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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 배급제까지 등장" 유럽·남아시아 강타한 중동發 에너지 충격, 글로벌 공급망도 '비상'

"연료 배급제까지 등장" 유럽·남아시아 강타한 중동發 에너지 충격, 글로벌 공급망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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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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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오일 쇼크 이상", 이란 전쟁에 혼란 빠진 에너지 시장
최악의 시나리오 대비하는 유럽, 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혼비백산'
식량·석유화학 등 글로벌 공급망 혼선도 지속

이란 전쟁으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에너지 수급난이 심화하는 추세다. 유럽연합(EU)은 1970년대 이후로 사실상 활용된 적이 없는 연료 배급제 시행 가능성을 시사했으며, 중동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남아시아 국가들도 연료 사용량 절감을 위해 각종 대책을 동원 중이다. 시장에서는 에너지 분야를 휩쓴 중동발(發) 리스크가 식량, 석유화학 등 글로벌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 이란 전쟁 영향으로 에너지 위기 가중

7일(이하 현지시각) 에너지 전문 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이란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위기가 전 세계적인 에너지 수요 파괴와 장기적 경기 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연료를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거나 구매량이 제한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슬로베니아는 최근 유럽 국가 중 최초로 50L(리터) 급유 제한을 도입했으며, EU 역시 공급망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단 요르겐센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3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는 장기적 위기가 될 것이며 에너지 가격이 매우 오랫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며 "아직 항공유와 디젤유 등 연료의 배급제를 시행할 단계는 아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료 배급제는 1970년대 오일 쇼크(석유 파동) 이후 좀처럼 시행되지 않던 제도다. 지난 1973년 아랍 산유국들은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 전쟁) 당시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 등의 국가에 대한 석유 공급을 차단하고, 석유 생산량을 감축한 바 있다. 그 결과 국제유가는 단기간 내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주요 석유 수입국들은 줄줄이 연료 배급제를 시행했다. 이는 세계 경제 및 금융 시장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으며, 그 영향은 장기간 지속됐다.

전문가들은 현 사태가 오일 쇼크와 필적하는 위기라고 보고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은 최근 프랑스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촉발된 현재의 석유·천연가스 위기가 1973년(1차 오일 쇼크), 1979년(2차 오일 쇼크), 2022년(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심각하다"며 "세계는 이 정도 규모의 에너지 공급 차질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진단했다. 투자은행(IB) 나틱시스 CIB의 아시아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도 "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유가가 급등했지만, 당시 세계 공급량은 5~7%만 감소했다"며 "현재의 위기는 전 세계 공급량 중 무려 20%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남아시아도 대응책 마련에 분주

중동 지역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남아시아 국가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파키스탄은 에너지 수급 차질을 이유로 2주간 휴교를 실시하기로 했고, 몰디브와 네팔은 가정용 액화석유가스(LPG) 배급제를 도입했다. 방글라데시는 대학에 휴교령을 내렸으며, 건물 내 에어컨 온도를 25도 이하로 설정하는 것을 금지했다. 태국은 공무원들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하고 계단 이용 및 가벼운 옷차림을 권고했다. 태국 최대 국영 에너지그룹인 타이석유공사(PTT)는 점심시간과 저녁 7시 이후에는 사내 전등을 끄기로 했다. 태국으로부터 연료 대부분을 수입하는 내륙국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서는 지난달 주유소 40% 이상이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세계 2위 LPG 수입국인 인도 국민의 일상생활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인도의 가정집, 결혼식 케이터링 업체 등은 숯이나 장작으로 요리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인도 정부가 비상권한을 발동해 산업용 LPG를 가정용으로 전환했음에도 불구하고 혼란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양상이다. 캄보디아에서는 한 에너지 기업이 이달 1일부터 조리·연료용 가스 공급을 중단했다. 이에 캄보디아 에너지부는 국민에게 전기밥솥과 전기레인지 사용을 늘려달라고 당부했다.

스리랑카의 경우 지난해 11월 발생한 사이클론의 충격에 이란 전쟁 영향이 겹치며 경제 붕괴 압박을 받고 있다. 스리랑카를 덮친 사이클론 디트와는 641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다. 당시 세계은행이 추산한 피해 규모는 자그마치 41억 달러(약 6조1,900억원)에 육박한다.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해 12월 복구를 위해 5,000억 루피(약 2조4,000억원)의 추가 지출을 발표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2억600만 달러(약 3,110억원)의 긴급 자금도 확보했다.

이는 이미 위태로웠던 스리랑카 경제 상황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앞서 2022년 스리랑카는 460억 달러(약 69조4,600억원)의 외채를 갚지 못해 디폴트 상태에 빠진 바 있다. 사실상 스리랑카에는 이란 전쟁의 여파를 견딜 여력이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 5일 AFP통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스리랑카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연료 배급제를 시행하고 유류 가격을 3분의 1 인상했으며, 전기요금도 최대 40% 올렸다. 지난 3일부터는 양수 비용 절감을 위해 수돗물 공급 시간 제한 조치도 시행 중이다.

적신호 들어온 글로벌 공급망

이란 전쟁이 에너지를 넘어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식량 공급망이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사실상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비료 물동량의 약 25%가 지나는 핵심 운송로다. 봄가을 파종기를 앞두고 전 세계의 수많은 농가가 비료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달 중동 지역 요소(질소 비료 원료) 수출 가격은 톤(t)당 670달러(약 98만원)로 전월 대비 38.1%, 작년 동기 대비 172.3% 급등했다. 같은 달 세계질소비료지수도 전월보다 35.2%, 작년보다 168.6% 뛰었다. 비료 원료인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MWh(메가와트시)당 53유로(약 9만원)로 전월 대비 62.4%, 전년 동기 대비 126.4% 상승했다.

곡물 가격도 뚜렷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콩 선물 가격은 톤당 430달러(약 63만원)로 전월보다 4.2%, 작년 동기 대비 16.5% 올랐다. 바이오디젤 수요가 확대되며 같은 달 대두유 및 팜유 선물 가격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4.2%, 11.7% 상승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 식량 가격지수도 전월 대비 2.4% 뛰었다. FAO는 향후 연료·비료 가격 상승이 전 세계 식품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으며, 농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앞으로 수개월에 걸쳐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석유화학 제품 공급도 눈에 띄게 불안정해지는 추세다. 지난 5일 CNN 보도에 따르면 이란 전쟁 발발 이후 한국에서는 쓰레기봉투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고, 일본에서는 만성 신부전 환자 치료에 쓰이는 의료용 플라스틱 튜브 부족 우려가 확산했다. 말레이시아의 장갑 제조업체들은 고무 라텍스 생산에 필요한 석유 원료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으며, 중국 저장성 하이닝의 한 폴리에스터 제조업체는 원료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신규 주문을 중단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포장재 가격이 두 배가량 뛰며 기업들이 포장 두께를 줄이거나 종이·유리·알루미늄·재활용 플라스틱 등 대체 소재를 검토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최근 알루미늄 기준 가격도 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란의 공격으로 아랍에미리트(UAE)의 에미레이트 글로벌 알루미늄(EGA), 바레인의 알루미늄 바레인 등 중동 주요 알루미늄 생산 거점이 줄줄이 멈춰선 결과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알루미늄 감산에 나서는 중동 기업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동은 세계 알루미늄 공급의 20%를 담당하는 핵심 생산지로 꼽힌다. 골드만삭스는 중동의 알루미늄 생산이 한 달만 중단돼도 알루미늄 가격이 톤당 3,600달러(약 530만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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