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주택난의 숨은 원인, 건설 생산성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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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주택 공급난 이면에는 건설 생산성 정체 규제 파편화·인력난·비용 상승 겹치며 공급 확대 제약 공급 효율 높일 제도 개혁과 건설 방식 전환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택 공급 부족이 세계 주요국의 경제·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원인으로는 토지 규제와 인허가 지연, 높은 금리 등이 주로 거론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건설 생산성 정체가 주택 공급 확대를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미국의 건설 노동생산성은 2023년 기준 사실상 1948년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같은 기간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크게 향상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흐름이다. 기계와 소프트웨어, 금융 인프라는 발전했지만, 건설 현장 내 인당 주택 공급 역량의 개선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선진국들이 첨단 산업에서는 높은 효율성을 달성하고도 주택 공급 확대에는 어려움을 겪는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공급 확대 막는 건설 생산성 한계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정책은 주로 용도지역제와 높이 제한, 주차장 규정 등 도시계획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공급 부족 문제는 인허가 절차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실제 공급 규모를 좌우하는 것은 주택을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건설할 수 있느냐다. 프로젝트 승인을 받더라도 개발업자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어려운 산업 구조와 마주한다. 건설 현장은 사업마다 별도로 운영되며 기상 여건과 설계 변경, 복잡한 하도급 체계가 반복되면서 생산성 향상에 제약을 받는다. 이러한 구조는 인허가 물량 증가가 실제 주택 공급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건설 생산성 정체는 주택 가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생산성이 낮으면 신규 주택 한 채를 공급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인력, 자금이 필요하다. 공급 비용이 높아질수록 공공부문이 확보할 수 있는 주택 물량은 줄어들고 민간 개발사업의 사업성도 악화된다.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면서 주택 가격과 임대료 상승 압력도 커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실질 주택 가격이 지난 10년간 40% 이상 상승한 원인으로 이러한 공급 측 제약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팬데믹 이후 일부 안정세가 나타났지만, 주택 공급 부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실정이다.
문제는 건설 생산성 저하가 주택 시장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설업은 미국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약 4.5%, 비농업 고용의 5.2%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건설 부문의 생산성 정체는 국가 경제 전반의 비용 부담을 높인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이어진 생산성 부진은 주택뿐 아니라 학교와 병원, 공장, 송전망 등 주요 인프라 건설 비용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녹색 전환과 인프라 확충, 공공시설 투자 등 국가 차원의 대규모 사업도 더 큰 재정 부담에 직면했다.

생산성 정체가 키운 비용 부담
건설 생산성 정체는 비용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건설 장비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건설 비용을 낮출 것이라는 기대를 현실화하기에는 아직 한계가 뚜렷하다. 장비 성능은 향상됐지만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이 이를 상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의 신규 주택 건설비는 2021년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으며 2022년에는 대부분 국가에서 연간 한 자릿수 후반대의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미국 역시 팬데믹 이후 철강과 콘크리트, 목재 등 주요 건설 자재 가격 급등을 겪었다. 생산성 개선이 뒤따르지 않는 상황에서는 기술 발전만으로 비용 상승 압력을 흡수하기 어려운 셈이다.
노동시장 여건도 비용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건설업은 목수와 전기기술자, 배관공, 장비 운전원 등 다양한 숙련 인력에 의존한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 없이 임금만 상승하면 인건비 부담은 분양가와 임대료 상승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 건설업계가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산성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인력 확보 경쟁까지 심화되면 공급 비용은 더욱 높아진다.
이 같은 인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은 이민 노동력에 크게 의존해 왔다. 미국에서는 2024년 기준 이민자가 전체 건설 노동자의 26.3%를 차지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비중이 40%를 웃돌았다. 이민 노동자는 현장의 인력난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노동력 유입이 둔화되거나 임금이 상승하면 비용 부담이 다시 확대되는 구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 막는 규제 파편화
비용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생산 방식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건설 생산성 제고는 규모의 경제 확보를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 제조업은 동일한 제품을 반복 생산하면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하고 생산성을 높인다. 반면 건설업은 지역마다 다른 규제와 인허가 절차로 인해 사업마다 새로운 조건에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소규모 프로젝트 중심의 시장 구조가 형성됐고 반복 시공을 통한 효율화도 쉽지 않다. 대규모 개발사업 역시 장기간의 승인 절차와 높은 사업 위험으로 인해 적극적으로 추진되기 어렵다.
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건설사가 동일한 유형의 주택을 반복 공급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표준화된 중층 주거 모델과 명확한 설계 기준, 신속한 인허가 체계 등이 필요하다. 또한 모듈러 건축과 패널형 공법에 대한 기술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핵심은 건설사가 반복된 시공 경험을 바탕으로 자재 조달과 공정 운영, 인력 배치의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불필요한 규제 차이를 줄이는 데 있다.
빈집 활용 가로막는 시장 실패
주택 공급 부족이 심각한 대도시와 달리 지방과 농촌 지역에서는 빈집 증가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의 2023년 주택조사에 따르면 빈집은 약 900만 채로 전체 주택의 13.8%를 차지한다. 한국 역시 고령화와 인구 유출이 이어지면서 농어촌과 지방 중소 도시를 중심으로 빈집 문제가 확산되는 추세다. 그러나 통계상 빈집이 많다고 해서 실제 공급 가능한 주택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상당수 빈집이 수요가 낮은 지역에 위치한 데다 상속 문제와 노후화, 높은 개보수 비용 등의 제약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빈집 정책도 지역 여건과 사업성을 고려한 선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일부는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통해 활용할 수 있지만, 경제성이 떨어지는 주택은 철거나 토지 통합이 더 합리적이다. 이 과정에서 공공부문의 역할도 중요하다. 개별적으로 흩어진 개보수 수요를 묶어 사업 규모를 확보하고 표준 설계안과 인허가 절차, 전문 시공업체 정보를 제공하는 등 시장 형성에 나설 필요가 있다. 노후 주택의 개보수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공공의 몫이다.
피지컬 인공지능도 넘지 못한 생산성 장벽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건설 자동화 기술이 부상하는 추세다. 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과 건설 자동화 기술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벽돌 시공 로봇과 건설 현장 드론, AI 영상 분석 기반 품질관리 기술, 디지털 트윈 등은 공사 지연을 줄이고 시공 효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첨단 기술 도입만으로 건설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로봇이 인허가 절차를 대신할 수는 없고 드론이 복잡한 맞춤형 설계를 표준화할 수도 없다. 정교한 일정 관리 기술 역시 공급망의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하지는 못한다. 건설 생산성을 제약하는 요인이 기술 부족보다 산업 구조와 제도에 더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건설 기술 기업이 등장했지만, 현장의 생산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피지컬 인공지능의 효과 극대화는 기술 도입과 제도 개선이 병행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공주택과 학교, 사회기반시설 유지·보수 사업 등을 새로운 건설 기술의 실증 무대로 활용할 수 있다. 안정적인 발주 물량을 제공해 기업의 자동화 투자 부담을 낮추고 관련 기술의 상용화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건축 규정과 인증 체계 정비도 병행돼야 한다. 공장 생산 부품과 모듈러 공법의 중복 검증 절차를 간소화하는 제도 개선은 기업들의 자동화 설비 및 공장형 생산 체계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선결 과제다.
그동안 주택 위기는 토지와 자본, 규제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돼 왔다. 하지만 인허가를 확대하고 개발 부지를 확보하더라도 실제 주택 공급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주택난 해소의 관건은 더 많은 주택을 짓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공급 효율을 높이는 데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Housing Crisis Is Also a Construction Productivity Crisi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