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칩 벽 넘겠다” 선언, 테슬라 ‘테라팹’으로 반도체 내재화 시동
머스크 “칩 벽 넘겠다” 선언, 테슬라 ‘테라팹’으로 반도체 내재화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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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 생산 구조 탈피, 자체 칩 생산 청사진
반도체 병목 장기화 판단에 단가 전략 가동
미 정부 주도 반도체 제조 기반 확대 흐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자체 반도체 생산 시설 ‘테라팹(Terafab)’ 프로젝트 출범을 예고하며 AI 반도체를 직접 생산하겠다는 구상을 공식화했다. 그는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확산 흐름 속에서 향후 수년간 반도체 공급 제약이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을 언급하며 자체 생산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이 반도체 제조 기반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다수의 글로벌 기업이 현지 생산 투자를 늘리는 흐름 역시 이러한 구상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공정 기술 확보엔 난항 예상
15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전날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테라팹 프로젝트가 7일 후에 출범한다”고 선언했다. 테라팹은 머스크 CEO가 주주총회·콘퍼런스콜 등을 통해 그 필요성을 반복 언급한 반도체 제조 시설이다. 앞서 그는 지난해 11월 연례 주주총회에서 “삼성전자나 TSMC, 마이크론 등 파트너사의 반도체 생산량을 최상의 시나리오로 가정한다 하더라도 완전자율주행(FSD)과 휴머노이드 로봇에 필요한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라면서 처음 테라팹 설립 구상을 밝혔다.
현재 테슬라는 전기차와 옵티머스에 들어가는 AI 반도체 AI4 등을 자체 설계해 TSMC·삼성전자 등에 생산을 위탁하는 방식을 유지 중이다. 반도체 설계 역량은 내부에서 확보하되, 제조 공정은 외부 파운드리 기업에 맡기는 구조다. 이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널리 활용되는 모델이지만, 테슬라가 자체 반도체 생산 시설 구축에 나서면서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머스크 CEO는 지난 1월에도 “사람들은 수년 내에 주요 요인이 될 지정학적 위험 요소를 과소 평가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머스크 CEO는 테라팹의 생산 능력이 기존 파운드리 시설을 넘어설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테라팹은 웨이퍼를 월 10만 장 생산하는 TSMC의 ‘기가팹’보다 더 큰 생산 역량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머스크 CEO는 원재료 대비 완제품 가격 비율을 의미하는 ‘바보 지수(Idiot Index)’가 10을 넘는 경우, 부품을 직접 생산한다는 원칙을 고수해 왔는데, 반도체 제조 역시 이러한 기준 아래 검토되는 흐름이다. AI 칩 공장 건설을 위해서 그는 인텔과의 협력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테슬라의 반도체 제조 시장 진입 계획과 관련해 기술적 난이도를 지적하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머스크 CEO가 테라팹 구상을 공개한 직후인 지난해 11월 TSMC 행사에 참석해 “TSMC가 업으로 삼고 있는 엔지니어링과 과학, 예술적 숙련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파운드리 산업은 장기간 축적된 공정 기술과 장비 운영 경험이 요구되는 분야라는 점에서 테슬라의 자체 생산 계획이 즉각 현실화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업계 전반의 평가다.
수급 불균형 장기화 불가피
이 같은 회의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테슬라가 테라팹 구축을 서두르는 배경에는 반도체 공급 부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머스크 CEO는 이러한 문제를 “칩 벽(chip wall)”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그는 한 팟캐스트에서 “공장을 짓지 않으면 우리는 ‘칩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며 “선택지는 칩 벽에 막히거나, 공장을 짓는 것 두 가지뿐”이라고 말했다. AI 산업에서 연산 능력을 결정하는 핵심 자원은 결국 반도체이며, 공급 제약이 발생하면 기술 개발 속도 자체가 제한될 수 있다는 의미다.
테슬라가 구상하는 테라팹은 이러한 병목을 직접 해결하기 위한 대안에 가깝다. 기존 파운드리 공정에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AI 칩 수급이 외부 생산 일정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만큼, 자체 생산 시설을 확보해 공급 안정성과 비용 구조를 동시에 관리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다. 아울러 반도체 설계 경쟁보다 공정 최적화와 생산 효율을 통해 일정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초기 설비 투자와 핵심 엔지니어 확보에 집중하면 생산 체계를 비교적 빠르게 구축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인재 확보 전략은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 머스크 CEO는 X 계정에 “한국에 머물며 칩 설계·제조·AI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면 테슬라에 합류하라”는 글을 올리며 태극기 이모지를 함께 게시했다. 테슬라코리아 역시 AI 칩 디자인 엔지니어 채용 공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대량 생산 AI 칩 개발에 함께할 인재를 찾는다”고 밝히며 해당 프로젝트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생산량을 기록할 AI 칩 아키텍처 개발”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테슬라는 지원자들에게 ‘자신이 해결한 가장 어려운 기술 문제 세 가지’를 제시하도록 했는데, 이는 실제 설계와 검증 경험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美 설계-제조-패키징 공급망 구축
여기에 미국의 반도체 자립을 지원하는 정책 환경까지 더해지면서 테슬라의 테라팹 구상은 한층 동력을 얻게 됐다. 미국은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과 공급망 취약성,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 등을 연이어 거치면서 설계 우위만으로는 경제 안보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고, 반도체 제조 역량 자체를 자국으로 되돌리는 리쇼어링과 온쇼어링에 대규모 자금과 제도 지원을 집중하는 방향을 굳혔다. 이는 핵심 칩 수요를 자국 영토 안에서 흡수하고, 위기 시 조달 통제권까지 확보하려는 장기 전략의 성격을 띤다.
2022년 8월 미국은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보조금 527억 달러(약 78조8,000억원)와 세금 인센티브를 투입했다. 이와 함께 TSMC의 미국 애리조나 투자 규모는 기존 120억 달러(약 17조9,000억원)에서 650억 달러(약 97조2,000억원)로 불어났고, 지난해 3월에는 추가 1,000억 달러(약 149조5,000억원) 투자와 5개 시설 건설 계획까지 제시됐다. 이 외에도 인텔은 오하이오에 280억 달러(약 41조8,000억원)를, 마이크론은 뉴욕에 1,000억 달러를 각각 투입해 메모리 팹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미국이 웨이퍼 생산과 첨단 패키징, 메모리 후공정까지 자국 내에 묶어두려는 AI 시대의 공급망 특성 때문이다. 설계-제조-패키징을 잇는 ‘엔드투엔드’ 공급망을 구축하면, AI 데이터센터용 반도체와 고부가 전략 칩은 고객사 근접 생산과 납기 단축, 지정학 리스크 분산이라는 세 가지 효과를 동시에 거둘 수 있다. 오픈AI와 오라클이 미국 전역에서 5,000억 달러(약 748조원)를 투입해 추진 중인 초대형 데이터센터 사업 ‘스타게이트’는 이런 수요 집중을 상징하는 사례다. 테슬라의 테라팹 구상 역시 미국이 반도체 생산 거점을 자국 내로 재편하는 흐름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비용과 인력 문제는 미국 제조업 부활의 약점으로 지목된다. 반도체 클린룸 건설 기업 엑사이트에 따르면 미국 팹 건설에는 평균 38개월이 필요해 대만 최첨단 팹(20개월) 대비 2배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미 정부가 보조금과 세액공제로 소위 ‘코스트 갭’을 메우고, 애리조나에서만 2020년 이후 2만5,000개가 넘는 신규 일자리가 몰린 점은 시장 참여자들이 정책 지속성과 수요 집적 효과를 높게 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대규모 내부 AI 칩 수요를 보유한 기업이 제조 내재화를 검토할 유인이 더 커진다. 테슬라의 행보가 미국 반도체 자립 전략과 맞물린 산업적 선택지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