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發 VLCC 수요 흡수" 범용 시장 장악한 中 조선업계, 韓은 고부가가치 선박·美와의 협력으로 대응
"중동發 VLCC 수요 흡수" 범용 시장 장악한 中 조선업계, 韓은 고부가가치 선박·美와의 협력으로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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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조선업, 1분기 수주량 기준 글로벌 점유율 85% 육박 韓 업체들은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 실적 성장세 뚜렷 공고해지는 韓-美 조선 협력, 美 군함 시장서 韓 영향력 커져

올해 1분기 중국 조선업의 생산 및 수주 규모가 대폭 확대됐다. 중동 분쟁이 장기화하며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수요가 대폭 증가한 가운데,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범용 상선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이에 경쟁국인 한국 조선업계는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및 미국과의 조선 협력에 힘을 실으며 급변하는 시장 판도에 대응하고 있다.
中 조선업, 가격 경쟁력 앞세워 급성장
12일 중국 국가조선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의 선박 건조량은 1,568만DWT(재화중량톤수)로 전년 동기 대비 46% 늘었다. 이는 세계 총 건조량의 57.3%에 달하는 수치다. 신규 수주량은 5,953만DWT로 같은 기간 195.2% 급증했으며, 수주량 기준 세계 시장 점유율은 84.9%에 육박했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이 전 세계 18개 주요 선종 가운데 15개 선종의 신규 수주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특히 초대형 원유운반선, 대형 자동차운반선, 벌크선 등 1만TEU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에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했다는 설명이다.
중국 조선업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고 원유 수송 항로가 길어지면서 VLCC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보고서를 통해 1분기 발생한 글로벌 선박 발주 중 32%가 신규 유조선 계약이었으며, VLCC 주문은 75건에 달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는 역대 분기별 최대치다. 이러한 흐름 속 선가는 눈에 띄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올해 4월 말 기준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 기관 클락슨리서치의 신조선가지수(Newbuilding Price Index)는 183.41로 전월(182.07) 대비 1.34%, 2021년 4월(133.76) 대비 37% 뛰었다.
중국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과열된 시장을 공략했다. 업계에서는 중국 조선소의 VLCC 건조 가격이 한국 조선소보다 1,000만 달러(약 148억원)가량 저렴하다고 추산한다. 낮은 인건비와 저비용 체계로 묶인 국가 차원의 공급망·금융·설비 구조가 비용 절감 효과를 낳은 것이다. 중국은 국영 철강사와 조선소가 연결돼 있어 원자재 조달 단가가 낮으며, 정부 금융 지원으로 선수금환급보증·선박금융 비용 부담도 적다. 아울러 중국선박공업집단(CSSC)을 중심으로 엔진·기자재·블록 생산까지 내재화해 규모의 경제를 갖췄고, 대형 상선 위주의 표준화 생산 체계를 통해 건조 단가를 추가로 낮춤과 동시에 납기까지 줄였다. 중동 전쟁 발발로 선가와 운임이 나란히 급등하는 가운데, 빠르고 저렴하게 선박을 확보하고자 하는 선주들의 수요가 고스란히 모여들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韓의 고부가가치 선박 경쟁력
중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조선업계의 경쟁 판도가 급변하는 가운데, 경쟁국인 한국의 조선업체들은 고부가가치 선박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일례로 HD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 HD현대중공업은 올해 초 미국계 선사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4,800억원) 규모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4척을 수주했고,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도 잇따라 대형 LNG선 계약을 따냈다. -162°C의 초저온 상태 LNG를 안정적으로 운송해야 하는 LNG선은 고도의 화물창 기술과 증발 가스 제어 기술을 요구하며, 한국 조선사들의 우위가 여전히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한국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 한화오션, 삼성중공업)는 글로벌 LNG 운반선 시장의 약 70%를 점유 중이다.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와 같은 초고부가 해양 플랜트 시장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FPSO는 심해 유전에서 원유를 생산하고 정제·저장하는 초대형 해양 설비로, 설계·엔지니어링·심해 운영 기술이 복합적으로 요구돼 중국이 아직 장악하지 못한 시장이다. 현시점 해당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는 기업으로는 한화오션이 꼽힌다. 한화오션은 브라질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의 FPSO ‘P-79’ 프로젝트를 23억 달러(약 3조4,150억원)에 수주해 올해 인도할 예정이며, 최근에는 차세대 표준형 FPSO 개발 및 브라질 현지 생산 기지 구축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 역시 산업 구조 재편의 핵심 축 중 하나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규제가 강화되면서 해운 시장에서는 메탄올·암모니아 추진선, 액화이산화탄소(LCO2) 운반선 등 차세대 친환경 선박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에 삼성중공업은 암모니아 연료 추진 VLAC(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HD한국조선해양도 메탄올·암모니아 이중 연료 엔진 기술 확보에 힘을 쏟는 중이다. 이는 아직 범용 상선의 가격 경쟁력에만 의존하는 중국 조선업계와는 명백히 차별화되는 요소다.
글로벌 조선업계가 중국 중심의 범용 시장과 한국 중심의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사실상 양분된 가운데, 한국 조선 3사는 나란히 호실적을 기록 중이다. 먼저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1분기 8조1,409억원의 매출액과 1조3,56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0.2%, 57.8% 많은 수치다. 같은 기간 한화오션의 영업이익도 78% 증가한 4,411억원에 육박했다. 삼성중공업은 2조9,023억원의 매출과 2,731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6% 늘었으며, 영업이익은 121% 폭증했다.

美 군함 시장 진출도 본격화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필두로 한 미국과의 조선 협력 구도 역시 한국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요소로 꼽힌다. 마스가는 지난해 7~8월 한미 관세·투자 협상 과정에서 공식 제안됐으며, 이후 양국 간 핵심 산업 협력 의제로 발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당시 한국 협상단은 미국 측에 1,500억 달러(약 222조7,000억원) 규모의 미국 조선업 투자·협력 계획을 제시했으며, 프로젝트에는 미국 조선소 투자, 공급망 재편, 현지 인력 양성,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선박 건조 협력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후 국내 조선 3사는 미국 해군의 군함 사업에 줄줄이 뛰어들며 현지 방산업계 내 존재감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HD현대와 헌팅턴잉걸스다. 두 기업은 미 해군이 발주하는 차세대 군수지원함 개념 설계 입찰에 공동 참여하기로 했다. HD현대의 설계 도면과 미국에 수출한 핵심 기자재, 건조 노하우를 기반으로 헌팅턴잉걸스 조선소에서 군함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현재 양측은 입찰을 위한 공동 제안서를 제출한 상태이며, 미국 내 공동 생산 기지 투자와 블록 모듈 공급 구조 등의 내용을 담은 합의각서(MOA)도 체결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의 자회사 나스코와 함께 미국 차세대 군수지원함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향후 정부 발주 선박과 상선 분야 협력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한화그룹은 미국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조선소를 통해 미 해군의 차세대 프리깃함(호위함) 설계 사업의 초기 단계인 개념 설계에 참여했다. 해당 사업은 '황금 함대'(Golden Fleet)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50억 달러(약 37조원)를 투입해 레전드급 설계를 기반으로 한 신형 프리깃함을 건조하는 것이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