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마셜제도 기본소득 실험, 지속 가능성이 관건
[딥폴리시] 마셜제도 기본소득 실험, 지속 가능성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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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제도 도입, 단기 효과는 분명 현금 지원의 지속 시 재정 부담 확대 성패 좌우 요인은 관리 역량 및 조정 능력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마셜제도는 2025년 11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UBI) 제도를 도입했다. 모든 시민에게 분기마다 200달러(약 29만3,400원)가 지급된다. 개인 기준으로는 생활비 일부를 보완하는 수준이지만, 국가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기본소득에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8% 이상이 소요될 전망이다. 외곽 도서 지역에 대한 추가 지원까지 포함할 경우 재정 투입 비중은 최대 14%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지출 규모는 일반적인 국가 재정 운용 기준으로는 부담이 크다. 그러나 수입 의존도가 높고 신탁기금과 외부 지원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를 지닌 마셜제도에서는 정책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 단기적인 효과보다, 제한된 재원 속에서 제도를 지속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지 여부가 정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 점에서 마셜제도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 지출 확대 정책으로 보기 어렵다. 재정 안정성, 행정 집행 역량, 정치적 책임성이 동시에 시험되는 정책에 가깝다. 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은 이를 경제 불안과 기후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으로 해석한다. 반면 제도가 고착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국가 재정 운용의 유연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이 정책이 현금 지원의 효과를 넘어 국가 운영 전반의 지속 가능성을 가늠하는 시험대에 올랐다는 점이다.
마셜제도 기본소득 도입 배경
현지에서 ‘엔라(Enra)’로 불리는 마셜제도 기본소득은 정치·경제적 제약 속에서 도출된 정책 선택이다. 공식 고용 비중이 작고 생활비는 높은 데다, 수십 개 환초로 분산된 지리적 구조로 인해 선별적 복지 제도는 행정 비용과 집행 시간이 과도하게 소요된다. 이러한 여건에서 보편적 현금 지급은 자격 심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누락과 지연을 줄이고, 지원을 비교적 신속하게 가계에 전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이 제도는 특정 가치나 이념을 앞세운 접근이라기보다, 행정 효율성과 집행 가능성을 고려한 결과에 가깝다. 제도의 정밀성보다 전달 속도와 도달 범위를 우선한 선택으로, 일정 수준의 현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판단됐다.
단기적 효과는 비교적 분명하다. 기존 현금 이전 프로그램에 대한 다수 연구에서도 식량 확보, 가계 안정, 정신적 부담 완화 측면에서 일관된 개선 효과가 확인돼 왔다. 마셜제도에서도 초기 단계에서 지급된 자금이 식료품, 연료, 교육비, 기본 생필품 구매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가 변동성이 크고 소득이 불안정한 경제 구조를 감안하면, 이러한 지출은 소비 확대라기보다 생활 유지를 위한 성격이 강하다.
다만 정책의 평가는 시간이 흐르며 달라진다. 기본소득은 단기적으로 가계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상시 제도로 정착될 경우 재정 운용의 부담은 점차 커질 수 있다. 대규모 국가는 정책 조정이나 중단을 통해 대응할 여지가 있지만, 재정과 행정 여력이 제한된 소국에서는 제도 전환 자체가 쉽지 않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책일수록 축소나 종료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함께 커진다. 결국 마셜제도 기본소득은 단기 성과보다 장기적 관리 능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정책으로 평가된다.

주: 소액의 1인당 지급이라도, 수입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경제 전반에 적용될 경우 재정 부담은 이례적으로 크게 확대된다.
글로벌 기본소득 실험의 한계
기본소득 논의에서 자주 인용되는 근거는 각국에서 진행된 실험 결과다. 2019년부터 2024년 사이 실시된 다수 연구에 따르면 무조건적 현금 지급이 노동 의욕을 크게 저해하지는 않았다. 수혜자들은 기존 근로 시간을 유지했고, 스트레스 감소와 가계 재무 관리 개선 효과도 확인됐다. 일부 고소득 국가의 지방정부 실험에서는 소액 지급만으로도 건강 상태와 생활 안정성이 개선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를 그대로 국가 정책의 근거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실험은 외부 자금으로 운영됐고, 시행 기간이 명확히 정해진 한시적 프로그램이었다. 즉, 일정 기간 현금 지급이 가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한 것이지, 정부 재정 차원에서 이를 지속할 수 있는지를 검증한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마셜제도 기본소득은 기존 실험과 성격이 다르다. 비교 대상이 도시나 특정 지역이 아니라 국가 전체 예산이며, 경제 규모 대비 지출 비중도 훨씬 크다. 신탁 기금 수익이 감소하거나 외부 지원이 줄어들 경우, 정부는 기본소득 유지와 보건·교육·사회 기반 시설 같은 필수 지출 사이에서 선택을 요구받을 수 있다.
재원 배분 문제 역시 중요하다. 보편적 현금 지급에 투입되는 예산은 학교, 병원, 지역 서비스 같은 제도적 투자에 사용할 수 없다. 일부 연구는 현금 지원이 이러한 공공 서비스 강화와 병행되지 않을 경우, 아동과 청년층의 장기적 성과 개선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지적한다. 재정 여력이 상시로 부족한 소규모 도서국에서는 이러한 선택의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이 때문에 마셜제도 기본소득의 평가는 단기 효과에 그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향후에도 국가 재정의 균형을 훼손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구조인지 여부다. 명확한 조정 규칙과 재정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초기에는 효과적으로 보이는 정책도 시간이 지날수록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주: 재정 조정이 없으면, 기본소득 유사 실험에서는 가계 복지 개선 효과가 초기 이후 둔화되고 재정 부담은 시간이 갈수록 확대된다.
정책 고착화에 따른 위험
마셜제도 기본소득의 가장 큰 위험은 제도가 축소되거나 중단되기 어려운 구조로 굳어질 가능성이다. 정기적인 현금 지급이 일상화되면, 재정 여건이 악화되더라도 이를 유지하라는 정치적 압력은 빠르게 커진다. 인구 규모가 작고 사회적 관계가 밀접한 국가일수록 정책 조정에 따른 부담은 더 커진다. 특히 재원 구조의 불안정성이 문제로 지적된다. 엔라의 주요 재원인 신탁 기금은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토큰화 채권 역시 투자자 신뢰와 제도 운용의 일관성에 따라 자금 조달 여건이 달라진다. 외부 재정 지원 또한 장기적으로 보장된 수입원이 아니다. 이러한 구조에서 지급 규모를 조정하기 어려운 기본소득은 재정 부담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책 설계 단계에서 조정 가능성을 제도에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지급액을 단기 수익이 아닌 다년 평균 재원 규모에 연동하거나, 정기적인 재검토 절차를 명문화할 경우 재정 상황 변화에 대응할 여지가 생긴다. 사전에 조정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면, 지급 축소 역시 제도 운영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기본소득 도입은 행정 시스템의 신뢰성도 함께 시험한다. 디지털 지갑과 블록체인 기반 지급 방식은 비용 절감 효과가 있지만, 사이버 보안과 접근성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정책 신뢰도는 빠르게 훼손될 수 있다. 지급 과정에서 오류가 반복되거나 일부 계층이 배제될 경우, 기본소득에 대한 불신은 공공 행정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교육자와 정책 결정자를 위한 시사점
기본소득은 교육 정책 자체를 변화시키는 수단은 아니지만, 학습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가계 소득이 일정 수준 안정될 경우 출석률과 학습 집중도, 교육 관련 지출 여력에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관찰되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정책결정 과정에서는 기본소득을 기존 공공투자의 대안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교육, 보건, 사회 기반 시설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때 현금 지급의 효과도 함께 나타난다. 보편 지급이 학교와 의료, 인프라 예산을 압박할 경우, 단기적인 생활 여건 개선과 달리 중장기 성과는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행정 운영 측면에서 중요한 과제는 제도에 대한 신뢰 유지다. 재정 전망과 지급 조정 기준을 사전에 명확히 제시하지 않을 경우, 정책 운용에 대한 불신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제도의 한계와 조정 가능성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정책 지속성을 좌우한다.
국제 사회 역시 이 사례를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마셜제도 기본소득은 인공지능 확산에 대응하는 대규모 국가의 정책 모델이 아니다. 과세 여력이 제한되고 외부 환경 변화에 취약한 소국이 재정 압박 속에서 선택한 정책 사례다. 이 제도의 평가는 단기적인 생활 개선이 아니라, 제한된 재원 속에서 국가가 정책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마셜제도 기본소득은 가계 소득을 보완하며 취약한 경제의 단기적 부담을 완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의 핵심은 제한된 재원 속에서도 재정과 정책 운용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있다. 명확한 재정 규칙과 투명한 운영이 뒷받침될 경우 기본소득은 정책 조정의 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실험은 불확실한 환경에서 정책이 직면하는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Marshall Islands UBI: An Experiment That Buys Time but Tests the Limits of Policy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