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양극화] 美 노동시장 대전환기 진입, AI 숙련도에 따른 소득 불평등 가속
[노동시장 양극화] 美 노동시장 대전환기 진입, AI 숙련도에 따른 소득 불평등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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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확산에 따른 노동시장 보상 체계 재편 자동화 가속 및 전 산업 확산형 고용 축소 압력 생산성 증대 기반 자산·소득 격차 확대 구조

미국 노동시장이 인공지능(AI)발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이 산업 현장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기술 역량에 따른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동시에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과 자동화 계획이 발표되면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AI 프리미엄을 누리는 소수와 일자리 불안을 겪는 다수로 노동시장을 양극화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고학력 노동자는 AI를 통해 생산성과 임금을 높일 수 있지만 단순 업무 종사자나 청년층은 채용 기피와 대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 프리미엄’, 임금 격차 확대
22일 한국노동연구원은 국제노동브리프에 게재한 '미국 : AI 도입 가속화와 노동시장의 변화' 보고서를 통해 미국 내 AI 사용 빈도가 최근 몇 년 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실제 미국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의 21%가 업무 일부로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불과 1년 전(16%)과 비교해 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특히 50세 미만의 고학력 노동자층에서 활용도가 가장 높았다.
미 여론조사기관 갤럽(Gallup)이 올해 6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1년에 여러 번 AI를 직무에 활용하는 비율이 2023년 21%에서 2025년 40%로 2년 만에 약 2배 가까이 급증했고, 매일 활용한다고 응답한 비율도 4%에서 8%로 늘어났다. 특히 사용 비율이 가장 높은 산업은 기술 (50%), 전문 서비스(34%), 금융(32%) 순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일상에 자리 잡은 AI 기술 역량은 이제 노동자의 몸값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 노동시장 분석 플랫폼 라이트캐스트(Lightcast)가 10억 건 이상의 구인 공고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AI 기술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그렇지 않은 일자리에 비해 평균 28%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AI 숙련도에 따른 소득 불평등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한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AI 영향권에 있는 주요 직업군 고용변화(2023~2033년)’ 보고서에 의하면 AI 활용도가 높은 직군일수록 고용 증가율이 높게 나타났다. 소프트웨어 개발자(17.9%), 개인 재무 상담사(17.1%), 데이터베이스 설계사(10.8%) 등은 성장할 전망이지만 보험감정사(-9.2%), 손해사정사(-4.4%), 신용분석가(-3.9%) 등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기술 개발자와 투자자가 이익을 독식하고 대다수 노동자는 일자리 상실의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연구진은 "고학력 및 전문직 노동자는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임금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는 반면,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층이나 반복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채용 기피나 AI 대체 등의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짚었다.
미국 전역 덮친 ‘AI발 감원’
실제로 현재 도입된 AI 기술은 미국 노동시장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미 에너지부(DOE) 산하 오크리지국립연구소(ORNL) 공동 연구진이 AI 기술이 미국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빙산 지수(Iceberg Index)’를 개발해 추적한 결과, AI 기술의 가치는 미 노동 인구 총임금의 11.7%(1조2,000억 달러·약 1,773조원)에 달했다. AI가 미국 전체 노동시장의 11.7%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미국 내 노동자 1억5,100만 명이 하는 일을 하나하나 쪼개 ‘디지털 업무 목록’으로 만든 뒤, 그 일을 AI가 실제로 얼마나 수행할 수 있는지 비교했다. 각 직업이 요구하는 3만2,000여 개의 기술(skill)과 AI 시스템이 제공하는 1만3,000여 개의 기능을 일대일로 매칭한 것으로, ‘사람이 하는 일 목록’과 ‘AI가 할 수 있는 일 목록’을 비교해 겹치는 부분을 분석한 셈이다.
분석 결과 주목도가 높은 테크·IT 업종에서의 AI 활용은 전체 임금 가치의 2.2%(2,110억 달러·약 312조원) 수준인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인사관리(HR), 행정, 금융, 사무 등 여러 업종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AI 기술의 가치는 11.7% 수준에 이르렀다. 채용 축소나 일부 직무의 재편처럼 우리가 체감하는 변화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직무 내부에서 AI가 수행할 수 있는 잠재 업무량은 그보다 5배 이상 크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이런 영향은 실리콘밸리 등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비도시 지역을 포함한 미국 50개 주(州) 전체에 광범위하게 확산해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는 최근 미국 기업들의 효율화 흐름과도 맞물린다. 미 고용정보업체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CG&C)에 따르면 미 전국 고용주들은 지난달 들어서만 7만1,321건의 일자리 감축을 발표했다. 이는 전년 동월(5만7,727건) 대비 24% 늘어난 규모다. 또한 올해 들어 11월까지 총 해고 발표 건수는 117만82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76만1,358건 대비 54%나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1∼11월 기준으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었던 지난 2020년의 222만7,725건 이후 최대 규모다.
기업들은 올해 들어 일자리를 줄인 사유로 AI 기술 확산을 가장 많이 꼽았는데, 올해 미국에서 발생한 4만8,000개 이상의 일자리 감축에 AI가 관련됐으며 10월에만 3만1,000개의 일자리가 AI로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고용정보업체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도 보고서에서 11월 민간기업 고용이 전월 대비 3만2,000명 감소했다고 밝히며 고용 약화를 시사했다. 이는 지난 2023년 3월(5만3,000명 감소) 이후 2년 8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AI 생산성 증대가 촉발한 부의 양극화
이렇듯 미국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을 AI 투자에 쏟아붓는 대신, 불필요한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대규모 인력 조정에 나서고 있다. 첫 시작은 빅테크였다. 아마존은 물류창고 로봇을 통해 축적한 자동화 경험을 이제 사무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는 물리적 노동에서 인지적 노동으로 자동화의 칼날이 옮겨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아마존은 지난달에도 생성형 AI 도입을 명분으로 약 1만4,000개의 일자리를 감축하겠다고 밝혔으며, 향후 자동화율을 75%까지 끌어올리고 2027년까지 신규 고용 16만 명을 회피한다는 계획이다. 월마트 역시 “AI가 문자 그대로 모든 일자리를 변화시킬 것”이라며 매장 및 물류센터 업무들이 AI로 대체되거나 보완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방출 후 확보'라는 새로운 공식을 보여줬다. 수천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해고해 마련한 재원으로 AI 스타트업 인플렉션 AI(Inflection AI)의 핵심 인력을 통째로 흡수했다. 평범한 개발자 수천명의 가치보다, 소수의 엘리트 AI 아키텍트의 가치가 더 높다는 냉정한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메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중간 관리자를 대거 해고하고 그 자원을 최상위 0.1% ‘슈퍼스타’ AI 인재 영입에 쏟아붓는 극단적인 양극화 전략을 택했다.
이러한 흐름은 기술 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IBM은 이미 7,800개의 후선 업무(back-office) 직책을 AI로 대체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으며, 기업용 소프트웨어의 최강자 SAP 역시 비즈니스 AI에 집중하기 위해 최대 1만 명에 달하는 대대적인 인력 재편에 나섰다. 언어 학습 앱 듀오링고(Duolingo)는 콘텐츠 제작에 AI를 활용하며 계약직 인력의 10%를 줄였고, 핀테크 기업 클라나(Klarna)는 AI 챗봇이 700명의 콜센터 직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AI 기반 효율성이라는 목표 아래 노동력이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소득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연구보고서 'AI 도입과 불평등(AI adoption and inequality)'에 따르면 고소득 노동일수록 AI의 도움을 받아 노동 생산성이 더 향상될 수 있고, 이는 다시 임금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AI가 데이터 효율성을 높여 자본 수익률까지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점도 노동자에 유리한 요소로 꼽혔다.
결국 AI의 업무 대체에도 노동생산성 향상, 자본수익률 증가 등에 힘입어 부의 지니계수는 7.18%p 상승할 것으로 추정됐다. 임금 불평등 지니계수의 완화 수준(-1.73%p)과 비교하면 상승 폭이 크다. 그만큼 고소득 노동자는 임금 소득 감소 폭보다 자본 소득의 확대 효과가 더 크다는 얘기다. 기업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향후 AI를 빠르게 도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한 분석 모델에서는 이 같은 경향이 더욱 뚜렷했다. 해당 모델에서 AI 도입으로 기업의 총 산출은 20.7% 늘며 생산성이 크게 올랐지만, 자산 지니계수는 13.7%포인트 상승했다. 임금 지니계수는 3.9%포인트 낮아졌으나, 자산 불평등 확대가 부의 격차를 더 벌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