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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뛰고 성장 꺾인다" 중동 리스크에 신음하는 유럽, 러시아산 에너지는 여전히 배척

"물가 뛰고 성장 꺾인다" 중동 리스크에 신음하는 유럽, 러시아산 에너지는 여전히 배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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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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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치솟는 유가, 유럽 물가 급등 전망
역내 일부 국가는 러시아와 에너지 거래 재개 주장, EU "현 기조 고수"
세계 경제 충격 현실화 전망, 유럽권 국가 성장률도 하방 압력

유럽 경제가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막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며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유럽권 국가들의 물가 상승 및 경제 성장 둔화 위기가 가시화하는 모양새다. 이에 일부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해 러시아와의 거래를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나섰으나, EU는 현재의 러시아산 에너지 배척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꺾지 않고 있다.

유럽, 호르무즈 해협 봉쇄 '직격탄'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동발(發) 에너지 리스크가 유럽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세계적인 에너지 가격 상승세를 촉발했고, 이는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는 유럽에 막대한 충격을 안겼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11일 "전쟁 발발 후 불과 열흘 만에 유럽이 지불한 화석 연료 수입 추가 비용만 30억 유로(약 5조1,300억원)에 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해 특히 큰 타격을 받을 만한 유럽권 국가로는 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이탈리아·독일·영국 등이 꼽힌다. 이탈리아의 올해 4분기 물가상승률이 기존 전망 대비 1%P 이상 뛰고, 유로존 전체와 영국의 예상 물가도 0.5%P 이상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에 더해 원가 경쟁력을 잃은 에너지 집약 기업들이 유럽에서 미국·중국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는 '산업 공동화'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지며 고용 시장마저 궁지에 몰렸다.

이 같은 위기를 버티기 위한 방어책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4년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만 해도 유럽은 코로나19 팬데믹 부양책으로 축적된 여유 자금 및 낮은 대출 금리를 무기 삼아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2022~2023년에만 1,050억 유로(약 180조원) 규모의 에너지 지원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현시점 유럽 주요국들은 대규모 부채로 인해 재정 여유를 잃은 상태다. 글로벌 금융권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탈리아의 부채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34.9%에 달하며, 프랑스 역시 GDP 대비 113.2%라는 전례 없는 부채비율을 기록 중이다. 수년 전과 유사한 수준의 정부 구제책을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셈이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재개 가능성 낮아

이런 가운데 일부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가격 안정을 위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벨기에 매체 브뤼셀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현지 언론 레코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관계를 정상화해 값싼 에너지에 재접근해야 한다"며 "그것이 상식"이라고 말했다. 앞서 EU는 지난 2022년 6월 러시아산 원유 및 석유 제품 수입 금지를 결정했고, 같은 해 12월 해상 원유 수입을 중단한 뒤 2023년 2월 정제유 수입도 금지했다. 올해 1월에는 2027년까지 파이프라인·LNG를 포함한 러시아 가스 수입을 사실상 전면 중단하는 방안이 EU 이사회에서 최종 승인되기도 했다.

EU 측은 역내 국가들의 거래 재개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폴리티코 유럽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단 요르겐센 EU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1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에너지 장관 회동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는 러시아의 에너지를 다시는 수입하지 않기로 EU 차원에서 결정했다"며 "이런 기조를 고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유럽이 러시아의 잔혹하고 불법적인 전쟁 자금을 간접적으로라도 지원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요르겐센 집행위원은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해 왔으며, 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으로 하여금 우리를 협박하고 에너지를 무기화하도록 만들었다"면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 같은 강경한 기조에 따라 다음 달 발표가 예정돼 있는 러시아산 석유 금지 계획에는 별다른 변동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당 계획이 실행될 시 현재 남아 있는 러시아산 에너지의 일부 예외 및 우회 수입 통로가 완전히 차단될 가능성이 크다.

英·獨 등 경제 성장 둔화 위기

문제는 EU의 강경 기조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진정되지 않을 경우, 향후 유럽의 경제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이란과 미국의 전쟁이 장기화할 시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세계 최대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의 제프 커리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유가 상승을 막을 정책 대응은 없다”며 “패러다임의 변화가 찾아와 모든 비용이 오를 것”이라고 발언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비단 석유를 넘어 가스, 비료, 금속, 석유화학 등 전 세계 공급망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이다.

커리 CSO는 지금 발생한 피해를 정상으로 돌리는 데에만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4억 배럴 규모 전략 비축유 방출 조치에 대해서도 “4억 배럴을 방출해도 시장에 공급하는 데만 200일이 걸린다”며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사재기로 인해 하루 약 200만 배럴 정도의 추가 수요가 생겼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미 하루 약 1,800만 배럴 규모에 달하는 공급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사재기 수요까지 더해지면 상황은 훨씬 악화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자체적인 에너지 조달 역량이 부족한 유럽권 국가들은 이 같은 위협에 특히 취약할 수밖에 없다. 골드만삭스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국가로 영국을 직접 지목하기도 했다. 올해 유가가 평균 배럴당 77달러(약 11만4,900원)에 안착한다고 가정했을 때, 영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전쟁 전 1.5%에서 1%까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독일 KfW은행의 디르크 슈마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호르무즈 해협이 3개월간 봉쇄돼 유가가 배럴당 120~150달러(약 17만9,000원~22만3,800원) 사이로 고정되면 내년 독일 GDP가 0.5%P 가까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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