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패권전쟁] GPU 시대 뒤집는 CPU 카드, 인텔과 손잡은 엔비디아 AI 전략 방향 전환
[반도체 패권전쟁] GPU 시대 뒤집는 CPU 카드, 인텔과 손잡은 엔비디아 AI 전략 방향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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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처리 핵심 구성요소 CPU 주목 엔비디아 전략적 동반자 ‘ARM→인텔’ 인텔 파운드리 역량 활용 시나리오 대두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심으로 전개되던 경쟁 구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최근 엔비디아가 중앙처리장치(CPU)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AI 인프라를 구성하는 핵심 칩의 역할 분담도 다시 주목받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해 엔비디아와 인텔이 체결한 대규모 협력이 본격화하면서 GPU와 CPU를 결합한 데이터센터 구조가 새로운 경쟁 축으로 떠올랐다. 여기에 인텔 파운드리 활용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엔비디아가 반도체 공급망 전략을 재조정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GPU 인프라에 CPU 생태계 결합 시도
15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익일 미국 산호세에서 개막하는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 ‘GTC 2026’ 기조연설에서 에이전트 AI 시대에 최적화된 CPU 전략을 공개할 예정이다. 엔비디아 GPU는 오랜 시간 데이터센터의 핵심 칩으로 기능했지만, 최근에는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에이전트 AI’가 등장하면서 CPU의 중요도가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디온 해리스 엔비디아 AI 인프라 책임자는 “AI와 에이전트 워크플로가 확대되면서 CPU가 병목 현상을 맞았다”면서 “CPU 시장에도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열렸다”고 진단했다.
에이전트 AI 확산은 데이터센터의 연산 분담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거대한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훈련(Training)이 핵심 과제였지만, 이제는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추론(Inference)과 워크플로 관리가 중요해진 것이다. 특히 다수의 에이전트가 동시에 작동하는 환경에서는 이들의 실행 순서와 데이터 흐름을 조율하는 관리 계층의 역할도 커진다. GPU는 대규모 병렬 계산에 특화된 구조인 반면, 데이터 이동과 작업 스케줄링, 메모리 관리, 서비스 요청 처리 등 범용 연산은 CPU가 수행한다.
이미 시장에서는 서버용 CPU의 수요 확대가 가시화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전 세계 CPU 시장 규모가 지난해 270억 달러(약 40조원)에서 2030년 600억 달러(약 89조원)까지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현장에서는 주요 데이터센터 고객을 중심으로 CPU 확보 경쟁이 벌어지면서 공급 부족이 심화한 상황이다. AMD와 인텔은 중국 고객사에 CPU 공급 부족 가능성을 경고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 제품의 납기 기간은 최대 6개월까지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균열을 파고든 것이 바로 엔비디아·인텔의 전략적 동맹이다. 양사는 50억 달러(약 7조4,000억원) 규모의 서버용 CPU 공급 및 기술 협력 계약을 체결하며 AI 인프라 협력을 공식화했다. 인텔이 제공하는 핵심 제품은 6세대 제온 프로세서 ‘시에라 포레스트’와 ‘그라나이트 래피즈’다. 다수의 메모리 채널을 병렬 지원하는 이들 모델은 대규모 데이터 병렬 처리가 필요한 에이전트 AI 환경에 적합한 설계라는 평가를 듣는다. 업계는 인텔 제온이 엔비디아의 고속 상호연결 기술 ‘NVLink’ 기반 생태계와 결합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NVLink는 GPU 사이를 연결하는 엔비디아의 고속 인터페이스로, 범용 표준인 PCI익스프레스보다 데이터 교환 대역폭이 최대 수십 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터센터 주도권 강화 나선 엔비디아
엔비디아·인텔 협업의 출발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양사는 PC와 데이터센터용 칩 공동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는 인텔 보통주를 주당 23.28달러(약 3만4,800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거래가 완료될 경우 엔비디아가 인텔 지분 약 4%를 보유하게 될 것이란 설명도 뒤따랐다. 협력의 핵심은 양사의 기술 생태계를 결합해 데이터센터용 AI 서버 플랫폼을 공동 구축하는 데 있었다. 두 회사는 “엔비디아 NVLink를 활용해 시스템 아키텍처를 연결하고, 인텔의 x86 CPU 기술과 엔비디아의 AI 가속 컴퓨팅을 통합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와 함께 개인용 컴퓨팅 부문에서는 인텔이 엔비디아 GPU 칩렛을 통합한 시스템온칩(SoC)을 개발하는 구조가 제시됐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기자회견에서 “엔비디아는 인텔 CPU의 매우 큰 고객이 될 것이고, 인텔 칩에 GPU 칩렛을 공급하는 대규모 업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협력은 GPU 중심으로 재편된 AI 시장에서도 CPU의 제어·관리 기능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판단을 반영한 결정으로 해석됐다. 동시에 x86 기반 서버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GPU 가속 인프라를 확대하려는 현실적 전략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같은 해 12월엔 실제 지분 거래가 이뤄졌다. 당시 인텔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자사 보통주 2억1,477만 주를 신규 발행해 엔비디아에 매각하는 제삼자 배정 유상증자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엔비디아가 인텔에 생명줄을 던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전까지 인텔은 AI 반도체 경쟁에서 뒤처지며 경영난을 겪고 있었지만, 엔비디아 투자로 대규모 자금을 확보한 것은 물론 AI 인프라 생태계에 다시 편입될 가능성까지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올해 2월에는 또 다른 전략적 변화가 이어졌다. 엔비디아는 보유 중이던 ARM 잔여 지분 약 110만 주를 전량 매각하며 ARM과의 자본 관계를 완전히 정리했다. 이는 한때 400억 달러(약 59조원) 규모 인수를 추진했던 ARM과의 연결 고리를 완전히 끊는 조치로 읽혔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가 인텔의 x86 생태계와 협력하는 배경도 보다 분명해졌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기반 인프라가 여전히 x86 서버 구조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하이퍼스케일러들이 x86 기반으로 서버 운영 체계를 구축해 온 만큼 이를 전환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과 운영 리스크가 따른다. 엔비디아로서는 기존 인텔 서버 환경을 유지하면서 GPU 가속 인프라를 확대하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AI 반도체 공급망 재편 가능성
애초 양사의 협력 범위에 파운드리 계약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 GPU 생산은 여전히 대만 TSMC가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추후 엔비디아의 공급망 전략이 변화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GPU 생산을 사실상 하나의 업체에 의존하는 구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일부 제품 생산을 인텔로 재배치할 것이란 관측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인텔 지분 9% 이상을 보유한 최대 주주라는 점, 반도체 제조 기반을 미국으로 되돌리려는 정책 흐름이 본격화했다는 점 등이 맞물리면서 이 같은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 로드맵 역시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대만 IT 전문 매체 디지타임스는 지난 1월 “엔비디아가 2028년 출시 예정인 GPU 아키텍처 ‘파인만’ 구성에 필요한 반도체 일부를 인텔 파운드리에서 생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구체적으로는 GPU 간 통신과 메모리 입출력 기능을 담당하는 I/O 다이를 인텔 공정에서 생산하고, 핵심 연산을 담당하는 GPU 다이는 기존처럼 TSMC에서 생산하는 방식이 거론됐다. 이 경우 하나의 GPU 제품이 두 개의 파운드리를 동시에 활용하는 구조가 된다.
기술적으로도 이런 방식은 매우 현실적인 선택지로 평가된다. I/O 다이는 연산 코어보다 공정 미세화 요구가 상대적으로 낮고, 패키징 기술을 통해 여러 칩을 하나의 패키지로 결합하는 구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엔비디아의 현행 GPU ‘블랙웰’ 역시 I/O 다이에 5나노급 N5 공정을 개량한 N4P 공정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파인만 아키텍처에서도 TSMC가 생산한 GPU 다이와 인텔이 생산한 I/O 다이를 다시 인텔의 패키징 기술인 ‘EMIB’로 연결하는 방식이 매우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러한 협력이 실제로 구현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인텔 18A 공정은 현재 외부 고객보다 내부 제품 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향후 이 공정에서 생산될 PC용 제품으로는 코어 울트라 시리즈3(팬서레이크)와 차세대 노바레이크가 예정돼 있으며, 서버용으로는 제온6+(클리어워터 포레스트)와 다이아몬드래피즈 등이 거론된다. 여기에 차세대 공정인 14A 역시 단가와 수율, 투자 규모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엔비디아가 위탁 생산 일부를 인텔로 이전할지는 향후 인텔의 공정 성숙도와 비용 경쟁력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