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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혈경쟁 불붙은 상조시장” 10조 선수금, 오너 자금줄 역할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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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 상조 1위 프리드라이프 인수 나서
고령화로 시장 급성장, 선수금 10조 육박
선수금 50%만 은행 예치, 나머지 자금 운용 규제 전무

웅진그룹과 코웨이가 국내 상조업계 1위 프리드라이프 인수에 나선 가운데 10조원에 육박하는 상조기업들의 선수금 관리·감독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상조기업은 가입 고객에게 선수금을 받고, 미래 장례 서비스를 준비한다. 이 선수금은 소비자 보호 차원으로 할부거래법에 따라 50%가 은행이나 공제조합 등에 예치되지만, 문제는 나머지 50%다. 특히 고객의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제외한 자금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웅진·코웨이, 상조시장서 '격돌'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웅진은 상조업계 1위 프리드라이프 인수를 위한 배타적 우선협상권을 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운용사 VIG 파트너스로부터 확보했다. 인수 대상 지분 규모는 사실상 100%에 가까운 물량으로 알려졌다. VIG파트너스가 보유한 물량과 드래그얼롱(동반매각청구권)을 발동하면 나올 수 있는 매도 물량을 더한 것이다.

프리드라이프는 작년 3월 말 기준 선수금 2조3,000억원을 보유한 상조업계 1위 기업이다. 웅진은 교육·정보기술(IT)·레저 등 기존 계열사와의 시너지를 낼 수 있어 인수를 추진했다는 입장이다. 웅진씽크빅과 프리드라이프의 영업 인력과 전국 판매망이 통합되면 국내 최대 방문 판매 조직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교육 사업을 뒤로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는 전략이지만 1조원대 차입과 과거 웅진의 M&A 실패 사례로 인해 시장의 우려도 큰 상황이다.

웅진에 앞서 렌털업 강자 코웨이도 지난달 상조 시장에 뛰어들었다. 코웨이는 지난해 10월 '코웨이라이프솔루션'를 세워 상조 시장에 진출한 바 있다. 상조산업은 월 납입금을 받아 구독 경제 모델인 렌탈 사업과 유사한 점이 있다. 현재 코웨이라이프솔루션은 렌탈·상조 결합상품인 '코웨이 라이프 599'와 '코웨이 라이프 499'를 시범 판매 중이다. 코웨이의 전신은 과거 웅진이 설립한 한국코웨이로 이후 매각과 재인수, 재매각 등을 거쳐 다른 두 기업으로 완전히 분리됐다. 한때 한 기업이었던 두 회사가 이제는 같은 업계에서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급성장한 상조 시장, 선수금 10조 눈앞

기업들이 상조사업 진출에 나선 건 선불식 상품을 통해 고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상조업체 가입자는 892만 명, 선수금 규모는 9조4,486억원에 달한다. 2020년과 비교하면 가입자는 40%, 선수금은 60% 증가했다. 특히 올해 선수금은 1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선수금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상조기업은 할부거래법에 따라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회원으로부터 받은 납입금의 50%를 매달 은행이나 상조공제조합에 예치해야 한다. 추후 상조기업이 폐업하더라도 가입자에게 납입금의 50%를 환급하기 위한 차원이다. 문제는 예치하지 않은 나머지 50%의 선수금이다. 상조기업은 이 돈으로 회원에게 장례 서비스를 하고, 나아가 부동산 또는 금융 상품에 투자하는 등 운용에 나서고 있다. 고객이 낸 선수금을 활용, 사실상 금융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조기업들은 선수금 일부를 운용해 이익을 내고 고객에게 더 좋은 장례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회사 내 투자심의조직을 두고 선수금을 철저히 관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자금 운용에 대한 법적 관리·감독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아 기업이 선수금을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한다.

선수금으로 계열사 저리 대출 횡행

현재 상조기업은 금융사가 아니기 때문에 금융 투자에 대한 감독을 받지 않고 있다.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로 공정위의 관리를 받고 있고, 선수금의 50%를 예치하는 것을 제외하면 자금 운용 규제가 전무하다. 선수금이 기업 오너 ‘자금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상조업계 ‘톱4′ 안에 드는 대명스테이션(대명아임레디)의 선수금이 대명소노그룹 내 계열사들의 자금줄로 활용되고 있다는 공공연한 사실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대명스테이션의 부금예수금(선수금) 규모는 작년 1분기 기준 1조2,633억원이다.

대명스테이션의 부금예수금은 2017~2022년 장·단기 대여 방식으로 그룹 계열사 대명투어몰·제주동물테마파크·서앤파트너스·소노인터내셔널 등에 활용됐다. 일부는 회수됐지만, 일부는 대손 처리되거나 부실 자산이 되기도 했다. 업계에선 이런 자금 활용 방식이 결국 대명스테이션의 재무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상조기업의 자금 운용 관련 규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공정위는 할부거래법 개정을 추진해 상조기업의 오너 등 대주주 관련 거래에 대한 규제를 마련할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선수금을 은행 등에 50%를 예치하고 남은 금액을 투자하거나 대여하는 데 아무런 규제가 없어 상조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며 “상조기업이 계열회사나 오너 일가 같은 특수관계인에 저리로 선수금을 대여하는 등의 문제를 막는 방향으로 할부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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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은 없었다" 한국은행, 2월 금통위서 기준금리 2.75%로 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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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0.25%p 인하한 한은, 시장 "예상대로"
은행권, 선제적으로 수신 금리 하향 조정
5월 추가 인하 전망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내수 전반이 가라앉으며 경기 침체 위기가 심화한 가운데, 약 2년 만에 금리 수준을 2%대까지 끌어내린 것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향후 경기 성장률 둔화 등을 우려해 상반기 중 추가적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한은 '스몰컷' 단행

한은 금통위는 25일 오전 9시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어 기존 연 3.00%였던 기준금리를 2.75%로 0.25%p 인하했다. 지난해 10·11월 2연속 금리 인하에 이어 올해 1월 동결로 한 차례 속도를 조절한 뒤, 재차 금리를 하향 조정한 것이다. 기준금리가 2%대까지 내려온 것은 2020년 10월(2.5→3.0%) 이후 2년 4개월 만이다.

금리 인하 결정에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악화한 내수 상황, 지난달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다소 완화되며 한은의 금리 인하 부담이 경감됐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환율은 1,420원대에서 등락하며 지난달(평균 환율 1,455.79원) 대비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2월 금리 인하가 예견된 결과였다는 평이 나온다. 한 시장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는 한은이 1월 중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를 이뤘으나, 고환율 등을 이유로 인하가 지연됐다"며 "시장에서는 사실상 2월 인하가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던 만큼, 별다른 충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 최근 금융투자협회 자료를 살펴보면, 채권 분석가 등 시장 전문가 중 금통위가 2월 기준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전망한 이의 비중은 55%에 달했다.

은행권도 미리 예금 금리 내려

은행권 역시 선제적으로 예금 금리를 조정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확대되며 시장금리 하락세가 본격화한 결과다. 하나은행은 14일 ‘하나의 정기예금’, ‘고단위플러스 정기예금’, ‘정기예금’ 등 3개 상품의 12∼60개월 만기 기본 금리를 0.20%p 하향 조정했다. SC제일은행 역시 17일부터 네 가지 거치식예금(정기예금) 금리를 최대 0.50%p 내렸다.

신한은행 또한 20일 대표 수신 상품인 ‘쏠편한 정기예금’의 최고 금리(1년 만기 기준·우대금리 포함)를 연 3.00%에서 2.95%로 0.05%p 인하했다. 해당 상품의 금리가 2%대로 내려간 것은 2022년 6월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KB국민은행은 24일부터 대표 수신(예금) 상품인 ‘KB스타 정기예금’의 최고 금리(1년 만기 기준·우대금리 포함)를 기존 연 3.00%에서 2.95%로 낮추기로 했다.

다만 대출금리는 가계대출 관리 등의 명분으로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이 지난해 12월 취급한 가계대출의 평균 금리는 연 4.76%로, 전년 같은 기간(4.73%) 대비 0.03%p 상승했다. 지난해 10월~11월 한은이 기준금리를 2차례에 걸쳐 연 3.5%에서 3.0%로 0.5%p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대출금리 점검에 나서겠다고 예고하며 은행권에 본격적인 압박을 가하고 나섰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지난해) 은행들은 자율적으로 신규 대출 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가계대출 증가세에 대응했는데, 대출금리를 올리지 말고 심사를 강화하라고 지도했다"며 "대출금리를 조금 더 인하할 여력이 있는 만큼 향후 점검해 보겠다"고 발언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역시 최근 "금리 인하 효과가 시중금리까지 전달되는 데 시차가 있다"며 "소상공인·기업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잘 참고해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금리 인하는 언제쯤?

이런 가운데 시장의 이목은 한은의 다음 금리 인하 시점에 쏠리고 있다. 우선 증권가에서는 한은이 5월경 재차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추세다. 경기성장률이 대폭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한은이 금리 인하를 통해 추가적인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다.

한은은 이번 금리 인하 발표와 함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로 제시했다. 이는 기존 전망치였던 1.9%(11월)보다 대폭 하향된 수치이자, 지난 2023년 (1.4%)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1%), 국제통화기금(IMF·2.0%), 정부(1.8%), 한국개발연구원(KDI·1.6%) 등 주요 기관의 전망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만 불확실성은 남아있다. 원·달러 환율이 최근 안정세를 보인다곤 하나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추가경정예산 집행 시점도 금리 인하 사이클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성장률을 0.2%p 높이기 위해서는 15조~20조원 규모의 추경이 시급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여야 합의는 아직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미국과의 금리 역전 폭 확대 역시 변수로 꼽힌다. 통상적으로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지면 외국인 투자 자금이 이탈하며 원화 가치 하락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은과 달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견조한 미국 경제와 인플레이션 우려 등을 이유로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한은이 이번에 금리 인하를 단행하며 한국과 미국(4.25~4.5%) 간 기준금리 차는 상단 기준 1.75%p까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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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포럼] ‘아세안’ 국가들의 ‘브릭스’ 참여, “득일까 실일까?”

[동아시아포럼] ‘아세안’ 국가들의 ‘브릭스’ 참여, “득일까 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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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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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4개국, 브릭스 참여 마무리
경제적 기회 확장과 파트너십 다변화
미중 갈등 속 지정학적 관계 악화 가능성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세계가 다극화(multipolarity)를 향해 가면서 동남아시아(이하 동남아) 국가들도 외교 및 경제 정책을 재검토하고 있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이 ASEAN(동남아시아 국가 연합, 이하 아세안) 소속 국가들이 파트너십 다변화의 일환으로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가 연합) 참여를 진행한 점이다. 참가국들에는 획기적인 경제적 기회를 안겨줄 수 있지만 아세안 연합의 단결과 중심적 위치가 유지될지 의문이다.

사진=동아시아포럼

동남아 4개국, 브릭스 참여 완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은 최근 브릭스 참여를 마무리 지었다. 경제 성장과 무역 다각화, 개발 자금 조달의 기회를 얻기 위해서다. 하지만 브릭스와의 협력 확대가 아세안의 단합을 해쳐 그간 쌓아온 지정학적 위상과 협력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참여하는 국가들로서는 새로운 기회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 무역량의 23%를 차지하는 브릭스 동맹은 동남아 국가들에 서구 중심 경제 체제에 대한 매력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중국, 인도와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 브릭스 국가들에 의해 설립된 다자간 개발은행, NDB)을 통해 사회기반시설 투자 자금을 조달할 수도 있다.

아세안 위상과 단결에는 ‘악영향’ 줄 수도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현재의 접근을 ‘친구는 천 명도 모자라지만, 적은 한 명도 많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표현했다. 다극화 체제로 기울어지는 글로벌 상황에서 협력 관계를 넓혀 가려는 인도네시아의 전략을 잘 드러낸다.

한편 안와르 이브라힘(Anwar Ibrahim) 말레이시아 총리는 브릭스 참여가 특정 진영과의 연계가 아니라 급격한 글로벌 질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브릭스를 재생 에너지 및 기술 산업 분야 성장과 중국과의 관계 강화 수단으로 삼겠다는 얘기다.

또한 태국은 브릭스 참여를 해외 직접 투자 유치와 신규 시장 진출의 기회로 삼고자 하며, 베트남은 외교적 협력 관계를 다변화해 서구 열강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브릭스를 향한 기대와 열망은 아세안의 중심성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당초 아세안의 설립 목적이 10개 동남아 회원국들의 외교적, 경제적 전략을 하나로 모으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들이 브릭스로 기울어질수록 아세안이 국제 무대에서 목소리를 낼 여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참여국들이 신개발은행을 통한 자금 조달 기회 등 금융 및 무역상의 특혜를 누리는 동안 브릭스에 참여하지 못하는 국가들의 경제적 소외도 문제로 지적된다.

미중 갈등 속 지정학적 불확실성도 커져

지정학적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특히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 러시아와 가까워질수록 서구 열강들과의 관계가 복잡해진다. 중국, 러시아가 전 세계에 영향력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편을 바꾸는 행위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위상 강화에 나선 현재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미국은 무역 관세와 지정학적 대치 상황을 통해 해당 지역 외교 양상을 뒤바꾸려 한다. 이렇게 미중 갈등이 심화한다고 볼 때 동남아 국가들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며 중국과의 갈등 증폭을 선언한 것도 아세안에 어려움을 더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진행 중인 관세와 수출 규제는 중국의 핵심 광물 수출 통제 및 구글 등 미국 기업에 대한 반독점 조사를 촉발하고 있다. 트럼프의 이민 규제 역시 인도와의 관계를 경색시킬 수 있다. 이렇게 경제적,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증가할수록 아세안 국가들은 브릭스가 제시하는 무역 및 금융 대안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기회와 위기 공존

또한 아세안 국가들이 브릭스와 손을 잡는다고 해도 무역 협력이 어디까지 확장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세안은 이미 역내 포괄적 경제 파트너십(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he 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 등을 포함한 포괄적 무역 협정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브릭스가 추구하는 대안 금융 시스템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러시아가 미국 달러화 의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하고자 하는, 블록체인 기반 국가 간 결재 시스템이다. 이는 금융 및 재정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이미 기존 글로벌 금융기관들과 통합된 아세안의 금융 인프라를 흔들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별도의 곡물 거래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러시아의 계획도 아세안의 기존 시장 체계에 혼선을 가져와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동남아 국가들의 브릭스 참여가 제공하는 발전의 기회도 무시할 수 없다. 아세안과 브릭스를 연계하는 ‘아세안+브릭스’ 전략을 통해 회원국들은 브릭스 관련 정책을 아세안에 통합함으로써 지역의 단결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 마침 말레이시아가 아세안 의장국을 맡고 있는 것도 사회기반시설 건설과 디지털 전환, 기후 대응 등의 분야에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아세안 정상 회담과 장관급 회의체는 새로운 역학 관계를 공론화하는 장이 될 수 있다. 브릭스 의장국을 초청하는 것도 아세안이 확장된 협력 관계를 누리면서 아세안의 중심성 유지를 도모하는 시작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투명한 외교와 효율적인 의사소통, 변치 않는 내부 협력을 통해서만 아세안의 원칙과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조화시킬 수 있다.

원문의 저자는 푸시파나탄 선드람(Pushpanathan Sundram) 치앙마이 대학교(Chiang Mai University) 공공정책대학원(School of Public Policy) 방문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ASEAN members balance with BRICS as the world shift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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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한강변 재건축 알짜도 소용없네, 자금 조달·시공사 선정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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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재건축도 줄줄이 유찰
나서는 건설사 없는 사업장도
도시정비사업 수주 경쟁 '치킨게임'
대우건설이 제안한 한남2구역 재개발 단지 '한남써밋' 조감도/사진=대우건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경색이 지속되는 가운데, ‘알짜’ 재건축·재개발 사업지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강북 주요 재개발 구역인 한남2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정비조합은 최근 시공사와 새 금융 주관사의 협업으로 국공유지 매입을 위한 자금 조달에 겨우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재건축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용산구 한남동이나 송파구 잠실 등 대형 사업장엔 건설사들이 몰려들어 경쟁이 치열하지만 한강변에 있어도 작은 단지엔 1개 건설사만 참여해 유찰되거나 아예 나서는 건설사가 없는 경우도 있다.

한남2구역, 간신히 자금 모집

2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한남2구역 조합은 사업지 내 국공유지 매입을 위한 대주단 모집 절차를 거의 마무리 지으면서 다음 달 초 기표를 앞두고 있다. 조달 금액은 국공유지 매입비와 대출이자 등을 합한 1,680억원이다. 10여 개 금융사가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2,3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모집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남2구역은 우리투자증권이 지난달 금융 주관사 지위를 포기한다고 통보해 위기를 맞았다. 최근 불안정한 금융 환경 때문에 대주 모집이 제대로 되지 않자 주관사가 PF 조달을 포기한 것이다. 결국 조합은 신영증권을 새 주관사로 정해 PF에 도전했다. 시공사인 대우건설도 지원에 나서면서 한 달여 만에 대주단 모집에 성공했다.

서울 내 유망 정비사업도 어려움 호소

한남2구역은 이른바 ‘118프로젝트’도 무산된 곳이다. 118프로젝트는 2022년 11월 대우건설이 꺼낸 프로젝트 명칭이다. 대우건설은 기존 90m, 14층으로 설계된 아파트 높이를 최고 118m, 21층으로 하겠다고 공약했고, 롯데건설을 제치고 한남2구역 시공권을 수주했다. 당시 조합원들이 높아진 층수 만큼 일반분양 물량이 늘어나면 조합원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서울시가 ‘신고도지구 구상안’ 발표 당시, 한남뉴타운 일대를 고도제한 완화지역에서 제외하면서 물거품이 됐고, 결국 조합은 작년 11월 지하 6층~지상 14층을 짓는 내용의 원안을 승인했다.

한남2구역뿐 아니라 서울 내 유망 재개발 사업들도 대주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례로 종로구 돈의문 2구역 도시정비형재개발사업은 본PF 전환 전까지 중·후순위 대출 만기 연장을 반복하고 있다. 서울역 밀레니엄 힐튼 서울호텔 재개발사업 역시 본PF 전환이 하반기로 미뤄지면서 1조4,00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초기 토지비 대출)을 연장 중이다. 대형 건설사도 최근 정비사업 수주 기조를 보수적으로 바꾸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 부동산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사가 PF 대출에 손을 놓고 있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며 “정국 불안과 정책 리스크까지 가세해 PF 대출 시장 파행이 연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강뷰 재건축도 어려워, 시공사 선정 양극화 뚜렷

시공사를 선정하는 과정도 녹록지 않다. 특히 이 과정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대형 건설사들이 서울 핵심지역 재건축만 수주하는 ‘선별 수주’ 기조를 강화한 탓이다. 실제 용산구 한남, 송파구 잠실의 대형 재건축 사업장에는 건설사들이 몰려들어 경쟁이 치열한 반면, 1개 건설사만 입찰에 참여해 유찰되거나 아예 나서는 건설사가 없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송파구 대림가락아파트 재건축조합은 22일 개최한 총회에서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대림가락 재건축사업은 867가구, 4,544억원 규모지만 삼성물산이 단독으로 참여해 수의계약으로 전환됐다. 두 차례 이상 경쟁 입찰이 성립되지 않아 유찰되면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강남권 다른 정비사업장도 상황이 비슷하다. 송파구 가락1차현대아파트는 최근 시공사 선정을 위한 2차 입찰 공고를 냈다. 1차 입찰 때는 롯데건설만 제안서를 제출해 유찰됐다. 송파구에선 지난해 잠실우성4차(DL이앤씨), 가락삼익맨숀(현대건설), 삼환가락(GS건설) 재건축 시공사 선정이 단독 입찰에 따른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다.

한강변 단지도 예외는 아니다. 서초구 신반포2차는 두 차례 유찰 이후 지난해 말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알짜 재건축 단지로 꼽히는 신반포4차도 삼성물산의 단독 참여에 따른 수의계약이 유력하다. 용산구 한강 변에 위치한 산호아파트도 네 차례 유찰 끝에 작년 말 롯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그나마 나서는 건설사가 있는 곳은 다행이다. 사업에 참여하는 건설사가 단 한 곳도 없어 유찰을 겪는 정비사업장도 속출하고 있다. 서초구 삼호가든5차는 지난해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에 참여한 곳이 없어 유찰되자, 공사비를 올려 다시 시공사 찾기에 나섰다. 서울시 신통기획 1호 사업장인 중구 신당10구역 재개발 사업은 비교적 사업성이 높은 곳으로 꼽히는데도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사비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원가 부담이 커지자 건설사들이 사업성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참여를 꺼려서다.

반면 연내 시공사 선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압구정 2구역에선 한남 4구역 수주전에 이어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의 ‘리턴 매치’가 펼쳐질 예정이다. 다음 달에는 잠실우성 1·2·3차 재건축사업 시공권을 놓고 삼성물산과 GS건설이 맞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재건축사업 공사비 규모는 1조6,0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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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IT 격전지 인도, 빅테크 투자 뭉칫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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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AI 테스트베드로 인도 선호
MS·구글 투자한 벵갈루루·텔랑가나주
'인도 실리콘밸리'로 급부상

글로벌 기술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인재 확보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인도가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나 볼 법한 복지 시설을 갖춘 캠퍼스들이 인도 곳곳에 들어서는 등 인재 유치를 위한 환경 조성에도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인도 시장 진출 구글, 1호 오프라인 매장 및 캠퍼스 오픈

24일(이하 현지시간) IT 매체 폰아레나에 따르면 구글은 애플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인도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열 계획이다. 앞서 애플은 2023년 뭄바이에 첫 애플스토어를 열었으며 이후 뉴델리에 추가로 매장을 열었다. 구글은 현재 인도 내 첫 매장 위치를 선정 중인데 뉴델리와 뭄바이가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다. 매장 크기는 약 1만5,000평방피트(약 1,393.5m²)로 예상되며, 개장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릴 수 있으나 일정은 유동적이다.

앞서 구글은 19일 인도의 IT 중심지인 벵갈루루에 네 번째이자 인도 내 최대 규모의 캠퍼스도 공식 개소했다. 새 캠퍼스의 이름은 ‘아난타(Ananta)’로, 이는 산스크리트어로 ‘무한’을 뜻한다. 캠퍼스 내부에는 조용한 업무 공간과 더불어 크리켓장, 미니 골프장, 해먹이 설치된 휴식 공간 등이 마련됐다. 또한 직원들의 육아를 지원하기 위해 구글의 대표 색상들로 꾸며진 대형 어린이집도 함께 조성됐다. 블룸버그는 “벵갈루루에 이런 캠퍼스가 생겼다는 것은 AI의 붐 속에서 인도의 기술 허브에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벵갈루루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AI, 자율주행 등 첨단 기술 개발의 핵심 거점이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메타, 아마존 등 글로벌 IT 기업들도 인도의 방대한 기술 인재 풀을 두고 치열한 채용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Arm Holdings를 비롯한 여러 글로벌 기업들 역시 벵갈루루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운영 중이다.

AI 산업 허브 '텔랑가나주', MS 37억 달러 투입

벵갈루루와 함께 인도 남부의 텔랑가나주도 새로운 IT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텔랑가나주는 한때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으나, 1990년대 이후 IT 산업이 주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텔랑가나주의 주도인 하이데라바드는 ‘사이버(Cyber)’라는 단어를 합친 ‘사이버라바드’(Cyberabad)란 별칭까지 얻었다. 텔랑가나주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의 IT 수출량은 2023년 2조4,000만 루피(약 33조원)로 2014년 대비 네 배 이상 증가했고, 일자리는 90만 개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텔랑가나주가 인도에서 IT 도시로 부상한 배경에도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가 있다. MS는 텔랑가나주에 37억 달러(약 5조2,900억원)를 투자했다. 또한 MS는 660메가와트(MW) 용량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인도 내 토지 매입도 끝냈다. 이는 유럽 내 50만 가구의 연간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 규모다.

아마존웹서비스(AWS)는 텔랑가나주와 협약을 맺고 2030년까지 3조6,300억 루피(약 6조366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텔랑가나주 찬단벨리, 하이데라바드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센터 3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포레스터 리서치의 인도 담당 수석 애널리스트인 아슈토시 샤르마는 “인도는 대규모로 우수한 기술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최적의 시작”이라며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에서 연구개발(R&D), 혁신, 디지털 역량 센터를 설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인도에는 500만 명 이상의 프로그래머가 있으며, 매년 약 150만 명의 신입 엔지니어가 대학을 졸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디지털 시장 중 하나로, 매년 수천만 명의 신규 인터넷 사용자가 유입되며 온라인 쇼핑, 영상 스트리밍, 소셜미디어 콘텐츠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이 같은 환경 덕에 IT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유통업체, 월가 금융사 등 다양한 다국적 기업들이 인도에서 ‘글로벌 역량 센터(Global Capability Center·GCC)’를 운영하고 있다. 인도 IT 산업 협회인 나스콤에 따르면 현재 인도의 GCC에서 190만 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250만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많은 기업이 AI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는 감원 삭풍

반면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감원 칼바람이 좀처럼 그치지 않는 분위기다. 구글은 AI 투자를 확대하면서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최근 안드로이드, 크롬, 픽셀 등 다양한 부서 인력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패키지를 제안했다. 미국 경제전문 방송 CNBC가 입수한 내부 문서를 보면, 안드로이드, 크롬, 크롬 OS, 구글 포토, 구글 원, 픽셀, 핏비트, 네스트 등의 플랫폼과 디바이스 부서가 인력 조정 대상에 포함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구글이 AI 중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하드웨어 부문을 정리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구글은 최근 가상현실(VR) 헤드셋 제조업체 HTC Vive의 엔지니어링팀 일부를 인수하며, 안드로이드 XR 플랫폼 개발을 본격화할 것이란 계획을 밝혔다. 이는 AI와 XR 기술을 결합해 차세대 스마트 글라스 및 헤드셋 생태계를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메타도 이달 10일부터 성과에 기반한 해고를 단행하는 전략적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메타는 전 세계 인력의 5%를 감축할 계획이지만, 머신러닝을 비롯한 기타 비즈니스 핵심 직군에 대한 채용은 오히려 적극 진행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다른 비용을 절감하고, AI 사업 중심으로 인력 재배치를 더 가속화할 것이란 신호로 해석된다.

다른 빅테크 기업들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 1월에만 아마존, MS 등 주요 기업들은 6,000명 이상을 감원했다. 이는 기업의 AI 전략이 기초연구와 모델 개발에서 벗어나, 이제 상용화 단계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GPT, 달리(DALL-E) 같은 모델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순수 연구보다는 이를 응용하고 상용화하는 역량이 더 중요해진 탓이다. 실제로 메타 CEO(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이제 더 작고 효율적인 AI팀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도 “이제는 AI의 비즈니스 가치 창출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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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일부 직장폐쇄”, 임단협 둘러싼 노사 강대강 힘겨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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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그룹사 수준 임금 인상안 요구
부분 폐쇄 손실액 최대 254억원 추정
지역경제 위축 등 우려에 비판 거세져

현대제철이 1957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당진제철소 부분 직장폐쇄에 들어갔다. 임금 협상 등을 둘러싸고 노사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가운데 노조가 게릴라식 파업을 이어가자, 사측도 직장폐쇄로 대응에 나선 것이다. 가뜩이나 중국산 저가 제품 공습과 미국의 고율 관세 우려에 시름하고 있는 철강업계는 이번 사태에도 촉각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노조 요구 수용 시 650억원 적자 전환

25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전날 대표이사 명의의 성명을 내고 “24일 정오 이후 당진제철소 1·2 냉연공장의 일부 라인에 대해 부분 직장폐쇄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폐쇄된 부분은 산세 압연 설비(PL/TCM·Pickling Line/Tandem Cold Mill)로, 해당 설비가 가동되지 않으면 소재 고갈로 후공정이 불가능해져 냉연강판 생산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현대제철 노사는 작년 9월 상견례를 시작으로 5개월 가까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을 진행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회사가 기본급 450%에 정액 1,000만원을 더한 임금 인상안을 제시했지만, 노조 측에서 그룹사인 현대차가 기본급의 500%와 1,800만원 등을 지급한 것과 같은 수준에 달라고 요구하면서다.

회사는 애초 지난해 별도 기준 당기순이익이 473억원으로 흑자 상태였으나, 이번 성과금을 적용하면 약 650억원 적자로 전환된다며 양보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노조는 지난달 21일 당진 냉연공장 가동을 하루 멈추는 부분 파업을 진행하고, 이달 11일에는 전국 사업장 조업을 중단하는 총파업을 벌이는 등 쟁의행위를 지속 중이다.

현대제철은 이번 당진제철소 부분 직장 폐쇄로 27만 톤(t)가량의 생산 손실이 발생하고, 이로 인한 손실액은 25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현대제철은 “지난달 21일부터 노조가 총파업과 부분·일시 파업을 반복하면서 전체 생산 일정을 확보하기가 어려워 방어적 차원에서 부분 직장폐쇄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하면 사용자(회사)는 노조가 쟁의행위를 개시한 이후 직장폐쇄를 결정할 수 있으며, 이 기간 임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사진=현대제철

되풀이된 관세 위협에 공급과잉까지 ‘이중고’

이번 현대제철 직장폐쇄 사태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안타까움이 주를 이룬다. 가뜩이나 중국산 저가 철강재 공세와 미국 정부의 관세 리스크로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노사 갈등까지 격화하면서 현대제철의 사업성마저 위태로워졌다는 평가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이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노조에 강대강으로 맞서는 양상”이라며 “이번 힘겨루기에서 밀릴 경우 실적 악화가 가팔라질 것이란 판단에서 비롯된 행보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공급과잉과 관세 리스크는 철강업계 전반이 공통으로 받아 든 과제다. 과거보다 품질이 향상되고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제품을 접한 고객사들이 국내 철강사 대신 중국산을 선택하면서 매출 하락이 본격화한 것이다. 2023년 1월 기준 국산 후판의 유통가는 1톤당 105만원이었지만, 중국산 수입 원가는 74만8,000원에 그쳤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비슷한 품질이라면 30%가량 저렴한 중국산을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미국의 고율관세 위협은 7년 전에서도 한 차례 불거진 바 있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한국산 철강재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다. 당시 우리 정부는 협상 끝에 대미 수출량을 2015∼2017년의 70%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했다. 철강재 54개 품목, 263만 톤에 대해서는 25%의 관세를 면제받는 대신 이를 초과하는 물량은 수출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트럼프 2기 행정부와 협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재로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게 업계 종사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협력사·지역경제에도 빨간불

이런 가운데 포항, 광양, 당진 등 철강업 의존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지역경제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양상이다. 지역경제의 중심인 제철소들이 직접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들 기업과 연계된 수백 개의 협력사는 물론 부동산 임대차 시장, 소매업 등에도 막대한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재 포항시는 광양·당진시와 협력해 중앙 정부에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 지정을 건의하는 등 철강 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 중이다.

강성 노조의 무리한 파업을 둘러싼 여론이 갈수록 비판 일색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철소 한 곳이 멈추면, 지역경제 전체가 휘청인다는 지적이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는 지난해 말 전개된 포스코 노조의 파업 선언을 꼽을 수 있다. 포스코 노조는 지난해 11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서 각각 파업 출정식을 열고 조합원들의 의지를 다지겠다고 밝혔다. 무려 11회에 걸친 임단협 교섭에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데 따른 결정이다.

1968년 포스코 창사 이래 56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이 실행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협력사와 시민단체는 파업 자제 촉구에 나섰다. 포항제철소 파트너사협회는 “노조의 쟁의행위는 포스코 생산에 차질을 줄 뿐만 아니라 고객사들마저 떠나게 만드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면서 “협력사 및 용역사 삶의 터전을 무너뜨리는 쟁의행위에 앞서 사회적 책무도 고려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제철 또한 비슷한 시기 포항 2공장 가동 중단을 두고 노사가 갈등을 빚었다. 회사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일부 생산 라인의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반면, 해당 공장에 근무하는 현대제철 직원 약 200명과 자회사 현대IMC 소속 직원 약 200명이 극렬히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지속되는 불황 속에서도 생산량을 줄이며 버텨왔지만 노조 갈등과 파업 등 여러 악재가 닥치면서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졌다”며 “갈등이 길어지면, 철강 생산과 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 결국 모두 공멸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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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드 시장 침체에 ‘울상’ 삼성전자, 일본 장비업체 손잡고 원가절감 박차

낸드 시장 침체에 ‘울상’ 삼성전자, 일본 장비업체 손잡고 원가절감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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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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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램리서치 의존도 낮추려는 의도
식각 장비 시장 점유율 15% 이동 전망
낸드 시장은 끝없는 ‘장기 침체’ 터널

삼성전자가 400단대 10세대(V10) 낸드플래시 양산을 위해 일본 도쿄일렉트론(TEL)의 극저온 식각 장비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전까지 미국 업체 램리서치의 장비 만을 활용해 온 것과는 대비되는 행보로, 시장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 및 원가절감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낸드 핵심 공정 ‘식각’에서 공급망 다변화

25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연내 V10 양산 준비를 마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위해 TEL의 극저온 식각 장비를 신규 도입할 방침이라는 전언이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V8, V9까지는 램리서치의 저온·극저온 식각 장비를 활용해 왔지만, V10 양산부터는 TEL 등 여러 장비를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낸드플래시 제조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식각은 반도체 웨이퍼에 회로를 새긴 뒤 불필요한 물질들을 제거하는 공정을 의미한다. 기존 영상 20도에서 진행되는 일반 식각과 달리 영하 30도 이하에서 진행되는 극저온 식각은 화학 반응을 최소화할 수 있어 보호막 없이 정밀하게 표면을 식각할 수 있고, 최대 3배 이상 빠른 작업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식각 장비 제조 분야의 최강자는 램리서치로, 해당 분야에서만 5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한다. 램리서치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TEL은 400단 낸드플래시 양산 적용을 목표로 램리서치와 비슷한 시기 극저온 식각 장비를 출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해당 장비를 평택캠퍼스 낸드 라인에 도입해 V10·V11 낸드 양산 적용에 앞서 테스트를 진행했다.

삼성전자는 당장 V10 낸드 양산부터 램리서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원가절감 및 첨단 장비 공급망 안정화를 이룬다는 구상이다. 강성철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특정 장비회사 의존도가 과하게 높아지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짚으며 “TEL이 필요한 기술력만 갖춘다면, 원가절감은 물론 아니라 공급망 안정화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램리서치 추월 노리는 일본 TEL

일본 반도체 장비업계에서도 삼성전자와 TEL의 협력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그간 일본의 반도체 장비 제조 기술은 미국과 비교해 최대 2년가량 늦은 것으로 평가됐는데, TEL의 차세대 식각 장비 출시로 변화가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TEL 역시 지난 9일 진행한 2024 자체회계연도 3분기(10월~12월) 컨퍼런스콜에서 “(극저온 식각 장비가) 올해부터 매출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TEL 차세대 식각 장비의 가장 큰 특징은 앞서 언급했듯 극저온에서 고속으로 식각이 진행된다는 점이다. TEL은 지난해 6월 차세대 식각 장비 관련 논문을 통해 33분 만에 10마이크로미터(㎛) 식각이 가능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와 함께 신규 소재 개발도 이뤄지고 있다. TEL 관계자는 “(우리가 만드는) 차세대 식각 장비에는 아르곤 가스와 불화탄소(CF) 계열 가스, 그리고 새로운 레시피의 가스가 사용된다”고 전했다.

낸드 식각 장비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 온 램리서치가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램리서치는 지난해 내부 보고서를 통해 TEL의 차세대 식각 장비 영향으로 낸드 식각 장비 시장 점유율을 최대 15% 잃을 수 있다고 진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토 카즈요시 이와코스모증권 연구원 또한 “TEL의 신기술은 고객사의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킬 것”이라며 “향후 TEL이 낸드 채널 홀 식각 장비 시장을 모두 점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평택캠퍼스 2공장 전경/사진=삼성전자 뉴스룸

시장 침체에 감산도 불사

반면 국내 반도체업계는 삼성전자의 원가 절감 배경에 더 주목하는 모양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낸드 공급 규모를 늘리는 것과는 상반된 행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앞서 지난 1월에도 낸드 최대 생산 기지인 중국 시안 공장의 웨이퍼 투입량을 기존 대비 10% 이상 줄이기로 하는 등 감산에 나선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낸드 공급 과잉 국면이 이어지면서 올해 가격이 급락할 것으로 전망되자, 삼성전자가 수익성 방어에 돌입했다는 게 업계의 공통 진단이다. 현재 낸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외에도 일본 키옥시아,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 중국 YMTC 등 여러 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생산능력과 점유율은 아직 삼성전자가 1위지만, 주요 수요처인 PC, 모바일, 서버 등에서 가격 경쟁이 심화하면서 점점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다.

이번 감산 정책에 따라 평균 20만 장 수준이던 삼성전자 시안 공장의 웨이퍼 생산량은 17만 장 수준으로 줄었다. 여기에 화성 12라인과 17라인 역시 공급량 조절에 나서면서 전체 생산능력도 하향 조정됐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낸드 시장은 공급 과잉으로 1년 이상 장기 침체를 겪다가 올 들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제품군을 중심으로 업황 반전의 기미가 포착됐다”면서도 “하지만 기업용 SSD 등 일부 제품에만 수요가 몰리면서 시장 침체를 끝내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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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딥파이낸셜] 중앙은행 통화 정책이 ‘기후 행동’에 기여하는 방법

[딥파이낸셜] 중앙은행 통화 정책이 ‘기후 행동’에 기여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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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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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통화 정책에 환경 변수 고려 ‘급증’
친환경 자산 투자 늘리고 고탄소 자산 배제
기후 금융 역량 늘리고 정책 가이드 및 정보 부족 해결해야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기후 변화가 경제 환경을 바꾸면서 중앙은행들도 환경 변수를 고려해 통화 정책을 조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의 개입 여부와 조정 방식만이 토론의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정작 정책 실행에 따르는 실제적인 어려움은 관심 밖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기후 관련 조치가 어떻게 실행되며 그 배후에는 어떤 논리가 작동하는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에 더 큰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사진=CEPR

중앙은행 기후 대응, ‘자산 리스크 최소화’ vs ‘기후 변화 경감’

기후 변화는 금융 시스템에 직간접적 리스크를 부르며 중앙은행은 이러한 리스크를 고려해 자산 가치 극대화라는 소기의 임무를 달성해야 한다. 예를 들면 글로벌 경제가 화석 연료에서 벗어날수록 관련 자산 가치가 하락하므로 중앙은행은 이에 맞게 노출을 줄여나가야 한다. 이는 금융 기관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리스크 최소화’(risk protection) 접근 방식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일부 중앙은행들은 단순 리스크 관리 역할에서 벗어나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법적 의무를 띠고 있다. 이들 기관은 고탄소 산업에 대한 자본 비용을 올리고 친환경 투자를 장려하는 등 투자 행동에 영향을 주기 위한 조치를 시행한다. 이는 통화 정책을 광범위한 환경 목표에 연결하는 ‘기후 변화 경감’(climate change mitigation) 접근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기후 변화 관련 중앙은행의 접근 방식
주: ‘리스크 최소화’ 접근 방식 - 기후 관련 외부 리스크 관리(좌측), ‘기후 변화 경감’ 접근 방식 - 정부 기후 정책 지원(우측)/출처=CEPR

대출 조건, 담보 가치 산정, 자산 구매에 ‘기후 요소 적용’

최근 ‘금융 시스템 친환경화를 위한 네트워크’(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 140개 이상의 중앙은행 및 규제 당국 연합)는 중앙은행들이 기후 요인을 통화 정책에 적용한 사례들을 소개하는 리뷰를 발표했다. 그런데 8개의 사례 중 6개가 ‘기후 변화 경감’ 접근 방식으로 ‘리스크 최소화’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다수의 중앙은행이 현재의 리스크 관리 방식이 충분히 효과적이라고 믿거나 기후 위험 평가를 통화 정책에 통합하는 것에 현실적인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통화 정책은 기본적으로 담보 대출, 자산 구매 프로그램(asset purchase programs, 유동성 확대를 위한 양적 완화 정책), 유동성 공급을 통해 실행되며, 중앙은행들은 이 세 가지 영역에 걸쳐 기후 요소를 감안한 조정을 시행하고 있다.

중앙은행 통화 정책 구분
주: 신용 대출 - 대출 종류에 따른 조건 변경, 담보 가치에 따른 조건 변경, 대출 기관 자격에 따른 조건 변경 / 담보 - 담보 가치 할인, 심사를 통한 선별(네거티브), 심사를 통한 선별(포지티브), 담보 풀 조정 / 자산 구매 - 점진적 방식, 심사를 통한 선별(네거티브), 심사를 통한 선별(포지티브) / 목적 - 기후 변화 경감, 리스크 최소화, 둘 다/출처=CEPR

가장 먼저 중앙은행들은 시중 은행에 대한 대출에 기후 관련 활동 평가를 반영해 이자율 등의 조건을 결정한다. 환경친화적 대출이 많은 금융 기관들에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중앙은행들은 또한 탄소 집약적 자산에 담보 가치 할인(haircuts)을 더 많이 적용해 대출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대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도 사용한다. 또한 환경친화적 투자 기관에 자산 구매 프로그램을 더 많이 배정하는 중앙은행도 있다. 이들은 탄소 집약적 자산을 아예 제외하는 대신 친환경 자산 구매를 늘리고 고탄소 자산을 줄이는 점진적 방식을 사용한다.

기후 금융 역량, 정책 가이드 및 정보 부족 등 ‘과제 산적”

이렇게 기후 요소를 통화 정책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중앙은행들이 겪는 어려움은 아직 많다. 가장 먼저 언급할 점은 많은 기관들이 기후 금융 역량을 내재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과 통화 정책의 초점이 각자의 국가 경제 구조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금융 산업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공개 시장에서 거래되는 증권보다는 은행 대출 정책을 조정하는 것이 훨씬 더 높은 정책 효과성으로 이어진다. 중앙은행들은 이러한 점을 감안해 자산 가치 극대화를 최우선시하면서 공개된 기후 관련 데이터로 확증된 통화 정책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또한 중앙은행이 저탄소 이행 지원 임무를 수행한다 해도, 기존의 경제 목표 대비 어느 정도의 기후 관점이 반영돼야 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자산 구매 프로그램에 친환경 자산을 얼마나 포함해야 하는지, 또는 탄소 집약적 담보 자산에 어느 정도의 할인을 적용해야 할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적정성 검토는 복잡한 데다 계량화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관이 초기에 작은 변화로 시작해 향후 조정을 기약하는 점진적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효과적인 기후 관련 통화 정책이 집행되려면 금융 자산에 대한 세부적인 정보가 있어야 한다. 필요한 핵심 지표는 기업 단위 온실가스 배출량, 에너지 효율 등급, 친환경 채권 인증(green bond certifications, 채권의 지속 가능성 요건 충족 여부 확인) 등이다. 점점 더 많은 배출 관련 데이터가 제공되고 있지만 기업 규모와 자산 집단에 따라 아직도 차이가 크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은행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빠진 배출량 정보를 산업 평균에 기반해 재산정한다든지 과거 공시 자료를 찾아보는 정도의 실용적인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중앙은행이 친환경 대출 및 자산 구매 프로그램 참여 시 기후 관련 공시를 의무화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는 리스크 최소화에서 나아가 금융 시장의 투명성과 표준화 수준을 높이는 데도 이바지한다.

지금까지 중앙은행들은 기후 요인을 통화 정책 체계에 통합하는 데 괄목할 만한 진전을 이뤄 왔다. 실행에 있어 까다로운 문제들이 있지만 지속적으로 접근 방식을 개선하고 관련 경험을 공유하며 변화하는 경제 상황에 맞춰 전략을 다듬는다면 극복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문의 저자는 캐스퍼 시거트(Caspar Siegert) 영국중앙은행(Bank of England) 이코노미스트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he rising tide of climate action: Adjustments to central banks’ monetary policy operation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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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파고드는 中 기업들, 동남아 점령 나서나

말레이시아 파고드는 中 기업들, 동남아 점령 나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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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기업들, 말레이시아 스마트폰·자동차 시장서 '질주'
말레이시아, 美 압박에 "관세 회피에 자국 이용 말라" 경고
말레이시아 넘어 동남아 곳곳에 상륙한 中, 韓 기업 영향은 

중국 기업들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지 산업계 곳곳에서 중국 브랜드의 영향력이 확대되며 전반적인 시장 흐름이 뒤바뀌는 양상이다.

中 테크 기업, 말레이시아 점령

23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브랜드들이 말레이시아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가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경쟁력 있는 가격과 적정 수준의 품질, 탄탄한 현지 화교 인프라 등에 힘입어 중국 기업들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흐름은 말레이시아 하이테크 시장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중국 샤오미의 말레이시아 스마트폰 시장 내 점유율은 23.7%에 달한다. 이는 시장 1위인 삼성(점유율 26.0%)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점유율 3위 기업은 애플(13.8%)이며, 그 뒤로 비보(11.7%), 오포(11.5%), 아너(4.4%) 등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이어지고 있다.

같은 기간 말레이시아 전기차 시장에서는 중국 비야디(BYD)가 39.3%의 점유율을 기록, 테슬라(23.6%)를 제치고 압도적 1위를 점했다. 또 다른 중국 자동차 브랜드인 체리자동차 역시 말레이시아에서 세 번째로 많이 팔리는 수입차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의 유력 기술 기업들이 속속 말레이시아 현지 시장에 진출해 덩치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우회 수출' 우려

중국 기업들의 말레이시아 시장 내 입지가 확고해진 가운데, 말레이시아 정부의 우려는 깊어져 가고 있다. 중국이 말레이시아 시장을 미국 관세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리우 친 통 말레이시아 투자통상산업부 부장관은 지난해 12월 한 행사에서 "나는 지난 1년 정도 기간 여러 중국 기업에 미국 관세를 피하려고 말레이시아를 통해 그저 제품 브랜드만 바꿀 생각이라면 말레이시아에 투자하지 말라고 조언해 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말레이시아 측이 직접적으로 우회 수출 관련 입장을 표명한 것은 미국이 중국의 우회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동남아 각국을 상대로 관세 등 무역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5월 미국은 동남아를 통한 중국산 태양광 제품의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해 말레이시아와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에서 생산된 태양광 패널에 대한 한시적 관세 면세 조치를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같은 해 10월 미국 상무부는 베트남과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태국에서 수입하는 태양광 패널에 관세를 적용하기로 예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말레이시아산 태양광 패널에는 9.13%의 관세가 부과됐다.

中, 동남아 전반까지 영향력 키워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들은 말레이시아는 물론 동남아 시장 전반까지 공략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하이테크업계를 넘어 식음료 등 실생활과 밀접한 시장에서도 중국 브랜드의 영향력이 눈에 띄게 확대되는 추세다. 싱가포르 컨설팅업체 모멘텀웍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동남아 식음료 시장에서는 믹스에, 루킨커피, 하이디라오 등 약 60개에 달하는 중국 브랜드가 6,1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이는 2022년 1,800여 개에서 3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화교 인구가 많아 중국 브랜드 진출이 특히 활발한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 식음료 기업들이 동남아 공략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자국 시장의 침체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2024년 상반기에만 100만 개 이상의 식당이 문을 닫았다. 이는 전년 대비 70% 증가한 수치다. 치열한 경쟁과 경기 침체로 인해 업황 전반이 악화한 것이다. 반면 동남아 식음료 시장은 중국의 약 17% 규모에 불과하지만,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하고 성장세가 뚜렷하다는 강점이 있다.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 6개국의 외식 소비 규모는 2023년 1,270억 달러(약 182조7,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발발 이전인 2019년 외식 소비 규모(1,157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중국 기업들을 중심으로 동남아 시장에 지각변동이 발생한 가운데, 일부 국내 전문가들은 차후 점진적으로 국내 기업들의 동남아 수출로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전문가는 "중국의 동남아 시장 공략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지속될 경우, 중국과 동남아 경제의 '커플링(동조화)' 현상이 본격화하게 된다"며 "중국과 동남아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형식이 되면 동남아 시장은 '제2의 중국'이 되고, 한국 기업들의 동남아 수출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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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스케일’로 영화 팬 눈길 사로잡은 中 애니, 정부 지원 등에 업고 도약

‘대륙 스케일’로 영화 팬 눈길 사로잡은 中 애니, 정부 지원 등에 업고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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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자2, 美 개봉 5일 만에 1천만 달러 수익
中 정부 산업 지원책 주효, 투자도 ‘빵빵’
“전통문화에서 잠재력 발산” 자신감

세계 영화 산업 내 중국 애니메이션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진 모습이다. 어디서 본 듯한 줄거리와 캐릭터, 조악한 그래픽 등으로 혹평을 면치 못했던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과 탄탄한 내수 시장이 산업의 발전을 주도하는 가운데, 중국의 특색을 살린 참신한 스토리도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중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흥행 돌풍에 나선 ‘너자: 악마소년의 바다 소동(이하 너자2)’이 그 선봉에 서 있다.

‘봉신연의’ 모티프, 미국에서도 흥미 끌어

24일 중국 박스오피스 사이트 덩타(燈塔)에 따르면 너자(哪吒·Nezha)2는 지난달 29일 중국에서 개봉한 이후 16일 만에 2억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이달 20일 기준 누적 관객이 2억5,783만 명으로 집계됐다. 극장 수익으로 환산하면 17억2,160만 달러(약 2조4,690억원)로 기존 1위인 미국 디즈니의 ‘인사이드아웃2’(16억9,800만 달러)를 제치고 세계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너자2는 2019년 개봉한 ‘너자, 악동의 탄생(咤之魔童降世·이하 너자1)’의 속편으로, 명나라 때 쓰인 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 속 영웅신 너자(나타)의 이야기를 각색한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다. 삐딱하고 반항적인 모습의 주인공은 옳은 척하는 악당이 만든 질서를 처참히 깨부수며 많은 관람객에게 대리만족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작품 속 판타지 세계에서 오늘날 중국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는 평가다.

너자2는 이 같은 중국 내 인기를 발판으로 미국에서도 흥행에 박차를 가했다. 이달 14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에서 개봉한 너자2는 개봉 닷새 만에 관람 수익 1,000만 달러(약 143억원)를 넘었다. 18일 기준 미국 내 상영관은 722곳에 달하며, 박스오피스 순위도 4위까지 올라섰다. 이는 디즈니가 지난해 12월 선보인 실사 영화 '무파사: 라이언킹'보다 앞선 성적이다.

업계는 너자2의 전 세계적 흥행 이면에 자국 애니메이션 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자리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중국 정부는 2006년부터 TV 방송 채널에서 오후 5~8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은 자국에서 제작된 작품만 송출하도록 했다. 이에 앞서 2005년에는 항저우가 ‘애니메이션 특화 도시’로서의 도약을 선언하고 매년 5,000만 위안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23년 기준 항저우 국내총생산(GDP)의 약 16%가 애니메이션 및 게임 산업에서 창출됐다.

이 같은 중국 애니메이션의 분전은 한국과 비교해도 매우 뛰어난 성과다. 한국 영화 시장은 세계 5~6위 규모를 자랑하며 소위 ‘메이저’로 분류되지만,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으로 100만 관객을 넘긴 작품은 ‘마당을 나온 암탉’(2011년),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3D’(2012년), ‘사랑의 하츄핑’(2024년) 등 어린이 영화 3편뿐이다. 이렇다 보니 해외 진출하는 작품들은 글로벌 OTT를 겨냥한 시리즈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와 관련해 신창환 한국애니메이션제작협회장은 “너자2에서 확인할 수 있듯 중국 애니메이션의 영상 수준이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 눈에 띄게 개선됐다”며 “정부의 대규모 지원과 거대한 내수시장에 힘입어 중국 애니메이션은 급성장했지만,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카’와 ‘오토봇’ 포스터/사진=브에나비스타픽처스, 지뎬

저작권 침해 사례 다수, 법원도 표절 인정

이처럼 중국 애니메이션의 달라진 위상은 ‘상습적 표절’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던 지난날과 비교해도 매우 달라진 풍경이다. 과거 중국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모티프나 줄거리, 캐릭터 표현 및 활용에서 외국 유명 작품을 모방하는 수준에 그친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심지어 높은 유사성으로 소송까지 번지는 경우도 빈번했다.

대표적으로는 2015년 개봉한 중국 애니메이션 시리즈 ‘오토봇(汽車人總動員)’의 사례를 꼽을 수 있다. 말하고 움직이는 레이싱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해당 작품은 개봉과 동시에 디즈니와 픽사의 애니메이션 ‘카(Cars, 2006년 개봉)’를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관객들은 두 작품의 콘셉트와 포스터 등이 매우 유사한 점을 들어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디즈니 측에서도 이 점을 문제 삼았다. 오토봇 제작사가 포스터와 캐릭터 이미지를 거의 흡사하게 도용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지적이다. 디즈니와 픽사는 오토봇 제작사 란훼옌(藍火焰·Bluemtv)과 배급사 지뎬(基点·G-Pioint), 스트리밍 업체 PPTV 등 3곳에 저작권 침해와 불공정 경쟁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 400만 위안(약 7억9,000만원)의 손해 배상금을 요구했다.

1년 가까이 이어진 법정 공방 끝에 상하이 푸둥신구 인민 법원은 피고 측에 저작권 침해와 부정한 경쟁 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원고 측에 135만 위안(약 2억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줘젠룽 오토봇 감독은 “누군가가 당신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법을 위반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주장을 펼쳤고, 작품 표절 여부를 둘러싼 논란 또한 한동안 이어졌다.

‘너자1’으로 분위기 반전 신호탄

중국 최대 규모의 애니메이션 제작소 상하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창립 70주년을 바라보는 최근까지도 중국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영화 팬들의 시선은 의구심이 주를 이뤘다. 1957년에 탄생한 상하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500편이 넘는 시리즈·영화를 선보이는 등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지만, 대부분 작품이 중국 내에서만 유통된 탓에 보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나의 붉은고래’, ‘벅스 프렌즈’, ‘꼬마영웅 바비’ 등 일부 영화가 해외 진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름을 알리기는 역부족이었다.

중국 애니메이션이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건 이번 너자2의 성공 기반이 된 너자1부터다. 2019년 개봉한 해당 작품은 중국 개봉 나흘 만에 8억 명의 관객 수를 기록했고, 전 세계적으로는 50억 위안(약 1조원)가량의 수익을 올리며 중국 애니메이션의 비약적인 성장을 알렸다. 관객들은 5년에 달하는 제작 기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스케일과 실감 나는 그래픽을 너자1의 특장점으로 꼽았다.

이를 두고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너자 시리즈의 흥행은 중국 애니메이션 업계와 영화 업계에 매우 큰 격려”라고 진단하며 “이는 중국 전통문화에서 영감을 탐구할 잠재력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간 소외됐던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에게는 엄청난 자신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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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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