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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는 후퇴·中은 관망” 美·中 동반 체납에 파산 위기 몰린 UN, 역할론 논의 본격화되나

“美는 후퇴·中은 관망” 美·中 동반 체납에 파산 위기 몰린 UN, 역할론 논의 본격화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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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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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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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유엔 전체 예산 42% 차지
양국 의도적 체납으로 위기 심화
직원 급여 지급 중단 등 운영 마비될 수도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상징해 온 국제연합(UN, 이하 유엔)이 창설 이후 최악의 재정위기에 직면했다. 미국과 중국이 전체 분담금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가운데 양국의 체납과 납부 지연이 겹치면서 유엔은 오는 8월 현금 고갈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나섰다. 더욱 주목되는 지점은 재정난의 규모보다 강대국들의 태도 변화다. 전후 국제질서를 떠받쳐 온 미국의 비용 부담 의지가 약화된 데 이어 중국마저 책임 확대에 선을 긋기 시작하면서 다자주의 체계의 재정 기반과 운영 동력 전반이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유엔, 8월 현금 고갈 위기

1일(이하 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전날 "유엔이 파산으로 치닫고 있다"고 경고하며 "우리 조직의 재정 붕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유엔 본부가 현금 고갈 가능성을 공식 언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유엔은 현재 추세라면 8월 중순경 잔고가 바닥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유엔 차기 사무총장 선출 절차가 본격화하는 시점과 맞물린다. 유엔은 재정 위기에 맞서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 삭감을 단행하고 사무국 직원 약 3,000명을 감원한 상태다. 또 유엔은 통역 인력을 축소하고 에스컬레이터 운행을 중단하는 한편 75년 된 뉴욕 본부 건물의 노후 외장재 보수도 미루고 있다.

또한 유엔은 조직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개편에도 나섰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주도하는 개혁안인 'UN80 이니셔티브'를 통해 각 기구 간 중복 기능을 통폐합하고, 행정·회계·인사 시스템을 공동 플랫폼으로 일원화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뉴욕과 제네바 등에 분산된 일부 지원 기능은 인건비가 낮은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으며, 사무국 내 정치·평화구축 부문도 조직 슬림화를 위한 재편 대상에 포함됐다.

사업 우선순위 조정 작업도 본격화하고 있다. 각 부서와 산하기구는 회원국으로부터 부여받은 수천 개의 기존 임무를 전면 재검토하며 유지 필요성이 낮거나 중복된 사업을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일부 전문기구와 인도주의 조직들 역시 독자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하는 등 조직 축소와 기능 재배치에 나선 상태다. 아울러 대면 회의를 축소하고 디지털 업무 체계를 확대하는 한편, 기관 간 인력과 전문성을 공동 활용하는 방식으로 운영 효율을 높여 재정 압박에 대응하고 있다.

유엔 재정 갉아먹는 ‘환급 신용 제도’

유엔 재정난의 배경에는 수십 년간 유지돼 온 독특한 회계 규정이 자리 잡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유엔의 '환급 신용(Credit to Member States)' 제도다. 유엔은 회계연도 종료 후 사용하지 않은 예산을 회원국 분담 비율에 따라 환급 신용으로 전환하는데, 해당 금액은 이후 회원국들이 납부해야 할 분담금에서 차감되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당초 취지는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높이고 회원국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장치였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심각한 왜곡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실제로 입금되지 않은 분담금까지 회계상 미사용 예산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일부 회원국이 분담금을 제때 납부하지 않았더라도 해당 예산이 집행되지 않으면 장부상 잔액으로 계산된다. 결과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현금이 환급 신용에 포함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유엔 사무국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2억9,900만 달러(약 4,500억원)가 실제 현금 유입 없이 환급 신용으로 계상됐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존재하지도 않은 자금을 돌려줘야 하는 카프카적 악순환에 갇혀 있다”며 규정 개편을 촉구했을 정도다.

이 같은 구조는 유엔의 현금흐름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회원국들은 환급 신용을 활용해 향후 분담금 납부액을 줄일 수 있지만, 유엔은 그만큼의 현금을 실제로 보유하지 못한 상태다. 국제공공부문회계기준(IPSAS) 적용 과정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유엔 내부 감사보고서와 예산 관련 위원회 논의에서도 체납 분담금과 환급 신용 간 괴리가 만성적인 유동성 압박 요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미국 43억 달러 체납, 중국도 미지급 비용 4.55억 달러

회계 규정이 유동성 왜곡을 확대했다면, 실제 현금 부족을 초래한 직접적 요인은 미국과 중국의 분담금 체납이다. 유엔 헌장상 회원국은 총회가 배정한 경비를 부담해야 하며, 정규예산과 평화유지활동 예산은 회원국별 산정률에 따라 부과된다. 지난해 기준 미국이 내기로 한 유엔 정규 예산 분담금은 기본 재정의 22%를 차지한다. 평화유지활동 예산 역시 최대 분담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유엔이 각종 분쟁 중재와 평화유지 활동, 인도주의 지원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의 압도적인 재정 기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제질서 유지 비용을 미국이 부담하고 나머지 국가들이 그 혜택을 공유하는 구조가 오랜 기간 작동해 온 셈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총 42억8,000만 달러(약 6조5,000억원) 이상의 분담금을 내지 않고 있다. 해당 규모는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한 후 급증했다. 과거 미국 외교는 국제질서 유지 자체를 전략 자산으로 간주했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이 국제 분쟁 해결 등 본연의 책무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미국 정책에도 협조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재정 지원을 중단했다. 올 1월엔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유엔인구기금(UNFPA) 등 유엔 관련 기관 31개를 비롯한 총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했고,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절차까지 마무리했다. 자국 이익에 맞지 않는 국제 의제에 대한 정리 차원에서다.

미국 다음으로 유엔 분담금이 많은 중국도 유엔을 애태우고 있다. 중국의 분담률은 경제 성장에 따라 10여 년 동안 5% 수준에서 20% 수준으로 올랐다. 미국의 분담금 미납을 비난하며 스스로를 ‘사실상 유엔 최대 재정 기여국’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정작 분담금 지급에선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는 형국이다. 중국은 지난달 26일 왕이 외교부장이 유엔 본부를 방문하는 동안 평화유지 비용으로 8억4,400만 달러(약 1조3,000억원)의 분담금을 유엔에 냈지만, 그럼에도 아직 유엔에 내지 않은 비용이 4억5,500만 달러(약 6,900억원)에 달한다. 중국은 2021년까지는 매년 4~5월쯤 분담금 납부를 마쳤으나, 2022년에는 10월에야 완납했다. 2023년에는 11월, 2024년에는 12월 27일에 분담금을 납부하는 등 납부 시점을 계속 늦춰온 것으로 파악된다.

동맹은 없고 불확실성만 남았다, 중국도 외면한 국제질서 청구서

작년까지만 해도 미국의 공백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예고하는 변수로 해석됐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미국이 유네스코, 유엔인권이사회 등에서 물러서자 중국은 다수의 국제기구 인사·예산·의제 설정에서 존재감을 넓혔다. 일부 유엔 전문기구에서 중국 출신 수장이 늘고, 개발도상국 의제와 남반구 담론을 앞세운 중국식 다자주의가 부상한 배경도 이 흐름과 맞물렸다.

실제로 중국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 주요 유엔 산하 기구 수장 자리를 잇달아 확보하며 조직 내부 영향력을 키워왔다. 아울러 아프리카·중동·동남아 국가들과의 경제 협력 관계를 기반으로 유엔 총회와 각종 위원회 표결에서도 우호 세력을 구축했다. 중국은 이를 바탕으로 자국 핵심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 관련 문구를 유엔 결의안과 개발 의제에 반영하는 데 성공했고,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나 홍콩 문제 등 자국에 불리한 안건에 대해서는 개발도상국들의 지지를 확보하며 국제사회의 비판 수위를 낮추는 데 활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중국 행보는 중국의 다자주의 전략이 책임 부담의 단계에서 급격히 신중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중국의 태도 변화는 냉정한 전략적 계산에 기반한다. 국제기구 내 영향력 확대와 국제질서 유지 비용 부담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이 빠진 국제기구를 중국이 단독으로 떠받칠 경우, 중국은 주도권 확대보다 비용 전가의 함정에 먼저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유엔의 거대 관료제와 회원국 간 정치 갈등, 평화유지 활동의 낮은 효율성, 인도주의 예산의 만성적 부족은 중국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이탈한 국제질서를 홀로 떠받칠 유인이 크지 않다. 유엔은 회원국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조직이다. 수십억 달러를 추가로 부담한다고 해서 즉각적인 지배력이 확보되는 구조도 아니다. 더군다나 중국은 이미 자국 경기 둔화, 부동산 침체, 지방정부 부채 증가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경제 성장률이 하향 안정화되는 상황에서 국제질서 유지 비용까지 떠안는 선택은 정치적 부담만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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