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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호르무즈에 발 묶인 美, 흔들리는 아시아 억지력

[딥폴리시] 호르무즈에 발 묶인 美, 흔들리는 아시아 억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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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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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되지 않은 정보는 거칠기 마련입니다. 파편화된 정보를 정리해 사회 현장을 부드럽고도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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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 장기화, 아시아로 전이되는 에너지 충격
美 역량 분산으로 전략 균형 약화
中 점진 압박 확대, 충돌 없이 국제 영향력 강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 기준 하루 평균 2,000만 배럴의 원유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이는 전 세계 석유 소비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로, 이 가운데 90%가 아시아로 향한다. 이 같은 수송 구조를 고려하면 중동에서 전쟁이 길어질수록 충격은 생산지를 넘어 주요 소비지인 아시아로 점차 확산될 수밖에 없다.

이 충격의 방향은 곧 전략 환경의 변화로 이어진다. 중동발 공급 차질과 유가 상승 압력이 아시아에 집중되면서, 동맹국들은 인도·태평양 전략보다 에너지 수급 안정을 우선 과제로 두게 된다. 이에 따라 미국 역시 외교와 군사 역량을 중동 대응에 먼저 투입하게 되고, 아시아에 쏟을 수 있는 전략적 여력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국은 전면 충돌 없이도 영향력을 확대할 여지가 생긴다. 미국이 다른 지역 현안에 대응하느라 역량을 나누는 사이, 중국은 압박 수위를 조절하며 대응 방식을 시험한다. 동시에 동맹국들이 인식하는 미국의 역할과 신뢰에도 균열이 쌓이면서 변화는 결국 지역 질서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키운다.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 상실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약화는 군대를 인도·태평양 밖으로 이동시키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외교 역량과 정책 우선순위의 무게중심이 중동으로 옮겨가면서 균열이 먼저 드러난다. 이 같은 변화는 이미 현실에서 확인된다. 동맹국 정상들이 중국 견제보다 유조선 호위 문제를 먼저 논의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예정됐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연기됐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역시 중국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미국을 찾았지만, 실제 의제는 호르무즈 해협 사태에 집중됐다. 미국이 걸프 해역 해상 호위에 동맹국의 참여를 요청했음에도 유럽과 아시아 주요국들은 전쟁 확산을 우려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처럼 긴급 현안이 장기 전략을 앞서기 시작하면서 아시아에 대한 집중도는 약해지고, 미국의 정책 일관성과 신뢰에도 점차 흔들림이 나타나고 있다.

주: 걸프 분쟁의 충격은 아시아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란과의 전쟁이 길어질수록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집중도도 함께 약해진다.

아시아 에너지 취약성 속 중국 기회 확대

에너지 구조는 또 다른 변수를 만든다. 표면적으로 보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에 있다. 반면 중국은 걸프 지역 의존도가 높다. 실제로 중국은 2024년 하루 평균 1,11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했고, 이란산 수출 물량의 80% 이상을 사들였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단기간 해상 통로를 통제할 경우 중국의 에너지 공급망을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구도는 달라진다. 해상 통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전략적 우위도 점차 희석된다. 특히 일본처럼 원유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거나, 대만처럼 액화천연가스(LNG)의 3분의 1을 카타르에서 들여오는 동맹국들이 먼저 충격을 떠안는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직접 개입하지 않고도, 유리한 위치 확보가 가능하다. 군사적 충돌을 피한 채 상황을 관망하면서 스스로를 안정적 중재자로 부각시킬 여지도 커진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부담은 커지고, 중국의 외교적 입지는 상대적으로 넓어지는 흐름이 나타날 공산이 크다.

주: 전쟁을 신속하고 제한적으로 마무리할 경우, 미국은 중국의 에너지 의존을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대만 침공 없이 실익 노리는 중국 전략

이러한 조건에서는 중국이 즉각적인 군사 행동에 나서지 않아도 충분한 실익을 확보할 수 있다. 최근 미 정보당국도 중국의 전면 충돌보다 ‘점진적 압박’을 통해 성과를 축적할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미국이 이란 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대응에 역량을 집중하는 사이, 중국은 군사적 신호와 무역 압박, 선전전을 병행하며 미국의 대응 의지와 동맹 결속을 지속적으로 가늠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는 인식의 영역에서 먼저 나타난다. 실제로 중국은 중동 갈등으로 확대된 에너지 불안을 활용해 대만에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공급’을 통일의 이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이 대만에 무기 지원을 이어가더라도 이 같은 방식의 압박을 제어하기는 쉽지 않다. 동맹국들이 미국의 우선순위에 의문을 갖기 시작하고, 중국이 공백을 메우는 안정적 행위자로 인식되는 순간 억지력은 내부에서부터 약해진다.

전략 핵심 변수는 속도와 절제

물론 미국의 전략적 패배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분쟁을 짧고 명확하게 마무리할 경우 오히려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중국의 에너지 구조는 여전히 취약성을 안고 있다. 실제로 공급 압박이 가해지자 최대 정유사 시노펙의 가동률이 10% 떨어지고 정부가 연료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까지 이어졌다. 만약 미국이 전쟁을 조기에 정리하고 해상 물류를 정상화하면서 이란과 중국을 잇는 비공식 에너지 통로를 차단할 경우, 중국에 상당한 비용 부담을 안길 수 있다.

다만 핵심은 목표의 범위다. 체제 전복과 같은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는 순간, 전쟁은 장기화되고 전략적 초점도 흐려지게 된다. 관건은 아시아 전략을 뒷받침할 여력을 얼마나 빠르게 회복하느냐다. 외교적 집중력이 분산되는 상황이 길어질수록 중국은 개입을 서두르기보다 관망하며 미국의 정치적 소모를 기다릴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물동량은 단순한 에너지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통로의 불안정은 동아시아 힘의 균형을 흔드는 직접 변수로 작용한다. 미국이 이 연결 구조를 제때 관리하지 못할 경우, 국제 질서는 인식의 변화 속에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미국의 공백’이라는 평가가 굳어질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Gulf Trap: Why a Long Iran War Could Become a US Pivot Away from Asia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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