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중동 리스크 확산 속 화석연료 한계 노출, 청정기술 경쟁 가속화
[딥테크] 중동 리스크 확산 속 화석연료 한계 노출, 청정기술 경쟁 가속화
입력
수정
호르무즈 리스크, 아시아 경제 부담 확대 재생에너지·전력망·EV 경쟁 에너지 안보 핵심 부상 청정기술 공급망 재편 속 국가별 산업 경쟁 본격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전 세계 재생에너지 신규 발전 설비 용량은 585기가와트(GW)를 기록했다. 같은 해 신규 전력 설비의 90% 이상이 재생에너지 설비였다. 특히 이러한 확대 흐름은 최근 국제 유가와 가스 가격 급등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나타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에너지 수입 비용은 국가 재정과 기업 수익성을 압박하는 핵심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따라 에너지 전환은 외부 충격에 따른 경제 불안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 대응 전략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위기 국면서 확인된 재생에너지 경쟁력
최근 이란발 에너지 충격은 화석연료 의존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다. 수입 연료 가격 상승은 물가와 전력 비용 부담 확대에 그치지 않고 성장 둔화와 재정 악화, 가계 소비 위축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실제로 중동 지역 긴장 고조 영향으로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2026년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5.1%에서 4.7%로 낮아졌으며, 유가 불안이 지속될 경우 4.2%까지 떨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식료품과 운송비, 차입 비용 등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가계 부담 완화를 위한 보조금 지출까지 늘어나면서 각국 재정 여력도 빠르게 약화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일부에서는 석탄 중심 체제로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한 달간 집계된 데이터는 정반대 흐름을 보여준다. 화석연료 기반 발전량은 전년 대비 1% 감소했고, 가스 발전은 3% 줄었다. 반면 태양광 발전은 7%, 풍력 발전은 12% 증가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설비를 선제적으로 확대한 국가들이 에너지 충격 대응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에 따라 시장의 관심도 청정기술 경쟁에서 누가 주도권을 확보하고, 급증하는 수요를 장기 산업 역량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로 이동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 판도 바꾸는 청정기술 경쟁
재생에너지 확대 여부가 위기 대응력 차이로 나타나자, 각국의 경제 안보 전략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과거에는 원유 확보와 해상 운송로 보호 등 안정적인 연료 수급이 경제 안보 전략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에너지 수요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을 전기 기반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른다. 이에 따라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 배터리, 전기차(EV)는 외환 부담과 에너지 가격 변동, 해외 정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전략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가장 앞선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와 성숙한 공급망을 기반으로 글로벌 태양광 수요를 웃도는 생산 능력을 구축했으며,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에서도 독보적인 지배력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경쟁 구도 역시 빠르게 다변화하는 추세다. 인도는 통합 공급망 구축 정책을 앞세워 단순 조립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제조·표준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청정기술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이와 같이 각국은 특정 산유국 의존이 특정 기술 수출국 의존으로 옮겨가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전략 산업 육성과 공급망 다변화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청정기술 경쟁력 좌우하는 전력 시스템
청정기술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각국의 경쟁력은 전력 시스템 구축 역량에 따라 뚜렷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설비를 확대하더라도 안정적인 전력망과 저장 설비, 수요 반응 프로그램, 송배전 연결 체계, 합리적인 인허가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에너지 전환 효과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교통·난방 전기화가 확대될수록 전력망 안정성과 배전 효율 문제는 국가 에너지 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과제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아시아 다수 국가는 여전히 왜곡된 전기요금 체계와 비효율적인 배전 시스템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인도의 경우 중앙정부가 대규모 재생에너지 목표를 제시하더라도 지역 배전회사 운영 효율과 인허가 체계, 현장 행정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실제 보급 속도가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에너지 안보는 국가 단위 목표 설정만으로 구축되기 어렵고, 지역 단위 전력 운영 체계와 인프라 개선이 함께 추진돼야 실질적인 전환 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화석연료 보조금 줄이고 청정산업 육성 필요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는 실질적인 제약 요인으로 물가 상승과 긴축 재정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화석연료 가격 안정을 위해 투입되는 대규모 보조금 역시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연료 가격 억제를 위해 재정을 지속적으로 투입할 경우 전력망과 저장 설비, 대중교통, 산업 고도화 같은 미래 투자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석연료 보조금 부담이 커질수록 의료와 교육, 기반 시설 예산까지 위축되는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도 크다.
이에 따라 정책의 방향 역시 보편적 연료 보조금 지급보다 청정기술 투자 확대에 맞춰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전기버스와 공공 태양광, 고효율 냉방기기,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에너지 소비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분야에 재정을 집중해 장기적으로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취지다.
산업 정책의 무게중심이 국가별 특화 역량을 중심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모양새다. 한국과 일본은 첨단 부품과 지능형 전력망, 고부가가치 차량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베트남과 태국은 글로벌 EV 생산 거점으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이와 같이 각국이 석유 중심 에너지 체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환 속도를 높이면서, 앞으로 국가 경쟁력 역시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청정기술 산업 기반 수준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일 전망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Energy Shock Has Turned Renewable Energy Competition Into Asia’s Real Security Policy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