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는 유지, 공장은 허용? 트럼프의 ‘중국차 미국 생산’ 계산법
관세는 유지, 공장은 허용? 트럼프의 ‘중국차 미국 생산’ 계산법
입력
수정
완성차 업계 잠재적 경쟁 압력↑
안전성 논란에 제한적 수요 전망
베트남 빈패스트 실패 사례 재조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자동차 업체에 대해 미국 내 생산과 고용을 전제로 시장 진입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중국차의 현지 생산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관세 장벽은 유지하되 우회로를 열어두겠다는 해당 발언은 자국 제조업 보호와 고용 확대를 동시에 노린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자동차 산업의 수출 의존 구조, 그리고 과거 미국 시장에서 안전성과 품질 문제로 좌초한 아시아 완성차 업체의 사례까지 다시 부각시키며 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리·BYD 美 진출 가속 전망
18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디트로이트 오토쇼를 앞둔 지난 13일 미시간주를 찾아 “미국은 해외 자동차 업체들이 공장을 짓는 것에 열려 있다”며 “중국 또한 이곳에 공장을 짓고 미국인을 고용한다면 시장 진입을 막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산 완성차에 100% 관세를 유지하겠다는 기존 기조와 병행되는 발언으로, 수입 차단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제조업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실용주의적 접근으로 풀이된다.
이미 지리(Geely) 등 다수의 업체가 미국 진출을 추진 중이던 중국 완성차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으로 관세 회피 수단이 열리는 동시에 대규모 초기 투자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지가 제시됐다. 이달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에서 제리 간 지리자동차그룹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26~34개월 사이에 미국에서 생산 확대를 모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자회사 볼보의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을 활용하거나 폴스타의 생산 라인을 공유하는 방식을 통해 이른 시일 내 미국에서 생산된 중국 자동차를 선보인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전기차 1위인 비야디(BYD)도 미국 시장을 주시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하반기 브라질 등 남미 시장 점유율 72%를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킨 BYD는 멕시코 생산을 통해 중국산 자동차에 부과되는 100% 관세를 우회하는 전략을 고민해 왔지만, 이제는 미국 본토 생산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이들 완성차 업체 외에 배터리 기업 닝더스다이(CATL) 역시 북미 진출이 유력한 상황이다. WSJ는 “내연기관차와 가격으로 경쟁하는 미국 전기차 기업은 CATL의 배터리 수입이나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자동차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그간 일본 업체들은 중국 전기차가 관세 장벽에 막혀 미국 시장에 본격 진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북미 사업 구조를 짜 왔다. 그러나 ‘현지 생산’이라는 우회로가 열리면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 전기차가 미국 시장에 직접 경쟁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닛케이아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도 미국에서 차를 만들라’는 요구는 기존 시장 질서를 흔들 전망”이라고 평가하며 “이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 멕시코를 잇는 북미 생산 체계를 구축해 온 한국 완성차 업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변수”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한국 완성차와 배터리업계 또한 이번 사안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전기차가 미국 내 생산이라는 외피를 쓰게 되면, 현대차를 비롯한 기존 전기차 판매 업체들의 시장 방어 전략은 한층 복잡해진다. 여기에 중국 업체가 현지 생산 차량에 자국산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적용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미국 시장을 주요 성장 축으로 삼아 온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SK온·삼성SDI) 역시 정책 변화의 영향권에 들어갈 것이라는 우려 또한 함께 제기되는 실정이다.
소비자 선택에 달린 경쟁 구도
현재 중국 자동차 산업은 심각한 과잉 공급으로 시름하고 있다. 중국의 연간 완성차 생산 능력은 약 5,500만 대로 예상 판매량의 1.8배를 웃돈다. 그러나 그동안 중국 정부와 업계가 활용해 온 ‘밀어내기 수출’ 전략은 주요 시장의 통상 장벽 강화로 한계에 부딪혔다. 유럽연합(EU)은 2024년 말부터 중국산 완성차에 최대 43.5%의 관세를 부과했고, 미국은 중국산 자동차에 100% 관세를 적용했다. 이에 중국으로서는 미국을 포함한 핵심 시장에 대해 통상 제한 완화를 강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 생산이라는 조건부 개방을 언급한 배경에도 이러한 산업 현실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미국의 계산은 중국차의 판매력 자체에 대한 확신보다는 장벽을 일부 낮추더라도 최종 승패는 소비자 선택에서 갈릴 것이라는 인식에 더 가깝다. 조 맥케이브 오토포캐스트 솔루션 CEO는 “중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에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제품이 공급된다면 소비자들은 국가적 배경보다는 제품 자체의 가치에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지점에서 중국 자동차의 약점으로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안전성 문제가 다시 부각된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충돌 안전성과 운전자 보조 시스템 등 기술 신뢰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비자 선택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실제로 까다로운 기준으로 정평이 난 유럽 신차 안전도 평가 프로그램(유로 NCAP)에서 지리 EX5, BYD 실리온7, 훙치 E-HS9, 제쿠 7PHEV 등 중국 브랜드 4개 모델은 모두 최고 등급인 별 5개를 획득했지만, 세부 안전 항목에서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먼저 EX5는 탑승자 항목에서 ‘어린이 감지’ 시스템이 유로NCAP가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고, A필러 하단 주변 용접 부위가 떨어져 나가는 결함이 확인됐다. 또 E-HS9는 운전석 에어백에서 균열이 발생했고, 정면 충돌 테스트에서는 탑승자 머리 보호 성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됐다. 7PHEV 역시 정면 충돌 테스트에서 측면 커튼 에어백이 C필러 트림에 끼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쿠 측은 생산 과정에서 에어백 고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즉각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한국에서 실시된 평가에서도 유사한 문제점들이 확인됐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신차안전도평(KNCAP)에서 BYD 아토3의 종합 안전도는 별 4개에 불과했다. 자동차 감지형 비상자동제동장치와 사각지대 감시장치에서는 비교적 양호한 점수를 받았지만, 후측방 접근 충돌 방지 장치는 10점 만점 중 5점에 그치는 등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전반이 미흡한 것으로 확인되면서다. 이러한 사례들은 관세 장벽을 일부 완화하더라도 중국차의 미국 내 수요 형성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섣부른 공략 실패할 가능성 커
아시아 완성차 가운데 미국 시장에서 단기간에 선풍적인 관심을 끌었다가 안전성과 품질 문제로 급격히 신뢰를 잃은 사례로는 베트남의 빈패스트가 대표적이다. 빈패스트는 2023년 8월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며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신흥 강자로 주목받았다. 상장 직후 시가총액은 한때 1,400억 달러(약 200조원) 수준까지 치솟으며 ‘베트남의 테슬라’라는 별칭이 붙었고, 단기간 내 미국 시장에 안착하겠다는 계획으로 투자자들의 기대를 자극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시장 현실과의 괴리를 빠르게 드러내며 주가 또한 폭락했다.
빈패스트는 브랜드 인지도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미국 시장에 스포츠유틸리티(SUV) 전기차 VF8, VF9 등 비교적 고가 모델을 먼저 투입하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하지만 차량 출시와 동시에 소프트웨어 오류, 충전 불량, 주행 성능 논란이 잇따라 제기됐고, 주요 자동차 리뷰 매체와 소비자 평가에서 혹평이 이어졌다. 판매량 대부분이 베트남 교민 사회를 중심으로 유통되면서 일반 소비자에게 인도된 차량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시장 확산을 통해 브랜드 신뢰를 쌓겠다는 초기 구상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은 셈이다.
품질 문제에 이어진 내부 고발은 사안의 심각성을 더했다. 빈패스트 협력업체인 타타 테크놀로지에서 VF6, VF7, VF8, VF9 모델의 새시 엔지니어링을 담당했던 엔지니어는 “서스펜션과 새시 구성품의 설계 결함으로 차량을 제어하기 어려운 고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륜의 스트럿과 너클이 느슨하게 연결된 탓에 주행 중 바퀴가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하며 “빈패스트가 이를 인지하고도 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문제를 은폐했다고” 폭로했다.
이 같은 논란 속에서 빈패스트는 미국 전략을 사실상 후퇴시키는 선택을 했다. 안전성 문제가 제기된 VF8 등 일부 모델은 전량 리콜 대상이 됐고, 미국 내 16개 주에 걸쳐 운영되던 직영 판매 매장 38곳은 영업을 종료했다. 대신 빈패스트는 아시아 시장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핵심 성장 거점으로 삼고, 상대적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지역에서 단계적으로 시장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현재 빈패스트는 인도 타밀나두주에 조립 공장을 건설 중이며, 해당 공장은 올해 6월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