT 무료·저가 요금제에 광고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서비스 운영 과정에서 누적되는 추론 비용을 흡수하기 위한 수익모델 보강으로 해석된다.
추론이 경쟁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비용과 성능을 좌우하는 변수도 모델 크기보다 연산 자원과 전력 효율로 이동했다. 이러한 흐름은 하드웨어 시장의 판도까지 바꾸고 있다. 추론 최적화 수요가 커지며 목적별 칩 분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AI 가속기 시장을 주도해 온 엔비디아도 추론 특화 칩 스타트업 그록(Groq)과 비독점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지연 시간 단축과 전력 효율이 중요한 추론 시장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독주 체제가 흔들리고, 역할별로 세분화된 하드웨어 구조로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드웨어의 진화는 AI의 활동 무대를 가상 공간에서 현실 세계로 확장시켰다. 이달 초 열린 세계 최대 IT·전자 박람회 'CES 2026'에서 최대의 화두는 AI 기술의 초점이 가상 비서 역할을 하는 ‘에이전틱 AI’에서, 로봇 등 현실 세계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Physical AI)’로 확장됐다는 점이었다. 엔비디아는 차세대 GPU 플랫폼 루빈(Rubin)과 함께 가상 시뮬레이션 플랫폼 옴니버스(Omniverse), 데이터 생성 도구 코스모스(Cosmos) 등 다수의 소프트웨어 제품군을 공개했다. 이는 단순히 반도체 칩을 공급하는 차원을 넘어, 가상에서 훈련한 AI를 로봇 등 현실 기기에 이식하는 ‘전 과정(End-to-End)’ 생태계를 장악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발맞춰 완제품 제조사들의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말까지 AI 기능이 탑재된 모바일 기기를 8억 대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온디바이스(On-Device) 시장 확장을 본격화했다. 애플은 경쟁사인 구글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차세대 시리(Siri)에 구글의 제미나이(Gemini) 모델과 클라우드 인프라 도입을 추진한다. 이는 AI 경쟁의 본질이 안정적인 하드웨어 공급망 확보와 소프트웨어 간의 연계 강화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업들의 합종연횡과 기술 혁신에도 불구하고, 폭증하는 인프라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물리적 병목은 여전히 심각하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향후 15년간 신규 인프라 시장 규모를 85조 달러(약 12경5,450조원)로 전망하면서도, 이를 건설할 숙련공이 부족하다는 점을 핵심 리스크로 지적했다. 미국 건설업협회(ABC) 분석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증설 등을 위해 당장 올해에만 34만9,000명의 추가 고용이 필요한 실정이다. 결국 현재의 AI 패권 경쟁은 누가 더 우수한 알고리즘을 가졌느냐에서, 누가 물리적인 칩과 서버, 그리고 이를 구축할 인력과 자본을 적시에 투입할 수 있느냐는 거대한 물량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다음 격전지는 전력망, 칩 독점한 美 vs 전력 확보한 中
물리적 인프라 경쟁의 범위는 반도체를 넘어 전력망 확보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가 “앞으로 AI 성장은 전력이 좌우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와 같이, 산업의 핵심 기반이 연산 장치에서 에너지로 이동하는 추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이 2022년 460테라와트시(TWh)에서 2026년 1,050TWh로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AI용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 대비 4~10배 높은 100메가와트(MW)급 전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변압기와 전력반도체 등 관련 기기 시장의 성장과 전력망 운영 체계의 개편이 필수적인 과제로 대두됐다.
이 분야에서 중국은 전력 생산 능력과 예비력을 바탕으로 인프라 우위를 점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중국의 발전 설비 용량은 2,907GW로 미국(1,334GW)의 두 배를 상회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공급 과잉으로 전력 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한다. 중국 국가전력망공사(SGCC)는 2030년까지 전력망 확충에 4조 위안(약 848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는 서부의 풍부한 재생에너지를 동부로 송전하거나, 데이터센터를 서부에 분산 배치하는 ‘동수서산(東數西算)’ 프로젝트와 연계돼 있으며, 이를 통해 AI 산업에 필요한 전력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반도체 설계 기술에서는 우위를 보이나, 노후화된 전력망과 복잡한 인허가 절차가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사이 중국은 국가 주도의 투자를 통해 격차를 벌리고 있다. 2025년 중국의 예상 전력 생산량은 10조6,000억 킬로와트시(kWh)로 미국(4.24조kWh)의 두 배 이상이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2026년 이 격차가 3배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IEA 또한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 증가율에서 중국(170%)이 미국(130%)을 앞설 것으로 내다봤다.
전력 수급의 불확실성에 직면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직접 에너지 확보에 나서고 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지난해 12월 신재생에너지 개발사 인터섹트파워(Intersect Power)를 인수하여 전력 조달을 내재화했으며, 아마존과 메타는 차세대 전력원인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사에 투자를 단행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두고 “설비가 유휴 자산이 될 위험보다 AI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더 큰 위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AI 산업 경쟁의 초점은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공급하느냐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49GW 수요 폭증에도 꽉 막힌 송전망, 구조적 한계 직면한 韓
글로벌 AI 경쟁이 하드웨어와 전력망 확보전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주변국과 연계되지 않은 독립적 전력 계통을 가진 한국에서는 구조적 한계가 부각되고 있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는 국내 민간 데이터센터 시장이 2024년 6조2,200억원에서 2028년 10조1,900억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인프라 공급 속도는 이러한 폭증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29년까지 한국전력에 접수된 신규 전력 요청 용량은 4만9,397MW에 달해 2023년 말 기준 기존 용량(1,986MW)을 압도하지만, 이를 충당하기 위한 1GW급 발전기 53기 추가 건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반도체 역량을 보유했음에도 전력망 여력과 재생에너지 비중에서 근본적인 수급 불균형을 안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38년 예상 전력 수요인 129.3GW를 감당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수도권 집중화에 따른 물리적 제약이 임계점에 달한 상태다.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으로 전력 계통 포화, 지역 수용성 갈등, 용수 부족 문제가 현실화된 가운데, 전력을 생산해도 보낼 수 없는 송전망 병목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충남 북당진과 평택 신탕정을 잇는 송전선로 건설이 당초 계획보다 12년 6개월이나 지연된 사례는 한국 전력망 확충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K)에 따르면, 수도권 전력 공급 확인에 소요되는 기간은 과거 2~3개월에서 최근 12개월 이상으로 대폭 늘어났다. 여기에 AI 반도체 필수 소재인 구리, 희소금속, 초고순도 소재 확보 문제는 또 다른 뇌관이다. 중국 중심의 정제·가공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한국의 AI·반도체 산업 확장은 필연적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이러한 구조적 난관을 뚫고 생존하기 위한 조건은 통합 자원·기후 전략으로의 대전환이다. 전문가들은 경직된 중앙집중형 전력망을 생산지에서 전력을 바로 소비하는 지산지소(地産地消)형 분산 전원과 유연한 전력 시장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 독점망 구조는 재생에너지가 남더라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는 비효율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가 AI 전략은 전력 인프라 확충, 재생에너지 가속, 핵심 광물 순환, 데이터센터 입지 관리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 로드맵으로 재설계돼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고 전력 소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 및 지능형 메모리 반도체(PIM) 생태계를 구축해, 안정적 에너지 안보와 고효율 기술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동시에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