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국 족쇄 풀렸다" 美 병력 의존도 낮아진 독일, 국방비 증액·독자 군사 전략으로 재무장 본격화
"패전국 족쇄 풀렸다" 美 병력 의존도 낮아진 독일, 국방비 증액·독자 군사 전략으로 재무장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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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채 브레이크' 완화한 독일, 국방비 나날이 증액 美, 독일 주둔 미군 감축·미사일 배치 계획 철회 가능성 시사 독일 군사력 증강 명분 생겨, 독자적 군사 전략까지 수립

독일의 재무장 행보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해 ‘부채 브레이크(debt brake)’ 완화를 계기로 국방비 예산을 대폭 증액하며 자체적인 방위 역량을 빠르게 강화해 나가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이러한 흐름이 한층 가속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기존 안보 체계에 균열이 생기며 독일이 자체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국방력 강화 행보
4일(이하 현지시각) 인도 유라시안타임스(EurAsian Times)에 국제 안보 전문가 프라카시 난다(Prakash Nanda)가 기고한 글에 따르면, 최근 독일의 재무장 행보는 전후 유럽 안보의 균형을 재편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자료를 보면 독일의 올해 국방 지출은 1,270억 달러(약 183조원)에 육박한다. 같은 기간 영국의 국방 지출은 840억 달러(약 121조원), 프랑스는 700억 달러(약 101조원) 수준이다. 독일이 여타 유럽 주요국 대비 눈에 띄게 많은 비용을 방위 체계에 투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독일 정부는 지난달 내각회의에서 국방비 1,058억 유로(약 180조9,000억원)와 인프라 투자금 1,185억 유로(약 202조7,000억원)를 포함한 내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 의결했다. 독일 정부는 해당 지침을 토대로 부처별 작업을 거쳐 오는 7월께 2027년도 예산안을 확정하고, 이러한 기조를 유지해 2029년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을 3.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애틀랜틱카운슬 추산 기준 이 시점의 독일 연간 국방비는 1,890억 달러(약 275조원)에 달한다.
독일이 이처럼 국방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재정의 고삐를 풀었기 때문이다. 독일 의회는 지난해 헌법상 재정 준칙인 부채 브레이크를 완화하는 개헌안을 통과시키며 국방비 증액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GDP의 1%를 초과하는 국방비 지출에 대해 사실상 차입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독일은 향후 10년간 인프라·기후·안보 분야에 투입할 5,000억 유로(약 855조원) 규모의 특별기금도 신설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최대 재무장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독일 안보 체계서 발 빼는 美
이런 흐름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독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병력이 대거 감소할 가능성이 대두된 탓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 1일 독일 주둔 미군 약 5,000명을 철수시키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현재 독일에는 라인란트팔츠주 람슈타인미젠바흐(이하 람슈타인) 공군 기지 등을 중심으로 3만5,000~3만6,000명의 미군이 배치돼 있다. 외신들은 해당 결정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미국의 이란 군사작전을 공개 비판한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앞서 메르츠 총리는 지난달 27일 “미국이 명백한 출구 전략 없이 전쟁에 뛰어들었다”면서 “미국 전체가 이란에 의해 굴욕을 당하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다만 람슈타인 측은 당장 현지에서 미군이 철수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랄프 헤흘러 람슈타인 시장은 6일 외신과의 화상 간담회에서 "(미군 감축 발표 직후) 기지 연락사무소에 곧바로 연락했지만, 람슈타인이 영향을 받을 거라고는 별로 믿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5∼6년 사이 지역 학교 등 미군 관련 인프라에 막대한 자금이 투자됐다"며 "당연히 미국 대통령은 예측 불가능하지만, 미국인들이 여기서 철수한다는 징후나 분위기가 전혀 없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올라프 숄츠 전 독일 총리와 수립한 미사일 배치 계획을 철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메르츠 총리는 최근 해당 사안과 관련해 “미국 스스로도 충분한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현재 미국이 독일에 미사일을 보낼 여지는 거의 없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앞서 양국은 2024년 워싱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를 계기로 올해부터 독일에 미국의 지상 발사 미사일을 순환 배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에 대한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냉전 이후 처음으로 독일에 미국의 중거리급 타격 체계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계획에는 460㎞ 이상 사거리의 SM-6 미사일, 1,600㎞ 이상 사거리의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무기 다크 이글 등이 포함됐다.

패전국이 받던 압박 완화
독일은 미군의 영향력 약화가 갑작스럽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지난 1일 디 차이트와 도이체벨레(DW) 등 현지 매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부 장관은 “미군이 유럽과 독일에서 철수하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며 “NATO는 이제 더 유럽화돼야 하며, 유럽인들은 스스로의 안보를 위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군비 확충과 군수품 조달 속도 개선, 기반 시설 구축 등의 조치를 언급하며 “독일은 올바른 궤도에 올라와 있다”고 자신했다. 메르츠 총리 역시 미국의 독일 주둔 병력 감축 계획이 양국 정상 간 갈등과는 연관이 없으며, 기존 추진하던 장기 군사 계획의 연장선이라는 점을 강조 중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양국 간 균열이 독일에 오히려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지금까지 주독 미군은 단순 NATO 방위 차원을 넘어 전후 독일에 대한 전략적 관리와 견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 왔다는 해석이다. 실제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서독에 대규모 병력을 상주시켰다. 독일은 패전 이후 헌법상 군사 활동 제한 및 재무장 억제 구조 속에 편입됐고, 미국의 핵우산과 주독미군 체제에 자국 안보를 의존하게 됐다. 최근 두드러진 미국의 유럽 안보 개입 축소 기조는 독일 재무장의 정치적 명분 및 정당성을 강화하는 도화선이었던 셈이다.
급변하는 상황 속 독일은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한 독자적 군사 전략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러시아를 자국과 유럽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며 1955년 이후 처음으로 종합적 군사 전략을 수립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독일 국방부는 지난달 22일 일부 공개한 군사 전략 문건에서 "군사 전략의 초점은 당분간 독일과 유럽, 대서양 안보에 가장 중대하고 직접적인 위협인 러시아에 맞춰져 있다"며 "유럽 최대 경제국이자 자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최대 동맹국으로서 독일에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피스토리우스 장관 역시 현역 26만 명, 예비역 20만 명 등 병력 46만 명과 장거리 정밀 타격 무기 등을 확보해 2039년까지 연방군을 유럽 최강 재래식 군대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거듭 제시했다.
향후 호르무즈 해협에서 진행될 기뢰 제거 작전에도 독일의 병력이 투입될 예정이다. DW의 6일자 보도를 살펴보면, 독일 해군 소해함 '풀다'는 지난 5일 발트해 킬-비크 해군기지에서 출항해 지중해로 향했다. 독일군은 해당 함정을 NATO 기뢰 대응 부대에 편입하고, 국제 기뢰 제거 작전이 시작될 경우 즉각 투입할 수 있도록 대비하겠다는 방침이다. 독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뢰 제거 역량을 보유한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도 발트해의 잔존 기뢰와 불발탄 제거 작업을 지속해 왔다. 다만 독일 정부는 실제 군사 지원은 전쟁 종료 이후에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