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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산업계 '탄소배출권 무상할당' 확대, 통상 마찰 가능성에도 역내 기업 특혜 강행

EU, 산업계 '탄소배출권 무상할당' 확대, 통상 마찰 가능성에도 역내 기업 특혜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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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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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수정

탄소중립 구상과 제조업 현실 사이의 간극
탄소가격 오르면 전기요금·생산원가로 전이
산업 경쟁력 흔들리자 규제 완화 압박 커져

유럽연합(EU)이 탄소중립 정책의 핵심 축으로 내세워 온 탄소배출권 거래제(ETS) 운용 기조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탄소배출 비용을 높여 산업계의 탈탄소 전환을 압박하겠다는 기존 전략이 에너지 가격 급등과 제조업 경쟁력 약화, 중국발 공급과잉 등 현실적 압력에 직면하면서 산업 보호 쪽으로 무게추가 이동하는 양상이다.

EU, 자국 철강·화학 업계에 무료 배출권 확대 추진

31일(이하 현지시간) 범유럽 매체 유로뉴스에 따르면 최근 EU 집행위원회는 2026~2030년 적용할 ETS 기준값을 제안하면서 자국 산업계에 40억 유로(약 6조9,000억원) 규모의 무상 배출권을 추가 제공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번 조정은 배출 효율이 높은 기업에 무상 배출권을 배정하는 기준을 손보는 방식이다. EU 집행위는 기존 직접 배출 중심 계산에 간접 배출을 반영하기로 했다. 탄소 감축 유인은 유지하되 에너지 비용과 탄소비용 부담이 커진 산업계의 이탈을 막겠다는 취지다.

ETS란 정부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장에 연간 배출 가능한 총량을 설정하고 그만큼 배출권을 구매하도록 하는 제도다. 원칙적으로 정부는 기업에 배출권을 유상으로 판매해야 하지만 시장 상황, 규제 현황 등을 고려해 기업들의 부담을 일정 부분 줄여주기 위해 부분적으로 무상할당을 시행하고 있다. EU는 이번 조치를 통해 배출권 무상할당 비중을 기업당 총량 가운데 평균 75%까지 늘릴 것으로 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5년 주기 벤치마크 갱신 절차지만, 정책적 의미는 훨씬 크다. 그동안 EU 집행위는 탄소가격 상승이 산업계의 감축 투자를 촉진할 것이라는 논리를 유지해 왔다. 배출 비용이 높아질수록 기업들이 친환경 설비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이를 위해 무상 배출권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대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해 수입품에도 동일한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방향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에너지 비용 급등과 경기 둔화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기업들은 탄소감축 투자보다 현금 확보를 우선하기 시작했다.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친환경 설비 전환 투자를 단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공장 폐쇄 6배 폭증, 화학산업 생산 3,700만 톤 증발

문제의 압력은 유럽 중공업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났다. 철강, 시멘트, 화학, 비철금속, 비료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은 2022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높아진 전력·가스 비용을 떠안은 상태에서 탄소 비용까지 부담해 왔다. 여기에 중국산 저가 철강·화학 제품 공급 확대와 미국의 산업 보조금 경쟁이 겹치며 유럽 제조업의 비용 열위가 고착화됐다.

생산원가 상승이 누적되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일부 기업들은 감산과 공장 폐쇄에 나서며 부담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유럽화학산업협회(CEFIC)에 따르면 2022년 이후 유럽 내 화학공장 폐쇄 속도는 과거 대비 6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현재까지 사라진 화학 생산능력은 3,700만 톤에 달하며 약 2만 개의 직접 일자리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집계된다. 석유화학 부문이 전체 폐쇄 용량의 48%를 차지하고, 그 절반은 스팀 크래커 9기의 가동 중단에서 비롯됐다. 국가별로는 독일이 전체 폐쇄 용량의 25%, 네덜란드가 20%를 각각 차지했다. 유럽 화학산업 역사상 보기 드문 생산기반 축소 현상이다.

새로운 투자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인용한 업계 자료에 따르면 유럽 화학 산업의 신규 투자 프로젝트는 최근 1년 사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기업들은 유럽 내 증설보다 미국과 중동, 아시아 지역 투자를 우선 검토하고 있다. 생산비용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업계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중국의 공급 과잉이 글로벌 시장을 압박하는 가운데 유럽 철강사들은 높은 에너지 비용과 탄소비용을 동시에 부담하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이미 생산라인 폐쇄를 결정했고 신규 설비 투자 계획도 연기하고 있다.

무역 갈등 우려보다 경쟁력 회복 우선

이에 독일의 입장도 변화했다. 유럽 최대 제조업 국가인 독일은 최근 수년간 산업 경쟁력 약화를 가장 강하게 경험한 국가다. 화학과 자동차, 철강 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독일 정부는 EU 차원의 산업 보호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실제로 최근 집행위에서 논의된 정책들을 살펴보면 경쟁력 회복이 핵심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청정산업협약(Clean Industrial Deal) 역시 에너지 가격 인하와 제조업 투자 확대, 공급망 안정화를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동·남유럽 회원국의 반발도 이번 정책 조정의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FT에 따르면 체코, 불가리아, 폴란드, 루마니아, 그리스, 슬로바키아 등 6개국은 공동서한을 통해 중공업에 대한 탄소비용 완화를 EU에 요구했다. 이들은 고에너지 가격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상대적으로 탄소집약도가 높은 산업구조를 들어 탄소배출 비용이 자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녹색 전환 계획을 제출한 기업에 추가 무상 배출권을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를 제기했다.

다만 무상 배출권 확대는 CBAM의 무역 정당성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EU는 올해 1월부터 CBAM의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수입업자는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력, 수소 등 탄소집약 품목의 내재 배출량을 신고하고, EU 탄소 배출권 가격에 연동된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EU는 CBAM을 역내 기업과 역외 기업 간 탄소비용 격차를 해소하는 제도라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역내 기업에 무상 배출권을 확대하거나 완화적으로 제공할 경우, 수입품에만 비용을 부과한다는 보호무역 논란이 커질 수 있다.

더군다나 CBAM의 정당성은 탄소배출 무상할당 축소와 맞물려 설계됐다. EU 집행위의 공식 설명도 CBAM의 단계적 도입이 탄소 무상 배출권의 단계적 폐지와 연계돼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구조에서 무상할당이 예상보다 오래 유지되거나 확대되면 제도의 균형은 흔들린다. 역내 기업은 비용 완충을 받고, 역외 기업은 국경에서 탄소비용을 부담하는 구도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주요 교역국이 CBAM을 기후정책보다 산업보호 수단으로 해석할 여지가 그만큼 커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EU의 정책 기류를 고려하면 통상 마찰 가능성만을 이유로 산업 지원 정책을 후퇴시킬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EU의 정책 기조는 물가 안정보다 성장률 회복에 더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유로존 경제는 수년째 저성장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제조업 생산 역시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탓이다. 에너지 위기 이후 위축된 투자와 생산 활동을 회복시키지 못할 경우 유럽 경제의 잠재성장률 자체가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는 분위기다. 집행위 입장에서는 통상 분쟁 가능성보다 성장 기반 복원이 더 시급한 과제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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