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소셜미디어 시대, 서사적 문해력이 시민 기본 역량이 되다
[딥폴리시] 소셜미디어 시대, 서사적 문해력이 시민 기본 역량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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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보다 강한 서사가 공적 판단에 미치는 영향 소셜미디어 확산 구조에 맞춘 교육 대응 필요성 서사 구조를 구분하고 근거를 확인하는 시민 역량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숫자는 빠르게 잊히고, 이야기는 오래 남는다. 한 연구에 따르면 통계가 판단에 미치는 효과는 하루 만에 73% 감소한 반면, 이야기가 남기는 영향은 같은 기간 32% 줄어드는 데 그쳤다. 오늘날 많은 학생에게 공적 논의의 장은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라 소셜미디어 피드다. 2025년 기준 18~24세의 44%는 소셜미디어를 주요 뉴스 출처로 이용했고, 영상 기반 뉴스 소비 비중은 65%에 달했다. 이야기가 숫자보다 오래 기억되는 환경에서 피드는 단순한 정보 전달 경로를 넘어, 무엇을 기억하게 할지를 결정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러한 기억은 투표와 토론, 신뢰 판단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게시물에 담긴 이야기가 어떤 구조로 구성됐는지를 읽어내고, 사실 판단을 유지하는 능력, 즉 서사적 문해력이 핵심 역량으로 부상한다.
교육 현장은 그동안 데이터와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을 중심으로 허위정보에 대응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정보의 정확성을 높이면 판단도 함께 개선될 것이라는 전제에 머물러 왔다. 문제는 소셜미디어 환경이 이와 다르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플랫폼은 수치보다 인물과 갈등이 분명한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한다. 특정 인물은 책임의 주체로, 다른 인물은 보호의 대상으로 제시되며, 서사는 감정과 정체성을 자극하며 확산된다. 이 과정에서 숫자는 판단의 기준이 되기보다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요소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정보를 이해할 때는 표현 형식과 전달 방식의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문장, 이야기, 통계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며, 여기에 감정과 정체성을 자극하는 요소가 결합될 경우 확산 양상은 크게 달라진다. 차트 해석 능력만으로는 이미 형성된 서사를 바로잡기 어렵다. 반대로 같은 자료라도 서사의 전제를 점검하는 데 사용될 경우 판단에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는 추상적인 문제가 아니다. 독일의 2024년 디지털 뉴스 조사에서 응답자의 41%는 뉴스 과잉으로 피로를 느낀다고 답했으며, 18~24세에서는 그 비율이 51%로 높아졌다. 온라인 뉴스의 주요 접점 역시 소셜미디어였다. 이러한 환경은 서사적 문해력이 공적 판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임을 보여준다.
서사적 문해력과 확산 구조
서사적 문해력은 사람들이 무엇에 주목하고 어떤 방식으로 반응하는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온라인 환경에서는 복잡한 사안이 짧고 감정적인 이야기로 재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책임의 대상이 명확히 설정되고, 갈등 구도가 단순화될수록 메시지는 빠르게 확산된다. 2025년 미국 정치 게시물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책임 주체가 분명히 제시된 게시물은 중립적인 게시물보다 리트윗이 약 170% 많았고, 긍정적 정체성을 부여한 게시물 역시 약 55% 높은 확산을 보였다. 이는 사실을 나열하는 접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많은 경우 이야기가 먼저 인물과 책임, 갈등의 방향을 규정한다. 서사적 문해력은 증거를 해석하기에 앞서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식별하도록 한다.

주: 게시물을 특정 역할로 분류할 경우 확산 정도를 비교할 수 있지만, 결과는 분류 기준과 데이터 정제 방식에 크게 좌우된다.
플랫폼은 즉각적으로 포착 가능한 감정 반응을 우선시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 결과 분노와 집단 간 적대성이 강화된다. 참여도를 기준으로 정렬된 피드는 시간순 배열보다 분노가 담긴 게시물을 더 자주 노출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치 게시물에서 분노 표현 비율은 52%에서 62%로 증가했고, 외집단에 대한 적대적 표현도 38%에서 46%로 늘어났다. 2025년 관련 연구의 재분석에서는 게시물에 도덕적·감정적 표현이 하나 추가될 때 평균 공유가 약 13%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환경에서 서사적 문해력은 메시지가 사실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지, 감정 자극을 통해 확산을 노리는지 구분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주: 시 시점과 작성자 특성, 언어를 통제해도 서사적 게시물의 공유는 더 많아 드라마 요소의 추가 효과가 확인됐다.
수치 해석이 약한 환경과 이야기의 설득력
단순한 서사가 강한 설득력을 갖는 배경에는 수치를 해석하는 능력의 한계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에 따르면 15세 학생의 31%는 수학 기초 수준(Level 2)에 미치지 못했다. 성인도 크게 다르지 않다. OECD 성인역량조사에서 성인의 25%는 수리력 Level 1 이하였고, 상위 수준에 해당하는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비율과 기준선을 정확히 읽기 어려운 환경에서는 숫자가 설명력을 잃고, 그 자리를 단순한 이야기가 대신하게 된다.
통계는 이야기보다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수치에 익숙하지 않을수록 이러한 차이는 더 커진다. 평균이나 추세보다 구체적인 사례가 더 강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영상 뉴스의 확산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영상은 인물과 갈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만, 규모 차이나 불확실성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서사적 문해력은 이러한 특성을 전제로, 누락된 맥락을 짚고 숫자를 비교 가능한 기준으로 환원하도록 요구한다.
‘지출이 두 배로 늘었다’, ‘범죄가 200% 증가했다’라는 표현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기준과 기간, 산정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서사적 문해력은 제시된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떤 조건에서 산출된 수치인지를 먼저 확인하도록 한다. 분모 변화나 정의 변경만으로도 비율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복잡한 통계 지식이 없어도 이러한 왜곡은 충분히 가려낼 수 있다. 단일 사례나 강한 표현이 전체 흐름을 대표하는지 점검하는 태도는, 수치 해석이 어려운 환경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학교가 가르쳐야 할 판단의 기본
서사적 문해력은 특정한 결론이나 견해를 주입하지 않으면서도 학교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이다. 핵심은 공적 주장 전반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판단 절차를 익히는 데 있다. 학생들은 먼저 주장에 등장하는 인물과 핵심 주장, 인과 관계를 구분한다. 무엇이 명확히 제시되고 무엇이 암시되는지를 살핀 뒤, 해당 주장이 성립하려면 어떤 사실이 필요할지를 점검한다. 숫자는 이 과정 이후에 사용된다.
이 절차는 교과 전반에 적용할 수 있다. 역사 수업에서는 연설문이나 공식 문서에 나타난 역할 구도를 정리해 사료와 비교하고, 과학 수업에서는 널리 퍼진 주장을 검증 가능한 질문으로 전환해 자료를 검토한다. 수학 수업에서는 기준선과 분모 설정, 불확실성의 범위를 분명히 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러한 접근은 무분별한 불신을 키우기보다, 근거를 확인하려는 태도를 강화한다.
서사적 문해력이 정치적 편향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나 교사의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 역량의 목적은 특정 입장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주장을 검토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 있다. 교사는 결론을 제시하기보다 판단에 필요한 질문과 기준을 안내하면 된다. 2025년 연구에 따르면 개별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은 해당 사안에 국한된 영향을 보인 반면, 짧은 미디어 문해 교육은 즉각적인 효과와 함께 2주 뒤에도 전반적인 사실 판단 능력을 높였다. 이는 반복적인 반박보다 판단 습관을 기르는 접근이 더 효과적임을 보여준다.
플랫폼 데이터의 신뢰와 공개 기준
서사적 문해력은 정보 확산을 분석하는 정책 논의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 관련 연구의 상당수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의존하지만, 그 정확성과 일관성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2025년 말 한 플랫폼이 계정의 국가 정보를 표시하는 기능을 도입했다가 논란이 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일부 계정의 표시가 실제와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플랫폼은 오래된 계정을 중심으로 해당 정보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인정하며 일부 위치 정보를 삭제했다. 이후 부정확한 표시를 근거로 특정 이용자를 외국 세력과 연관 짓는 주장이 확산되기도 했다. 이는 데이터의 신뢰가 낮을 경우 오히려 오해를 증폭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서사적 문해력 교육은 정보 환경을 정비하는 정책과 함께 추진될 때 효과가 분명해진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의 56%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접하고 있으며, 85%는 온라인 허위 정보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투명성이 기본 조건이 된다. 정책적으로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범위에서 플랫폼 데이터에 대한 독립적 접근 기준을 마련하고, 정보 표시 방식이 변경될 경우 그 내용을 공개하도록 할 수 있다. 교육 당국 역시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육 기술과 소통 도구에 대한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 공공 정보는 조회 수나 반응이 아니라 이해도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조작되거나 편집된 콘텐츠는 명확히 구분해 표시해야 한다.
통계의 설득력이 빠르게 약화되는 환경에서는 자료의 양을 늘리는 방식만으로 시민의 판단력을 높이기 어렵다. 이야기가 더 오래 기억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교육은 이를 통제하고 해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서사적 문해력은 강한 이야기가 판단을 좌우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숫자를 맥락 속에 두고 비교 기준과 적용 대상을 확인하도록 만든다. 학교 교육과 행정, 정책은 이러한 판단 절차가 일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다. 목표는 분명하다. 이야기에 반응하되, 사실을 기억하는 시민을 길러내는 일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Narrative Literacy Is the New Civic Basic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