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유럽 디지털 규제의 다음 단계, 집행을 넘어 성장 설계로
[딥폴리시] 유럽 디지털 규제의 다음 단계, 집행을 넘어 성장 설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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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해진 DMA·DSA, 그러나 커지기 어려운 유럽 기업 환경 복잡한 준수 비용이 자본·인재·컴퓨팅 격차로 연결되는 구조 단일 준수 지침서·단일 창구, 규제를 성장 인프라로 전환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의 디지털 규제는 이제 실질적인 집행력을 갖추기 시작했지만, 그 방식은 기술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도 함께 나온다. 2025년 4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 DMA)에 따라 애플(Apple)에 5억 유로(약 7,500억원), 메타(Meta)에 2억 유로(약 3,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규제가 선언적 수준을 넘어 실제로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조치였다.
반면 같은 시기 유럽의 기술 성장 기반은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2023년 미국의 인공지능(AI) 투자 규모가 약 625억 유로(약 94조원)에 달한 데 비해, EU와 영국을 합친 투자는 약 90억 유로(약 13조5,000억원)에 그쳤다. 규제의 강도는 높아졌지만, 기업이 성장하고 확장할 수 있는 환경은 오히려 좁아진 셈이다. 이 간극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 DSA)의 단순화 필요성이 점차 부각되고 있다.
강력한 DMA·DSA, 유럽 디지털 시장의 기준선
DMA와 DSA는 유럽 디지털 시장의 질서를 재정립하기 위한 핵심 규제 장치다. DMA는 앱스토어, 검색엔진, 소셜미디어, 광고 플랫폼 등 이른바 ‘게이트키퍼(Gatekeeper)’의 시장 지배 행위를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자사 서비스 우대나 경쟁 서비스 차단을 금지하고,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의 최대 10%(재범의 경우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3개 서비스를 게이트키퍼로 지정했으며, 애플의 iPadOS를 추가하는 한편 Booking.com을 포함하고 Facebook Marketplace는 제외했다. 이는 경쟁을 회복하고 시장 왜곡을 초기 단계에서 바로잡겠다는 규제 의도를 반영한 조치다.
DSA는 이 틀을 보완한다. 모든 온라인 서비스를 규율 대상으로 삼되, 이용자 수 4,500만 명을 넘는 초대형 온라인 플랫폼(Very Large Online Platforms)과 검색엔진에는 보다 엄격한 의무를 부과한다. 이들은 시스템적 위험에 대한 평가와 완화 조치를 수행해야 하고, 승인된 연구자에게 관련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전 세계 매출의 최대 6%까지 제재가 가능하다. DSA는 2023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됐으며, 2024년 2월 17일부터 모든 플랫폼에 전면 적용됐다.
DMA와 DSA는 이용자 보호와 공정 경쟁이라는 기준선을 분명히 세웠다. 다만 논쟁은 바로 그 다음 단계, 즉 이 규제가 성장과 혁신의 환경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주: 2024년 미국의 민간 AI 투자는 1,091억 달러(약 157조원)로, 중국 93억 달러(약 13조원)와 영국 45억 달러(약 6조원)를 크게 웃돌았다. 투자 규모
격차가 기술 축적과 시장 지배력 차이로 이어지는 구조를 보여준다.
복잡한 준수 비용, 성장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
이 기준선이 지나치게 복잡한 준수 부담으로 작동하면서, 유럽 기업의 성장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치는 이 간극을 분명히 보여준다. 2023년 기준 인공지능(AI) 투자 규모는 미국이 625억 유로(약 94조원), 중국이 약 73억 유로(약 11조원)를 기록한 반면, EU와 영국을 합친 규모는 90억 유로(약 13조5,000억원)에 그쳤다. 2024년에는 미국의 민간 AI 투자가 1,090억 달러(약 157조원)로 확대되며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같은 해 스탠퍼드 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Stanford Human-Centered AI, Stanford HAI)는 최상위 AI 모델의 상당수가 미국에서 개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컴퓨팅 자원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비영리 AI 연구기관 에폭AI(Epoch AI)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전 세계 GPU 클러스터 성능의 75%가 미국에 집중돼 있고, 중국은 15%, 기타 지역은 10%를 차지했다. 유럽에도 유럽고성능컴퓨팅공동체(EuroHPC)의 LUMI와 같은 공공 슈퍼컴퓨터가 존재하지만, 대규모 민간 AI 모델 학습에 활용될 수 있는 인프라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런 환경에서 유럽의 스타트업과 중견 기업들은 복잡한 규제 해석과 보고 의무에 상당한 자원을 투입하는 반면, 경쟁국 기업들은 더 많은 자본과 컴퓨팅 자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규제의 존재 자체라기보다, 규제를 준수하는 방식과 그에 따르는 비용 구조다.
단일 준수 지침서와 단일 창구가 높이는 실행력
이 부담을 줄이는 해법은 규제를 약화하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규제의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첫째, DMA와 DSA 관련 지침을 하나의 통합된 매뉴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기업들은 수많은 공지와 해석 문서, 플랫폼별 협의 내용을 개별적으로 따라가야 한다. 집행위원회가 정기적으로 갱신하는 단일 ‘DMA–DSA 준수 매뉴얼’을 제공한다면, 법 조항은 법률 해석의 대상이 아닌 기술팀이 즉시 적용할 수 있는 실행 기준으로 전환된다. 기본 브라우저 설정, 광고 표시 방식, 추천 알고리즘 선택권과 같은 항목을 표준화하면 기업은 한 번 구축한 설계를 여러 서비스에 반복 적용할 수 있다.
둘째, 분절된 보고 체계를 하나로 묶어야 한다. 법마다 별도의 보고를 요구하는 현 구조에서는 중복 비용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집행위원회의 단일 온라인 포털을 통해 DMA와 DSA 보고를 통합 처리하면 기업의 행정 부담은 줄어들고, 감독 당국은 기계 판독이 가능한 정형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2025년 11월 발표된 디지털 패키지(Digital Package)가 제시한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규칙을 줄이지 않더라도, 절차를 정리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주:2025년 5월 기준 전 세계 GPU 클러스터 성능의 75%가 미국에 집중돼 있고, 중국은 15%, 기타 지역은 10%를 차지했다. 대규모 AI 학습과 배포에
필요한 핵심 연산 자원이 특정 국가에 쏠려 있음을 보여준다.
안전 패턴공공·컴퓨팅 연계, 규제를 성장 도구로
마지막 단계는 규제를 실제 성장 지원 수단과 연결하는 것이다. DSA는 이미 ‘안전한 설계 패턴(safe-by-design)’의 활용을 권장하고 있다. 집행위원회가 아동 보호 설정, 광고 제한, 추천 알고리즘 제어와 같은 영역에서 사전 승인된 설계 모델을 제시한다면, 이를 적용한 기업은 원칙적으로 규제를 준수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면제나 특혜가 아니라, 기업이 예측 가능한 기준 위에서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여기에 유럽이 추진 중인 AI 팩토리(AI Factories)와 공공 컴퓨팅 자원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 DMA·DSA 준수 요건을 충족한 기업에 검증된 데이터 처리 모듈과 컴퓨팅 접근권을 제공하면, 스타트업은 반복적인 법률 검토와 재작업에 쓰는 시간을 줄이고 제품과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다. DSA는 현재 검토 단계에 있고, DMA 역시 2026년 5월까지 공식 검토가 예정돼 있다.
이 과정에서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동일한 이용자 보호를 더 낮은 비용으로 달성하고 있는가, 규칙의 변경 주기는 예측 가능한가, 그리고 유럽 기업의 준수 비용을 실제로 낮추고 있는가다.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 때, DMA와 DSA는 성장의 기반으로 기능하게 된다.
규제의 끝은 집행이 아닌 성장
유럽의 디지털 법은 이미 방향을 제시했다. 이제 과제는 집행의 강도를 높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기업이 그 규칙 위에서 실제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완성하는 일이다. 하나의 규칙집으로 해석 부담을 줄이고, 하나의 창구로 행정 비용을 낮추며, 명확한 설계 기준으로 개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공공 컴퓨팅과 데이터 접근을 준수 체계와 연계하는 방식이 핵심이다. 이 네 가지가 함께 작동할 때 규제는 비용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조건이 된다. 유럽 기업은 법을 피하는 데 시간을 쓰는 대신, 제품과 서비스 확장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그 순간 DMA와 DSA은 권리 보호와 경쟁 질서를 지키는 틀을 넘어, 시장 성장을 뒷받침하는 기반으로 기능하게 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urning Europe’s Digital Laws into a Growth Driver: Simplifying DMA and DSA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