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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공급망이 가르는 중앙아시아의 녹색 전환

[딥폴리시] 공급망이 가르는 중앙아시아의 녹색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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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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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읽고, 사실 위에 통찰을 더하는 글을 전합니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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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심 공급망이 속도와 비용 기준선 형성
EU는 규칙·전력망·인력, 시스템 경쟁력 구축
현지 기술·데이터가 통제권 결정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녹색 전환은 정치적 선언보다 조달 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은 패널과 터빈, 인버터, 케이블, 배터리 같은 물리적 장비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산업이다. 이 장비들은 단순한 수입에 그치지 않는다. 납기 일정과 성능 보증, 예비 부품 확보, 장기 유지보수 체계가 하나의 묶음으로 작동하며, 이러한 조건들이 프로젝트의 속도와 비용을 동시에 결정한다. 공급망이 가까울수록 가격 부담은 낮아지고, 사업 일정의 불확실성도 줄어든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의 녹색 전환은 선언이나 목표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장비를 조달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경쟁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국 중심 공급망이 기본값이 된 이유

중앙아시아의 녹색 전환에서 중국은 이미 기본 공급자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원자재부터 완제품까지 태양광 패널 부품의 80% 이상을 생산하고 있으며, 대량 공급과 빠른 납기, 낮은 단가를 동시에 충족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로 평가된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설치 이후에도 매뉴얼,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인력이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산업이다. 이 때문에 장비 공급사가 교육과 서비스까지 함께 제공하는 구조에서는, 장비의 출처가 곧 운영 체계로 이어진다. 초기 계약 가격이 낮아 보여도 현지 기술 축적과 데이터 접근권이 없으면 장기 비용은 빠르게 커진다. 경쟁의 무대는 외교 현장이 아니다. 대학 실습실과 발전소 관제실에서 이미 결과가 갈리고 있다.

이 흐름은 중앙아시아가 이제 ‘계획 단계’를 지나 실제 구매 국면에 들어서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카자흐스탄은 재생에너지 경매를 진행하며 206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전력 구조에서는 여전히 석탄과 가스 비중이 크다. 우즈베키스탄은 2024년 한 해에만 태양광 약 1,800메가와트(MW), 풍력 500MW를 추가했는데, 이는 국제재생에너지기구(International Renewable Energy Agency·IRENA) 통계에서 확인된다. 여기에 걸프 지역 개발사들이 금융을 제공하고 중국 장비를 결합해 발전소를 빠르게 건설하는 방식이 확산됐다. 결국 중앙아시아의 녹색 전환에서 승부를 가르는 기준은 분명하다. 누가 더 빠르고, 더 낮은 비용으로 전력을 공급하느냐다.

규칙으로 작동하는 EU의 다른 경쟁력

중국이 공급망에서 앞서는 상황에서도 유럽연합(European Union·EU)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 EU의 접근은 속도가 아니라 규칙에 기반한다. EU와 연계된 자금은 공개 입찰, 영향 평가, 명확한 감독을 전제로 움직이며, 이 절차가 프로젝트의 기본 조건으로 작동한다. 단기적으로는 과정이 복잡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부실 공사, 숨은 비용, 사후 분쟁 위험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진다. 실제로 유럽부흥개발은행(European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EBRD)은 2023년 중앙아시아에 12억 유로(약 1조9,000억원)를 투자했고, 이 중 60%를 녹색 분야에 배정했다. 이는 가치 선언이 아닌 계약 안정성과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된다.

이런 규칙 기반 접근은 최근 투자 확대 흐름에서도 확인된다. 2025년 4월 열린 첫 EU–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EU는 청정에너지와 핵심 원자재를 포함한 120억 유로(약 18조9,000억원) 규모의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 패키지를 제시했다. 독일외교협의회(Germa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DGAP)는 2024~2025년 동안 유럽과 국제기구가 글로벌 게이트웨이를 통해 중앙아시아에 220억 유로(약 34조7,000억원)를 약정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중간회랑(Middle Corridor)에 대한 투자는 물류 비용과 장비 도착 속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류 여건이 개선될수록 공급자는 늘고, 협상력도 함께 커진다. EU의 강점은 장비 자체가 아니다. 전체 시스템 비용을 낮추는 구조 설계에 있다.

중앙아시아 투자에서 드러난 EBRD의 녹색 자금 집중
주: 2023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중앙아시아 투자 규모는 12억 유로(약 1조8000억원)였으며, 이 가운데 60%가 녹색 투자로 집행돼 EU 연계
금융이 이미 친환경 분야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비와 자본이 결합된 새 투자 구조

중국의 역할은 단순한 인프라 공급을 넘어 변화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여전히 엔지니어링과 전력망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지만, 최근에는 장비·서비스·운영을 하나로 묶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사례가 늘었다. 패널과 인버터, 기술 인력을 한 번에 제공하면 프로젝트 일정은 눈에 띄게 단축된다. 반면 특정 기술 표준이 고착될 가능성도 함께 커졌다. 초기 계약 비용이 낮아 보여도 상호운용성과 데이터 접근이 제한되면, 장기적으로 선택지는 빠르게 줄어든다. 이 단계에서 교육 체계와 운영 주도권의 향방도 함께 결정된다.

이 구조에 걸프 자본이 결합하면서 자금 흐름은 더욱 빨라졌다. 중앙아시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기업들은 독립발전사업자(Independent Power Producer·IPP)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마스다르(Masdar)는 2024년 11월 우즈베키스탄에서 1기가와트(GW) 풍력 발전 프로젝트를 개발하기로 했고, 2023년에는 2GW 규모의 추가 풍력 프로젝트에도 합의했다. ACWA파워(ACWA Power)는 2024년 5월 중앙아시아 최대 규모인 5GW 풍력 발전단지에 48억5,000만 달러(약 6조6,000억원)를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프로젝트는 설비 용량을 빠르게 늘리는 효과를 낸다. 동시에 인허가, 전력망, 분쟁 처리 체계의 취약성도 함께 드러낸다. 자금이 몰릴수록 제도 정비에 대한 압박은 커지고 있다.

화석연료 비중이 여전히 높은 카자흐스탄 전력 구조
주: 2023년 카자흐스탄의 전력 생산은 화석연료 기반이 9만9116GWh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재생에너지는 1만4470GWh에 그쳐 신규 설비 확대에도 불구하고 전력 믹스 전환 속도가 제한적인 모습을 보였다.

통제권을 가르는 사람과 기술

이 단계에서 중앙아시아의 가장 큰 과제는 장비가 아니다. 사람이다. 터빈과 패널은 수입할 수 있지만, 이를 설치하고 운영하며 감독할 인력은 외부에 쉽게 의존할 수 없다. 전력망 혼잡을 관리할 엔지니어, 고온과 먼지 환경에서 설비를 유지할 기술자, 계약서를 읽고 조건을 판단할 공공 인력이 부족하면 비용은 곧바로 올라간다. 프로젝트 지연이 반복되고 분쟁이 늘며, 설치된 설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사례도 이어진다. 녹색 전환의 주도권이 자금에서 운영 역량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이 공백을 메우는 데서 EU의 역할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유럽대외관계청(European External Action Service·EEAS)은 중앙아시아의 교육과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다르야(DARYA)와 에라스무스 플러스(Erasmus+)를 제시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에라스무스+를 통해 3,300명 이상의 학생과 교직원이 유럽에서 단기 연수를 받았고, 1,500명 이상의 유럽 인력이 카자흐스탄에서 교육을 받았다. 2021~2027년 중앙아시아를 위한 에라스무스+ 예산은 7,600만 유로(약 1,200억원)에 이른다. 이는 규제 담당자와 전력망 엔지니어, 프로젝트 관리 인력을 체계적으로 키우는 기반으로 작동한다.

중국도 인적 연결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공자학원(Confucius Institute)을 중심으로 한 교육 네트워크가 중앙아시아 전반으로 확산됐다. 현재 이 지역에는 13개의 공자학원이 운영 중이다. 장비 매뉴얼과 소프트웨어가 중국어로 제공되는 현실에서, 언어와 기술 교육은 현장 운영의 효율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문제는 선택이 아닌 조건이다. 중앙아시아 정부가 모든 입찰에 개방형 기술 기준, 성능 데이터 공개, 현지 교육과 유지보수 계획을 포함하면 통제력은 유지된다. 프로젝트를 나눠 단일 기업 의존을 낮추는 방식도 가능하다. 자금을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는 순간, 공급망의 80%가 중국에 있더라도 통제권은 지역에 남는다. 결국 녹색 전환의 성패는 전력량이 아니라 역량에서 갈린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entral Asia’s Green Transition Will Be Won by the Cheapest Supply Chain—and the Smartest Classroom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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